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참사> ‘아니면 말고’ 선 넘은 음모론

유족들 가슴 후벼 파는 ‘펌프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역대 국내서 발생한 항공사고 중 가장 피해가 큰 최악의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탑승객 181명 중 꼬리칸에 있던 승무원 2명을 제외한 모두가 사망했다. 이런 상황에 유족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음모론이 계속 나오며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전남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발생한 이후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음모론이 확산됐다. 특히 ‘무속’ ‘북한 공작’ 등 참사와 연관되지 않은 키워드도 등장하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대형 참사 이후 진상규명과는 상관없이 여론 몰이하는 모습이 또 나타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속?  
공작?

지난달 29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3분께 전남 무안군 망운면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서 태국 방콕발 무안행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가 랜딩기어를 펼치지 못하고 활주로를 벗어났다. 이어 시설물과 정면 충돌,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치솟았다.

기체 동체는 후미(꼬리)만 형체를 남기고 활주로 주변 곳곳에 파편으로 튀거나 모두 탔다. 소방 당국은 중앙119구조본부·소방항공대, 소방 헬기·소방차 등을 동원해 충돌 사고 43분여 만에 불길을 잡았다. 사고 여객기에는 탑승객 175명과 승무원 6명이 타고 있었다. 탑승객 중 태국인 2명을 제외한 179명이 한국인이었다.

12시간여에 거친 구조·수습 작업에도 불구, 최종 사망자는 179명으로 파악됐다. 그나마 형체가 남았던 기체 후미 비상구 쪽에 있던 남·녀 승무원 2명은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기는 당초 이날 새벽 태국 현지 방콕공항서 출발해 오전 8시30분 무안에 착륙할 예정이었다.

항공 사고 원인 규명을 도맡은 국토부는 사고 직전 관제탑서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주의보” 교신을 한 지 얼마 안 돼 조종사가 긴급구조신호 ‘메이데이’를 선언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관제탑은 오전 8시54분 착륙허가를 내렸고 오전 8시57분 조류 회피 주의 조언(Caution Bird activity)을 했다. 이후 8시59분 사고 항공기 기장이 메이데이(긴급구난신호) 선언을 했고, 오전 9시3분 사고가 났다.

메이데이 선언 직후 복행(재착륙을 위해 다시 떠오르는 것)하지 않고 당초 착륙 방향이 아닌 19 방향(반대 방향)으로 착륙하려다 활주로를 지나 담벼락까지 충돌했다는 게 국토부 설명이다.

당국의 조사로 사고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참사를 둘러싼 음모론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음모론자들이 참사에서 이상하다고 꼽은 것은 ▲사고 전날 나무위키에 작성된 사고 관련 글 ▲사고 이틀 전 제주항공 급매로 인한 주가 급락 ▲MBC 제보 영상서 제보자의 일반인답지 않은 침착함 ▲버드 스트라이크라기엔 너무 큰 엔진 폭발 ▲MBC 속보 방송 중 노출된 ‘탄핵 관련: 817’이라는 문구 등이다.

음모론자들은 이를 두고 사고가 아닌 북한의 테러라고 주장했다. <일요시사>는 이들의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을 진행했다.

사고 영상도 너무 침착?
테러 배후 의심 글 넘쳐


무안 참사가 예견된 사고라는 음모론은 ‘나무위키 사고 글’ ‘제주항공 주가 급락’ ‘영상 제보자의 침착성’ 등을 근거로 한다. 해당 음모론은 구독자가 백만명에 달하는 자유통일당 성창경 수석대변인의 영상으로 퍼져나갔다. 

성 대변인은 지난 29일 ‘충격! 전문가 충격 의혹 제기, 촬영자, 나무위키에 하루 전 사고 예고, 항공사 주가 폭락 등 음모론 확산’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게시했다.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지난달 30일 오전 기준 약 40만회에 달했다.

성 대변인은 “무안공항 사고와 관련해 나무위키서 미리 (관련 내용이)나와있었다. 구글서 검색하면 사건 발생 시간보다 17시간 정도 일찍 나무위키에 사건 내용이 떴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의혹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해당 문서의 생성 기록을 살펴보면 지난달 29일 오전 9시33분 15초에 처음 생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구글 검색 화면에서는 마치 해당 문서가 참사가 일어나기 이전에 작성된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구글 본사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어 한국 시각보다 캘리포니아 시각이 17시간 빨라서 생기는 현상일 뿐이다.

사고 발생 직후 네이버 카페에선 ‘주식 대량 매도설’까지 제기됐다. 사고 직전 평일인 지난달 27일 제주항공 주식 대량 매도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작성자는 주식 그래프를 첨부해 “오후 1시 소름 돋는 대량 매도는 누구냐”라며 “돈은 거짓말을 안 한다는데”라고 썼다.

기업 내부자가 사고 발생을 미리 알고 사고 이전에 대량을 매도했다고 의심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거래 기록을 면밀히 분석하면 ‘대량 매도’라고 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전해진다. 먼저 지난달 27일 제주항공 주식 하루 전체 거래량은 12만7126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0억4000만원 수준이었다.

“충격 의혹”
예견된 사고?

문제가 제기된 오후 1시경 매도 금액도 이 중 일부에 불과했다. 지난달 27일 오후 1시경의 거래량은 약 1만5000주로,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억200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전체 시가총액 6621억원 규모를 고려할 때 당일의 거래대금 10억4000만원은 매우 적은 규모다. 이는 특정 세력의 조직적인 매도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렵게 만든다. 

사고 당시 영상을 두고 계획된 테러라는 주장도 계속 나왔다. 성 대변인은 앞서의 영상서 “MBC가 사고 당시 영상을 찍은 것을 보면 비행기가 벽에 부딪힐 때까지 아주 담담하게 촬영했다”며 “한 전문가가 저에게 ‘계획 테러일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제보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요일 아침에 폭발 장면을 일반인이 완벽하게 촬영했다는 것”이라며 “근처 낙지 공판장 직원이나 어부의 촬영이 아니다. 촬영 위치도 너무 잘 지켰고 촬영 각도와 높이 등도 사전 조사 후에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의도적으로 착륙하는 지면을 쭉 이어서 부딪히는 방면까지 촬영한 것이다. (촬영자가)아주 실력자”라고 강조했다.

현재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는 구독자 94만 유튜브 채널 운영자 이봉규씨도 “누가 이렇게 (촬영을 위해)위치해서 사고를 어떻게 처음서부터 끝까지 이렇게 찍을 수 있느냐는 의혹이 있다”며 “착륙해서 사고가 날 때까지 그런 장면을 어떻게 그런 각도서 찍었냐 이게 좀 의문된다. 나중에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촬영자 두고
또 다른 의심

해당 영상을 촬영한 인물은 무안공항 바로 옆에서 낙지 직판장을 운영하는 이근영씨다. 이씨는 지난달 29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서 “식당 안에 있었는데 (비행기가)내리기 전부터 밖에서 ‘쾅쾅쾅’ 소리가 나서 밖을 쳐다 보니까 비행기가 내렸다”며 “원래대로라면 비행기가 착륙해야 하는 방향이 반대 방향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위험하다 싶어서 바로 옥상으로 올라가서 찍게 됐다”면서 성 대변인과 같이 ‘사고 장면을 너무 완벽하게 촬영했다’는 음모론에 대해 “그 사람들 진짜 너무하다. 평소 이쪽 일반 주차장서도 공항이 다 보인다. 더군다나 이상을 느꼈기 때문에 옥상에 올라가서 찍게 된 것”이라고 촬영 경위를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참사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부 누리꾼은 한 방송사의 사고 중계 화면에 1초간 ‘탄핵 관련: 817’이라는 글자가 보였다며 이를 북한의 대남 공작 지침인 ‘817 방침’과 연결지었다.

구독자 157만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신혜식씨는 지난달 29일 “무정부 무안 참사!”라는 제목의 영상서 MBC가 참사를 보도하던 중 순간 ‘탄핵 관련: 817’ 등의 문구가 적힌 화면이 잠시 방송에 노출된 것에 대해 ‘북한의 대남공작 지령인 817 지령이 존재한다’는 내용의 한 인터넷 언론의 기사를 소개했다.

신씨는 “817 지령이 북한의 대남공작 조직인 문화교류국이 사용하는 용어라고 한다”면서 “이러니까 사람들이 오해할 만하다. 저는 실수로 보지만 그래도 굉장히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대체 이 817은 뭐냐, 한번 좀 자세히 우리가 의미를 파악을 해 봐야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신씨가 소개한 기사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인 챗GPT에 ‘817 지령에 뭐야’라고 질문하자 “1987년 8월17일 북한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시한 정책으로, 주로 대남공작 관련 지침을 담고 있다”고 답변한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드론으로 엔진 격추?
내란 지시 받은 블랙요원 짓? 

이 같은 북한 연루설에 박차를 가한 것은 ‘버드 스트라이크 답지 않게 충돌 이후 엔진서 폭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한 누리꾼은 “일반적으로 버드 스트라이크가 엔진서 발생해도 폭발이 일지는 않는다”며 “마치 자동차 보닛에 길고양이가 들어갔다고 자동차 엔진이 폭발하지 않는 것과 같다. 따라서 이번 사고는 조류 모형을 한 드론에 폭탄을 실은 후 조종해 엔진 하나를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이번 참사가 무속과 관련돼있다는 주장이 쏟아졌다. 이를테면 “무속인과 그 신도들이 국가를 장악했는데, 항공기 사고도 우연치곤 이상하다”는 식이었다. 대통령 일가가 건진법사 등 ‘무속인’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두고 사태를 확대 해석하는 것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를 받은 블랙요원들이 공항을 폭파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근거없는 주장도 나왔다.

이 같은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기자가 챗GPT에 숫자를 바꿔 ‘OOO 지령이 뭐야’라고 묻자 신씨가 소개한 기사와 비슷한 답변을 반복했다. 또 전문가들은 버드 스트라이크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하다고 반박했다.

김규왕 한서대 비행교육원장은 “운항 중에 새들이 엔진으로 들어가면 엔진은 완전히 망가진다”며 “버드 스트라이크의 가장 위험한 상황은 새와 기체의 충돌이 아니라 새가 엔진 속으로 빨려들어가 엔진 내부를 망가뜨리고 엔진을 태우는 것이다. 사고 영상을 보면 이런 정황이 잘 나와 있다”고 조류 드론 의혹에 대해 반박했다.

한편 무안공항 참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협박 이메일이 법무부에 발송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경찰에 따르면 법무부 한 직원은 이날 오전 8시50분쯤 “‘제주항공 사고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취지의 이메일을 받았다”며 112에 신고했다. 이 이메일에는 지난달 31일 밤 한국 도심 여러 곳에 고성능 폭탄을 터뜨릴 것이라는 취지의 내용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소행’
협박 이메일

이 메일은 ‘가라사와 다카히로’라는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이름으로 발송됐으며, 일본어와 영어 등으로 작성됐다고 한다. 이 이름은 지난해 8월 국내 공공시설 여러 곳을 상대로 폭탄 테러를 하겠다고 협박했던 이메일의 발신자와 같다.

당시 실제 이름이 ‘가라사와 다카히로’인 일본의 변호사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내 이름이 허락 없이 이용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번에 신고가 접수된 이메일이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기존 사건들과 병합 수사 중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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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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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