신가동 재개발, 관리처분 변경총회 강행, 공사·사업 중단 피해 조합원은?

[일요시사 취재2팀] 김해웅 기자 -= “돈 먹는 하마…재건축 현장이 부동산 경기침체와 공사비 인상으로 갈등이 커지면서 혼돈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12일 KBS1 <추적60분>서 ‘공식이 달라졌다-혼돈의 재건축’편을 통해 추가 분담금을 내게 된 조합원들이 공사비 인상을 거절하면서 시공자와 갈등을 겪어 공사를 시작조차 못한 재개발 현장들을 다뤘다.

시공자가 여러번 바뀌고 소송 등에 휘말리며 정작 재건축이 무기한 지연된 사례를 소개한 방송에서는 이미 6년 전 조합원들의 이주가 끝났고, 아파트도 철거됐지만 공사 현장이 그때 그대로 멈춰 있는 상황들이 전파를 탔다.

해당 주민들은 “소위 ‘대박 나면’이라며 모였던 조합원들(투자자)의 욕심·무지 덕”이라며 조합 집행부도 없는 현재 상태를 한탄했다. 입지가 좋다는 말만 믿었던 해당 조합원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냐”고 입을 모았다.

재건축 전문가는 “아직도 삽도 못 뜬 이유는 조합원들 간 내홍 탓이다. 일부 조합원들이 조합 집행부에 반대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조합 집행부를 쫓아내는 일도 반복됐다”면서 “현재 도시정비시장서 일어나고 있는 지각변동을 인정하지 않으면 비슷한 일들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상반기 유관 업계의 눈길이 쏠린 사업장은 광주광역시 신가동 재개발이 꼽히고 있다”며 “사업 관계자들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업 중단으로 인한 표류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광주 신가동 재개발 사업은 이주 및 철거가 완료됐으나 막대한 이자가 나가면서 조합원의 손해가 어제오늘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합이 시공 파트너와 원만한 협의에 실패했다는 점, 지방 미분양이 지속 발생하며 연일 하락하고 있는 부동산시장서 시공자와의 분쟁으로 장시간의 소송이 불가피할 것이 예상되고 시공자 교체까지 염두에 두는 등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해당 사업은 광주 광산구 신가번영로9번안길 31(신가동) 일원 28만8058.6㎡를 대상으로 한다. 조합은 이곳에 지상 29층 규모의 공동주택 51개동 4718가구 및 근린생활시설 등을 신축할 계획이다.

공사비 규모가 약 1조8000억원으로 광주 최대 사업이라고 꼽히는 신가동 재개발은 2015년 10월 DL이앤씨-GS건설-롯데건설-SK에코플랜트-한양 컨소시엄(빛고을드림사업단)을 시공자로 선정한 바 있다.

이후 지난해 11월 3.3㎡(1평)당 공사비 706만원 합의로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를 것으로 기대됐으나 조합이 올해 초 계약을 거부하면서 다시 안갯속으로 빠졌다. 올해 초까지 봉합되는 듯 보였던 착공 연기 및 공사비 갈등은 점점 더 어려운 길로 들어서는 모양새다.

조합의 고분양가 강행 의지에 사업 중단 우려 ↑
HUG, 관리처분계획 변경·분양보증서 발급 거부 우려

특히 지난 2일 조합 대의원회에서는 사업단과 협의 없이 관리처분계획 변경 안건(일반분양가 3.3㎡당 2450만원)과 공사비 안건을 가결하고 총회를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대의원회를 전후로 시공자 측과 조합 사이에 공문이 오가며 의견을 나눴다.

신가동 재개발은 전체 수익금 2.5조원 중 일반분양 아파트 수입금 1.9조원으로 전체 수입의 76% 차지하고 있으며 일반분양의 수입금으로 공사비 1.8조 원을 충당해야 하는 구조라 시공자 측은 공문으로 조합에 일반분양가를 2186만원으로 조정해 관리처분계획 재수립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를 두고 건설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미분양 시 공사비 지급불가 사태’ 발생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일각에선 미분양 발생 시 공사비 재원 확보 전까지 공사 중단 및 사업 중단 가능성까지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반면 조합 측은 예정된 관리처분변경총회를 진행하고 향후 미분양시 관리처분변경으로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조합원들은 “급격한 물가상승과 하이엔드 적용으로 단지 고급화에 따라 공사비가 상당히 증가했고, 이를 감당하려면 일반분양 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며 “관리처분총회 통과 조건이 전체 조합원의 2/3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서 조합원의 부담금을 늘릴 수는 없으며 조합원에게 긍정적인 사업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올해 하반기 미국의 금리 인하로 인해 부동산시장이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도시정비업계 전문가는 “공사비 재원확보를 위해 일반분양 물건의 할인분양에 상응하는 조합원 추가 부담금 총회 절차를 진행할 경우, 통상적으로 추가 부담금 증가로 인해 조합원 의견이 합의되지 않으며 일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같은 사례들로 인해 할인분양 시기를 놓치면서 아파트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게 부동산 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투자 목적이 아닌 실 거주를 위해 기다리는 조합원들의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편, 빛고을드림사업단 시공자 측은 이 같은 사업 리스크 해결을 위해 조합에 지속적으로 관리처분계획 변경(안) 재수립을 요청하며 지난 12일, 조합에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공자 측은 ▲미협의 관리처분 변경총회 강행 ▲비례율 120% 기준 일반분양가(3.3㎡당 2450만원)에 발코니 확장·중도금 이자를 더해 추산할 때 9억원의 고분양가(34평 기준) ▲대량 미분양 발생 시 상환 리스크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및 관리처분계획 변경 미승인 등을 들어 조합 집행부에 절차상 하자를 바로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유관 업계 관계자는 “HUG는 사업비·공사비 상환 불가 시 보증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고분양가 심사 대상이 아니더라도, 분양보증을 끊어주기 전 사업비 보증 사업장에 대해 일반분양가 검토를 실시한다”며 “무리한 분양가로 판단될 경우 다시 관리처분계획 변경을 요청하거나 분양보증서 발급을 거부하는 상황까지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신가동 재개발이 2023년 말부터 3번째 총회를 진행 중이나 HUG서 일반분양가를 미동의할 경우 관리처분 변경총회를 위해 4번째 총회마저 진행해야 하고, 관리처분 변경인가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할 경우 사업 진행은 최소 6개월 이상 지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악화하는 부동산 경기 속 적정 분양가에 대해 사업 관계자들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사업중단으로 인해 신가동 재개발은 기한 없이 표류하게 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조합이 일방적으로 관리처분 변경총회 개최를 강행하고 있어 조합원들의 선택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haewo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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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상)

[창간특집 단독기획] 26년 만에 다시 꺼낸 산업증권 파산의 비밀(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997년 말 국가부도 상황이 벌어졌다. 기업이 줄줄이 도산했고 수많은 근로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았다. 자본금 수천억원, 국책은행을 뒷배로 둔 대형 증권사들도 고꾸라졌다. ‘절대 망할 리 없다’던 회사의 붕괴는 30여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피해자의 마음에 상흔으로 남아 있다. 산업증권 ‘파산의 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8년 10월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공성진 의원이 한국산업증권(이하 산업증권) 파산 문제를 언급했다. 당시 공 의원은 “산업증권이 IMF 위기 시에 불·탈법적으로 강제 파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산업증권은 한국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이 자본금을 100% 출자해 설립했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의 1인 대주주였던 셈이다. 망하지 않는다 이날 국감에서는 산업증권이 파산에 이르는 과정서 일어난 일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공 의원은 ▲산업증권 해산 과정서 이사회와 재정경제부의 허가 여부 ▲산업증권을 파산으로 끌고 간 1041억원 ▲개인명의의 계좌 ▲개인 계좌를 통해 한국산업선물로 흘러간 54억원 등에 대해 질의했다. 1998년 산업증권 해산 이후 10년 만에 당시 상황이 국감에 언급되면서 각종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개인명의의 계좌를 통해 오고 간 자금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됐다. MB(이명박)정부 들어 처음 열린 국감서 산업증권 파산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자 일부 언론은 이전 정부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당시 국감에 증인으로 참석한 이충현 전 산업증권 채권관리팀장은 여전히 사건을 추적하고 있다. 현재 서울 강서구의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외환위기 당시 좌파 정부의 고위관료들은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범죄적 구조조정과 부정부패로 천문학적 비자금을 조성하고 나라와 국민에게 회복 불능의 상처를 남겼다”고 일갈했다. 이 구의원은 산업은행에 근무하다가 산업증권 설립과 동시에 이직했다. 그는 산업증권이 파산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피해자이고 ‘강제파산’ ‘사기파산’ 의혹을 제기한 제보자, 산업증권강제퇴출피해대책위원장이자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원고로 26년을 보냈다. 그사이 소송서 패소했고 법적 시효는 끝났다. 그럼에도 이 구의원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산업증권 파산 사건을 놓지 못한 상태다. 산업증권에 근무했던 직접 피해자와 가족 등이 일한 간접 피해자들은 “IMF 사태였다고 해도 산업증권이 망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개인을 고객으로 하는 일반은행이 아니라 산업자본 조달을 위해 설립된 국책은행을 등에 업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산업증권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망했다. 400여명의 근로자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다. 문제는 1997년 12월 IMF 사태 이후 1998년 해산, 1999년 파산 선고 때까지 석연치 않은 의문이 여럿 나온 점이다. 특히 청산 절차가 시작된 이후 개인명의 계좌를 통해 자금이 움직인 증거가 나왔다. 이 구의원이 가지고 있는 71개의 이른바 ‘비밀 통장’의 존재가 드러난 것이다. 산업증권은 ‘산업은행이 발행하고 있는 산업금융 채권의 원활한 소화 및 국제업무 특화’를 목적으로 1991년 4월 설립됐다. 산업은행이 100%를 댄 초기 자본금은 1500억원에 달했고 1992년 11월 1000억원, 1998년 3월 1500억원을 증자해 1998년 7월25일 해산 당시 산업증권의 자본금은 4000억원에 이르렀다. IMF 사태로 증권사 강제 퇴출 산업은행 1인 대주주로 안정성↑ IMF 사태로 휘청이긴 했지만 산업증권은 명예퇴직, 임금 반납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상황을 개선하려 했다. 산업은행 역시 산업증권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증자하는 등 위기 타파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산업증권 본사에서 근무하던 이 구의원과 지방 지점에 있던 김영수(가명)씨는 “회사에 큰 문제는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98년 5월 산업은행에 새 총재가 부임하면서부터다. 특히 언론을 통해 ‘산업증권 연내 폐쇄’가 발표되자 내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고객과 채권자들은 동요했고 예금인출을 서두르는 등 대혼란이 일어났다. 당연히 신규영업도 줄어들었다. 영업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로부터 2개월 뒤 1998년 7월 산업은행은 산업증권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해산결의를 진행했다. 이후 1999년 2월 산업증권의 청산인은 ‘부채 초과 및 지급불능’을 이유로 파산선고를 신청했고 같은 해 3월13일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산업증권은 파산했다. 연내 폐쇄 발표부터 파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이 구의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의 산업증권에 대한 해산결의는 노동조합과의 퇴출 위로금 규모를 합의하는 사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산업증권의 노조위원장과 산업은행의 대표이사, 부총재 등이 퇴출 위로금으로 24개월치 임금을 지급하기로 구두 합의를 진행하는 과정서 해산이 결정됐다. 당시 산업증권 대구지점서 근무하던 김영수씨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명예퇴직으로 나간 직원들은 20개월치 월급을 받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산업증권이 망한 이후 나간 직원들은 퇴직금 수준의 돈만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산업증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이 구의원은 2010년 5월 산업증권 파산으로 직장을 잃은 피해자를 모아 산업은행, 금융감독원, 전 산업은행 총재와 부총재, 산업증권 청산인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산업증권 파산 과정서 피고들의 불법행위가 자행됐고 이로 인해 피해자(직원)가 생겼으니 이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해달라는 취지다. 수장 바뀌고 급변한 기류 이 구의원은 “먼저 산업은행의 산업증권에 대한 해산결의가 적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또 파산 신청의 원인이 된 자본잠식 상황은 조작됐고 1041억원의 대지급도 실제 진행됐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산업증권 해산결의 이후 만들어진 수십여개의 개인명의 계좌와 이를 통한 자금흐름은 사기파산, 강제파산의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1999년 2월 산업증권 청산인 명의로 서울지방법원에 제출한 파산선고신청서를 보면 ▲지급불능 ▲채무초과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1500억원에 달하는 산업은행의 유상증자, 대규모 인원 정리, 조직 슬림화 등 자구 노력에도 수습이 안 될 정도로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또 회계법인의 실사 결과 부채가 자산보다 많다는 점도 명시했다. 반면 이 구의원은 결산보고서와 회계법인이 청산 가치 기준으로 작성한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해산일 기준(1998년 7월25일) 자산이 부채보다 약 100억원가량 많다고 주장했다. 일반 채권자에게 변제해도 돈이 남는 만큼 파산이 아니라 청산 형태로 종결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은 청산이 아닌 파산의 방식을 택했다. 청산은 재산관계를 정리해 이를 분배하는 절차를 뜻한다. 파산은 회사의 총 재산을 총 채권자에게 공평하게 나눠주는 절차다. 파산은 법원의 결정에 따라 진행된다. 산업증권이 청산으로 마무리됐다면 산업은행은 유일한 대주주로서 손해를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법원이 파산 결정을 내리면서 산업은행은 대주주이면서 채권자가 됐다. 산업증권의 파산과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1041억원’의 존재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에 빌려준 단기자금으로 파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돈이다. 산업증권은 1998년 7월28일 ‘1998년 7월25일자로 회사 해산을 결의하고 청산 절차를 진행하던 중 1998년 7월27일 교환에 회부된 어음(금액 1041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 조치를 당했다. 자체 자금 조달도 어려우니 추가 자금 지원을 부탁한다’고 산업은행에 요청했다. 의문점 많아 국감서 다뤄 산업은행은 이 돈을 산업증권 대신 갚았다(대지급). 다시 말해 산업증권이 산업은행에 빌린 돈을, 산업은행이 산업은행에 갚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산업은행이 대지급한 1041억원은 산업증권의 채무로 잡혔다. 이 과정서 부채가 자산보다 늘어나면서 산업증권 파산의 원인, 채무초과 상태가 됐다. 실제 회계법인이 작성한 1998년 10월31일 기준 산업증권의 부채는 2190억원, 자산은 1950억원이다. 부채가 자산보다 240억원 많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산업증권의 파산을 선고했다. 240억원이 산업증권 파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 후폭풍은 400명이 넘는 산업증권 직원에게 미쳤다. 이 구의원은 산업은행이 대지급했다는 1041억원이 실제 거래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산업증권은 대지급 요청문서 ‘산업증권 청산 절차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라고 기술했고 현금지원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돼있지만 실제로 산업은행은 산업증권에 1041억원을 신규 지원한 사실이 없고 내부 문서에도 신규 추가지원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구의원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파산 절차 과정서 ‘사후관리대지급금’으로 1041억원을 파산채권으로 신고해 2009년 5월 기준 파산채권의 100%를 돌려받았다. 산업은행 입장에서는 단 한 푼의 손해도 없이 대신 지급한 돈을 전부 회수한 것이다. 1041억원의 진실은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법원의 허가로 산업증권 메인 전산 서버가 파기된 상태기 때문이다. 다만 산업증권 청산 절차 과정서 개설된 통장은 실물로 존재한다. 이 구의원은 71개의 통장을 산업증권 전 직원에게 전달받아 보관해 왔다. 이 구의원은 해당 계좌들을 통해 수천억원에 이르는 자금이 움직였고 일부는 사용처도 불분명하며 최후의 사용처를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비자금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문제가 제기된 부분은 또 있다. 산업증권과 같은 날인 1998년 7월25일 청산 절차에 들어간 한국산업선물(이하 산업선물)에 송금된 54억원의 성격이다. 산업선물은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금융 선물거래를 위해 설립됐다. 파산으로까지 이어진 산업증권과 달리 산업선물은 1998년 정상영업이 시작되기 전에 청산 종결 처리됐다. 그런 회사에 1998년 8월11일 개인 명의의 계좌서 54억원이 이체된 것이다. 이 구의원은 “산업선물은 자본금 100억원의 회사로 산업은행 해산 당시 정식으로 영업개시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1998년 5월 산업증권 연내 폐쇄 발표가 난 상태서 산업선물에 54억원이라는 거액을 입금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1998년 7월부터 시중은행에 개설된 통장은 모두 개인 명의로 돼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계좌 명의자 가운데 2명이 산업증권에 대한 특별검사(1998년 7월25일~8월11일)에 투입된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검사역이었다는 점이다. 직원 400여명 한순간에 길거리로 법적 판단 끝났어도 문제 제기 중 이 구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피고 측은 “1998년 당시 고객예탁금은 한국증권금융주식회사에 별도로 예치 관리되는 현행 제도와 달리 증권회사의 고유재산과 구분해 관리되지 않았다”며 “금감원(피고)은 특별검사 기간 중 고객예탁금을 안전하게 고객에게 반환되는 것을 보장하는 적법한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IMF 사태로 금융회사 파산이 일어난 것은 1998년 이전에 없던 일로 제도가 미비했고 방법을 찾던 중 금감원 검사역의 개인 명의를 이용, 계좌를 개설해 이를 고객예탁금 관리 용도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당시 계좌를 개설했던 2명의 검사역 가운데 1명은 금감원에, 또 다른 1명은 증권사 감사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 명의 계좌와 관련해서는 2008년 국감서도 다시 한번 언급된 바 있다. 국감서 공 의원은 2명의 금감원 검사역 외 계좌를 만든 또 다른 개인 명의자에게 “누구의 지시로 개인명의 계좌를 개설했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해당 인물은 “금융감독검사국 직원들 지시로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공 의원이 거듭 “산업증권의 자금을 개인, ○○○(명의 당사자)의 이름으로 관리하게 된 것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해당 인물은 “감독 당국의 지시에 의해서 한 것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2011년 이 구의원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피고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총 주식을 한 사람이 소유하는 이른바 1인 회사의 경우에는 주주총회 소집 절차를 밟지 않거나 총회를 개최한 사실이 없다고 하더라도 1인 주주에 의해 의결이 있었던 것으로 주주총회의사록이 작성됐다면 그 내용의 결의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고 그 결의는 유효하므로 해산결의가 무효라거나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의 해산을 결의하는 과정이 절차적으로 하자가 없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해산결의 절차가 적법하고 유효한 이상 근로자에 대한 해고도 위법하지 않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또 소송을 제기한 시기가 사건 발생일 이후 10년이 경과된 상황이라 손해배상채권 시효가 소멸됐다고 봤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이 구의원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법적인 판단은 끝난 셈이다. 정치적 이유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구의원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나섰다. 이 구의원은 2012년 법적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왔다. 현재 이 구의원이 용산 대통령실에 넣은 청원은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 반부패공공범죄수사과 등을 거쳐 금감원으로 이송된 상태다. 이 구의원은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다면 인수합병, 매각 등의 방식을 써도 됐을 일이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1인 대주주라는 점을 이용해 산업증권을 없애버렸다. 산업증권의 파산이 정치적인 목적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정부가 산업증권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고르면서 429명의 직원과 그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고통받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