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압박’ 공수처 불리한 게임 내막

던지는 족족 깨지다 ‘3개월 데드라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감사원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간의 신경전이 지속되고 있다. 유병호 사무총장을 포함한 감사원 간부들이 단체로 소환 통보에 불응하고 있는 상태다. 공수처가 체포영장까지 검토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감사원의 시간 끌기에 무기력한 모습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의 임기가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것도 걸림돌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하 공수처)의 임기는 내년 1월20일까지다. 후보추천위가 구성됐지만 임명까지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다. 수장 공백은 수사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공수처가 들여다보고 있는 핵심 사건들도 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개월간
정면충돌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과 간부들의 소환 회피가 의도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수처와 감사원의 갈등은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에 관한 ‘표적감사’ 의혹 수사로 시작됐다. 감사원은 유 사무총장의 소환 통보가 “일방적이었다”고 밝힌 반면 김 처장은 “법이 허용한 수단을 사용하겠다”며 강제수사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서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유 사무총장이 지금 4번(출석 통보에) 불응했고 5번째 불렀다는데 이번에도 안 나오면 체포영장 (청구)하실 거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한 것이다.


공수처 특별수사본부(이대환 부장검사)는 최근 유 사무총장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유 사무총장이 지난 한 달 동안 공수처의 4차례 출석 요구에 불응한 것을 고려하면 5번째 출석 통보다. 유 사무총장뿐 아니라 다른 감사원 사무처 직원들도 공수처의 조사에 대부분 응하지 않았다.

국회 예결위가 열리던 시각, 감사원은 공수처의 수사에 관한 공식 입장을 보도 참고자료 형태로 배포했다. 감사원은 “공수처가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일방에게만 확인하거나 감사원의 업무 관행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서 조사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감사원 권위와 신뢰를 훼손하고 있어 심히 유감”이라고 밝혔다.

또 감사원이 조직적으로 공수처 수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적절하다면서 감사원이 전 전 위원장을 표적감사했다는 의혹에 관해서도 “감사원은 정당하고 적법하게 권익위 감사를 실시했다”고 반박했다.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 등이 부당한 근거로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 거듭 불응하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소환 통보에)협의가 없었다는 것은 그분들의 일방적인 주장이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얘기”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소환조사 일정은 협의할 수 있지만 수사를 하는 방향과 기법은 수사팀이 결정할 부분이다. 조사 대상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유병호와 간부들 단체로 소환 불응
체포영장 카드 고심 ‘역풍 맞을라’

유 사무총장 측은 다음 달 초 공수처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수사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지만 유 사무총장의 신분 등을 고려해 출석 조사를 진행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다만 유 사무총장과 감사원 사무처 직원들이 거듭 조사를 거부한다면 대면조사 없이 기소하는 방안도 언급된다. 공수처 관계자는 “12월에 조사받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공수처는 가급적 유 사무총장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전 전 위원장에 대한 의혹의 발원지로 지목된 권익위 고위 관계자와 최 감사원장, 유 사무총장의 공동 무고 혐의 등도 수사 중이다. 이를 최근 감사원을 상대로 한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유 사무총장이 지휘하는 감사원 사무처가 감사위원을 건너뛰고 감사보고서를 위법하게 시행 및 공개한 혐의도 수사 중이다.

유 사무총장은 감사원이 특별감사를 통해 전 전 위원장을 표적감사하는 데 관여한 혐의(직권남용 등) 등으로도 20여차례 공수처에 고발됐다. 공수처는 유 사무총장이 전 전 위원장에 대한 비위 제보 내용이 허위·과장된 점을 알면서도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고 수사를 요청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현재까지 공수처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입건한 감사원 관계자는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 사무총장을 비롯해 17명이다.

최 원장과 유 사무총장은 현재 공동변호인단을 꾸려 함께 수사에 대응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최 원장은 최근 국회서 열린 전체회의서 두 사람을 포함한 감사원 내 수사 대상 17명이 공동으로 변호인단을 선임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의 물음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김 의원은 “유 사무총장이 소환을 불응하는 부분에 원장도 동의하고 같이 가고 있는 것”이라며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꼬집었다. 최 원장은 “변호인단을 통해서 상의한다. (출석을)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협의한다”고 해명했다.

17명 입건
영장 기각

공수처는 10억원대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감사원 간부에 관한 수사도 진행 중이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이민수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를 받는 감사원 3급 간부 김모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지위, 피의자와 관련 회사와의 관계, 공사 도급계약의 체결 경위 등에 비춰볼 때 피의자의 직무와 관련해 피의자의 개입으로 공사계약이 체결됐다고 볼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상당수의 공사 부분에 있어 피의자가 개입했음을 인정할 수 있는 직접 증거가 충분히 확보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현재까지 현출된 증거들에 대해서는 반대 신문권의 보장이 필요하다고 보인다”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뇌물 액수의 산정에 있어 사실적 내지 법률적 측면서 다툼의 여지가 있고, 특경법 횡령의 점과 관련해서 피의자에게 반박자료 제출을 위한 충분한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봤다.

공수처는 김씨가 지인 명의로 회사를 설립한 뒤 건설사들로부터 공사를 수주하는 방식으로 10억원대 뇌물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 김씨는 건설·사회간접자본(SOC)·시설 분야를 주로 감사했다.


이 사건은 감사원이 비위 정황을 포착해 지난해 2021년 10월 공수처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공수처법상 감사원 3급 이상 공무원의 수뢰 혐의는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 범죄에 해당한다.

시간 끌기
성공 임박

공수처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을 압수수색해 김씨에 대한 감사 자료를 확보한 데 이어 지난달 27일과 지난 1일 김씨를 두 차례 소환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공수처가 법원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2021년 1월 출범 이후 이번이 네 번째다. 공수처는 2021년 ‘고발 사주’ 의혹 사건으로 손준성 당시 대구고검 인권보호관(현 검사장)에 대해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돼 이듬해 5월 불구속 기소했다.

수사 민원 해결을 대가로 수억원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서울경찰청 소속 김모 경무관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도 올해 8월 기각됐다. 출범 이후 네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 수사가 감사원 수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감사원 수사 정당성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공수처 자체서 인지한 것이 아닌 사건인데 벌써 흔들리는 것은 수사력 논란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감사원 안팎서도 유 사무총장과 간부들의 소환 불응이 사실상 시간 끌기라고 보고 있다. 내년 1월까지인 김 처장 임기까지 버티면, 친정권 인사가 공수처장에 임명되거나 공수처장 부재 상황으로 버틸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한 감사원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인력난을 겪고 있는 공수처가 수장 부재로 곤두박질치게 되면 수사 속도에도 문제가 생길 거라고 보고 있다”며 “유 사무총장의 전략”이라고 내다봤다.

공수처가 유 사무총장에 관한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등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거세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예정된 결론?
최악의 경우 수장 공백 시 수사력 증발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영장 기각이라는 수모가 여러 차례 있었던 만큼 공수처 입장서 유 사무총장의 신병 확보에 실패하면 앞으로의 수사에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염려 중”이라며 “영장을 치고 싶어도 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통상 피의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2, 3회 이상 소환에 불응하면 체포영장을 청구해 강제구인에 나서는 게 수사 관례다. 김 처장 임기 만료 전에 감사원 수사에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공수처도 정권의 눈치를 보며 직무를 유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특히 김 처장이 임기 만료 전 감사원 수사에 마침표를 찍겠다고 공언한 만큼 데드라인은 오는 12월 말까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법원장 공석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공수처도 처·차장 공백 사태 대비에 나섰다. 공수처는 ‘공수처 검사 인사 규칙 개정안’을 12월9일까지 입법 예고한다. 개정안에는 인사위원회 위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최장기간 재직한 위원이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는 위원장이 지명하는 위원만 직무 대행이 가능했는데, 그 범위를 넓힌 것이다.

이번 개정은 처·차장 공석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인사위원장인 김 처장 외에도 위원인 여운국 차장의 임기도 내년 1월28일까지다.

초대 처장 임명 당시에는 2020년 10월30일 후보 추천위가 첫 회의를 열고 6차례의 회의를 거쳐 같은 해 12월28일 최종 후보 2명을 결정했다. 이번에도 같은 시간이 소요된다면 신임 공수처장은 김 처장 임기 만료 때까지 임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공수처는 이번 개정안에 검사의 신규 임용 및 연임 관련 절차를 규정하고 연임의 임명 주체를 명확히 하는 내용도 담았다. 현재 남아있는 1기 검사 4명은 2021년 4월13일 임명돼 내년 4월 임기가 만료된다. 공수처법은 공수처 검사의 임기를 3년으로 규정하고 3회까지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세부 절차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이에 공수처는 임기가 만료되는 검사는 임기 만료 3개월 전까지 연임 희망 여부를 처장에게 문서로 제출하도록 규정을 신설했다.

수사 동력
상실 우려

개정안대로라면 1기 검사들은 김 처장의 임기 만료 전까지 연임 여부를 문서로 제출해야 한다. 처장은 연임을 희망하는 검사의 연임 적격에 관한 심의·의결을 인사위에 요청하게 된다. 공수처 관계자는 “(처·차장 자리가 공석이 되면)인사위 구성원이 7명서 5명으로 줄어들어 검사들의 연임 권리가 침해당할 우려가 있다”고 개정 이유를 설명했다.

처장 자리가 공석이 될 경우 처장의 결재를 받아야 하는 중요 사건 수사의 처분 결정이나 보고가 막히게 돼 수사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수처 관계자는 “후임 처장 후보를 뽑기 위한 절차가 원만하고 신속하게 진행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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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