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은 지금…

1967년부터 버려진 사람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백사마을. 정겹던 마을 풍경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주민들의 십수년 숙원인 재개발사업에 시동이 걸리면서다. 하지만 지금 허물어지고 있는 건 낡은 집들이 아니다. 주민들의 기대와 희망이다. <일요시사>는 백사마을의 마지막 모습을 살피고, 주민들의 하소연을 들으러 백사마을로 향했다.

백사마을이라는 이름은 ‘중계동 산 104번지’라는 옛 주소에서 따왔다. 그동안 서울시 성북구·도봉구·노원구로 속한 행정구역은 여러번 바뀌어왔지만, 매번 끝 주소는 같아 이름이 그대로 굳어졌다.

강제 이주
개발 제한

백사마을은 서울 동북쪽 끝에 있다. 지하철 7호선 하계역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마을 입구가 나온다. 여느 달동네가 그렇듯, 마을 중심으로 들어가려면 오르막길을 10분은 족히 걸어야 한다. 

서울 도심에서 찾아오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하다. 하지만 백사마을에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늘 끊이지 않았다. ‘사진 명소’라는 입소문을 꾸준히 타면서다.

백사마을에는 서울에서 이제 찾아보기 힘든 정겨움이 남아 있다. 좁은 골목과 아기자기한 집들, 연탄과 빨랫줄까지. 지난 2017년,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에 젊은 사람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나이 든 사람은 향수에 젖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5년이 지나 마을을 다시 찾았다. 예전의 그 어떤 풍경도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나중에 전해 듣기로는 주민 10명 중 9명이 마을을 빠져나갔다고 했다. 1200가구 중 100가구가 채 남지 않았다.

인적이 드물어진 마을에는 폐허로 변한 건물들만 아슬아슬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집집마다 둘러진 테이프와 빨간 스프레이로 그려진 동그라미가 눈에 띄었다. 이주가 끝나 철거 예정이라는 의미였다.

곳곳에는 일부가 무너진 채 뼈대만 남은 건물들도 보였다. 안쪽이 모두 타버린 채 남겨진 집도 있었다. 2010년대 들어 담벼락마다 그려진 벽화들도 곳곳이 벗겨지고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다시 드러낸 담장을 보면서, 이 마을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다시 떠올렸다.

백사마을이 이렇게 만들어진 것도, 지금까지 모습을 간직해온 것도 어느 하나 주민들의 의지는 아니었다. 그간 봐왔던 백사마을의 정겨운 풍경은 한국 도시 개발사의 어두운 단면, 그 자체다.

백사마을은 1967년 만들어진 마을이다. 개발을 이유로 정부가 용산, 청계천, 안암동 등 서울 각지의 판자촌 사람들을 백사마을로 강제 이주시켰다. 판자촌을 나온 사람들 앞에는 천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는 30평짜리 천막을 치고 분필로 네 등분했다. 8평도 안 되는 공간에 한 가구씩 구겨 넣었다.

세월이 흐른 뒤 주민들은 이사 간 집을 합치고, 남는 땅에 집을 지으며 20평 남짓의 공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개발은 허락되지 않았다. 200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개발제한구역, 즉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민들이 ‘재개발’과 ‘아파트’를 꿈꾸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안전 문제로 주민 90% 조기 이주
폐허 된 마을…누전에 불탄 집도 


그간 주민들이 겪은 애환은 비로소 이들의 애정 어린 손길이 끊긴 후에야 바로 보이게 됐다.

마을을 두 바퀴나 돌고서야 아직 마을에 남은 주민 한 분과 마주칠 수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언덕을 오르시던 할머니와 잠시 함께 걸었다. 가방을 들어드리겠다고 하니 한사코 거절하셨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사신 지 올해로 53년째라고 했다. 

‘다들 어디로 갔느냐’고 묻자 할머니는 “개발한다고 해서 다들 나가서 전세 살면서 기다리지. 나간 지 2~3년은 됐어”라고 답했다.

이어 “개발은 4번인가 한다 만다 하더니, 아직도 잘 안됐어. 그래도 이렇게 마을이 텅 빈 걸 보니 이제 뭐가 되긴 하나 봐”라고 덧붙였다.

‘오래 산 동네가 사라지는 게 아쉽지 않으냐’고 묻자 “아쉬워도 50년이 넘은 동네가 없어져야지. 젊은 사람들이 여기서 살 수가 없어”라며 “진작 없어졌을 동네인데, 이제까지 질질 끌린 거야”라고 말했다.

마을 입구로 내려오는 길에 백사마을 주민대표회의(이하 주민대표회의)와 연락이 닿았다. 마을 입구 상가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백사마을 재개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주민대표회의 측 설명에 따르면 백사마을은 1990년대 말부터 서울시와 여러 논의를 주고받았다. ‘개발제한구역 내 집단취락지’로 분류된 백사마을에게 서울시와의 논의는 필수였다.

그러던 중 서울시가 2008년 백사마을 구역 면적 80%가량의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했다. 대신 재개발사업으로 하되, 공공사업시행자로 건립 세대수의 50%를 건설하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대책 없는 
조치만 남발

이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시행자로 지정됐다. 2009년 구역을 반으로 나눠 각각 분양아파트 1461세대와 임대아파트 1297세대를 건설하는 정비계획이 수립됐고, 구역 지정도 고시됐다.

주민들은 “그때만 해도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될 줄 알았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2011년 하반기 들어 사업이 돌연 보류됐다. 서울시가 “서울에 마지막으로 남은 달동네를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입장을 선회한 탓이다.


그러는 사이 서울시장은 오세훈 시장에서 고 박원순 전 시장으로 바뀌었고, 서울시는 2012년 6월 들어 새로운 정비계획을 내놨다. 직접 임대주택 부지를 매입해 주거지 보전사업을 자체 시행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따라서 새로운 정비계획에 임대주택 세부계획은 들어가지 않았다. 

바뀐 법에 따라 충족해야 하는 17%의 임대주택 비율은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해 확보하고, 나머지 세부계획은 서울시가 알아서 수립‧시행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서울시는 임대주택부지에 임대 아파트 대신 저층 주거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서울시는 그 세부계획을 수년 동안 완성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업 안팎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결국 모든 갈등을 해소하고 다시 사업 방향을 논의하기까지, 5년이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갔다.

멈췄던 개발 시계가 다시 움직인 때는 2017년 7월. 서울시 중재로 시행사가 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로 바뀐 게 신호탄이 됐다. 주민들은 비로소 사업이 제대로 추진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 역시 잠시뿐이었다.

서울시가 “임대주택부지에서 사업을 직접 시행하겠다”던 기존 입장을 뒤집으면서, 사업 추진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당시 서울시는 주민대표회의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주거지 보전사업의 임대주택도 재개발구역이므로, 우리가 사업시행자가 될 수 없다”며 “(기존에 빼놨던)임대주택 세부계획을 정비계획에 반영해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당초 약속받았던 ‘서울시 직접 시행’은 2011년 사업계획 변경 때 주민들이 부담 가중을 우려하자, 이를 달래기 위해 서울시가 내건 ‘협상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거센 반발이 뒤따른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서울시는 “사업 시행은 SH가 해도 당초 약속한 대로 주민 부담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시 설득에 나섰다. 주민들은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 서울시 의견을 받아들였다.

다 된 밥에
재 뿌리기

이에 따라 서울시는 2017년 12월, 다시 변경 방침을 수립했다. 주민 부담을 없애기 위해 관련 조례를 개정한다는 내용도 여기에 포함됐다. 이 방침은 도시계획위원회를 거쳐 2019년 10월 고시됐다. 변경된 정비계획에 따르면 주거지 보전사업 부지에는 총 698세대가 들어서게 됐다.

같은 시각 백사마을은 주민들의 거주가 어려울 정도로 주거환경이 악화됐다. 서울시는 안전사고 예방을 이유로 주민들에게 조기 이주를 권고했다. 주민들은 몇 년 안에 재개발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서울 도처로 전셋집을 구해 나갔다.

주민들의 바람대로, 최근까지도 사업은 차근차근 진행돼왔다. 지난해 3월 사업시행인가가 나왔고, 12월에는 GS건설로 시공자 선정을 마쳤다.

주민들은 분양신청·관리처분 등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서울시에 “임대주택 매입비를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2017년 12월 방침이 잘못됐다”며 “주거지 보전사업의 임대주택 매입비를 추가로 줄 수 없다”고 또다시 말을 뒤집었다.

주민대표회의 측 주장에 따르면 서울시는 이들에게 “공사비가 너무 비싸다”며 “매입비를 결정하는 대신 주거지 보전사업을 재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주민대표회의 관계자는 “원래 임대주택을 짓기로 한 땅에 주거지 보전사업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 서울시”라며 “본인들이 제안한 것이고, 공사비가 더 많이 들어갈 것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주민들 설득할 때는 언제고 왜 이제 와서 딴소리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이어 “또다시 정비계획 변경안을 수립하고 결정하면 몇 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게 뻔한데, 그때까지 폐허가 된 마을을 그냥 두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라는 것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 관계자의 주장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달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비용을 이유로 주거지 보전사업 부지에 임대주택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허탈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만약 해당 부지에 임대주택이 들어선다면, 이는 2009년에 추진하던 계획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시의 ‘10년 공염불’에 시간만 날린 셈이다.

10년 표류 사업 본궤도 올랐지만… 
시 ‘공염불’에 또다시 지연 위기

실제로 주민들 사이에서는 “서울시가 ‘딴지’만 걸지 않았어도 이미 그 자리에 임대 아파트가 들어서고 남았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주민들의 주장 일부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서울시의 매입비 전액 부담 약속’을 두고 “2012년 관련 조례가 변경된 건 맞다”면서도 “다만 서면에는 ‘협의해서 한다’고 표현돼있을 뿐, ‘전부 부담한다’는 내용은 없다. 우리는 조례를 근거로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에는 구두상으로 어떤 합의가 오고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일하고 있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며 “그동안 ‘가급적 계획에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 부분은 최대한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울시가 공사비 부담을 거부하고 있다’는 비판에는 “그와 관련해 최종 입장을 결정한 바 없고 아직 검토가 끝나지 않았다”며 “며칠 전에 SH가 자료를 넘겨줘서 현재 검토 중에 있다”고 해명했다.

‘공염불 논란’에 대해 묻자 “임대 아파트를 건설하는 방안은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검토했을 뿐, 그렇게 하기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따라서 이에 연관된 지적들에는 아직 답변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사가 늦어질수록 곤경에 처하는 것은 주민들이다. 주민대표회의 측은 “이미 사업 진행을 위해 돈을 미리 당겨 쓴 게 있다”며 사업이 지체될수록 주민들이 져야 할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고 토로했다.

이어 “마을 밖으로 나가 있는 주민들의 전세 재계약 날짜가 돌아오고 있다”면서 “집값이 오르면서 전세금 부담도 점점 커져가는데, 사업이 지지부진해서 걱정이 많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행사 SH는 내년에 착공을 시작해 오는 2026년 10월 사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하지만 이대로 사업 진행이 늦춰지면 정해진 시간 안에 사업을 마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주민들은 “서울시 결정만 떨어지면 사업 진행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민 대다수가 빠른 재개발을 원하고 있고, 이주도 마무리 단계라 기존 건물 철거도 금방 끝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주 초 GS건설과 시공 계약도 끝냈다.

55년 흘러도
발만 ‘동동’

이들은 답답한 마음에 단체 행동도 준비하고 있다. 서울시로 인해 개발이 계속 늦어지면 서울시를 상대로 집회나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5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주민들은 먼 옛날 좁은 천막으로 내몰렸던 그때처럼, 대책 없는 조치만 남발하는 공권력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신세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서울 달동네 재개발 현주소

백사마을과 함께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성북구 정릉골·강남구 구룡마을·서초구 성뒤마을 역시 재개발사업이 추진 중이다. 

다만 진행 상황은 제각각이다. 정릉골 사업은 시공사 선정 절차를 밟으며 순항하고 있는 반면, 구룡마을과 성뒤마을 사업은 토지보상에 얽힌 갈등을 풀어내지 못하면서 표류하고 있다.

정릉골구역 재개발 조합은 시공사 선정을 위해 지난달 11일 현장설명회를 열었다. 설명회에는 GS건설·대우건설·포스코건설 등 대형 건설사 8곳이 참여했다. 조합은 오는 26일 입찰을 마감할 계획이다.

구룡마을은 2020년 실시계획을 인가받고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토지보상 문제가 계속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무허가 주택 원주민과 토지주 등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충돌도 계속 이어지는 상황이다. ‘올해 착공, 2025년 완공’이라는 기존 사업계획 이행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모양새다.

성뒤마을도 토지보상 절차가 걸림돌이다. 2019년까지 관련 절차를 마무리짓겠다던 계획이 3년째 미뤄지고 있다. 마을이 백사마을만큼 오래돼 매년 안전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철거‧착공 일정도 토지보상 절차와 맞물려 계속 미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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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