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브레이크 풀린 민주당 막전막후

시동 걸자마자 거침없는 폭주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거대 의석수를 손에 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국회의장에 이어 상임위까지 싹쓸이했다. 국민의힘이 반격에 나섰지만 피켓과 목소리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민주당이다.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국민의힘 의원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 등 18개 상임위 중 11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선출했다. 이날 선출된 11명의 상임위원장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국회의장에 이어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까지 모두 야당서 배출한 사례는 헌정사상 처음이다.

시작부터
갈라지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운영위원장과 법사위원장에 각각 민주당 박찬대 의원과 정청래 의원이 선출됐다. 나머지 상임위 역시 모두 민주당 출신으로 ▲교육위원장 김영호 의원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장 최민희 의원 ▲행정안전위원장 신정훈 의원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전재수 의원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어기구 의원 ▲보건복지위원장 박주민 의원 ▲환경노동위원장 안호영 의원 ▲국토교통위원장 맹성규 의원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박정 의원이 선출됐다.

특히 법사위와 운영위는 주요 상임위로 여겨지는 만큼 당의 강경파 의원이 고삐를 쥐게 됐다. 윤석열정부를 겨냥한 특검법을 다루기 위해 국회의 허들은 낮춘 것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결정하자 국민의힘은 본회의장 앞 중앙홀에 모여 규탄 집회를 벌였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도 국회도 ‘이재명 1인 독재 체제’로 전락했다. 오늘 민주당도 죽었고, 국회도 죽었다”며 “이 대표는 여의도 대통령 놀음에 빠져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국민의힘은 의총서 우원식 국회의장에 대한 사퇴 촉구 결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의원은 저마다 피켓을 들고 “민주당의 국회 독식을 규탄한다”고 소리 높였다.

민주당은 이 모든 상황은 정부여당이 초래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지난 국회서 법사위원장은 국민의힘 몫이었다. 민주당이 민의를 받들어 발의한 법안은 법사위 문턱을 겨우 넘었을뿐더러 만일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남발해 휴지 조각이 됐다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에게 나머지 7개의 상임위원장을 수용할 것을 촉구했지만 이를 전면 거부했다.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나머지 단추도 마저 끼워야 22대 국회가 본 모습을 갖춘다”며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7개 상임위도 신속히 구성을 마칠 수 있게 이른 시일 내 본회의를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은 상임위를 받아들이는 대신 ‘투 트랙 전략’을 택하면서 보이콧을 선언했다. 상임위에 출석하는 대신 15개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꾸려 민생 현안을 챙기겠단 구상이다.

민주당은 상임위가 꾸려지자 곧바로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지난 12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법사위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열고 채 상병 특검법을 상정하는 등 법안 처리 절차에 돌입했다. 민주당 김승원 의원을 야당 간사로 선임하는 간사 선임안과 소위 구성안 등도 이날 가결했다.

국회의장에 상임위 11개도 ‘쓱싹’
사라진 협치…무리수 두는 속내는?

정 위원장은 불참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대한민국은 법치 국가지, 관례 국가가 아니다”라며 “법사위는 앞으로 회의를 예정된 시간 정시에 시작하겠다”고 자리로 돌아올 것을 촉구했다.


이날 처리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 21대 국회서 윤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폐기된 법안을 일부 수정한 것이다. 민주당이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1호 당론 법안으로 발의했다. 지난 특검법은 ‘수사외압 의혹’에 국한됐지만 새로 발의된 특검법은 추가로 밝혀진 외압 의혹과 더불어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수사·재판 과정 등이 수사 대상에 포함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안은 상임위에 회부된 뒤 약 20일간의 숙려기간을 거쳐 상정된다. 하지만 이날 야권 의원들은 의결을 통해 이를 생략한 뒤 하루 만에 상정했다. 민주당은 고 채 상병의 1주기인 7월 초까지 해당 특검법을 본회의에 통과시키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국민의힘은 채 상병 사망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면서도 이미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사안을 특검법으로 해결하는 건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 받아쳤다.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22대 국회 개원 첫날부터 민주당이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특검법을 발의하면서 특검 정국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자난달 31일 김 여사 관련 의혹을 한꺼번에 수사하는 이른바 ‘김건희 종합 특검법’을 발의했다. 이는 채 상병 특검법과 마찬가지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됐던 쌍특검법을 재정비해 발의한 것이다.

해당 법안은 기존에 다루고 있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에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비롯한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등이 추가됐다.

사흘 뒤인 지난 3일에는 ‘대북송금 사건 관련 검찰조작 특검법’이 발의됐다. 여권 측에서는 그동안 발의된 법안이 용산을 공격하는 용도였다면 이번에는 이 대표를 방어하기 위한 속셈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민주당 측은 검찰이 이 대표를 표적 수사할 목적으로 쌍방울그룹 주가조작 사건을 대북송금 사건으로 둔갑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해당 사건 수사를 받던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를 상대로한 ‘술자리 진술 조작 회유’ 의혹이 추가되면서 특별법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풀이된다.

검처럼
방패처럼

이날 민주당 정치검찰 사건 조작 특별대책단(이하 대책단)은 특검발의 후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잘못된 수사 방식에 대해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첫 사례”라고 규정했다. 대책단은 “검찰은 전혀 견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대한민국의 법과 질서를 유린하며 위법 수사와 진술 조작, 증거 날조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며 “정치검찰은 수사의 주체가 아니라 수사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표 사법 리스크를 방탄을 위한 특검법’이라는 지적에는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의 위법·범법 행위를 대상으로 한다”며 “방탄 특검으로 몰고 가는 건 비약을 넘어 상상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단독 상임위 개최에 이어 잇따라 발의되는 법안에 국민의힘은 ‘국회 폭거’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독주’ ‘독식’이라는 비판이 이어졌지만 민주당이 속도조절을 하지 않는 데에는 ‘총선 민심’이 뒷받침된다. 상임위 단독 의결이든, 특검법이든 “민주당을 뽑은 민의를 받든 결과”라는 한마디가 모든 걸 설명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총선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지 않은 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이 민주당에게 준 한 표는 정부여당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일 뿐, 국회를 독점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정당 지지도에 따르면 민주당은 선거를 치르기 직전인 44.6%(4월1주)에서 ▲37.0%(4월2주) ▲35.0%(4월3주) ▲35.1%(4월4주) ▲36.1%(5월1주) ▲40.6%(5월2주)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이후 5월3주차는 34.5%로 하락했다가 ▲33.9%(5월4주) ▲33.8%(5월5주) ▲35.6%(6월1주)를 유지하는 등 30%대서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기간 내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앞지른 사례도 있었다. 국회의장 선거 결과 등이 지지율에 소폭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지만 대체적으로 반사이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여론조사는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 의뢰로 지난 3일부터 7일까지(6일 공휴일 제외)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무선(97%)과 유선(3%) 자동응답 방식, 무작위 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 걸기 방법으로 실시됐으며 응답률 2.7%에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2.2%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리얼미터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물도 급하게 마시면 체하는 법인데 민주당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며 “여의도 밖에서 국민이 봤을 때 민주당의 독주라고 비춰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강성 지지층은 환호할지 몰라도 중도층이 어떻게 생각할지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잘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여야 모두가 서로의 반사이익에만 기대 지지율 반등을 노리는 악순환이 문제”라고 조언했다.


집어든
방탄복

민주당은 이 대표 연임에 열쇠가 될 당헌·당규 규정안도 빠르게 처리했다. 최근 민주당은 제80조 부정부패 연루자에 대한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자동 정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했다. 일부 중진 의원의 ‘무리수’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표·최고위원의 사퇴 시한을 ‘대선 1년 전’으로 규정한 기존 당헌·당규 조항도 ‘특별하고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당무위원회 의결로 달리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수정안도 최종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기어코 민주당이 ‘당 대표 사당화’에 정점을 찍었다”며 “이제는 공당의 헌법격인 당헌·당규까지 입맛대로 바꾸면서 이 대표의 독주체제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활주로가 깔릴 것만 같던 이 대표 연임론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대표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사법 리스크가 다시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화영 전 경기평화부지사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온 데 이어 이 대표가 불구속 기소되면서 당에 비상이 걸렸다.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란 해석과 달리 민주당은 오히려 입법에 박차를 가했다. 이 대표 리스크와 연관 지을 수 있는 법안도 우후죽순 발의된 만큼 국민의힘에서는 ‘거대 야당의 방탄용 입법’이라고 다시 한번 소리 높였다.

지난 7일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신진우)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정치자금법위반, 외국환거래법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했다. 벌금 2억5000만원, 추징금 3억 원도 함께 선고했다.

재판부가 쌍방울의 대북송금이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방북과 관련된 사례금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대북송금 여부를 이재명 당시 지사에게 보고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번 재판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 잡힐 위기에 처하자 민주당은 지난 3일 발의한 대북송금 특검법으로 맞섰다. 특검을 통해 검찰의 사건조작 실체를 전 국민에게 명명백백히 밝혀내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검찰개혁 태스크포스(TF)’ 단장인 김용민 의원은 형법 개정안인 ‘수사기관 무고죄’ 신설 법안을 발의했다. 이는 수사기관이 타인에게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무고행위에 가담할 시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화영 실형에 이재명 기소
비상 걸린 당, 법안만 줄줄

민주당은 법원을 대상으로 한 ‘법 왜곡죄’도 당론 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판사·검사가 법을 왜곡해 사건 당사자를 유리, 혹은 불리하게 만들면 처벌하는 내용이다. 만일 해당 법안이 입법되면 피의자가 재판에 불복해 판사를 고발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의원 개개인의 생각을 모두 알 수 없지만 표면적으로 (연임에)크게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면서도 “그동안 민주당이 각종 특검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나. 자승자박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검사 탄핵 카드도 제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사 과정 등에서 검찰의 위법행위가 밝혀질 경우 강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정진욱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서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쓴다면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와 검사장의 탄핵소추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검사가 의도를 갖고 사건에 특정 프레임을 씌워 결과를 만들어내려고 한다는 것이 우리의 문제의식”이라며 “검사에게 책임을 묻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탄핵’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지난 13일 ‘이재명 사법파괴 저지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구성했다. 위원장과 간사는 검사 출신인 국민의힘 유상범·주진우 의원이 각각 맡았다.

이날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입법부 파괴도 모자라 사법부도 파괴하려고 들고 일어나기에 우리가 전면 저지해야겠다는 생각에 특위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기소된 뒤 민주당이 각종 법안을 제시한 것을 두고는 “어떻게든 (사법 리스크를)피해 보려고 특검법도 발의하고 검사·판사 탄핵에 판사 선출제를 운운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21대 국회에 이어 22대 국회도 이 대표의 방탄 국회가 될 것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앞서 보여준 민주당의 모든 행동이 ‘위기에 처한 이 대표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을 위한 것이라면 이해할만하다고도 비꽜다.

싸우다
끝날라

하지만 민주당은 야당이다. ‘국회 독식’ ‘국회 독주’라는 단어에 비교적 덜 타격을 받는 위치에 있다. 정부의 거부권이 계속된다면 민주당을 향한 비판도 그만큼 희석된다. ‘여당의 국회 독식’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여의도 곳곳서 울려 퍼지는 파열음이 국회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기 위한 ‘성장통’에 비유되기도 한다. 민주당 의원들은 “조금만 참고 기다려준다면 일하는 국회로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말한다. 그동안 민주당을 따라다니던 ‘180석 무용론’을 끊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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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