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참사> 숨 고르는 정치권 딜레마

잠시 멈춘 단거리 레이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마지막 주말이 비극으로 저물었다. 갑작스러운 참사에 여야의 정쟁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각종 특검법과 권한대행 탄핵을 업은 채 빠르게 돌아갔던 탄핵 시계도 잠시 멈춰 섰다.

지난달 29일 오전 태국 방콕서 출발해 무안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7C2216편이 추락했다. 오른쪽 엔진서 불꽃이 튀어 공항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했으나 비행기 바퀴인 ‘랜딩기어’가 펼쳐지지 않아 공항 시설물과 충돌해 화염에 휩싸였다.

무안 뒤덮은
애도의 물결

이 참사로 승객 175명 전원과 조종사 및 객실 승무원 각 2명 등 179명이 현장서 사망했다. 생존자는 비행기 후미에 있던 승무원 두 명뿐이었다.

가장 먼저 참사 현장을 찾은 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사고 당일 저녁 무안공항서 유가족을 위로하고 항공사고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렸다. 대책위 위원장은 전남도당위원장인 주철현 의원이 맡았다.

국회 행정안정위원장인 신정훈 의원과 국회교통위원장인 맹성규 의원이 각각 사고수습지원단장, 상황본부장을 맡았다.


국민의힘은 참사 다음날에 무안공항을 찾았다. 곧바로 현장을 찾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국민의힘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재난 당일엔 사고 수습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행정부가 아닌 당에서 현장을 방문하는 건 자칫 사고 수습을 방해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입장을 밝혔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들께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며 “오늘 무안공항서 참담한 사고가 발생했다. 너무나도 애통하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는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가 된 이후 처음으로 밝힌 현안에 대한 공개 의견이었다.

윤 대통령은 “정부서 사고 수습과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소방대원들과 모든 구조 인력의 안전도 최우선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바란다”며 “어려운 상황을 하루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저도 국민 여러분과 함께하겠다”고 적었다.

국민의힘은 무안공항여객기사고수습태스크포스(이하 TF를)를 구성했다. 국회국토교통위원회 여당 간사인 권영진 의원이 위원장을, 국회행정안전위원회 및 보건복지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이 TF에 참여했다. 이 밖에도 개혁신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정의당 등도 당차원의 수습 대책위를 꾸리고 유가족 지원에 나섰다.

이전까지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전 권한대행 탄핵까지 강행했다. 이후에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국회 추천 몫인 헌법재판관 3인 선출을 서두르라”며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무정부 사태를 위해 무리한 줄탄핵을 강행했다고 맞불을 놨다.

유가족에 고개 숙인 여야 “정쟁 올스톱”
민주 쌍특검·권한대행 탄핵 수위 조절


참담한 참사 앞에 여야는 정쟁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30일 국회는 당초 운영위원회를 비롯한 환경노동위원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 상임위를 열고 12·3 내란 사태에 대한 현안 질의를 준비했으나 잠정 순연하기로 했다.

같은 날 오후 예정됐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행위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도 다음날로 연기됐다.

민주당은 전남 목포에 위치한 전남도당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이 대표는 “무안공항을 가득 메운 유족들의 통곡 속에서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울고 있다”며 “우리 당은 항공참사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 역시 무안공항 회의장서 대책회의를 열고 “한 사람의 정치인,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으로 참극이 벌어진 것에 국민과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사태 수습과 진상규명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체제로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는 비대위원 임명 직후 무안공항을 찾아 참사 수습으로 첫발을 뗐다.

정부는 참사 발생 당일인 지난달 29일부터 1월4일까지 7일간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기로 했다. 최 권한대행은 전남 무안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면서 “무안공항 현장과 전남, 광주, 서울, 세종 등 17개 시도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희생자에 대한 조의와 애도를 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은 사고 당일 무안공항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최했다. 다음날에는 국회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나 사고 수습 대책 방안을 논의했다.

박태서 국회의장실 공보수석은 두 사람의 비공개 접견이 끝난 뒤 “최 권한대행과 우 의장은 오늘 회동서 무안 제주항공 참사 수습 대책과 유가족 지원 대책에 대해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전국 애도기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곳곳서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현재 상황서 컨트롤타워를 맡은 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꺼내는 건 거대 야당에게도 쉽지 않다. 애도기간이 끝나길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탄핵에 군불을 때는 것처럼 보일 경우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참사 현장서 수습한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가 다소 지연되면서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민주당에 화살을 돌렸다. 무분별하게 휘둘렀던 탄핵 정국의 반작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에 “줄탄핵의 후과”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박 의원은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면 정부가 대책본부를 만들어 신속한 사고 수습에 나서게 된다. 대개 행안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지만 이번처럼 규모가 큰 경우에는 국무총리가 본부장을 맡는 것이 관례”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더불당(더불어민주당)의 줄탄핵으로 지금 우리 정부에는 국무총리도 행안부 장관도 없는 상황이다. 이걸 어찌해야 할까?”라고 따졌다. 그러면서 “국정 경험이 없거나 국정이 망해도 관심 없는 자가 아니라면 그래서 줄탄핵 같은 건 생각조차 않는 법”이라며 “민주당의 무책임한 줄탄핵으로 생긴 국정 공백이 정말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박형수 원내수석대변인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서 ‘정부 컨트롤타워의 기능에는 큰 문제는 없다고 평가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최 권한대행이 사고를 수습하고 있고 국토부도 하고 있지만, 현장 콘트롤타워 역할이 비어 있어 대단히 안타깝다”고 답했다.

야권의 탄핵소추안으로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공석이 된 점을 에둘러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곳곳서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이어지자 민주당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민주당 모경종 의원은 박수영 의원의 SNS 게시물을 인용해 반박하는 글을 작성했다. 모 의원은 “차라리 계엄사령부가 있었으면 일치단결해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하지 그러냐”며 “중요한 것은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고 유가족과 슬픔을 함께하며 후속 조치에 힘을 합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부대표 또한 같은 달 30일 KBS라디오 <전격시사>에서 국정 공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윤석열 내란 수괴가 아직 버티고 있는 것이 국정 마비 현상”이라며 “내란 수괴를 체포하고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오히려 국정을 빨리 회복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 권한대행이 전례에 따라 헌법재판관 임명을 유보하더라도 야당이 쉽게 탄핵을 추진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쏠렸던 이유다. 여당이 ‘민주당발 탄핵 역풍’에 부채질하고 있지만 “정국 수습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관 임명도 중요하다”는 민주당의 의지는 굳다.

불붙은
도화선

이 대표는 참사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사고 수습은 수습이고 내란 사태 진압도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이 대표나 박찬대 원내대표 등 지도부서 최 권한대행 탄핵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며 “야권 의원들이 개인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있을 수 있지만 책임 있는 민주당 지도부나 중진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다른 막다른 위기로 우리나라를 혼란으로 빠뜨리는 것보다 해결할 수 있는 길로 가는 것”이라며 “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해 완전체제로 만드는 것이 정치와 경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천천히 일상을 회복하고 여기에 맞춰 국민의힘도 여당으로서의 일을 하면 된다”며 “지금은 슬픔에 빠진 나라를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애도하는 게 맞는 때다. 이전처럼 민주당이 막무가내로 날을 휘두르면 오히려 역풍을 맞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이전만큼 압박 수위를 높이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청구, 다음날 곧바로 발부되면서 잠시 멈췄던 탄핵 시계의 초침이 다시 움직일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내란 혐의를 받는 윤 대통령에게 세 차례 출석을 요구했으나 불출석으로 임하자 이 같은 최후의 수단을 내민 것이다.

민주당은 “정부는 여전히 내란 수괴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고 있고, 내란 세력들은 수사를 방해하며 증거를 인멸하고 있다”며 “공수처의 체포영장 청구와 관련해 법원의 신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을 대리하는 윤갑근 변호사는 서울서부지법에 본인과 김홍일 변호사 선임계 및 체포영장 청구 관련 의견서를 제출했다.

윤 변호사는 “권한 없는 기관에 의한 체포영장 청구고 형사소송법상 청구 요건에도 맞지 않다”는 내용을 의견서에 담았다. 특히 현직 대통령의 직권남용죄로 소추하는 것에 대해 “꼬리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 몸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해괴한 논리”라고 주장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사고 수습과 내란 사태 진압 모두 중요”
‘버티기’ 돌입한 용산 무너뜨릴 한 방이 없다

국민의힘은 “현직 대통령이 증거인멸에 대한 염려나 도주 우려가 없는 상황서, 더군다나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인한)국가 애도 기간에 체포영장을 청구해 발부하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윤 대통령의 무대응 기조를 기점으로 민주당의 압박 수위가 점차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여기에 최 권한대행의 ‘애매한’ 행보가 이어지자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제주항공 사고 직전까지 여야가 치열하게 싸웠던 헌법재판관을 결국 임명했지만 후보 3명 중 2명만 받아들인 것이다.

지난달 31일 최 권한대행은 민주당 추천인 정계선 후보와 여당 추천인 조한창 후보자를 임명했다. 마은혁 후보자는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며 임명을 보류했다.

국민의힘은 충분한 논의 절차가 없었다며 즉각 반발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헌법재판관 임명은 유감스럽다”며 “책임과 평가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권 원내대표 역시 “국무회의서 충분히 논의한 다음에 결정했으면 헌법 원칙에 부합할 텐데, 그런 과정을 생략하고 본인 의사를 발표한 건 독단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최 권한대행의 선택에 불만스러운 건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이미 여야 합의를 마친 헌법재판관을 선별해 임명하는 행위 자체가 위헌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민주당 박 원내대표는 “대통령도 거부할 권한이 없는데 권한대행이 선별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국회 추천은 이미 의결로 완성된 것인데 무슨 새로운 합의가 필요하겠나. 최 권한대행은 즉시 마은혁 후보자를 포함해 3명을 모두 임명하시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여야, 그리고 대통령실까지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 혼란스러운 정국이 예상된다. 여기에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야당이 집중 공세를 펼쳤다.

민주당 박창진 부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섣부른 예단과 진단, 그리고 정쟁의 도구로 이번 사건이 언급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공수처라든가, 각자 맡은 역할을 하고 있다. 참사가 수습되고 나서 다음에 또 각자의 자리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천히
회복 중

박 부대변인은 대한항공 객실 사무장 출신으로 1997년 괌 대한항공 사고 현장에 투입됐던 인물이다. 그는 “전 국민의 아픔이고 사고다. 2차 트라우마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잘 수습하고 애도하는 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이번 참사에 대해 음모론을 펼치거나 ‘승무원은 왜 살았냐’ 등 2차 가해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이는 우리 공동체를 해치는 일”이라고도 강조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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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