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발톱 세운 공수처 사냥감은?

윤 털릴 때까지 검찰만 팬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칼끝이 한 점에 집중되고 있다. 바로 검찰이다. 당초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설립된 만큼 취지에 걸맞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대선이 9개월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공수처의 행보가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이 범한 직권남용, 수뢰, 허위공문서 작성 및 정치자금 부정수수 등의 특정범죄를 척결하고, 공직사회의 특혜와 비리를 근절해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임으로서, 국민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설치됐습니다’라고 홈페이지에 그 설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출범부터
시끌시끌

공수처 설치 근거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안’은 2019년 12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1호 공약이자 여권의 대표적인 숙원이었다. 1996년 참여연대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포함한 부패방지법안을 입법 청원한 지 23년 만에,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선 공약으로 내건지 17년 만에 입법화에 성공했다.

공수처는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와 국무총리비서실 정무직 공무원·검찰총장·판사·검사·시장·도지사 등을 수사할 수 있다. 이 중 판사·검사·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선 기소권도 갖는다. 또 중복되는 범죄 수사에 대해 검찰과 경찰보다 우선권을 지닌다. 

여기에 검·경 등이 범죄 수사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이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는 조항이 법안에 담겼다. ‘통보 의무 조항’을 두고 수사 착수 단계부터 검·경 수사를 무력화하고 공수처가 특정 인사에 대한 선택적 수사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공수처는 출범일인 지난해 7월15일을 훌쩍 넘긴 올해 1월21일 첫 발을 뗐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을 두고 여야간 갈등이 불거지면서 출범 시기가 늦어졌다. 당초 공수처법에는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야당의 비토권이 인정됐지만 지난해 12월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수처법 개정안은 이를 삭제했다.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는 김진욱 처장을 필두로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보마다 파열음이 울렸다.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 논란, 5급 비서 특혜 채용 논란 등이 연이어 불거졌다. 수사 인력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인원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일도 일어났다. 

3~9호 사건 전·현직 검사 겨냥
조희연 교육감 사건 역풍 고려?

관심을 모았던 공수처 1호 사건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공수처는 지난달 10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교사 특별채용 부당 의혹 사건을 1호 사건으로 등록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조 교육감이 2018년 7~8월 해직 교사 5명을 특정해 특별채용 검토‧추진을 관련 부서에 지시했다며 조 교육감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권 인사로 분류되는 현직 교육감을 1호 수사 대상자로 선택하면서 정치적 독립성 논란을 불식시키려 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일각에서는 기소권도 행사할 수 없는 사건을 굳이 주목도가 높은 1호로 선택했느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 같은 지적은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터져 나왔다. 

지난 1월 출범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공수처는 최근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함께 검찰개혁의 두 축으로 여겨졌던 공수처의 도입 배경이 선명해지는 모양새다.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은 ‘검찰 힘빼기’로 요약되는 만큼 공수처가 그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수처는 지난 4월 1호 사건을 시작으로 한 달여 만에 9건에 대한 직접 수사에 나섰다.(17일 기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해직 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1~2호) ▲‘김학의 별장 성접대’ 건설업자 윤중천 면담 보고서 허위작성 및 언론유출 의혹(3호)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4호) 등이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의혹(5호) ▲해남지청 현직 검사 직권남용 의혹(6호) ▲옵티머스 자산운용 펀드 사기 부실 수사·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수사 방해 의혹(윤석열 전 검찰총장 직권남용 혐의) (7~8호) ▲부산 엘시티 정관계 로비 사건 봐주기 수사 의혹(9호) 등도 보고 있다. 

한 달 만에
문어발 수사

사건의 면면을 살펴보면 친정권 인사를 보호하거나 반정권 인사에 칼을 대는 사건인 점이 눈에 띈다. 특히 조 교육감 사건을 제외한 3~9호는 모두 전·현직 검사를 수사 대상으로 하는 사건이다. 공수처가 검찰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직접수사를 통해 공수처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3호 사건 피의자는 2019년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으로 ‘윤중천 보고서’를 작성한 이규원 검사다. 이 검사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 재조사 과정에서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면담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관련 내용을 특정 언론에 유출해 피의 사실 공표 혐의도 있다. 

4호 사건 역시 칼끝이 현직 검사로 향한다. 검찰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 사건에서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언론을 통해 이 고검장의 공소장이 유출됐다.

이 과정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이름이 흘러 나왔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과 관련한 5호 사건에서도 검사들을 겨냥했다. 공수처는 사건에 연루된 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과 김형근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검사 A씨 등 3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 수사에 외압을 가한 의혹을 받고 있다. 

9개월 남은
대선 일정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수사도 착수했다. 공수처는 지난 10일 윤 전 총장 직권남용 혐의 관련 2개 고발 사건을 수사하기로 결정했다. 옵티머스 사건 불기소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 조사·수사 방해 등으로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에서 고발한 사건이다. 


옵티머스 불기소 사건은 윤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9년 5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옵티머스 수사의뢰 사건을 무혐의 처분했고, 이 과정에서 윤 전 총장이 수사에 개입해 사건을 축소했다는 내용이다. 사세행은 “윤 전 총장이 부하에게 수사 축소 지시를 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또 한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 수사와 기소를 방해했다고도 주장했다. 사세행은 “한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의혹 사건을 조사하던 임은정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이 정식 수사를 위해 윤 전 총장에게 서울중앙지검 직무대리 발령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뚜렷한 이유 없이 거부당했기 때문에 지휘권의 부당한 남용이자 노골적 수사방해”라고 주장했다.

9호 사건은 ‘부산 해운대 엘시티 의혹 수사 부실’ 사건으로 역시 검찰을 타깃으로 잡았다. 2016년 부산지검의 엘시티 정관계 특혜 의혹 수사가 부실했다고 시민단체가 고발했다. 부산참여연대는 지난 3월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임관혁 광주고검 검사 등 11명과 성명 불상의 차장·부장검사를 고발했다. 

공수처는 전·현직 검사에 대한 직접 수사를 진행하면서 검찰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하지만 공수처 앞에 놓인 과제는 첩첩산중이다. 당장 ‘유보부 이첩’을 두고 검찰과 정면으로 맞부딪쳤던 공수처는 법원의 판단에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공수처가 수사 과정에서 들고 나온 유보부 이첩에 대해 법원이 검찰의 손을 들어주면서 난감한 처지가 된 것.

미묘한 수사 착수 시점
 “선거 개입은 아니다”


공수처는 지난 3월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에 연루된 이규원 검사와 이성윤 서울고검장 등을 검찰로 다시 이첩하면서 ‘기소권은 우리가 행사할 테니 검찰은 수사만 한 뒤 사건을 다시 송치하라’는 유보부 이첩 개념을 제시했다. 검찰은 ‘사건과 권한을 분리해 이첩할 수 없다’ ‘검찰의 수사·기소권은 공수처가 부여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발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지난 15일 자격모용 공문서작성 등 혐의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의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의 공소제기가 위법하다는 명확한 근거를 찾지 못했다”며 “확정적 견해는 아니다. 변경이 불가능하거나 확정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검사 공소제기가 적법하다는 것을 전제로 본안 심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출범 전부터 제기됐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은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4호)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문제 삼았던 사안이다. 박 장관은 이 고검장에 대한 공소장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대검에 진상 조사를 지시하고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며 검찰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이 때문에 공수처에서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을 직접 수사하겠다고 나섰을 당시 ‘하명 수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공소장 유출 자체의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오가고 있다. 공수처는 법무부 장관의 발언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여전한 상황이다. 

여기에 7~8호 사건, 이른바 윤 전 총장을 겨냥한 고발사건을 직접 수사하겠다고 나선 것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대선을 9개월 앞둔 상황에서 유력 대선후보인 윤 전 총장에 대한 수사를 개시하면서 선거 개입 논란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공수처가 윤 전 총장에 대한 직접 수사를 진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어떤 결과도
논란 될 듯

공수처는 윤 전 총장 수사 착수 논란에 정면돌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처장은 지난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정치적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사건을 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며 수사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어 “선거에 임박해서, 선거에 개입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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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