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브레이크 풀린 민주당 막전막후

시동 걸자마자 거침없는 폭주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거대 의석수를 손에 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국회의장에 이어 상임위까지 싹쓸이했다. 국민의힘이 반격에 나섰지만 피켓과 목소리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민주당이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국민의힘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 등 18개 상임위 중 11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했다. 이날 선출된 11명의 상임위원장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까지 모두 야당서 배출한 사례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시작부터
갈라지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운영위원장과 법사위원장에 각각 민주당 박찬대 의원과 정청래 의원이 선출됐다. 나머지 상임위 역시 모두 민주당 출신으로 ▲교육위원장 김영호 의원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 최민희 의원 ▲행정안전위원장 신정훈 의원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전재수 의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어기구 의원 ▲보건복지위원장 박주민 의원 ▲환경노동위원장 안호영 의원 ▲국토교통위원장 맹성규 의원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박정 의원이 선출됐다.

특히 법사위와 운영위는 주요 상임위로 여겨지는 만큼 당의 강경파 의원이 고삐를 쥐게 됐다.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특검법을 다루기 위해 국회의 허들은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결정하자 국민의힘은 본회의장 앞 중앙홀에 모여 규탄 집회를 벌였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도 국회도 ‘이재명 1인 독재 체제’로 전락했다. 오늘 민주당도 죽었고, 국회도 죽었다”며 “이 대표는 여의도 대통령 놀음에 빠져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의총서 우원식 국회의장에 대한 사퇴 촉구 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의원은 저마다 피켓을 들고 “민주당의 국회 독식을 규탄한다”고 소리 높였다.

민주당은 이 모든 상황은 정부여당이 초래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지난 국회서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몫이었다. 민주당이 민의를 받들어 발의한 법안은 법사위 문턱을 겨우 넘었을뿐더러 만일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남발해 휴지 조각이 됐다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게 나머지 7개의 상임위원장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지만 이를 전면 거부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나머지 단추도 마저 끼워야 22대 국회가 본 모습을 갖춘다”며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7개 상임위도 신속히 구성을 마칠 수 있게 이른 시일 내 본회의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상임위를 받아들이는 대신 ‘투 트랙 전략’을 택하면서 보이콧을 선언했다. 상임위에 출석하는 대신 15개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꾸려 민생 현안을 챙기겠단 구상이다.

민주당은 상임위가 꾸려지자 곧바로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법사위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열고 채 상병 특검법을 상정하는 등 법안 처리 절차에 돌입했다. 민주당 김승원 의원을 야당 간사로 선임하는 간사 선임안과 소위 구성안 등도 이날 가결했다.

국회의장에 상임위 11개도 ‘쓱싹’
사라진 협치…무리수 두는 속내는?

정 위원장은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지, 관례 국가가 아니다”라며 “법사위는 앞으로 회의를 예정된 시간 정시에 시작하겠다”고 자리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이날 처리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 21대 국회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폐기된 법안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민주당이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1호 당론 법안으로 발의했다. 지난 특검법은 ‘수사외압 의혹’에 국한됐지만 새로 발의된 특검법은 추가로 밝혀진 외압 의혹과 더불어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재판 과정 등이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안은 상임위에 회부된 뒤 약 20일간의 숙려기간을 거쳐 상정된다. 하지만 이날 야권 의원들은 의결을 통해 이를 생략한 뒤 하루 만에 상정했다. 민주당은 고 채 상병의 1주기인 7월 초까지 해당 특검법을 본회의에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면서도 이미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사안을 특검법으로 해결하는 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22대 국회 개원 첫날부터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법을 발의하면서 특검 정국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자난달 31일 김 여사 관련 의혹을 한꺼번에 수사하는 이른바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이는 채 상병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쌍특검법을 재정비해 발의한 것이다.

해당 법안은 기존에 다루고 있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비롯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등이 추가됐다.

사흘 뒤인 지난 3일에는 ‘대북송금 사건 관련 검찰조작 특검법’이 발의됐다. 여권 측에서는 그동안 발의된 법안이 용산을 공격하는 용도였다면 이번에는 이 대표를 방어하기 위한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민주당 측은 검찰이 이 대표를 표적 수사할 목적으로 쌍방울그룹 주가조작 사건을 대북송금 사건으로 둔갑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사건 수사를 받던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를 상대로한 ‘술자리 진술 조작 회유’ 의혹이 추가되면서 특별법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풀이된다.

검처럼
방패처럼

이날 민주당 정치검찰 사건 조작 특별대책단(이하 대책단)은 특검발의 후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잘못된 수사 방식에 대해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첫 사례”라고 규정했다. 대책단은 “검찰은 전혀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를 유린하며 위법 수사와 진술 조작, 증거 날조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며 “정치검찰은 수사의 주체가 아니라 수사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방탄을 위한 특검법’이라는 지적에는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의 위법·범법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며 “방탄 특검으로 몰고 가는 건 비약을 넘어 상상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단독 상임위 개최에 이어 잇따라 발의되는 법안에 국민의힘은 ‘국회 폭거’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독주’ ‘독식’이라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민주당이 속도조절을 하지 않는 데에는 ‘총선 민심’이 뒷받침된다. 상임위 단독 의결이든, 특검법이든 “민주당을 뽑은 민의를 받든 결과”라는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총선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지 않은 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이 민주당에게 준 한 표는 정부여당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 국회를 독점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정당 지지도에 따르면 민주당은 선거를 치르기 직전인 44.6%(4월1주)에서 ▲37.0%(4월2주) ▲35.0%(4월3주) ▲35.1%(4월4주) ▲36.1%(5월1주) ▲40.6%(5월2주)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이후 5월3주차는 34.5%로 하락했다가 ▲33.9%(5월4주) ▲33.8%(5월5주) ▲35.6%(6월1주)를 유지하는 등 30%대서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기간 내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앞지른 사례도 있었다. 국회의장 선거 결과 등이 지지율에 소폭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지만 대체적으로 반사이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여론조사는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 의뢰로 지난 3일부터 7일까지(6일 공휴일 제외)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무선(97%)과 유선(3%) 자동응답 방식,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 걸기 방법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 2.7%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2.2%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리얼미터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물도 급하게 마시면 체하는 법인데 민주당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며 “여의도 밖에서 국민이 봤을 때 민주당의 독주라고 비춰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강성 지지층은 환호할지 몰라도 중도층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잘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여야 모두가 서로의 반사이익에만 기대 지지율 반등을 노리는 악순환이 문제”라고 조언했다.


집어든
방탄복

민주당은 이 대표 연임에 열쇠가 될 당헌·당규 규정안도 빠르게 처리했다. 최근 민주당은 제80조 부정부패 연루자에 대한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자동 정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일부 중진 의원의 ‘무리수’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표·최고위원의 사퇴 시한을 ‘대선 1년 전’으로 규정한 기존 당헌·당규 조항도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수정안도 최종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기어코 민주당이 ‘당 대표 사당화’에 정점을 찍었다”며 “이제는 공당의 헌법격인 당헌·당규까지 입맛대로 바꾸면서 이 대표의 독주체제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활주로가 깔릴 것만 같던 이 대표 연임론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사법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화영 전 경기평화부지사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온 데 이어 이 대표가 불구속 기소되면서 당에 비상이 걸렸다.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해석과 달리 민주당은 오히려 입법에 박차를 가했다. 이 대표 리스크와 연관 지을 수 있는 법안도 우후죽순 발의된 만큼 국민의힘에서는 ‘거대 야당의 방탄용 입법’이라고 다시 한번 소리 높였다.

지난 7일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신진우)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정치자금법위반, 외국환거래법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했다. 벌금 2억5000만원, 추징금 3억 원도 함께 선고했다.

재판부가 쌍방울의 대북송금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과 관련된 사례금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대북송금 여부를 이재명 당시 지사에게 보고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번 재판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힐 위기에 처하자 민주당은 지난 3일 발의한 대북송금 특검법으로 맞섰다. 특검을 통해 검찰의 사건조작 실체를 전 국민에게 명명백백히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검찰개혁 태스크포스(TF)’ 단장인 김용민 의원은 형법 개정안인 ‘수사기관 무고죄’ 신설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수사기관이 타인에게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무고행위에 가담할 시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화영 실형에 이재명 기소
비상 걸린 당, 법안만 줄줄

민주당은 법원을 대상으로 한 ‘법 왜곡죄’도 당론 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판사·검사가 법을 왜곡해 사건 당사자를 유리, 혹은 불리하게 만들면 처벌하는 내용이다. 만일 해당 법안이 입법되면 피의자가 재판에 불복해 판사를 고발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의원 개개인의 생각을 모두 알 수 없지만 표면적으로 (연임에)크게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면서도 “그동안 민주당이 각종 특검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나. 자승자박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검사 탄핵 카드도 제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사 과정 등에서 검찰의 위법행위가 밝혀질 경우 강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진욱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서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쓴다면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와 검사장의 탄핵소추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검사가 의도를 갖고 사건에 특정 프레임을 씌워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라며 “검사에게 책임을 묻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탄핵’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이재명 사법파괴 저지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구성했다. 위원장과 간사는 검사 출신인 국민의힘 유상범·주진우 의원이 각각 맡았다.

이날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입법부 파괴도 모자라 사법부도 파괴하려고 들고 일어나기에 우리가 전면 저지해야겠다는 생각에 특위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기소된 뒤 민주당이 각종 법안을 제시한 것을 두고는 “어떻게든 (사법 리스크를)피해 보려고 특검법도 발의하고 검사·판사 탄핵에 판사 선출제를 운운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도 이 대표의 방탄 국회가 될 것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앞서 보여준 민주당의 모든 행동이 ‘위기에 처한 이 대표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을 위한 것이라면 이해할만하다고도 비꽜다.

싸우다
끝날라

하지만 민주당은 야당이다. ‘국회 독식’ ‘국회 독주’라는 단어에 비교적 덜 타격을 받는 위치에 있다. 정부의 거부권이 계속된다면 민주당을 향한 비판도 그만큼 희석된다. ‘여당의 국회 독식’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여의도 곳곳서 울려 퍼지는 파열음이 국회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기 위한 ‘성장통’에 비유되기도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조금만 참고 기다려준다면 일하는 국회로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말한다. 그동안 민주당을 따라다니던 ‘180석 무용론’을 끊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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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단독] ‘구로발’ 국민의힘 당원 명부 유출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 특정 당의 당원 명부가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선, 지방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당 관계자의 업무용 노트북에 담겨있던 정보가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올림픽 육상 100m 경기를 생각해 보자. 8개 레인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선다. 이 선수들은 국내 선발전에서 1등을 차지했을 것이다. 국가대표로 뽑힌 선수는 올림픽에 출전해 예선을 치르고 결승에서 금메달을 다툰다. 0.01초 차이로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 경기에서 승자는 늘 단 1명뿐이다. 치열한 공천 경쟁 선거는 올림픽보다도 더 확고한 ‘승자 독식’ 구조다. 올림픽에선 2등에게 은메달, 3등에게 동메달이라도 주지만 선거에서 2등은 꼴찌와 같다. 당선자는 후보자에서 국회의원, 시·군·구의원, 구청장·군수, 시·도지사 등으로 신분 상승이 이뤄진다. 명예와 권력을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자리로 순식간에 올라가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 출마하려는 후보들은 당선 가능성이 큰 자리로 몰린다. 어떤 경기든 일단 출발선에 서야 경쟁을 할 수 있듯, 선거에서 공천은 본선으로 가기 위한 1차 관문이 된다. 자리는 하나, 후보는 여럿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최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은 자리를 돈으로 사려 했다는 내용으로, 관련자는 구속됐다. 최근 서울 구로구에서 일어난 당원 명부 유출 의혹도 공천 경쟁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의 업무용 노트북에서 수십개의 엑셀 파일이 발견됐는데 그중 일부가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였고 이름, 연락처, 거주지 등이 포함된 이 파일이 상대 당의 후보 경선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서울 구로을 지역구에서 거물급 인사가 후보로 맞붙었다. 구로을 지역은 서울에서 민주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곳이다. 17대(2004년)부터 지난 22대(2024년) 총선까지 20여년간 민주당이 이겼다. 민주당(당시 통합민주당)이 사상 최악의 패배를 당한 18대 총선에서도 구로을 지역은 넉넉하게 수성한 바 있다. 업무용 노트북에서 발견 이름·연락처·거주지 담겨 구로에서만 평생 살았다는 한 시민은 “선거 때마다 텃밭, 험지 이런 말을 많이 쓰지 않나. 구로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사지’다. 민주당이 아주 꽉 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총선 등에서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몇몇 인사들은 바닥부터 훑어가며 선거를 준비한다. 민주당은 21대 총선 때 구로을 지역 후보로 윤건영 의원을 전략공천 형태로 낙점했다.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정부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맡고 있었다. 현재까지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복심으로 불린다. 국민의힘은 서울 양천을 지역에서 내리 3선을 지낸 김용태 전 의원을 ‘자객’ 공천했다. 민주당의 독식으로 관심 지역에서 벗어나 있던 구로을이 순식간에 ‘격전지’로 떠올랐다. 문제는 구로을 지역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예비후보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민주당 조규영 전 서울시의원의 반발이 거셌다. 조 전 시의원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비례대표로 정치권에 입성, 이후 구로2선거구에서 서울시의원으로 재선했다. 조 전 시의원은 최소한 경선은 치를 수 있게 해달라며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비판했다. 당시 조 전 시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존 지역 당원 수보다 더 많은 권리당원을 모았다. 열심히 뛰었다. 누구와 경쟁하든 경선에서 이길 자신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과는 낙하산 공천이었다. 저는 특혜나 찬스를 원하지 않았다. 공정한 경선만을 바랐다. 낙하산 공천은 공정하지도 않고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어디에 사용했나 조 전 시의원은 노숙 단식까지 해가며 경선을 촉구했지만 결국 낙천했다. 이후 다른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았다. 잊히는 듯했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최근 다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업무용 노트북에서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표기된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발견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국민의힘 당원들의 이름과 연락처, 행정동 등이 기재된 엑셀 파일은 ‘(보안철저)저쪽디비’ 폴더에 담겨있었다. 해당 파일의 ‘구분’ 부분에 ‘조규영 일반 당원’이라고 표기돼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가 맞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에 민주당 구로을 국회의원 예비후보였던 조 전 시의원의 이름이 기재돼있다는 점에서 의심이 촉발됐다. 동시에 누가 노트북에 해당 파일을 옮겼는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서가 발견된 노트북은 2020년 총선 과정에서 당원협의회에 업무용으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만 사용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구로구의회에 입성한 A 구의원이 해당 노트북을 사용했다. A 구의원은 2022년 국민의힘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여성부장을 맡은 이력도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문제의 노트북은 A 구의원이 여성부장으로 활동할 무렵 사용했다가 후임자에게 넘겼다. 그는 “이후 여성부장이 바뀔 때까지 쭉 A 구의원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쉬쉬하다 이제서야 눈여겨볼 대목은 A 구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으로 비례대표 순번을 받아 당선됐지만, 2020년 총선 때까지만 해도 민주당 조 전 시의원을 보좌하는 수행비서 역할을 했다. 실제 조 전 시의원이 예비후보로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곳곳에서 A 구의원을 확인할 수 있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A 구의원은 조 전 시의원 낙천 이후 김용태 전 의원 배우자의 수행비서로 발탁됐다. 김 전 의원의 측근이 A 구의원을 추천한 것으로 안다”며 “2020년 총선에서 김 전 의원이 낙선하고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A 구의원이 비례대표로 공천받았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측 정치인을 수행했던 인사가 국민의힘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한 데 이어, 그가 직접 사용한 노트북에서 자신이 보좌했던 사람의 이름으로 파일명이 기재된 국민의힘 당원 명부가 발견된 셈이다. A 구의원이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 명부를 민주당 측에 유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대목이다.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A 구의원이 조 전 시의원을 수행할 당시 지역구 경선을 대비해 당원 명부를 입수한 게 아닌가 싶다”며 “당시 경선까지 진행되지 않았기에 당원 명부가 실제 사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문서를 가지고 있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아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 관계자는 “사실 이 문제는 올해 1월경에 처음 드러났다. A 구의원이 당원협의회에 노트북을 반납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해당 폴더가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쉬쉬’하다가 최근에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당협 회의에서 논의 A 구의원 “문제없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A 구의원의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지난 1월 국민의힘 구로구 당원협의회에서 논의됐다. 해당 의혹이 구로 지역에서 확산하자 A 구의원이 먼저 이 문제를 먼저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당원협의회 회의에 참석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 위원은 ‘덮고 가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문제가 불거지면 지방선거를 망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부 관계자가 “심각한 개인정보 유출” “해당 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조사를 요청했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관철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한 위원은 “선거를 치르다 보면 당원 명단이 일부 흘러 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렇게 명부가 통째로 유출되는 건 심각한 일”이라며 “명백한 해당 행위다. 자체 조사를 통해 징계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윤리위원회 규정 제20조(징계사유)에 따르면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를 했을 때 ▲현행 법령 및 당헌·당규·윤리 규칙을 위반해 당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 행위의 결과로 민심을 이탈케 했을 때 등의 사유로 징계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해당 관계자는 A 구의원의 행위가 당에 극히 유해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해당 행위? 징계 가능성? A 구의원은 해당 의혹은 전부 해명됐다는 입장이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협 회의에서 이 문제가 논의됐는데 문제없다고 결론 났다. (당원 명부 유출 의혹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의혹을 언급한 제보자에게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등으로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