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멍덩’ 김기현 총선 로드맵

장관보다 못한 희미한 존재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아무래도 국민의힘이 인물난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내부를 향해 주먹질하는 이들까지 몽땅 끌어안고 가도 모자란다는 평이 나온다. 차기 총선까지 남은 기간은 약 8개월. ‘양당 지도부 붕괴설’은 이전부터 꾸준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내년 총선은 김기현 대표의 리더십을 확인할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지난해 원내대표 역임 당시 ‘여소야대’ 국면서 윤석열정부 출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완벽한 정권교체를 위해 윤석열 후보를 선택해달라”고 외치던 김 대표는 지난 3월8일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서 친윤(친 윤석열)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당 대표 자리를 꿰찼다.

친윤계발
리더십?

김 대표 체제는 출범 이후 당내 이슈를 처리하는 데만 주목한 나머지 민생을 위한 혁신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등 아쉬운 평을 받았다. 이를 두고 김 대표가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에 과도하게 치우쳤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차단돼 국민의힘에 변화와 혁신이 부족했다는 이유다.

의제와 입법 등을 두고 과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끌려다닌 형국이다. 김 대표의 리더십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최근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총선 체제가 예고되면서 판이 뒤집힐 가능성이 제시됐다. 연이어 터지는 국민의힘 리스크에도 김 대표가 적정선서 처리했다는 ‘징계 리더십’이 떠오르면서다.


지난 5월10일 ‘전광훈 우파 통일’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 최고위원은 당원권 1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녹취록 유출’ 사태로 자진 사퇴한 태영호 의원에게는 같은 날 당원권 정지 3개월이 떨어졌다. 최근에는 ‘수해 골프’ 논란의 당사자인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당원권 정지 10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제 식구 감싸기식인 민주당의 ‘방탄 국회’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 게 득이 됐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다만 김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 대표 리스크가 민주당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1998년에 임야와 목장 용지를 합쳐 3만5000평의 토지를 구입했다. 이후 울산시가 이 일대에 KTX 울산역과 연계되는 도로 개설사업을 검토하면서 이 지역 땅값이 크게 뛰었다. 해당 의혹은 전당대회서도 숱한 논란을 빚었다. 사전에 내부정보를 활용해 역세권 토지를 구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 당시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김 대표를 향해 “울산 땅, 땅, 땅”이라고 외치며 땅 투기 의혹을 다시 끄집어냈다. 이 밖에도 자신의 측근을 울산 지역 공공기관 요직에 임명하는 의혹을 받는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다수 존재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마찬가지로 개인 사법 리스크가 임기 동안 김 대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에는 총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을 둘러싼 리더십 논란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모양새다. 수도권 중심으로 인물난이 심각한 상황서 김 대표 지도부의 인재 영입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총선이라는 중요한 의제를 앞둔 상황서 당 대표는 승리를 위해 진두지휘에 나서야 한다. 참신한 인재를 내세워 총선 승리를 판가름할 수도권의 표심을 얻지 못하면 패배하는 것이 자명하다는 설명이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온갖 악재를 겪는 상황서 국민의힘이 총선 승리를 이끌지 못한다면 김 대표의 리더십에 본격 위기설이 불어닥칠 것으로 관측된다.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조차 내년 총선서 수도권 표를 얻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국민의힘에 마냥 호재는 아니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표심이 국민의힘으로 향할 것이란 보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여의도 장관들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여당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다는 평가 역시 김 대표에게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 박민식 보훈부(이하 국가보훈부) 장관 등은 윤정부 기조를 대변하면서 야당과 맞서 싸우는 등 ‘스타 장관’으로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

몸 키우는 유승민·이준석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대표적인 총선 주자로 꼽히는 원 장관은 ‘서울양평고속도로’를 둘러싼 야당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보수층의 눈길을 끌었다. 앞서 ‘대장동 1타 강사’로 이름을 띄운 원 장관은 ‘고속도로 1타 강사’로 국민과의 소통에 나섰다.

이를 시작으로 야당의 공세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이 보수층에게는 긍정적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윤정부 출범 이후 야당을 상대로 거침없는 언변을 선보였다는 평을 받는다. 최근에는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두고 이 대표의 수사망을 좁혀가면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을 향한 ‘사이다 발언’을 트레이드마크로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만큼 국민의힘 내부서도 그의 출마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장관은 “고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고 선언하면서 잠재적 총선 후보 대열에 합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공을 세워 무공훈장을 받은 백 장군은 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면서 여야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진보 진영서 ‘반민족행위자’로 여겨지는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평가되면서다. 그러던 중 박 장관은 최근 백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내 백 장군 안장자 정보서 ‘친일’ 문구를 삭제했다.

사실상 보수 진영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밖에도 박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에 속도를 내줄 것을 당부하는 등 보수층 겨냥에 힘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장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여당의 존재감이 밀린다는 점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 대표가 정국 이슈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장관이 여당의 역할까지 대신하면 당의 존재감이 약화되고 권력의 무게추가 정부로 기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도층의 표심을 사로잡을 만한 여당만의 이슈가 전무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좋든 싫든 총선 승리를 위한 확실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여의도
금쪽이


현재 정치권에서는 중도우파의 관심을 끌어당길 수 있는 인물로는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가 거론된다. 이 둘은 여당의 약점으로 꼽히는 청년과 중도층서 지지층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내부 분란 없이 하나로 뭉쳐 ‘원팀’ 전략을 펼치는 것이 총선 승리의 길로 제시되면서 본격 김 대표 체제에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생겼다. 당의 ‘안정’과 ‘고착’은 한 끗 차이인 만큼 여러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두 인물은 당을 향해 거침없는 쓴소리를 하기로 유명한 만큼 이들을 안고 갈 경우 리스크도 염두에 둬야 한다. 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 지도부가 고민에 빠진 사이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는 활발한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전 대표는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해 36세의 나이로 최연소 제1야당 당수로 뽑혔다. 국민의힘에서는 당시 후보 자격이었던 그를 두고 “거침없는 발언은 장점이자 리스크”라며 이 전 대표를 견제하기도 했다.

청년 보수층을 업고 탄탄대로를 걷을 것으로 예상했던 이 전 대표는 지난해 성접대 의혹에 대한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당원권 1년6개월 정지를 받았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이 전 대표의 성접대 의혹을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규정했다.

국민의힘은 징계 사흘 만에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를 의원총회서 의결하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윤 대통령이 권 직무대행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이 전 대표는 “자신이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팔았던 사람이었다”면서 대통령실을 향해 지난 선거는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칼을 던졌다.

이후 정부여당을 향한 이 대표의 쓴소리 정치가 본격 막을 올렸다는 평이다. 당원권이 정지됐지만 자신의 SNS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연일 존재감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윤 대통령이 수해복구 지원을 언급하며 ‘이권 카르텔 정치 보조금 폐지’를 주장한 것을 두고 ‘오류’라고 지적했다. ‘이권 카르텔’은 정치 용어고 ‘수해복구’는 절박한 현안인데 이 두 가지를 엮는 것은 적절치 못한 뜻이다.

품을까
내칠까

정확한 액수나 범위조차 설정되지 않은 상태서 보조금을 산출하겠다는 점 역시 꼬집었다. 이 전 대표는 “이런 메시지를 낼 것을 대통령에게 조언한 참모는 당장 잘라야 한다”며 윤 대통령과 여당을 동시에 비판했다.

이 밖에도 후쿠시마 오염수, 양평고속도로 등 쟁점을 따져가며 여당을 향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 전 대표가 내년 노원병 총선 출마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한 만큼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대비한 예열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유튜브 채널 <여의도 재건축 조합>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정책토론에 나섰다. 현안에 대해 평가하고 의견을 내기보다는 교육, 환경, 경제 등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 정책 논의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유튜브에는 이 전 대표와 함께 비윤(비 윤석열)계 인사로 꼽히는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과 이기인 경기도의원이 출연했다.

유 전 의원 역시 다시 목소리를 키우면서 정치 입문 신호탄을 쏴 올렸다. 유 전 의원은 2020년부터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인물이다. 2021년 8월9일에는 대선캠프를 출범시켰지만 지지도가 당시 후보였던 윤 전 검찰총장과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에게 못 미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6월 지방선거로 치르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국민의힘 경선서 패배했다. 언제나 대선을 향한 목표가 있는 만큼 윤 대통령을 향한 날을 거둘 생각이 없다는 게 일부 정치권의 시각이다.

앞서 그는 윤 대통령의 장모가 통장 잔고증명 위조 등 혐의로 법정 구속됐으나 대통령실이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을 두고 “선택적 침묵”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국민 앞에 떳떳이 입장을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꼽히는 공천 체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대통령께서 정치를 안 해 보셔서 그런데 여기에 지금 국민의힘을 자기가 완전히 장악을 했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공천에 목을 맨 의원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일 뿐 대통령을 향한 충성과 맹세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다.

앞서 유 전 의원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할 계획에 선을 긋고 “공천을 구걸할 생각은 없다”고 밝힌 것을 두고 신당을 창당할 것이란 풀이가 나왔다. 더 나아가서는 대선을 노리는 게 아니냐는 정치권의 해석도 존재한다.

고개 드는 비대위설
믿을 건 도덕성뿐?

절대 굽히지 않을 것 같은 두 인물을 품고 갈지 빠르게 털어야 할지 당 내부서도 좀처럼 의견이 모이지 않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포용론을 제시하며 이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을 안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은 서먹한 관계일지라도 다가오는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도우파의 표를 빠르게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내서도 내년 총선 공천서 이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다만 다른 한쪽에서는 포용론 자체가 시기상조란 분위기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 운영 등 조직정비가 이루어지는 만큼 특정 인사에 대한 공천을 논의하는 것은 이르다는 설명이다. 아직 비윤계에 대한 당내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 역시 포용 논의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좀처럼 당론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김 대표가 전체적으로 당이 책임을 지고 주도하는 ‘이기는 총선’을 주문할 전망이다. 당의 ‘안정’과 ‘고착’은 한 끗 차이인 만큼 당의 혁신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나와줘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총선을 넘기지 못한 채 ‘김기현호’가 가라앉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하나둘 거론되는 인물이 있는 모양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전부터 차기 당 대표로 여러 명이 거론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개개인의 리스크를 다 털지 못한다면 김 대표와 피차 일반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소야대 국면이 지속되는 만큼 국민의힘이 민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총선까지 김 대표 체제가 유지될지 불투명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가 공직자의 도덕성과 윤리, 공직기강을 강하게 밀고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2021년 민주당 돈봉투 의혹’과 ‘쌍방울 대북 송금’ 등의 문제가 민주당의 최대 약점인 만큼 도덕성을 강조해 우위에 서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아직 유효한 만큼 총선이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판도로 흘러갈 것이란 긍정적인 시나리오도 제시된다.

휴가 끝
전쟁 시작

국민의힘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6일까지 휴가를 냈다. 휴가가 끝나는 대로 여야는 총선 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휴가 기간 동안 김 대표는 총선 전략 등 당 안팎의 현안에 대한 구상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총선에 윤정부 성적표가 달렸다. 휴가를 마친 김 대표의 움직임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놓을 수 없는 긴장의 끈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휴가 중에도 야당을 향한 칼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김 대표는 ‘김은경 혁신위’(이하 혁신위)가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젊은 사람들과) 1대1 표결해야 하느냐”고 발언한 것을 두고 “민주당의 노인 비하 DNA는 못 고친다”고 비판했다.

지난 3일에는 “우리 당 같으면 이미 지위를 막론하고 벌써 중징계를 했을 것”이라며 민주당에 있어 윤리 기준은 강자의 이익이라고 비꼬았다.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서는 “삼고초려 끝에 초빙해 온 인물이 현란한 플레이를 하고 계시는데 이 대표는 ‘오불관언’”이라고 꼬집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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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특집 대담] 정치 9단 김종인 대한민국을 묻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검찰개혁에 대해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김 전 비대위원장은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경고했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개혁신당 공천관리위원장을 끝으로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김 전 비대위원장을 만나 그가 제시하는 정국 진단 결과와 향후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을 들었다. 다음은 김 전 비대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출범 100일을 넘긴 이재명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100일 동안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잘했다고 본다. 국민과 소통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의견은? ▲민생 경제가 굉장히 어렵고, 우리나라의 총수요가 낮아졌다. 한국은행이 진단한 올해 성장률도 0.9%밖에 안 된다. 쿠폰을 풀면, 약간의 소비 촉진 효과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겉보기엔 훈훈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3500억달러 투자 펀드 조성 요구와 노동자 317명 추방 등 사태와 맞물려 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불거졌다. ▲우리 경제 부처 장관들이 미국 월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막연하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의 요구는 보증·대출을 거쳐 이행하면 될 것”이라고 이해한 것 같다.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못했다. 그런데 국민에겐 마치 타결된 것 같은 인상을 줬다. 한 달도 안 돼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에 국민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하는 미국의 MAGA 진영은 우리나라 일각의 부정선거론을 지지하면서 “한국이 공산주의에 진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보는가? ▲그들은 미국이 어떻게 위대한 나라가 됐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와도 관계가 없다. “MAGA 진영이 우리 정치에 개입할 것”이란 믿음은 국내 보수 진영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 해체를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이 새로 구상하는 검찰 체계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지금까지 권력자가 검찰을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한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때문에 검찰도 못된 버릇이 들어 이렇게 됐다. 개혁보다 “검찰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진짜 문제다. 검찰을 3개로 찢어놓는다고 해서, 검찰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란 확신은 못하겠다. -이 대통령이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노 대사가 어떤 역할을 할 것 같은가? ▲노 전 대통령은 한중 수교를 이끌었다. 노 대사는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으로서 한중 문화 교류와 관련된 많은 역할을 했다. 이 대통령이 이를 참작해 중국 대사로 임명하는 신선한 인사를 한 것 같다. 이 대통령도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으니 노 대사를 임명했을 것이다. -최근 민주당의 내부 구도를 놓고 ‘김어준 상왕설’이 불거지고 있다. 이 주장은 정국을 강경하게 이끄는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대응과 맞물리고 있는데… ▲김어준씨가 유튜브를 시청하는 일정 부류엔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런데 대중에게 크게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진 않는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기 때문이다. ‘상왕설’은 너무 과장된 얘기라고 생각한다. -최근 특검 수사 기간 연장과 관련해 정 대표와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충돌했다. ▲내부 의견 충돌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다. 내가 보기엔 김 원내대표가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 같진 않다. 합의 후 강성 지지층이 반발해서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합의를 파기하려다 보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대통령과 정 대표는 과거에 갈등이 많았고, 최근 민주당에 대해선 “친명과 구 친문이 갈등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그건 다 괜히 하는 소리다. 대통령이 엄연히 있는데, 당 대표가 대통령을 상대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가 쉽진 않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에 합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 조국 비대위원장은 목표가 정해진 사람이다. 합당이 그 목표 실현에 유리할지 많이 생각할 것이다. 아울러 조 비대위원장으로선 혁신당만으로 전국 단위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 고민할 텐데, 상황에 직면하면 합당 여부를 정하지 않겠나? 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