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내는 비명계 속내

드디어 움직이는 내부 저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부 저격수인 이른바 비명(비 이재명)계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총선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같은 당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우면서다. 과연 공천에 미련 따윈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1박2일간 진행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 워크숍이 지난달 29일 마무리됐다. 당초 우려하던 비명(비 이재명)계와 친명(친 이재명)계 간의 큰 충돌은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 대표에 관한 구속영장이 실제 국회로 날아들 경우 계파 갈등은 극에 치달을 것으로 관측된다.

개딸들
부작용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를 뜻하는 ‘개딸’(개혁의 딸)은 민주당을 둘로 쪼개는 데 한몫을 차지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휩싸일 때마다 개딸이 적극 엄호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비명계의 비판을 ‘내부총질’ ‘수박’(비명계 별칭 용어)으로 낙인찍는 등 감정적 갈등으로 번지게 된 계기가 됐다.

처음부터 개딸이 민주당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팬덤 정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 정당의 세를 키워줬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당의 전체 권리당원 중 절반은 대선 전후 입당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조차 기이한 현상이라고 말할 만큼 유례없는 일인 셈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떠오르면서 개딸을 바라보는 여론은 여의도 안팎을 막론하고 180도 뒤집혔다. 이 대표와 친명계가 개딸의 영향력에 힘을 실어주면서 도가 넘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이 대표는 의원을 비판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오늘의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의원’ ‘가장 많은 항의 문자를 받은 의원’ 등을 추산해보자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자신과 반대 의견을 내놓는 소신을 숫자로 겁박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반발했지만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은 “직접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받아쳤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투쟁의 최전선에 개딸을 앞세웠다는 평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등을 외치며 이 대표의 마이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개딸은 윤 대통령을 향한 탄핵 요구뿐 아니라 비명계 의원을 향한 압박 수위도 높여가고 있다. 수박 색출에 나선 개딸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당의 균열도 커진다는 우려가 나왔다.

지난달 22일 비명계로 꼽히는 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지역구서 열린 간담회서 개딸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날 한 여성은 윤 의원을 향해 “이재명이 이 아파트를 지어줬다”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어서 나가라” 등 고성을 질렀다. 이후 윤 의원은 SNS를 통해 “민주당 당 대표를 앞세워 저질러지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민주당 쇄신을 위해 출범한 ‘김은경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개딸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이 대표의 방탄으로 둔갑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혁신위는 ‘3선 이상 현역 의원 동일 지역 공천 금지’를 비롯해 ‘기명투표’ 등 혁신안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대의원제 개편안’은 민주당 내홍에 다시 불을 붙이는 뇌관이 됐다는 평을 받는다.

대표 받아든 1년 성적표
남은 건 검찰과의 싸움뿐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을 때 현행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다. 혁신위는 개편안을 통해 대의원 투표 반영 비율을 삭제하자고 주장했다. 대신 권리당원 투표 비율을 70%로 늘리고 국민여론조사 역시 30%로만 선출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대의원제를 무력화하고 개딸의 비율이 높은 권리당원 영향력을 키워 이 대표를 지키려는 게 아니냐”고 반발했다.

이 대표 체제에 염증을 느낀 비명계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개딸을 비롯해 이 대표의 리더십 위기론과 체포영장 청구 등 넘어야 하는 산이 많은 만큼 당내 마찰 역시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꼽히는 사안은 이 대표와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과의 대립 관계다. 앞서 검찰은 이 대표에게 지난달 30일에 출석하라고 통보했지만 이 대표 측은 이보다 앞선 24일과 26일에 조사를 받겠다고 답했다.

이후 검찰은 이번 달 4일 출석할 것을 재차 통보했고 이 대표는 본회의가 없는 11일부터 15일을 제시했다.

양측의 신경전 속 조사는 9월 정기국회 기간으로 밀렸다. 이 대표에 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사실상 불가피한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당은 의석수를 내세워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지만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면서 계산이 복잡해졌다. 현재 비명계는 표결에 참여해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서 체포동의안을 또다시 부결시키면 특권 포기를 번복한 것은 물론 방탄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친명계는 “검찰의 조작 수사”라고 주장하며 표결에 불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쌓인 계파 갈등은 의원 워크숍을 기점으로 앞다투어 터져 나왔다. 비명계는 이 대표를 향해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이처럼 당을 위해 희생하라”는 여론을 형성했다.

공천율
계산기

민주당 설훈 의원은 워크숍 비공개 자유발언서 “심청이가 죽어도 죽은 게 아니고 다시 태어나 왕비가 됐다. 이 대표도 체포동의안이 오면 당당하게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 대표의 향후 거취 문제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이 대표를 향해 정면으로 날을 세웠다. 지난달 28일 취임 1년을 맞은 이 대표의 한 해를 돌아봤을 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것이다. 국민의 인식 속 이 대표는 ‘방탄 정당’ ‘내로남불’ 등 부정적으로 각인됐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이 의원의 주장은 힘을 받는 모양새다.


이 의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재명 대표 체제 1년을 돌아봅니다”라는 글을 게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대선 패배를 딛고 당 대표로 올라선 비장함과 책임감을 보여줬지만 결과는 달랐고 성과는 없었다”며 “이 대표에게는 고작 1년일 수 있지만 그 1년 동안 민주당의 추락은 가속도가 붙었다”고 비판했다.

분당을 막으려면 이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형국이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이 대표가 거취 결정을 안 하면 그의 생각과 달리하는 의원들이 거취 결정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이 대표 사퇴를 외쳐왔던 만큼 계파 갈등이 임계점을 넘기기 전 스스로 물러나야 분당을 막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계속되는 사퇴 요구에 친명계도 대립각을 세웠다. 이 대표는 지난해 전당대회서 누적 득표율 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받아 당선된 만큼 이를 반대하는 것은 다수의 의견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착시현상’이라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애초에 이 대표를 반대하는 사람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77.7%라는 숫자가 나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최근 호남을 비롯한 수도권 민심을 종합해봤을 때 이 대표의 지지율이 이전 같지 않다는 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당에 대한 평가를 뒤로 하고 ‘선거 승리’만 외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명계의 높아지는 수위 공세에도 친명계는 이 대표를 엄호하고 나섰다.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의견은 당내에서도 극히 일부일 뿐이며 계파 갈등을 부추기는 발언은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비명계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두고 공천 확률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이재명
빅픽처

비명계 의원이 공천 심사에서 몽땅 탈락한다면 ‘공천 학살’ 등을 이유로 또다시 계파 갈등에 불이 붙을 것이란 우려가 존재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수일지라도 비명계 의원에게 공천을 부여할 것이고, 자연스레 컷오프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해석이다.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며 비명계 의원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친명계 라인을 타는 것이 더 이 대표를 향해 쓴소리하는 것보다 더 언론의 조명을 받을 수 있다”고도 전했다.

70%에 달하는 다수의 목소리보다 20%의 자극적인 의견이 더욱 돋보인다는 것이다.

비명계는 이를 반박했다. 이대로 민주당이 무너지는 걸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민주당이 이 대표의 리스크를 막는 데 집중한 나머지 국정에 소홀히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비명계 축에 속하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 법률지원팀이 사실상 이 대표의 변호인단으로 꾸려지면서 민생에 쓰여야 할 힘이 바르게 배분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비명계를 중심으로 당 대표를 내려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실제로 이 대표가 쉽게 당대표직을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당 대표라는 직함은 이 대표가 가진 마지막 갑옷인 만큼 끝까지 버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아마 이 대표는 자신의 세력을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내년 총선 의석수가 쪼그라들어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며 “대표직을 내려놓는 순간 변호인단을 시작으로 온갖 리스크에 마주하게 될 텐데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포스트 이재명 시나리오?
본격 친·비명 세력 다툼?

이 대표 사퇴설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실제 구속 등 외부 타격 없이는 물러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다만 민주당의 위기론에는 비명과 친명의 초점이 맞춰졌다. 무당층 비율이 높아지면서 표심이 갈 곳을 잃고 흔들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타파할 방법론을 두고 또다시 갈등이 빚어졌다.

현재 양당은 상대 진영의 실수에 기대 반사이익만을 노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정부·여당의 리스크에도 민주당이 힘을 못 쓰는 것을 두고 ‘이재명 책임론’이 두드러졌다. 총선 승리를 위한 ‘포스트 이재명’ 시나리오에 연기가 오르는 이유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총선 플랜 B’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 대표 없는 민주당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전당대회를 치러 신임 당 대표를 뽑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직 대표가 사퇴할 때 남은 임기가 8개월 미만이어야 하므로 이 대표가 12월28일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두 번째는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로 돌아서는 것이다. 비대위 전환을 위해서는 당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과반수가 궐위돼야 한다. 이 대표는 물론 최고위원의 과반도 함께 사퇴해야 하는 만큼 새로운 대열을 꾸릴 수 있다.

친명계에선 전당대회를 통해 신임 대표를 선출하는 첫 번째 방식을 우선순위에 둔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개딸이 권리당원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만큼 친명계 인사에 표가 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구속되더라도 ‘옥중 공천’으로 총선에 입김을 불어 넣을 것이란 전망까지 제기됐다. 지금과 같은 친명계 체제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비명계에서는 두 번째인 비대위 체제를 염두에 두는 모양이다. 친명계 위주의 지도부가 아닌 새로운 체제를 중심으로 총선을 준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비명계 측에서는 실제 비대위 체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비대위는 말 그대로 비상 상황 시 꾸려지기 때문이다.

무리수
거두기?

현재로서는 이 대표가 구속되지 않는 이상 스스로 내려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당장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울 인물이 마땅치 않은 것도 비대위가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이 대표 체제가 총선서 패배하는 경우 대선 재도전은 물론 민주당 회복 역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자진해서 대표직을 내려놓는 게 본인은 물론 당에게도 안전한 길이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치고 올라오는 이낙연?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이재명 체제 1년’에 관해 “도덕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25일 부산에서 진행한 특강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는 깨끗하다는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재차 도덕성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이 전 대표의 활발한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포스트 이재명’을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전 대표가 부산을 방문한 것 역시 ‘NY계’를 중심으로 세를 모집하기 위한 첫 공식 일정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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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