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멍덩’ 김기현 총선 로드맵

장관보다 못한 희미한 존재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아무래도 국민의힘이 인물난에 시달리는 모양이다. 내부를 향해 주먹질하는 이들까지 몽땅 끌어안고 가도 모자란다는 평이 나온다. 차기 총선까지 남은 기간은 약 8개월. ‘양당 지도부 붕괴설’은 이전부터 꾸준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내년 총선은 김기현 대표의 리더십을 확인할 첫 번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지난해 원내대표 역임 당시 ‘여소야대’ 국면서 윤석열정부 출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완벽한 정권교체를 위해 윤석열 후보를 선택해달라”고 외치던 김 대표는 지난 3월8일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서 친윤(친 윤석열)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당 대표 자리를 꿰찼다.

친윤계발
리더십?

김 대표 체제는 출범 이후 당내 이슈를 처리하는 데만 주목한 나머지 민생을 위한 혁신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등 아쉬운 평을 받았다. 이를 두고 김 대표가 ‘윤심’(윤 대통령의 의중)에 과도하게 치우쳤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다. 당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차단돼 국민의힘에 변화와 혁신이 부족했다는 이유다.

의제와 입법 등을 두고 과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끌려다닌 형국이다. 김 대표의 리더십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최근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총선 체제가 예고되면서 판이 뒤집힐 가능성이 제시됐다. 연이어 터지는 국민의힘 리스크에도 김 대표가 적정선서 처리했다는 ‘징계 리더십’이 떠오르면서다.


지난 5월10일 ‘전광훈 우파 통일’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김재원 최고위원은 당원권 1년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녹취록 유출’ 사태로 자진 사퇴한 태영호 의원에게는 같은 날 당원권 정지 3개월이 떨어졌다. 최근에는 ‘수해 골프’ 논란의 당사자인 홍준표 대구시장에게 당원권 정지 10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제 식구 감싸기식인 민주당의 ‘방탄 국회’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 게 득이 됐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다만 김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당 대표 리스크가 민주당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1998년에 임야와 목장 용지를 합쳐 3만5000평의 토지를 구입했다. 이후 울산시가 이 일대에 KTX 울산역과 연계되는 도로 개설사업을 검토하면서 이 지역 땅값이 크게 뛰었다. 해당 의혹은 전당대회서도 숱한 논란을 빚었다. 사전에 내부정보를 활용해 역세권 토지를 구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 당시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이 김 대표를 향해 “울산 땅, 땅, 땅”이라고 외치며 땅 투기 의혹을 다시 끄집어냈다. 이 밖에도 자신의 측근을 울산 지역 공공기관 요직에 임명하는 의혹을 받는 등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다수 존재한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마찬가지로 개인 사법 리스크가 임기 동안 김 대표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에는 총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을 둘러싼 리더십 논란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모양새다. 수도권 중심으로 인물난이 심각한 상황서 김 대표 지도부의 인재 영입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왔다.

총선이라는 중요한 의제를 앞둔 상황서 당 대표는 승리를 위해 진두지휘에 나서야 한다. 참신한 인재를 내세워 총선 승리를 판가름할 수도권의 표심을 얻지 못하면 패배하는 것이 자명하다는 설명이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온갖 악재를 겪는 상황서 국민의힘이 총선 승리를 이끌지 못한다면 김 대표의 리더십에 본격 위기설이 불어닥칠 것으로 관측된다.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조차 내년 총선서 수도권 표를 얻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국민의힘에 마냥 호재는 아니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표심이 국민의힘으로 향할 것이란 보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최근 여의도 장관들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여당의 목소리가 묻히고 있다는 평가 역시 김 대표에게 압박을 가하는 모양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장관, 박민식 보훈부(이하 국가보훈부) 장관 등은 윤정부 기조를 대변하면서 야당과 맞서 싸우는 등 ‘스타 장관’으로서 몸집을 키우고 있다.

몸 키우는 유승민·이준석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

대표적인 총선 주자로 꼽히는 원 장관은 ‘서울양평고속도로’를 둘러싼 야당의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보수층의 눈길을 끌었다. 앞서 ‘대장동 1타 강사’로 이름을 띄운 원 장관은 ‘고속도로 1타 강사’로 국민과의 소통에 나섰다.

이를 시작으로 야당의 공세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이 보수층에게는 긍정적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윤정부 출범 이후 야당을 상대로 거침없는 언변을 선보였다는 평을 받는다. 최근에는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두고 이 대표의 수사망을 좁혀가면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을 향한 ‘사이다 발언’을 트레이드마크로 보수층의 지지를 받는 만큼 국민의힘 내부서도 그의 출마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박 장관은 “고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고 선언하면서 잠재적 총선 후보 대열에 합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공을 세워 무공훈장을 받은 백 장군은 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면서 여야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진보 진영서 ‘반민족행위자’로 여겨지는 반면 보수 진영에서는 ‘한국전쟁의 영웅’으로 평가되면서다. 그러던 중 박 장관은 최근 백 장군의 국립대전현충원 홈페이지 내 백 장군 안장자 정보서 ‘친일’ 문구를 삭제했다.

사실상 보수 진영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밖에도 박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에 속도를 내줄 것을 당부하는 등 보수층 겨냥에 힘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장관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여당의 존재감이 밀린다는 점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 대표가 정국 이슈를 주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장관이 여당의 역할까지 대신하면 당의 존재감이 약화되고 권력의 무게추가 정부로 기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중도층의 표심을 사로잡을 만한 여당만의 이슈가 전무한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좋든 싫든 총선 승리를 위한 확실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여의도
금쪽이


현재 정치권에서는 중도우파의 관심을 끌어당길 수 있는 인물로는 유승민 전 의원과 이준석 전 대표가 거론된다. 이 둘은 여당의 약점으로 꼽히는 청년과 중도층서 지지층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내부 분란 없이 하나로 뭉쳐 ‘원팀’ 전략을 펼치는 것이 총선 승리의 길로 제시되면서 본격 김 대표 체제에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생겼다. 당의 ‘안정’과 ‘고착’은 한 끗 차이인 만큼 여러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만 두 인물은 당을 향해 거침없는 쓴소리를 하기로 유명한 만큼 이들을 안고 갈 경우 리스크도 염두에 둬야 한다. 김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의 전략적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당 지도부가 고민에 빠진 사이 유 전 의원과 이 전 대표는 활발한 정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전 대표는 2021년 국민의힘 제1차 전당대회에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해 36세의 나이로 최연소 제1야당 당수로 뽑혔다. 국민의힘에서는 당시 후보 자격이었던 그를 두고 “거침없는 발언은 장점이자 리스크”라며 이 전 대표를 견제하기도 했다.

청년 보수층을 업고 탄탄대로를 걷을 것으로 예상했던 이 전 대표는 지난해 성접대 의혹에 대한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당원권 1년6개월 정지를 받았다. 국민의힘 중앙윤리위원회는 이 전 대표의 성접대 의혹을 ‘품위유지 의무 위반’으로 규정했다.

국민의힘은 징계 사흘 만에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를 의원총회서 의결하며 전열을 재정비했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윤 대통령이 권 직무대행에게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윤 대통령의 발언에 이 전 대표는 “자신이 양의 머리를 흔들며 개고기를 팔았던 사람이었다”면서 대통령실을 향해 지난 선거는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칼을 던졌다.

이후 정부여당을 향한 이 대표의 쓴소리 정치가 본격 막을 올렸다는 평이다. 당원권이 정지됐지만 자신의 SNS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연일 존재감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윤 대통령이 수해복구 지원을 언급하며 ‘이권 카르텔 정치 보조금 폐지’를 주장한 것을 두고 ‘오류’라고 지적했다. ‘이권 카르텔’은 정치 용어고 ‘수해복구’는 절박한 현안인데 이 두 가지를 엮는 것은 적절치 못한 뜻이다.

품을까
내칠까

정확한 액수나 범위조차 설정되지 않은 상태서 보조금을 산출하겠다는 점 역시 꼬집었다. 이 전 대표는 “이런 메시지를 낼 것을 대통령에게 조언한 참모는 당장 잘라야 한다”며 윤 대통령과 여당을 동시에 비판했다.

이 밖에도 후쿠시마 오염수, 양평고속도로 등 쟁점을 따져가며 여당을 향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 전 대표가 내년 노원병 총선 출마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한 만큼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을 대비한 예열이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에는 유튜브 채널 <여의도 재건축 조합>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정책토론에 나섰다. 현안에 대해 평가하고 의견을 내기보다는 교육, 환경, 경제 등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 정책 논의에 집중하겠다는 취지다. 유튜브에는 이 전 대표와 함께 비윤(비 윤석열)계 인사로 꼽히는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갑 당협위원장과 이기인 경기도의원이 출연했다.

유 전 의원 역시 다시 목소리를 키우면서 정치 입문 신호탄을 쏴 올렸다. 유 전 의원은 2020년부터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힌 인물이다. 2021년 8월9일에는 대선캠프를 출범시켰지만 지지도가 당시 후보였던 윤 전 검찰총장과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에게 못 미치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6월 지방선거로 치르는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를 선언했지만 국민의힘 경선서 패배했다. 언제나 대선을 향한 목표가 있는 만큼 윤 대통령을 향한 날을 거둘 생각이 없다는 게 일부 정치권의 시각이다.

앞서 그는 윤 대통령의 장모가 통장 잔고증명 위조 등 혐의로 법정 구속됐으나 대통령실이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을 두고 “선택적 침묵”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국민 앞에 떳떳이 입장을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재 가장 민감한 사안으로 꼽히는 공천 체제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대통령께서 정치를 안 해 보셔서 그런데 여기에 지금 국민의힘을 자기가 완전히 장악을 했다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공천에 목을 맨 의원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일 뿐 대통령을 향한 충성과 맹세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해석이다.

앞서 유 전 의원이 국민의힘 소속으로 출마할 계획에 선을 긋고 “공천을 구걸할 생각은 없다”고 밝힌 것을 두고 신당을 창당할 것이란 풀이가 나왔다. 더 나아가서는 대선을 노리는 게 아니냐는 정치권의 해석도 존재한다.

고개 드는 비대위설
믿을 건 도덕성뿐?

절대 굽히지 않을 것 같은 두 인물을 품고 갈지 빠르게 털어야 할지 당 내부서도 좀처럼 의견이 모이지 않는 듯하다. 일각에서는 포용론을 제시하며 이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을 안고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장은 서먹한 관계일지라도 다가오는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중도우파의 표를 빠르게 선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내서도 내년 총선 공천서 이 전 대표와 유 전 의원을 배제하고 있지 않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다만 다른 한쪽에서는 포용론 자체가 시기상조란 분위기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이하 조강특위) 운영 등 조직정비가 이루어지는 만큼 특정 인사에 대한 공천을 논의하는 것은 이르다는 설명이다. 아직 비윤계에 대한 당내 여론이 극명하게 갈리는 것 역시 포용 논의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좀처럼 당론이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대통령실은 김 대표가 전체적으로 당이 책임을 지고 주도하는 ‘이기는 총선’을 주문할 전망이다. 당의 ‘안정’과 ‘고착’은 한 끗 차이인 만큼 당의 혁신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나와줘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 총선을 넘기지 못한 채 ‘김기현호’가 가라앉을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차기 비대위원장으로 하나둘 거론되는 인물이 있는 모양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전부터 차기 당 대표로 여러 명이 거론되고 있다”면서도 “다만 개개인의 리스크를 다 털지 못한다면 김 대표와 피차 일반일 것”이라고 말했다. 여소야대 국면이 지속되는 만큼 국민의힘이 민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총선까지 김 대표 체제가 유지될지 불투명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김 대표가가 공직자의 도덕성과 윤리, 공직기강을 강하게 밀고 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2021년 민주당 돈봉투 의혹’과 ‘쌍방울 대북 송금’ 등의 문제가 민주당의 최대 약점인 만큼 도덕성을 강조해 우위에 서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아직 유효한 만큼 총선이 국민의힘에게 유리한 판도로 흘러갈 것이란 긍정적인 시나리오도 제시된다.

휴가 끝
전쟁 시작

국민의힘에 따르면 김 대표는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6일까지 휴가를 냈다. 휴가가 끝나는 대로 여야는 총선 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관측된다. 휴가 기간 동안 김 대표는 총선 전략 등 당 안팎의 현안에 대한 구상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 총선에 윤정부 성적표가 달렸다. 휴가를 마친 김 대표의 움직임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놓을 수 없는 긴장의 끈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휴가 중에도 야당을 향한 칼날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 1일 김 대표는 ‘김은경 혁신위’(이하 혁신위)가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젊은 사람들과) 1대1 표결해야 하느냐”고 발언한 것을 두고 “민주당의 노인 비하 DNA는 못 고친다”고 비판했다.

지난 3일에는 “우리 당 같으면 이미 지위를 막론하고 벌써 중징계를 했을 것”이라며 민주당에 있어 윤리 기준은 강자의 이익이라고 비꼬았다.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서는 “삼고초려 끝에 초빙해 온 인물이 현란한 플레이를 하고 계시는데 이 대표는 ‘오불관언’”이라고 꼬집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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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