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같은 당 의원들조차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실금 같던 틈이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급하게 한쪽 입을 틀어막아도 다른 쪽에서 이야기가 새어 나온다. ‘민주당 분당설’이라는 시한폭탄을 끌어안은 당내엔 긴장감마저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분당설이 고개를 들었다. 이전부터 민주당은 친명(친 이재명)계, 친낙(친 이낙연)계, 친문( 친문재인)계 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면서 계파가 형성됐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이 발을 딛는 곳마다 유독 파열음이 생기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긴장감은 벌써 최고조에 달했다.
민주당의 분열 조짐은 지난 2월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압도적 부결을 자신한 것과 달리 30표가량의 무더기 이탈표가 쏟아졌다. 당시 이 대표에겐 “정치적 사망이 선고됐다”는 평가도 오르내렸다. 이후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을 두고 ‘방탄’ 논란이 일면서 이 대표의 리더십이 치명타를 입었다.
가동되는
시한폭탄
그러던 이 대표가 지난달 19일 국회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다.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 발로 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이날 이 대표의 선언은 자신과 당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돌파하는 차원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것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극명한 반응이 나왔다. 한쪽에서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부터 당이 차단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이들은 의원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당당히 포기함으로써 대국민 약속을 지키는 의미가 있다고도 부연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불체포특권 포기는 이 대표에게 한정된 것이라며 다소 거리를 뒀다. 불체포특권이 없으면 입법부가 어떻게 검찰 독재정권과 싸울 수가 있겠냐는 입장이다. 현재 윤석열정부의 ‘검찰 독재’ ‘정치탄압’이 만연한 만큼 민주당 모두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당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으로 오히려 당이 쪼개질 위기에 처했다.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이하 혁신위)가 나섰다. 혁신위는 지난달 23일 불체포특권 포기를 1호 혁신안으로 제시했지만 의원들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지난 12일에는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안을 받지 않으면 민주당은 망한다”며 압박도 가했다. 혁신위가 민주당을 따끔하게 질책한 다음 날인 지난 13일 불체포특권 포기를 의제로 두고 의원총회가 열렸지만 결국 불발됐다.
이날 의원총회서 지도부는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는 결의를 공식적으로 선언해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의 윤리성을 보강하기 위해서는 혁신안을 추인해야 한다는 뜻이다. 혁신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1호 혁신안은 “정치적 의도를 가진 검찰이 영장 청구를 판단하는 등 부정적인 결과에 관해 논의해야 한다”는 말에 묻히는 듯했다.
그러던 중 지난 14일 비명(비 이재명)계와 친낙계로 구성된 31명의 민주당 의원이 돌연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들은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습니다’란 입장문을 내고 포기 의사를 밝혔다. 민주당이 ‘제 식구 감싸기’와 계파 다툼이 난무하는 정당으로 인식되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탈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이하 더미래)도 이날 ‘의원 전원 불체포특권 포기 결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끝까지 불체포특권을 내려놓지 못한 의원에게 있어 이들의 결의는 탐탁지 못한 선택으로 비춰졌다. 친명계 위주로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민주당의 내홍이 깊어졌다. 체포동의안에 관해 당론을 정한 적이 없을뿐더러 수사 과정에 따라 각자 판단할 일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한발 빠른 비명·친낙
민주당 지도부 통수?
불체포특권이 헌법에 규정된 만큼 결의만으로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두고 당심에 조금씩 균열이 생길 조짐이 보이던 중 불현듯 ‘유쾌한 결별’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면서 민주당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같은 당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은 지난 3일 한 라디오를 통해 “도저히 뜻이 안 맞고 방향을 같이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유쾌한 결별도 각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이 구성원들이 공통분모를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균열이 생길 것이란 뜻이다.
이를 두고 유쾌한 결별이 반드시 분당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민주당의 분당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위와 당 지도부는 이 의원의 발언을 강하게 질타했다. 하나로 똘똘 뭉쳐 윤정부와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당을 ‘갈라치기’ 하는 발언이 오히려 분당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지도부에서는 이 의원의 발언이 도를 지나치게 넘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이를 당의 분열을 조장하는 해당 행위로 간주하고 엄중히 경고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이 같은 반응에 이 의원은 “어디까지나 유쾌한 결별까지 ‘각오’하면서 당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취지였다”며 반박에 나섰다.
하지만 이 이원의 ‘유쾌한 결별’ 발언을 시작으로 민주당 분당을 둘러싼 말이 겹겹이 얹어졌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은 ‘심리적 분당’에 관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당이 갈라설 가능성은 적지만 계파 싸움이 격해질 경우 심리적으로 분당할 것이란 우려를 표한 것이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최근 귀국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이 대표를 향해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앞서 이 대표는 이 전 총리에게 “백지장도 맞들어야 할 시국인 만큼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며 함께 윤정부를 견제하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재명
살리기
이를 두고 추 전 장관은 “백지장을 맞들어도 방향이 다르면 찢어진다”고 일갈했다. 백지장을 맞대야 하는 궁극적인 목표조차 모른 채 섣불리 함께하는 것은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분당설에 연기가 피어오르자 민주당은 초기 진압에 나섰다. 특히 혁신위는 ‘유쾌한 결별’ 발언을 두고 개혁과 혁신이 절박하다는 것을 다소 거칠게 표현했을 뿐, 분당의 의미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죽어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죽어’라는 뜻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친명계에서는 “민주당의 분당은 곧 윤석열 대통령이 원하는 길”이라고 소리 높였다. 현 시점서 민주당이 갈라서게 된다면 내년 총선은 물론 정권교체까지 줄줄이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을 뜨겁게 달군 ‘유쾌한 결별’에 ‘공천 룰’이라는 또 다른 불씨가 피어올랐다. 내년 총선을 두고 예고된 치열한 공천권 싸움에 권력이 개입할 가능성이 제시되면서다.
지난 19일, 혁신위는 공천에 대한 국민의 의견이 여럿 있었다며 공천 룰 변경을 시사했다. 민주당에는 또다시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불체포특권 포기로 한차례 당을 뒤흔든 혁신위가 이전보다 민감한 소재에 과감히 손을 댄 것이다.
민주당의 공천 룰은 이미 지난 5월 확정됐다. 민주당은 앞서 이해찬 전 대표 시절인 2019년 7월에 만들어진 시스템 공천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혁신위는 해당 틀에 현역 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 체제 혁파’와 유능한 인재를 기용하는 ‘투명한 시스템’을 추가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 대표가 총선을 치르고 대선까지 가기 위해 공천권을 휘두를 것이란 예측이 나오면서다. ‘이재명 호신위’이라는 의혹을 떠안은 혁신위가 공천룰을 어떻게 손볼지에 따라 내년 총선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이 대표가 대선을 목표로 한다면 공천룰 손질이 불가피한 만큼 혁신위를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칠 것이란 비판을 제기했다. 비명계서도 기존에 확정됐던 공천 룰을 손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공천 룰을 건드릴 경우 강성 지지층을 앞세워 이 대표와 친명 의원에게 유리하도록 공천의 판이 짜여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공천 룰이 어떻게 변경되느냐에 따라 계파 간 유불리뿐 아니라, 의원들이 총선 전략마저 달라질 수 있다.
정치생명의 호흡기와도 같은 공천권을 권력의 입맛대로 주무르게 된다면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내서도 불체포특권 포기를 골자로 한 혁신안을 통과시키는 데도 갈등이 있었던 만큼, 혁신위가 공천 룰을 일방적으로 손댈 경우 민주당 분당설에 또다시 불꽃이 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얼기설기
미봉책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분당이라는 건 쉽게 일어나지 않겠지만 만일 공천이라는 변수가 생긴다면 가능성은 배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공천권에 이 대표가 입김을 불어넣으면 비명계 의원이 대거 컷오프되고 이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공천을 받지 못해 탈당한 의원을 중심으로 신당이 창당된다면 민주당의 분당설은 단순이 ‘설’에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혁신위가 이 대표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목적성이 뚜렷하다는 시각이 존재하는 만큼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복경 혁신위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지키기 혁신위원회가 아니냐’는 질문에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혁신위가 공천 룰 손질을 예고한 이튿날 친명계 성향의 단체도 ‘공천혁신’을 주장했다. 비명계 의원들의 우려가 현실이 될 것이란 전망에도 힘이 실렸다.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서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이하 민주혁신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10대 공천혁신안’을 발표했다. 공천혁신은 ‘물갈이의 제도화’인 만큼 민주당이 민심의 물결에 올라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586세대를 겨냥한 퇴진론을 다시 꺼내 들었다. 민 의원은 다음 총선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현역 의원 중 적어도 50%는 물갈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3선 이상 다선 의원은 4분의 3 이상인 만큼 39명 중 30명은 물갈이돼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혁신회는 같은 지역구서 3선 이상을 지낸 의원에게 경선 득표율 50%를 감산하고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에선 공천 컷오프 비율을 현행 20%서 30%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같은 민심을 거부한다면 배가 뒤집힐 수밖에 없다며 압박했다. 만일 공천 룰이 퇴진론의 방향으로 틀어진다면 중진 현역 의원들과의 충돌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불체포특권에 공천까지
건드는 족족 ‘와르르’
혁신위도 궤를 같이하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인적 쇄신 차원서 공천 룰을 이해하고 물갈이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당 공천 과정서 현역 의원으로 대표되는 기득권을 혁파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동일 지역구 3선 초과 금지’가 혁신위의 세 번째 혁신안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시되자 비명계 의원은 자신을 마녀사냥식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니냐고 반발했다. 의원의 역량이 아닌 선수만 놓고 따지는 것 역시 비효율적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공천권 문제만으로는 민주당의 분당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해석을 내놨다. 이 대표가 자신의 입맛대로 공천권을 휘두르기에는 각종 사법 리스크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력 대권주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분당할 가능성이 작다는 평이다.
신당이 생기기 위해서는 힘이 있는 지도부가 나서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변수는 총선을 9개월 앞둔 지금 호남 지역을 공격적으로 노리는 제3지대다. 표심이 어디로 흘러 들어갈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를 수도 있다.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당이 내년 총선서 이길 것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표심이 이전 같지 않은 데다가 무당층을 겨냥한 신당까지 생기면서다. 같은 당 의원들끼리 화합하지 못하니 윤정부와 국민의힘이 반사이익을 얻지 못하는 상황서도 승리가 확실치 않다는 게 일부 정치권 관계자의 시선이다.
긴장감
최고조
악조건인 상황서 계파 간 갈등을 잠재울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 대표와 이 전 총리의 회동마저 취소됐다. 벌써 두 번째 불발이다. 차일피일 미뤄진 만남에 민주당은 폭우를 이유로 들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두 사람의 ‘갈등론’을 주장하고 있다. 또 하나의 실금이 그어진 셈이다. ‘유쾌한 결별’과 ‘불쾌한 동거’ 사이서 혁신위만 진땀을 빼고 있다. 168명의 민주당 의원을 어르고 달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내려놓은 불체포특권 득일까? 실일까?
긴 진통 끝에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8일, 소속 의원들의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결의했다.
민주당이 회복해야 할 도덕적 정당이란 위치를 고려했다고 전해졌지만 혁신안 부결이 몰고 올 파장을 염려해 결의를 추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불체포특권 포기를 결의하면서도 ‘정당한 영장 청구에 대해’라는 단서를 붙인 것이 흠이 됐다는 평가와 함께 ‘반쪽짜리’ 결의라는 비판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당한 영장인지 아닌지를 판사가 아닌 정당이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논리다.
결과적으로 비명계는 이 대표 체제를 흔들 수 있는 무기를 손에 쥐게 됐다.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은 리스크 돌파를 위한 승부수 아닌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예상되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