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푸는 민주당 조기 대선 로드맵

시동 거는 대선 열차…승객은 1명?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변론기일이 종료됐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 승부수로 개헌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성도, 뉘우침도 없는 최후 변론이 오히려 탄핵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지난달 25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변론이 종결됐다. 이날 윤 대통령은 최후진술을 통해 “이번 비상 계엄은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용”이라고 주장하며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에 나서겠다는 의지까지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마지막까지 거짓말과 궤변”이라며 거센 비판을 쏟아냈다.

제 발에
넘어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헌법재판소서 열린 11차 변론서 최후진술을 통해 탄핵 기각을 전제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제가 직무에 복귀하게 된다면 먼저 ‘87 체제’를 우리 몸에 맞추고 미래 세대에게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며 “국민의 뜻을 모아 조속히 개헌을 추진해 우리 사회 변화에 잘 맞는 헌법과 정치구조를 탄생시키는 데 신명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통합은 헌법과 헌법 가치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개헌과 정치개혁이 올바르게 추진되면 그 과정서 갈라지고 분열된 국민들이 통합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그렇게 되면 현행 헌법상 잔여 임기에 연연해할 이유가 없고 오히려 제게는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책임총리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국정 업무에 대해서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을 감안해 대통령은 대외 관계에 치중하고 국내 문제는 총리에게 권한을 대폭 넘길 생각”이라며 “글로벌 중추 외교 기조로 역대 가장 강력한 한미동맹을 구축하고 한·미·일 협력을 이끌어냈던 경험으로 대외 관계서 국익을 지키는 일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야당을 비판하는 데 마지막 40분을 할애했다. 이 과정서 ‘간첩’이라는 단어는 25번이나 등장했다.

그는 “북한을 비롯한 외부의 주권 침탈 세력들과 우리 사회 내부의 반국가 세력이 연계해 국가안보와 계속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며 “이들은 가짜 뉴스, 여론조작, 선전·선동으로 우리 사회를 갈등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당장 2023년 적발된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만 봐도 반국가 세력의 실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거대 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막고 야당 대표의 범죄를 심판할 판사들까지 압박하기 위한 ‘방탄 탄핵’을 일삼아 국정이 마비됐다”며 비상계엄의 화살을 민주당으로 돌렸다.

윤 대통령의 최후진술을 놓고 반응은 엇갈렸다. 대통령실은 “대통령의 개헌 의지가 실현돼 우리 정치가 과거의 질곡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열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 역시 “대통령이 개헌 문제와 임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게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본인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성을 갖고 이야기했다”며 개헌에 초점을 맞췄다.

탄핵 인용 시 60일 내 대선 가능성
‘이재명 올인’ 한 우물에 일사불란

야당은 오히려 윤 대통령이 탄핵 불씨를 지폈다고 봤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비상계엄의 위법성을 앞세워 정권교체 여론전에 나섰다.


민주당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개헌, 선거제 운운하며 복귀 구상을 밝힌 대목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군·경을 동원해 헌정을 파괴하려 한 내란범이 다시 권력을 쥐고 헌정을 주무르겠다는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윤 대통령에 대한 빠른 파면을 요구했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 역시 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한강대교를 폭파한 후 국민에게 ‘이상 없다’고 방송했던 것과 다르지 않은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헌재 판결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전제가 없는 상태서 이런 이야기(대통령 임기단축 개헌)부터 하다니 기본이 안 된 것”이라며 “최근 보수 언론이 임기 단축 개헌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이지만 기대할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탄핵 기각을 전제로 하는 윤 대통령과 달리 야당은 탄핵 인용을 확신하고 있다. 각종 간담회를 통해 정치 반경을 넓히고 있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탄핵은 반드시 된다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반드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지사는 “지금부터 (윤 대통령)탄핵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며 “탄핵 이후 조기 대선을 치르고 그 이후도 준비해야 하는데, 이런 준비를 할 수 있는 정당은 민주당밖에 없다”고 설파했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론을 오는 11일 전후로 예상한다. 윤 대통령의 파면과 5월 조기 대선을 확실시하는 상황서 60일이란 시간은 짧기만 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미 조기 대선은 시작됐다. 모든 시선이 이 대표의 입에 쏠려 있을 뿐, 여기저기서 대권 행보를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며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대선 출마 선언이나 다름없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0일 열린 국회 교섭단체 연설서 이 대표는 ‘국민’을 46번 언급했다. 산업, 성장, 노동 또한 20회 이상이었다. 거대 야당을 겨냥한 국민의힘의 연설과 달리 이 대표는 “모두가 함께 잘사는 ‘잘사니즘’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고 싶다” “주 4.5일제를 거쳐 주 4일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 등 차기 집권당의 면모를 부각했다는 설명이다.

진해지는
밑그림

이날 이 대표는 “새롭고 공정한 성장동력을 통해 양극화와 불평등을 완화해야 함께 잘사는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며 “성장해야 나눌 수 있다. 국민의 기본적 삶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나라, 두툼한 사회 안전망이 지켜주는 나라여야 혁신의 용기도 새로운 성장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당력을 총동원해서 회복과 성장을 주도하겠다”며 “기본 사회를 위한 회복과 성장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후 민주당은 각종 위원회와 포럼을 발족하며 당 정열에 나섰다. 우선 민주당은 지난달 6일 잠시 멈춰있던 집권플랜본부를 재가동하면서 대선 열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들은 ‘성장은 민주당 대한민국 성장 전략’을 주제로 신년 세미나를 개최하고 ‘선 선장 후 복지’의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이후 민주당은 12·3 내란 사태 당시 청년이 광장에 나선 점을 강조하며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와 전국대학생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아울러 이 대표의 먹사니즘을 지역의 특성에 맞춘 ‘먹사니즘 전국네트워크’, 유보 통합 대안을 논의하는 ‘보육특별위원회’, 직능단체별 정책개발과 입법 과제 해결 등을 골자로 한 ‘전국직능대표자회의’ 등이 잇따라 등장했다.

최근에는 ‘내란 종식과 더 단단한 민주주의를 위한 광주人(인)포럼’ 출범을 예고하며 호남 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친명(친 이재명)계가 주축인 ‘더민주혁신회’도 인천, 전남, 전북 등지서 기지개를 켰다. 민주당은 헌재의 결정이 아직 나오기 전인 만큼 공식적으로는 조기 대선을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정치권에서는 차기 집권 여당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로 풀이했다.

한때 여의도를 뜨겁게 달군 이 대표의 ‘중도 보수’ 발언과 ‘경제 우클릭’ 역시 조기 대선을 의식한 행보로 해석된다.

지난 1월 출범한 민주당 경제안보특별위원회 주요 기업 책임자를 비롯한 경제 단체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었다. 같은 날 민주연구원은 바이오 업계 관계자를 초청해 빅테크와 성장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고 친기업 행보에 속도를 냈다.

앞서 막고
뒤서 밀고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광폭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지 못하고 사실상 이슈 주도권을 빼앗겼다. 최근 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띄우자 국민의힘은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위험천만한 법안”이라며 “민주당은 눈앞의 권력에 눈이 멀어 경제 위기는 외면한 채 경제의 정치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의 친기업 정책에 대해서는 ‘이재명식 양두구육(양 머리를 놓고서 개고기를 파는 것)’이라고도 비판했다.

경제 우클릭을 연타하는 동시에 집토끼를 단속하기 위한 이 대표의 행보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 대표는 지난 한 달간 비명(비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인사를 만나 통합 메시지를 냈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되면 이 대표는 비명계 인사를 선대위에 합류시켜 정치 공간을 넓힐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대표는 지난달 13일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21일 박용진 전 의원, 24일에는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만나 오찬 회동을 했다. 이후 같은 달 27일에는 임종석 전 청와대실장을, 하루 뒤인 28일엔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만남을 가졌다.

압축적인 통합 행보에 나섰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아 보인다. 지난 총선서 공천을 놓고 벌어진 갈등의 골이 큰 만큼 당의 통합 과정 또한 장기전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대표적으로 지난 27일 회동서 임 전 실장은 “앞으로도 저는 좋은 소리보다 쓴소리를 많이 하고 싶고 가까이서 못 하는 소리, 여의도서 잘 안 들리는 소리를 가감 없이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의 구조서 이 대표와 경쟁해보려고 용기를 내고 이재명을 넘어서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성원하고 지지할 생각”이라며 “통합과 연대도 더 담대하고 절실하게, 누구도 예상 못하는 범위로 해내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정당에 다양성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해야 할 얘기도 해야 한다”며 “그걸 제지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박 전 의원 역시 “이 대표와의 악연을 털었다”면서도 ‘윤석열·이재명 동반 청산’을 주장하는 이낙연 전 총리와의 통합을 요구했다.

여당에 짙게 깔린 명 그림자
‘시장님 정조준’ 특검법 압박

임기 단축을 골자로 한 개헌도 숙제 중 하나다. 비명계는 앞다퉈 개헌 논의를 띄웠지만 이 대표는 “내란 극복이 우선”이라며 말을 아꼈다. 이 대표가 유력 대선주자가 되자 개헌을 외면했다는 비판과 개헌을 요구한 인사를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라고 비난하는 움직임이 양쪽서 일면서 또다시 갈등이 터질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지난 대선서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뼈아픈 경험을 한 민주당은 통합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좁힐 듯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선 국면이 열리면, 지난 패배를 교훈 삼아 대동단결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외연 확장에 나선 민주당은 국민의힘 기선 제압 방식으로 특검법을 택했다. 특히 국민의힘 인사가 깊게 얽혀있는 ‘명태균 특검법’은 여권 대선 잠룡을 압박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앞서 지난달 11일 야6당은 명태균 특검법을 공동 발의했다. 지난달 27일 본희의 상정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지만 재석 의원 274인 중 182인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민주당은 특검 수사 대상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을 겨냥했다.

이에 반발한 오 시장은 “민주당이 요즘 명태균에게 의존한다”며 “민주당의 아버지가 이재명인 줄 알았더니 명태균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꼬았다. 홍 시장도 “명태균 특검이든 중앙지검 검찰조사든,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니들(너희들) 마음대로 해라”며 “수많은 범죄를 저지르고 기소된 사람이 뻔뻔하게 대선 나오겠다고 설치면서 ‘김대업 병풍 공작’을 하는데 국민이 또 속겠느냐”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명태균 특검법=민주당 조기 대선 전략’으로 규정한 모양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한낱 선거 브로커가 쏟아낸 허황된 말을 신의 말씀처럼 떠받들면서 특검으로 여당과 보수진영을 무차별적 초토화하려는 것”이라며 “명태균은 자신이 살기 위해 이재명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고 정치적 판단을 내린, 민주당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착착 스텝을 밟아가는 민주당의 조기 대선 계획에 유일한 변수는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시계와 이 대표의 법원 시계가 동시에 달리는 만큼 먼저 결과가 나오는 사람이 패배다.

만에 하나
뒤집히면?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기일은 오는 26일이다. 정치권을 비롯한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의 선고 기일보다 윤 대통령의 탄핵 결과가 먼저 나올 가능성에 힘을 실었지만, 만에 하나 헌재가 다른 선택을 한다면 조기 대선 판이 완전히 뒤집힐 수 있다.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 국면이 열릴 경우, 이 대표의 재판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소추할 수 없다’는 헌법 제84조를 언급하며 “법의 취지는 국가원수이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직무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에 사법권이 미치지 않는 걸 전제로 한다. 당연히 재판이 중단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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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