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 이재명 SNS 이중 플레이

고비마다 발목을 잡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쏟은 물과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언제나 말조심하라는 뜻이다. SNS가 발달하고부터는 ‘잊혀질 권리’가 사라진 수준이다. 특히 정치인의 말과 글은 무게감이 남달라서 오랜 시간 떠돈다.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족쇄가 돼 발목을 단단히 붙잡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 부닥쳤다. 대선 경선 때 처음 불거진 사법 리스크가 눈덩이처럼 커졌다. 윤석열정부 들어 전열을 재정비한 검찰은 이 대표를 수사하는 데 공력을 쏟아붓고 있다. 당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불붙은 주도권 경쟁서 이 대표는 비명(비 이재명)계의 눈치도 봐야 한다.

사면초가
출구 없다

여기에 정치권이 중시하는 명절 ‘밥상머리 이야기’ 주제로 관심이 옮겨갈 위기에 봉착했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또다시 체포동의안 표결이 도마 위에 오를 예정이다. 정치권의 표결에 따라 가결되든 부결되든 이야기는 좋은 방향으로 흐를 수 없다.

민주당 역시 자연스럽게 이 대표와 얽힌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두고 민주당이 오랜 시간 골머리를 썩는 이유다. 

국민 여론이 싸늘한 것도 부담이다. 2주 넘게 단식을 이어왔지만 실제 곡기를 끊은 건지를 두고 의심의 눈초리가 많다(18일 오전, 그는 건강 악화로 병원에 이송됐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등을 문제삼아 단식을 시작했지만 지난달 말, 횟집서 민주당 의원들과 회를 먹은 사실이 드러나 명분도 약해졌다.


단식 농성 전날이자 오염수 방류 일주일째 되던 때였다. 

문제는 출구전략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단식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대의명분을 내세운다는 의미가 있는 만큼, 이른바 저항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일정 기간 단식이 이어지면 상대가 먼저 중단을 권유하고 협의를 진행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단식에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더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 대표의 과거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을 지내면서 SNS에 올린 글이 이 대표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SNS 게시글이 부메랑으로 작용하면서 ‘조만대장경’이라는 조롱 섞인 별명을 얻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빗대기도 한다. 

조 전 장관의 SNS 게시글은 ‘조국의 주장은 조국으로 반박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누리꾼은 물론 언론서 활발하게 인용됐다. 역으로 말하면 SNS 게시글의 생명력이 그만큼 끈질기다는 뜻이다. 불과 몇 초 사이에 게시글을 지워도 누군가는 캡처한 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유포한다. 이후 손쓸 새도 없이 퍼져나간다.

사법 리스크 커지면서
과거 SNS 글 소환돼

특히 정치인의 경우 언론에 ‘박제’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정치인이 사용하는 수사는 여러 해석을 낳기 때문에 파괴력이 크다. 게시글을 올리면 올리는 대로, 지우면 지우는 대로 화제가 된다. 이 대표는 SNS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성남시장 시절부터 정책 홍보 등에 SNS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최근 이 대표를 가장 괴롭히고 있는 문제는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사건이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2019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요청으로 경기도가 냈어야 할 북한 스마트팜 조성 지원 사업비 500만달러를 비롯해 당시 북측이 요구한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 300만달러 등 총 800만달러를 북한에 보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지난달 이 대표를 ‘제3자 뇌물죄’ 피의자로 전환해 조사를 진행했다. 검찰이 주력하는 지점은 이 대표가 이 전 부지사의 행보를 알았는지다. 이 전 부지사는 재판 과정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전 부지사의 입에 이 대표의 운명이 달린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이 대표는 이 전 부지사에게 ‘책임 떠넘기기’ 모드로 나섰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9일 이 대표를 조사하는 과정서 경기도가 북한에 쌀 10만톤을 추가 지원하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제시했다. 검찰이 보여준 공문은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대표가 결재한 서류였다. 

올리면
퍼진다

이 대표는 “참 황당하다. 이화영이 나도 모르게 도지사 직인이 찍힌 서류를 만든 것이고 서류를 가져오니 결재한 것일 뿐”이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알려졌다. 이 전 부지사가 도지사의 승인 없이 사기업을 동원해 대북사업을 독단적으로 진행했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풀이된다. 자신이 ‘결재는 했지만 내용은 몰랐다’는 것이다.

이 대표의 변호인은 이 대표의 답변을 운전면허증 발급에 비유했다. 박균택 변호사는 “운전면허증에 경찰청장 직인이 찍혔다고 해서 경찰청장이 발급해줬다는 것이냐?”는 뉘앙스로 말했다. 이어 “아랫사람들에게 위임했고 전결권에 따라 서명하면 관인은 저절로 찍히는 건데, 관인이 찍혔다고 해서 도지사가 결재했다는 의미는 아니죠”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알았으면 공범, 모르면 무능’이라면서 이 대표가 공범보다는 무능 쪽을 택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가 과거 SNS 올린 글이 드러나면서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조롱이 나왔다. 성남시장 시절인 2017년 100만원의 예산 집행도 자신의 결재 없이는 안 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 

당시 이 대표는 “성남시는 보도블록 교체 시 재활용을 원칙으로 단돈 백만원이 들어가는 예산 집행도 시장 결재 없이는 하지 못합니다”라면서 연말에 보도블록을 재정비하는 지자체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올렸다. 대북사업은 보도블록 교체 사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도정’이다.

홍보·족쇄
양날의 검

2018년 10월2일에는 대북사업 관련 게시글도 올렸다. 이날 올린 SNS 게시글에는 이 대표와 이 전 부지사가 함께 등장한다. 당시 이 대표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남북교류 협력사업부터 시작하겠다”며 이 전 부지사의 방북 가능성을 언급한 기사를 공유했다.

같은 달 25일에도 “이화영 평화부지사님 수고하셨습니다. 평화와 경제 번영을 이뤄나가는 길에 경기도가 함께 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기사를 올렸다. 최근 검찰서 한 진술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대선 사흘 전 공개된 김만배씨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의 허위 인터뷰 의혹과 관련해서도 이 대표 연루설이 솔솔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뉴스타파>의 최초 보도 이후 <경향신문>이 기사를 받아쓰기 전, 먼저 SNS에 공유하면서 “널리 알려주십시오. 적반하장 후안무치의 이 생생한 현실을. 우리가 언론입니다”라고 적었다.

해당 인터뷰는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이 확대되던 시점인 2021년 9월15일에 진행됐다. 2011년 부산저축은행 수사 당시 윤석열 대통령(당시 검사)이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천화동인 6호 실소유주)에게 커피를 타주고 수사를 무마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은 해당 내용을 배경으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을 공격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과정서 조씨가 윤 대통령을 모른다고 답하고 남욱 변호사가 진술을 바꾼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허위 인터뷰 의혹’으로 비화했다. 이 대표의 SNS 게재 시점을 두고 여권에서는 ‘사전교감설’을 제기하는 등 맹공을 퍼붓고 있다. 

대북송금 의혹 ‘발뺌’
‘혜경궁 김씨’ 논란도

앞서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성남시-희망살림-네이버-성남FC가 맺은 4자 간 협약서를 공개한 것도 이 대표다. 이 대표는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네이버의 성남FC 우회 지원을 지적하자 SNS에 협약서를 올렸다. 네이버가 희망살림에 40억원을 후원금 명목으로 지원하고, 희망살림이 이 중 39억원을 광고비 명목으로 성남FC에 낸다는 내용이다. 

4자 간 협약서를 근거로 다양한 논란이 불거졌다. 성남의 한 시민단체가 4자 간 협약에 참석한 이들의 대표성 논란 등을 제기했고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김상헌 당시 네이버 대표, 민주당 제윤경 전 의원 등을 고발했다. 4자 간 협약에 포함된 희망살림을 둘러싼 의혹도 증폭됐다.

희망살림이 진행하던 빚 탕감 프로젝트는 이 대표가 강하게 밀어붙였던 정책이었다.

이 대표를 둘러싼 SNS 논란은 앞서 경기도지사 선거 때도 제기됐다. 당시 논란은 대선서도 다시 언급될 만큼 파급력이 컸다. 2018년 지방선거서 닉네임 ‘정의를 위하여’ 주소 ‘@08_hkkim’ 계정을 운영하는 ‘혜경궁 김씨’가 이 대표의 배우자 김혜경씨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것. 


혜경궁 김씨는 성남시장 재직 시절부터 이 대표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반면, 다른 정치인은 비난하고 모욕하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과 경찰의 수사까지 진행됐지만 불기소 처분된 바 있다. 국민의힘은 2021년 혜경궁 김씨가 김씨라는 주장을 펼치면서 수사를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펼쳤다.

최근에는 이 대표가 대선 기간에 올린 SNS 글을 삭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에 “어느 날 갑자기 이재명 대표의 페북(페이스북)글이 사라졌다”라며 “대통령선거 기간인 2022년 1월26일부터 3월8일 사이 포스팅한 글들을 왜 지워 버렸는지 궁금하다. 숨기고자 한 글은 무엇일까요”라고 적었다. 

글 삭제
증거인멸?

김만배-신학림 인터뷰 기사 링크를 올린 게시글도 사라졌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의 게시글을 삭제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왔다. 이 대표 측은 언론 인터뷰서 “게시글에 대해 이뤄진 조치는 없다. 이제 와 그 내용을 비공개하거나 삭제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을 일축한 상태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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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국미술사학회 표절 방관 의혹

[단독] 한국미술사학회 표절 방관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맞잡은 손은 접착제를 붙여놓은 듯 떨어질 줄 몰랐다. 뭔지 모를 것을 지키기 위해 둥글게 둘러선 채였다. 썩고 있는 고인 물에 누군가 돌을 던졌다. 물 튀는 소리를 감추려 잡은 손에 힘을 주고 몸을 웅크렸다. 곧이어 수면이 잠잠해졌다. 물은 다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한국미술사학회는 한국과 관계지역의 미술사 연구를 위해 1989년 9월18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소관 비영리 사단법인이다. 1960년 8월15일 고미술품 애호가였던 전형필·최순우·진홍섭·황수영·김원룡 선생이 모여 만든 고고미술동인회가 전신이다. 2020년 60주년에 이어 올해 창립 63주년을 맞았다. 창립 63년 미술사 연구 최근 한국미술사학회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창립 이래 처음으로 회원 간 논문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는 최근 표절 제보 건에 최종 심의 결과와 제재 조치를 내놨다. 제보자가 문제를 제기한 지 9개월 만이다. 이 과정서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응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모 교수는 2012년 영국 소아스 런던대학교서 ‘Sabangbul during the Chos˘on dynasty: regional development of Buddhist images and rituals 조선시대의 사방불: 불교 이미지와 의례의 지역적 발전’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같은 해 박사학위 논문의 챕터 4~5장을 정리해 한국미술사학회에 발표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발표 당시 상당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지난해 11월경 박사학위 논문을 책으로 제작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검색하던 중 같은 주제의 논문을 보게 됐다. 김 교수의 20년 지기인 재미교포 박모 박사가 <미술사학연구>에 발표한 ‘Picturing the Divine Agents of Food Bestowal: The Seven Buddhas in the Sweet-Dew Painting of the Chos˘on Period, 1392-1910’ 학술논문이다. <미술사학연구>는 한국미술사학회서 발행하는 학술지다. 박 박사의 학술논문은 2020년 <미술사학연구> 307호에 실렸다. 박 박사는 학술논문에 관해 2018년 서울대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표한 ‘Shaping the Economy of Salvation: The Gamno Paintings of the Joseon Period(1392-1910)’의 챕터 4장을 일부 수정하고 확장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박사가 한국미술사학회에 투고한 학술논문은 ‘올해의 논문상’을 수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의 논문상은 <미술사학연구>에 게재된 신진 학자의 직전 해 논문 중 선정된다. 심사위원 3명의 동료평가(Peer Review)를 거쳐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하고 이사회 논의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하는 구조다. 김 교수는 박 박사의 학술논문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중 4장(The Esoterization of Sabangbul: The Five Tathagatas and the Sisik Rite in Kamno-t’aeng, 사방불의 밀교화: 감로탱에서의 오여래와 시식의례)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주제와 핵심 내용이 동일하다는 설명이다. 학술논문뿐만 아니라 박사학위 논문에도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창립 이후 첫 표절 시비 휘말려 9개월 만에 결론 ‘경미한 정도’ 김 교수는 “제 논문과 같은 내용을 유사 단어로 대체하고 문장과 구조를 바꿔 문단 사이에 삽입하는 등 표절에 걸리지 않도록 정교하게 작업한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와의 친분이 동료 이상이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배우자와 함께 만나고 같이 외국 여행을 가는 등 15년 이상 교류한 사이였다는 것이다. 특히 박 박사가 소아스 런던대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서 박사학위 논문을 쓸 무렵인 2016~2018년에는 이전보다 훨씬 자주 교류했다고 덧붙였다. 대화 내용은 감로탱, 밀교, 의례집 등 두 사람의 논문 주제였다. 하지만 2018년 6월 박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이 심사를 통과한 이후 거짓말처럼 연락이 끊겼다. 이후 박 박사는 김 교수의 전화에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교수는 “당시에는 박 박사가 내 논문을 표절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수년간 아낌없이 도움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이용한 뒤 모른 척 한다고 생각해 마음이 상한 정도였다. 그래서 나도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다 김 교수가 박 박사의 논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김 교수는 지난해 12월12일 한국미술사학회에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박 박사가 자신의 논문과 동일한 주제, 소재, 방법론을 따르면서 주석이나 참고문헌 등에 인용 표기를 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어 ▲핵심 단어를 유사 단어로 대체 ▲같은 내용을 다른 문장으로 표현(패러프레이징) ▲단락의 순서를 바꾸거나 중간에 다른 내용 끼워넣기 등의 방식으로 표절 검사를 피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박 박사의 표절 행태는 대학과 학계를 상대로 한 고의적이면서 전면적인 사기 행위로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국미술사학회의 대응이다. 한국미술사학회는 연구윤리위원회를 꾸려 김 교수의 박사논문과 박 박사의 학술논문을 두고 심의를 진행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표절 제보 건에 대한 연구윤리위원회 심의 결과’에 따르면 “(박 박사의 학술논문이)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규정에 의거 제5조(연구부정행위의 범위) ‘사’항에 해당할 수 있으나 ‘경미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제 제기 전 알 수 있었다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규정 제5조 사항은 ‘그밖에 각 학문분야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 등으로 정한다’는 내용이다. 그 정도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게 연구윤리위원회의 판단이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제5조 다항에 명시하고 있는 ‘표절’ 대신 이른바 ‘기타’에 해당하는 조항을 적용한 셈이다. 제5조 다항은 표절을 ‘타인의 아이디어, 연구 내용·결과, 분석된 데이터 등을 정당한 승인 또는 정확한 출처 표시 없이 도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거나 이미 출판된 내용을 자신의 다른 논문에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연구윤리위원회 심의 결과를 보면 ‘두 논문의 소재 및 주제 간의 유관성은 존재함이 인정되나’ ‘기존 논문(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각주 및 인용의 미비는 확인됨’ ‘인용이 충분치 못했음이 인정됨’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제5조 다항서 정의하는 표절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일반적’ ‘보편적’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학계의 일반적 허용 범위를 벗어나거나 도용을 의심케 할 수위의 유사성이 존재하는 것으로 판단되지 않음’이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박 박사가 학술논문에 활용한 문헌이나 분석 방법 등이 미술사학계 연구서 흔하게 사용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실제 김 교수와 박 박사의 논문을 두고 비교한 외국의 한 교수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놨다. 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을 심사한 이정희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서면 인터뷰서 “2020년 출간된 관련자(박 박사)의 학술논문은 표절 의혹 제기자(김 교수)의 논문 챕터 4와 그 주제, 소재, 결론이 아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표절 아닌 기타 적용 이어 “문제는 이 논고와 연관성 있는 제기자의 논문이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았고 인용 표기도 없고 참고문헌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학술논문서 가장 중요한 ‘독자적 연구는 무엇인가’에 대해 박 박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학계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는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이라며 “심의 결과만 놓고 보면 소재, 주제가 같고 전개 방식과 흐름이 같으며 결론도 같은데 어떠한 인용 표시도 없는 것이 한국학계에 통용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재심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연구윤리위원회는 김 교수의 요청을 기각했다. 연구윤리위원회는 심의 결과가 나온 5월 이후 박 박사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가 지난 1일에야 연구윤리규정 제12조(판정 및 제제조치) 나항 3호를 적용한다고 밝혔다. ‘본회 홈페이지와 학술지에 해당 사실과 조치를 게시’한다는 내용이다. 올해의 논문상에 대한 조치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박 박사의 지도교수를 비롯해 동료평가를 진행한 심사위원, 전·현직 이사회의 책임론이 거론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사학계 관계자는 “김 교수의 논문이 10년 전에 나왔고 지도교수나 심사위원, 이사회서 몰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학술논문이)표절 시비에 휘말린 이상 도의적인 책임까지 피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국미술사학회가 일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연구윤리위원회 구성을 두고 뒷말이 나오는 중이다. 위원회 구성은 물론 위원장 호선에 이르기까지 ‘깜깜이’로 이뤄졌기 때문. 현재 한국미술사학회 학회장을 맡고 있는 장모 교수는 물론 이사진은 연구윤리위원회에 대해 약속이나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일반적으로 연구윤리규정에는 ‘기피·제척·회피’ 조항이 포함된다. 제보자나 피조사자가 연구윤리위원에게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울 때 기피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제보자 혹은 피조사자와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에도 심의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미술사학회 연구윤리위원회 구성 과정에서는 이 같은 절차가 없었다. 아무도 모르는 윤리위원장 “규정에 없어 공개 안 했다” 김 교수는 연구윤리위원을 알려 달라고 한국미술사학회에 요청했지만 “알아서 잘 구성했다”는 장 회장의 말만 들어야 했다. 실제 장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도 “학연, 지연 등을 전부 배제하고 위원을 선별했다”면서 “연구윤리규정에 연구윤리위원을 공개한다는 내용이 없어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윤리위원들은)연구윤리위원을 맡았다는 것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위원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한국미술사학회 관계자 일부는 이른바 ‘보안각서’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연구윤리위원장은 완전히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복수의 한국미술사학회 관계자가 언급한 인사는 극구 “아니다“라면서 “학회에 물어보라”고 말했다. 한국미술사학회 학회장을 역임했고 문화재청 유관단체서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해당 인사는 “오랫동안 학회 활동을 하지 않았다”며 “박 박사를 알지 못하고 본 적도 없다”고 답변했다. 한국미술사학회는 ▲박 박사의 올해의 논문상 수상 경위 ▲연구윤리위원회 구성 및 심의 결과가 나온 과정 등을 담은 <일요시사>의 서면 질의에 “학회도 사안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규정에 명시된 바와 같이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심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위원회의 자율성과 권한을 최대한 보장했다”고 답변을 전해왔다. 김 교수는 올해의 논문상 수상 취소, 한국미술사학회 정회원에게 전달되는 소식지에 박 박사의 연구윤리 위반 내용 기재 등의 조치를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미술사학회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솜방망이’ 조치를 취한 이상 서울대를 비롯해 외부 편집위원, 해외 미술학계 등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김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는 이번 사건에 굉장히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의 지도교수는 박 박사의 박사학위 논문 지도교수인 서울대 이모 교수에게 편지를 보내 “침묵을 깨라”고 일갈했다. 또, 장 회장에게도 편지를 보내 한국미술사학회 차원에서 공정한 결론을 내려달라고 요구했다. 미술사학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미술사를 공부할 당시 해외 논문을 그대로 베낀 국내 논문을 본 적이 있다”며 “내용을 공유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외국은 난리 국내만 조용 실제 장 회장은 <일요시사>와의 두 차례 통화서 “다른 데(학회)도 이런 문제가 많은데 왜 우리 학회만 취재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이게 기사 쓸 거리가 되나요?”라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한국미술사학회 정회원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학회와는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자신은 한국미술사학회와 어떤 고리도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뒤 학회장이 찾아왔을 때도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다. “표절은 있지만 표절 시비는 없었던”(미술사학계 관계자) 한국미술사학회는 이제야 연구윤리규정을 뒤적이면서 해석을 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63년 만이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