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참사> 숨 고르는 정치권 딜레마

잠시 멈춘 단거리 레이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마지막 주말이 비극으로 저물었다. 갑작스러운 참사에 여야의 정쟁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각종 특검법과 권한대행 탄핵을 업은 채 빠르게 돌아갔던 탄핵 시계도 잠시 멈춰 섰다.

지난달 29일 오전 태국 방콕서 출발해 무안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7C2216편이 추락했다. 오른쪽 엔진서 불꽃이 튀어 공항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했으나 비행기 바퀴인 ‘랜딩기어’가 펼쳐지지 않아 공항 시설물과 충돌해 화염에 휩싸였다.

무안 뒤덮은
애도의 물결

이 참사로 승객 175명 전원과 조종사 및 객실 승무원 각 2명 등 179명이 현장서 사망했다. 생존자는 비행기 후미에 있던 승무원 두 명뿐이었다.

가장 먼저 참사 현장을 찾은 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고 당일 저녁 무안공항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항공사고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렸다. 대책위 위원장은 전남도당위원장인 주철현 의원이 맡았다.

국회 행정안정위원장인 신정훈 의원과 국회교통위원장인 맹성규 의원이 각각 사고수습지원단장, 상황본부장을 맡았다.


국민의힘은 참사 다음날에 무안공항을 찾았다. 곧바로 현장을 찾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재난 당일엔 사고 수습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행정부가 아닌 당에서 현장을 방문하는 건 자칫 사고 수습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며 “오늘 무안공항서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 너무나도 애통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가 된 이후 처음으로 밝힌 현안에 대한 공개 의견이었다.

윤 대통령은 “정부서 사고 수습과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소방대원들과 모든 구조 인력의 안전도 최우선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바란다”며 “어려운 상황을 하루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저도 국민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적었다.

국민의힘은 무안공항여객기사고수습태스크포스(이하 TF를)를 구성했다. 국회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권영진 의원이 위원장을, 국회행정안전위원회 및 보건복지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이 TF에 참여했다. 이 밖에도 개혁신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정의당 등도 당차원의 수습 대책위를 꾸리고 유가족 지원에 나섰다.

이전까지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전 권한대행 탄핵까지 강행했다. 이후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3인 선출을 서두르라”며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무정부 사태를 위해 무리한 줄탄핵을 강행했다고 맞불을 놨다.

유가족에 고개 숙인 여야 “정쟁 올스톱”
민주 쌍특검·권한대행 탄핵 수위 조절


참담한 참사 앞에 여야는 정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30일 국회는 당초 운영위원회를 비롯한 환경노동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상임위를 열고 12·3 내란 사태에 대한 현안 질의를 준비했으나 잠정 순연하기로 했다.

같은 날 오후 예정됐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도 다음날로 연기됐다.

민주당은 전남 목포에 위치한 전남도당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이 대표는 “무안공항을 가득 메운 유족들의 통곡 속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울고 있다”며 “우리 당은 항공참사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 역시 무안공항 회의장서 대책회의를 열고 “한 사람의 정치인,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으로 참극이 벌어진 것에 국민과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사태 수습과 진상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체제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는 비대위원 임명 직후 무안공항을 찾아 참사 수습으로 첫발을 뗐다.

정부는 참사 발생 당일인 지난달 29일부터 1월4일까지 7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최 권한대행은 전남 무안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서 “무안공항 현장과 전남, 광주, 서울, 세종 등 17개 시도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희생자에 대한 조의와 애도를 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사고 당일 무안공항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최했다. 다음날에는 국회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사고 수습 대책 방안을 논의했다.

박태서 국회의장실 공보수석은 두 사람의 비공개 접견이 끝난 뒤 “최 권한대행과 우 의장은 오늘 회동서 무안 제주항공 참사 수습 대책과 유가족 지원 대책에 대해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전국 애도기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곳곳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현재 상황서 컨트롤타워를 맡은 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꺼내는 건 거대 야당에게도 쉽지 않다. 애도기간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탄핵에 군불을 때는 것처럼 보일 경우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참사 현장서 수습한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가 다소 지연되면서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민주당에 화살을 돌렸다. 무분별하게 휘둘렀던 탄핵 정국의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에 “줄탄핵의 후과”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박 의원은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가 대책본부를 만들어 신속한 사고 수습에 나서게 된다. 대개 행안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지만 이번처럼 규모가 큰 경우에는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더불당(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으로 지금 우리 정부에는 국무총리도 행안부 장관도 없는 상황이다. 이걸 어찌해야 할까?”라고 따졌다. 그러면서 “국정 경험이 없거나 국정이 망해도 관심 없는 자가 아니라면 그래서 줄탄핵 같은 건 생각조차 않는 법”이라며 “민주당의 무책임한 줄탄핵으로 생긴 국정 공백이 정말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박형수 원내수석대변인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서 ‘정부 컨트롤타워의 기능에는 큰 문제는 없다고 평가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최 권한대행이 사고를 수습하고 있고 국토부도 하고 있지만, 현장 콘트롤타워 역할이 비어 있어 대단히 안타깝다”고 답했다.

야권의 탄핵소추안으로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공석이 된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곳곳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이어지자 민주당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 모경종 의원은 박수영 의원의 SNS 게시물을 인용해 반박하는 글을 작성했다. 모 의원은 “차라리 계엄사령부가 있었으면 일치단결해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하지 그러냐”며 “중요한 것은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슬픔을 함께하며 후속 조치에 힘을 합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또한 같은 달 30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국정 공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윤석열 내란 수괴가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이 국정 마비 현상”이라며 “내란 수괴를 체포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오히려 국정을 빨리 회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이 전례에 따라 헌법재판관 임명을 유보하더라도 야당이 쉽게 탄핵을 추진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쏠렸던 이유다. 여당이 ‘민주당발 탄핵 역풍’에 부채질하고 있지만 “정국 수습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관 임명도 중요하다”는 민주당의 의지는 굳다.

불붙은
도화선

이 대표는 참사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사고 수습은 수습이고 내란 사태 진압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 대표나 박찬대 원내대표 등 지도부서 최 권한대행 탄핵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야권 의원들이 개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책임 있는 민주당 지도부나 중진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다른 막다른 위기로 우리나라를 혼란으로 빠뜨리는 것보다 해결할 수 있는 길로 가는 것”이라며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해 완전체제로 만드는 것이 정치와 경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천천히 일상을 회복하고 여기에 맞춰 국민의힘도 여당으로서의 일을 하면 된다”며 “지금은 슬픔에 빠진 나라를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애도하는 게 맞는 때다. 이전처럼 민주당이 막무가내로 날을 휘두르면 오히려 역풍을 맞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이전만큼 압박 수위를 높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청구, 다음날 곧바로 발부되면서 잠시 멈췄던 탄핵 시계의 초침이 다시 움직일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내란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게 세 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불출석으로 임하자 이 같은 최후의 수단을 내민 것이다.

민주당은 “정부는 여전히 내란 수괴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고, 내란 세력들은 수사를 방해하며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며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와 관련해 법원의 신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을 대리하는 윤갑근 변호사는 서울서부지법에 본인과 김홍일 변호사 선임계 및 체포영장 청구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다.

윤 변호사는 “권한 없는 기관에 의한 체포영장 청구고 형사소송법상 청구 요건에도 맞지 않다”는 내용을 의견서에 담았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직권남용죄로 소추하는 것에 대해 “꼬리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몸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해괴한 논리”라고 주장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사고 수습과 내란 사태 진압 모두 중요”
‘버티기’ 돌입한 용산 무너뜨릴 한 방이 없다

국민의힘은 “현직 대통령이 증거인멸에 대한 염려나 도주 우려가 없는 상황서, 더군다나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인한)국가 애도 기간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의 무대응 기조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여기에 최 권한대행의 ‘애매한’ 행보가 이어지자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항공 사고 직전까지 여야가 치열하게 싸웠던 헌법재판관을 결국 임명했지만 후보 3명 중 2명만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달 31일 최 권한대행은 민주당 추천인 정계선 후보와 여당 추천인 조한창 후보자를 임명했다. 마은혁 후보자는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며 임명을 보류했다.

국민의힘은 충분한 논의 절차가 없었다며 즉각 반발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헌법재판관 임명은 유감스럽다”며 “책임과 평가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 역시 “국무회의서 충분히 논의한 다음에 결정했으면 헌법 원칙에 부합할 텐데,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본인 의사를 발표한 건 독단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최 권한대행의 선택에 불만스러운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이미 여야 합의를 마친 헌법재판관을 선별해 임명하는 행위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도 거부할 권한이 없는데 권한대행이 선별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국회 추천은 이미 의결로 완성된 것인데 무슨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겠나. 최 권한대행은 즉시 마은혁 후보자를 포함해 3명을 모두 임명하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여야, 그리고 대통령실까지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혼란스러운 정국이 예상된다. 여기에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야당이 집중 공세를 펼쳤다.

민주당 박창진 부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섣부른 예단과 진단, 그리고 정쟁의 도구로 이번 사건이 언급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공수처라든가, 각자 맡은 역할을 하고 있다. 참사가 수습되고 나서 다음에 또 각자의 자리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천히
회복 중

박 부대변인은 대한항공 객실 사무장 출신으로 1997년 괌 대한항공 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인물이다. 그는 “전 국민의 아픔이고 사고다. 2차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수습하고 애도하는 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이번 참사에 대해 음모론을 펼치거나 ‘승무원은 왜 살았냐’ 등 2차 가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는 우리 공동체를 해치는 일”이라고도 강조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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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