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부 저격수인 이른바 비명(비 이재명)계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총선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같은 당 대표를 향해 날을 세우면서다. 과연 공천에 미련 따윈 없는 것일까? 그 이유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1박2일간 진행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 워크숍이 지난달 29일 마무리됐다. 당초 우려하던 비명(비 이재명)계와 친명(친 이재명)계 간의 큰 충돌은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이 대표에 관한 구속영장이 실제 국회로 날아들 경우 계파 갈등은 극에 치달을 것으로 관측된다.
개딸들
부작용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를 뜻하는 ‘개딸’(개혁의 딸)은 민주당을 둘로 쪼개는 데 한몫을 차지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휩싸일 때마다 개딸이 적극 엄호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는 비명계의 비판을 ‘내부총질’ ‘수박’(비명계 별칭 용어)으로 낙인찍는 등 감정적 갈등으로 번지게 된 계기가 됐다.
처음부터 개딸이 민주당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니었다. ‘팬덤 정치’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 정당의 세를 키워줬기 때문이다.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에 따르면 당의 전체 권리당원 중 절반은 대선 전후 입당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조차 기이한 현상이라고 말할 만큼 유례없는 일인 셈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떠오르면서 개딸을 바라보는 여론은 여의도 안팎을 막론하고 180도 뒤집혔다. 이 대표와 친명계가 개딸의 영향력에 힘을 실어주면서 도가 넘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앞서 이 대표는 의원을 비판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만들자고 제안한 바 있다. ‘오늘의 가장 많은 비난을 받은 의원’ ‘가장 많은 항의 문자를 받은 의원’ 등을 추산해보자는 것이다. 당내에서는 “자신과 반대 의견을 내놓는 소신을 숫자로 겁박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반발했지만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은 “직접 민주주의의 구현”이라고 받아쳤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한 투쟁의 최전선에 개딸을 앞세웠다는 평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등을 외치며 이 대표의 마이크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개딸은 윤 대통령을 향한 탄핵 요구뿐 아니라 비명계 의원을 향한 압박 수위도 높여가고 있다. 수박 색출에 나선 개딸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당의 균열도 커진다는 우려가 나왔다.
지난달 22일 비명계로 꼽히는 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지역구서 열린 간담회서 개딸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이날 한 여성은 윤 의원을 향해 “이재명이 이 아파트를 지어줬다” “여기가 어딘지 아느냐, 어서 나가라” 등 고성을 질렀다. 이후 윤 의원은 SNS를 통해 “민주당 당 대표를 앞세워 저질러지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민주당 쇄신을 위해 출범한 ‘김은경 혁신위원회’(이하 혁신위)가 개딸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이 대표의 방탄으로 둔갑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혁신위는 ‘3선 이상 현역 의원 동일 지역 공천 금지’를 비롯해 ‘기명투표’ 등 혁신안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대의원제 개편안’은 민주당 내홍에 다시 불을 붙이는 뇌관이 됐다는 평을 받는다.
대표 받아든 1년 성적표
남은 건 검찰과의 싸움뿐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뽑을 때 현행 투표 반영 비율은 권리당원 40%, 대의원 30%,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다. 혁신위는 개편안을 통해 대의원 투표 반영 비율을 삭제하자고 주장했다. 대신 권리당원 투표 비율을 70%로 늘리고 국민여론조사 역시 30%로만 선출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는 “대의원제를 무력화하고 개딸의 비율이 높은 권리당원 영향력을 키워 이 대표를 지키려는 게 아니냐”고 반발했다.
이 대표 체제에 염증을 느낀 비명계 의원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개딸을 비롯해 이 대표의 리더십 위기론과 체포영장 청구 등 넘어야 하는 산이 많은 만큼 당내 마찰 역시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꼽히는 사안은 이 대표와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과의 대립 관계다. 앞서 검찰은 이 대표에게 지난달 30일에 출석하라고 통보했지만 이 대표 측은 이보다 앞선 24일과 26일에 조사를 받겠다고 답했다.
이후 검찰은 이번 달 4일 출석할 것을 재차 통보했고 이 대표는 본회의가 없는 11일부터 15일을 제시했다.
양측의 신경전 속 조사는 9월 정기국회 기간으로 밀렸다. 이 대표에 관한 체포동의안 표결이 사실상 불가피한 상황에 다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민주당은 의석수를 내세워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지만 이 대표가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하면서 계산이 복잡해졌다. 현재 비명계는 표결에 참여해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총선을 앞둔 시점서 체포동의안을 또다시 부결시키면 특권 포기를 번복한 것은 물론 방탄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친명계는 “검찰의 조작 수사”라고 주장하며 표결에 불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쌓인 계파 갈등은 의원 워크숍을 기점으로 앞다투어 터져 나왔다. 비명계는 이 대표를 향해 “인당수에 뛰어든 심청이처럼 당을 위해 희생하라”는 여론을 형성했다.
공천율
계산기
민주당 설훈 의원은 워크숍 비공개 자유발언서 “심청이가 죽어도 죽은 게 아니고 다시 태어나 왕비가 됐다. 이 대표도 체포동의안이 오면 당당하게 영장실질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이 대표의 향후 거취 문제를 우회적으로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이 대표를 향해 정면으로 날을 세웠다. 지난달 28일 취임 1년을 맞은 이 대표의 한 해를 돌아봤을 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것이다. 국민의 인식 속 이 대표는 ‘방탄 정당’ ‘내로남불’ 등 부정적으로 각인됐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이 의원의 주장은 힘을 받는 모양새다.
이 의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이재명 대표 체제 1년을 돌아봅니다”라는 글을 게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대선 패배를 딛고 당 대표로 올라선 비장함과 책임감을 보여줬지만 결과는 달랐고 성과는 없었다”며 “이 대표에게는 고작 1년일 수 있지만 그 1년 동안 민주당의 추락은 가속도가 붙었다”고 비판했다.
분당을 막으려면 이 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형국이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 역시 한 라디오를 통해 “이 대표가 거취 결정을 안 하면 그의 생각과 달리하는 의원들이 거취 결정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계속해서 이 대표 사퇴를 외쳐왔던 만큼 계파 갈등이 임계점을 넘기기 전 스스로 물러나야 분당을 막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계속되는 사퇴 요구에 친명계도 대립각을 세웠다. 이 대표는 지난해 전당대회서 누적 득표율 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받아 당선된 만큼 이를 반대하는 것은 다수의 의견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착시현상’이라는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다. 애초에 이 대표를 반대하는 사람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77.7%라는 숫자가 나올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최근 호남을 비롯한 수도권 민심을 종합해봤을 때 이 대표의 지지율이 이전 같지 않다는 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주장이다.
당에 대한 평가를 뒤로 하고 ‘선거 승리’만 외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명계의 높아지는 수위 공세에도 친명계는 이 대표를 엄호하고 나섰다.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의견은 당내에서도 극히 일부일 뿐이며 계파 갈등을 부추기는 발언은 자제해달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비명계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두고 공천 확률을 계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이재명
빅픽처
비명계 의원이 공천 심사에서 몽땅 탈락한다면 ‘공천 학살’ 등을 이유로 또다시 계파 갈등에 불이 붙을 것이란 우려가 존재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소수일지라도 비명계 의원에게 공천을 부여할 것이고, 자연스레 컷오프 가능성도 줄어든다는 해석이다.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며 비명계 의원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은 친명계 라인을 타는 것이 더 이 대표를 향해 쓴소리하는 것보다 더 언론의 조명을 받을 수 있다”고도 전했다.
70%에 달하는 다수의 목소리보다 20%의 자극적인 의견이 더욱 돋보인다는 것이다.
비명계는 이를 반박했다. 이대로 민주당이 무너지는 걸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민주당이 이 대표의 리스크를 막는 데 집중한 나머지 국정에 소홀히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비명계 축에 속하는 한 의원실 관계자는 “민주당 법률지원팀이 사실상 이 대표의 변호인단으로 꾸려지면서 민생에 쓰여야 할 힘이 바르게 배분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비명계를 중심으로 당 대표를 내려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실제로 이 대표가 쉽게 당대표직을 사퇴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당 대표라는 직함은 이 대표가 가진 마지막 갑옷인 만큼 끝까지 버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아마 이 대표는 자신의 세력을 보호해줄 수 있는 사람만 있다면 내년 총선 의석수가 쪼그라들어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며 “대표직을 내려놓는 순간 변호인단을 시작으로 온갖 리스크에 마주하게 될 텐데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포스트 이재명 시나리오?
본격 친·비명 세력 다툼?
이 대표 사퇴설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실제 구속 등 외부 타격 없이는 물러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다만 민주당의 위기론에는 비명과 친명의 초점이 맞춰졌다. 무당층 비율이 높아지면서 표심이 갈 곳을 잃고 흔들리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를 타파할 방법론을 두고 또다시 갈등이 빚어졌다.
현재 양당은 상대 진영의 실수에 기대 반사이익만을 노리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특히 정부·여당의 리스크에도 민주당이 힘을 못 쓰는 것을 두고 ‘이재명 책임론’이 두드러졌다. 총선 승리를 위한 ‘포스트 이재명’ 시나리오에 연기가 오르는 이유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총선 플랜 B’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 대표 없는 민주당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전당대회를 치러 신임 당 대표를 뽑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직 대표가 사퇴할 때 남은 임기가 8개월 미만이어야 하므로 이 대표가 12월28일 전에 사퇴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두 번째는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체제로 돌아서는 것이다. 비대위 전환을 위해서는 당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과반수가 궐위돼야 한다. 이 대표는 물론 최고위원의 과반도 함께 사퇴해야 하는 만큼 새로운 대열을 꾸릴 수 있다.
친명계에선 전당대회를 통해 신임 대표를 선출하는 첫 번째 방식을 우선순위에 둔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 개딸이 권리당원 비중을 크게 차지하는 만큼 친명계 인사에 표가 몰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구속되더라도 ‘옥중 공천’으로 총선에 입김을 불어 넣을 것이란 전망까지 제기됐다. 지금과 같은 친명계 체제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비명계에서는 두 번째인 비대위 체제를 염두에 두는 모양이다. 친명계 위주의 지도부가 아닌 새로운 체제를 중심으로 총선을 준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비명계 측에서는 실제 비대위 체제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비대위는 말 그대로 비상 상황 시 꾸려지기 때문이다.
무리수
거두기?
현재로서는 이 대표가 구속되지 않는 이상 스스로 내려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당장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울 인물이 마땅치 않은 것도 비대위가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이 대표 체제가 총선서 패배하는 경우 대선 재도전은 물론 민주당 회복 역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자진해서 대표직을 내려놓는 게 본인은 물론 당에게도 안전한 길이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치고 올라오는 이낙연?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이재명 체제 1년’에 관해 “도덕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25일 부산에서 진행한 특강서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는 깨끗하다는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재차 도덕성 문제를 거론한 것이다.
이 전 대표의 활발한 행보를 두고 일각에서는 ‘포스트 이재명’을 대비하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 전 대표가 부산을 방문한 것 역시 ‘NY계’를 중심으로 세를 모집하기 위한 첫 공식 일정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