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읽기 들어간 이재명 운명

윤보다 먼저…피 말리는 데스위크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선고기일이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여의도발 지라시만 난무하는 가운데 헌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제 정국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맞물려 걷잡을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야말로 ‘피 말리는 3월’ 마지막 주에 이 대표의 운명이 달렸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지난 21일에 이어 선고의 분수령이었던 지난 19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일을 발표하지 않으면서 예상보다 기일 발표가 늦춰지고 있다. 헌재는 지난달 25일 변론종결 후 거의 매일 평의를 열고 사건을 심리하고 있지만, 어째서인지 좀처럼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굳게 닫힌
헌재의 입

국민의 모든 시선이 헌재에 쏠리면서 여야 정치인들은 아전인수식 해석을 내놓고 있다. ‘탄핵 인용’과 ‘탄핵 각하’ 집회도 각각 힘을 받아 목소리를 키우는 형국이다. 특히 국민의힘은 선고가 늦춰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탄핵 인용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의 절반에 달하는 의원들은 지난 11일부터 헌재 앞에서 탄핵 심판 각하를 요구하는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말이었던 지난 15일 열린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에도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집회에는 나경원·강명구·구자근·장동혁·윤상현 의원 등이 윤 대통령 탄핵소추 각하를 외쳤다.

이날 나 의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9년 대만을 방문했을 때 ‘대한민국이 자유의 방파제’라고 했다”며 “자유의 파도를 더 거세게 만들어보자. 그 시작은 윤 대통령이 탄핵 무효·각하로 직무 복귀하는 그날”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윤 의원은 “우리는 7∼8년 전 우리의 박근혜 전 대통령을 어리석게 탄핵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며 “두 번 다시 이런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 탄핵을 반드시 각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탄핵 반대 측은 탄핵 ‘기각’에서 ‘각하’로 문구를 바꾸기도 했다. 당초 이들은 비상계엄은 내란죄에 해당할 만큼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이 아닌 만큼 탄핵 심판 절차를 거쳐 청구인 측 패소로 판결해야 한다는 기각 여론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석방된 이후 극우 세력이 강하게 결집하고 스피커를 키우면서 국회의 탄핵소추 의결 절차가 위법이었기 때문에 심판이 불성립한다는 ‘각하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여러 가지 절차적 위반과 합쳐진다고 하면 각하 가능성이 종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고 밝혔다.

탄핵 정국 초기 ‘탄핵 찬성파’로 분류됐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고가 늦어지는 것은 이상징후다. 각하나 기각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라고 힘을 실었다. ‘탄핵 찬성파 아니냐’는 질문에는 “오해”라며 “탄핵소추를 하되 당론으로 하는 말이었다. 이를 탄핵 찬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행진, 삭발, 단식 총동원했는데…
안갯속 헌재 점점 힘 빠지는 야

민주당은 거리로 나가 맞불을 놨다. 이들은 윤 대통령이 석방된 다음날인 지난 12일 “윤 대통령의 석방이 헌법재판소서의 탄핵 기각은 아니다”라며 여당의 들뜬 분위기를 누르면서 헌재의 조속한 선고를 촉구했다. 최근에는 국회서 광화문까지 걷는 ‘윤석열 파면 촉구 도보 행진’을 비롯해 단식농성, 삭발 등으로 헌재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20일, 헌법재판소의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기일이 길어지는 것에 대해 “이번 주를 넘기면 국민의 원망이 헌재로 간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KBS라디오 <전격시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면서 ‘선고가 늦어지면서 여당 내에서 각하 결정이 나올 것’이라는 주장에 “헌재가 심리를 11번을 했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각'을 넘어 각하를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정치적 공세”라며 “자기들 세력을 묶고 단결하려 하는 일종의 공작 발언”이라고 비판하면서 “각하도 있을 수 없고 기각도 있을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기자 간담회를 통해 “지난해 12월3일 있었던 친위 쿠데타의 위헌·위법적 행위는 분명하고, 우리는 당연히 탄핵 인용을 확신한다”며 “지금 헌법재판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 나오는 것은 다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다.

예상 날짜보다 심판 선고기일이 2주가량 늦어지면서 민주당에서는 플랜 B를 모색하고 있다.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재조준하면서 흩어진 광장 민심을 다시 끌고 오는 데 집중했다.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김건희 여사 의혹 상설특검안’과 ‘마약수사 외압 의혹 상설특검안’을 야당 주도로 의결했다.

김 여사 의혹 상설특검안은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주가조작 ▲명품가방 수수 ▲임성근 전 해병대 제1사단장 구명 로비 ▲대통령 집무실 이전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 등을 담고 있다.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상설특검안은 경찰이 마약 밀반입을 도운 혐의로 세관 직원들을 수사하려 하자 대통령실이 나서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골자로 한다. 두 안건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야당 단독으로 소위를 통과했고, 이튿날인 20일 역시나 야당의 주도로 본회의 문턱을 넘었다.

코너 몰린 야
꺼낸 카드는?

한동안 접어뒀던 최상목 탄핵 카드도 다시 꺼내면서 민주당은 윤석열-최상목 투트랙 압박에 나섰다.

이 대표는 서울 광화문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를 임명하지 않은 것을 두고 ‘직무유기 현행범’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든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으니 몸조심하라”라는 경고성 메시지를 냈다.

여권에선 즉각 반발이 터져나왔지만 민주당은 “과격한 표현”이라면서도 국민의 분노를 대신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최 대행을 겨냥한 압박 수위를 단숨에 높였다. 이날 오후 민주당은 심야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최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 추진을 당 지도부에 위임하기로 했고, 이튿날인 20일 탄핵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다만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소추 이후 지지율이 소폭 하락한 데 이어 최근 최재해 감사원장·검사 3인 탄핵안이 줄줄이 기각된 만큼 민주당이 짊어질 부담이 적지만은 않다.

한 민주당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지금은 탄핵 심판에 집중해야 할 때인데 추가 탄핵안을 발의하면 한곳에 모여야 할 에너지가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다”며 “힘의 분배가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만큼 지도부서도 고심이 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또 다른 민주당 의원은 “단일대오를 형성해 최 대행과 심우정 검찰총장을 모두 내려야 한다”며 “물론 역풍이라는 이야기도 나오지만 최 대행의 거부권 남발은 도가 지나쳤다”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몸조심하라” 발언을 화제 삼으며 연일 맹공에 나섰다. 민주당이 현 상황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고 무리수를 뒀다는 주장을 선두로 “탄핵 각하의 명백한 증거”라고 해석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이 대표의 발언을 언급하며 “이재명 대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각하를 돕는 X맨(?)” 이라는 글을 작성했다. 윤 의원은 “대한민국 제1야당 대표의 발언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이 대표의 정치생명이 저물고 있다”고 주장했다.

운명 가를
단 하루


이어 “이 대표가 정부의 수장을 얼마나 경시하고 억압하고 있는지 그 실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헌법재판관들도 이 대표의 실체를 똑똑히 봤을 것”이라며 “12·3 비상계엄은 국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필요한 조치였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이유로 이 대표의 협박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각하와 기각의 정당성을 더욱 높여 줬다고 할 수 있다”며 “이 대표에게 고마운 부분”이라고 비꼬았다.

민주당이 마 후보자의 추가 임명을 재차 촉구하는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헌재가 윤 대통령 선고일을 좀처럼 잡지 못하는 것과 민주당이 최 권한대행의 탄핵을 언급하는 것을 두고 “탄핵 각하·기각 의견인 재판관이 적어도 3명 이상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탄핵 인용 가능성이 적어지니 진보 성향을 띠는 마 후보를 넣어서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의힘은 “탄핵 각하”를 외치면서도 이와 관계없이 윤 대통령의 선고기일이 늦춰지는 것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 차기 대권주자 1위를 달리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선고일이 오는 26일로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 대표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에선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으로 피선거권 박탈형이 선고됐다. 만일 2심과 대법원 판결서 동일한 형이 확정될 경우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고 하더라도 이 대표는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이 대표를 앞세워 조기 대선을 준비했던 민주당에 있어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론은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 이후에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표의 2심 선고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보다 빨리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간 우려됐던 것은 헌재서 대통령 탄핵 심판 결론을 내린 후 법원이 이 대표와 민주당 권력의 눈치를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정상적 재판 운영이 전제된다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이 대표의 선고와 같거나 늦어질 전망이니 법원은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따라 외부 압력 없이 공정한 판결을 내릴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24일 한, 26일 이, 28일 윤?
꼬인 선고 4월로 미뤄질까

조기 대선 출사표를 던진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 역시 “헌재가 통상 금요일에 탄핵 심판을 선고한 것을 고려하면 이달 21일 또는 28일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28일이 더 가능성이 높다”며 “국민 갈등이 심각한 상황서 사회적 안정을 고려한다면 헌재가 26일 예정된 이 대표의 2심 판결 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만일 이 대표의 2심서 1심과 마찬가지로 피선거권 박탈형이 선고된다면 이를 기점으로 여권은 물론 비명(비 이재명)계 대권 잠룡까지 이 대표를 사정없이 흔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진행 중인 5개 재판 결과가 다 나온 다음 무죄를 다 받으면 그때 출마하라”고 직격했다.

안 의원은 SBS 유튜브 ‘정치컨설팅 스토브리그’에 출연해 “(이 대표가)오는 26일 공직선거법 2심 선고를 받는다. 만약 그때 선거법 위반이 나오면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인 이번 대선에 출마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 의원은 “선거제도라는 게 무엇인가. 유권자들이 여러 후보자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다 취합해 그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그 후보자 중 한 분이 대법원 판결이 유죄가 나올지 무죄가 나올지 모르는 상태서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장기전에 대비해 완급 조절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거대 야당으로서 각종 탄핵 카드를 쥐고 있지만 혼란스러운 탄핵 정국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며 양쪽 균형을 적절하게 맞추는 전략을 택하겠단 것이다.

일각에서는 4월18일 문형배·마은혁 헌재 재판관의 임기 종료 직전 탄핵 심판 결과를 선고하고 헌재가 문을 닫아버린다는 ‘3말4초 판결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헌재가 결정문 작성을 신중히 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헌법재판관 임명으로 선고가 길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4월까지
질질∼?

또 다른 일각에선 24일, 한덕수 총리에 대한 탄핵 심판 결과가 선고된 만큼 윤 대통령의 선고도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선고 발표가 길어질수록 굉장한 혼란이 예상되기 때문에 빠른 결정을 내리는 게 국가를 위한 도움”이라며 “24일 한 총리 선고에 이어 26일 이 대표 선고, 그리고 같은 주에 윤 대통령 선고까지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친기업 광폭 행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나 “삼성이 잘 돼야 투자가 잘 된다”고 격려의 말을 건넸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친기업적 행보를 부각시키며 대권주자로서의 면모를 다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20일 이 대표는 ‘삼성 청년 SW 아카데미(SSFY)’에서 열린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긴 한데 결국 우리 역량으로 잘 이겨낼 것”이라며 “모두를 위한 삼성이 될 수 있고, 경제 성장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역할을 잘해주시라”고 당부했다.

이에 이 회장은 “바쁜 와중에 이 대표님과 민주당 의원님들 삼성을 방문해주셔서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이어 “SSFY는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인 청년 미래를 위해서 단순한 사회 공헌을 떠나서 미래에 투자한다는 목표로 지금까지 끌고 왔다”며 “대한민국 AI(인공지능)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이 정말 감사하게 여기고, 기를 많이 받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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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