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 상실’ 공수처 막다른 이중고

사람도 없고 능력도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위기다. 여전히 해소하지 못한 수사력 논란에 행정인력 정원이 20명으로 제한돼있어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특히 공수처에 파견업무를 수행하던 공무원들도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맡고 있던 사건 처리도 느려지는 분위기다. 공수처는 정치권에 법 개정을 통한 인원 확충을 요구하고 있으나 과연 올해 안에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인력난에 빠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정치권에 법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행정인력 정원 제한을 풀어달라는 게 골자다. 그러나 수사력 논란조차 해소하지 못해 공수처가 정치권에 요구할 명분이 없다는 게 현실이다. 여당인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해온 ‘공수처 폐지설’을 다시 꺼내는 분위기다.

모자란 인력

공수처는 지난달 29일 정부과천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처음으로 인력난을 호소했다. 김중열 공수처 기획조정관은 “인력 운용 현실이 점차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며 “근로자가 누려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대체 인력이 없고 인력이 적다 보니 근로자 공무원 개개인의 권익 침해까지 우려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 기획조정관은 “행정인력 이탈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내년엔 수사관들에게 행정업무를 맡길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공수처법 제11조(그 밖의 직원)에 따르면 1항은 ‘수사처의 행정에 관한 사무처리를 위해 필요한 직원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한다. 같은 조 2항에서 ‘1항에 따른 직원의 수는 20명 이내로 한다’고 규정, 공수처 행정직원의 정원을 2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공수처 외 다른 부처 정원의 경우 일반적으로 법률에서 직접 정하지 않고 대통령령 등에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만, 공수처는 공수처 검사(처장, 차장 포함 25명 이내), 수사관(40명 이내)과 마찬가지로 법에서 행정직원의 정원이 제한돼있어 법률 개정 없이는 인력난 해소가 불가능하다.

지난달 말 현재 공수처 행정직원 정원은 법률상 20명이지만 ▲기획조정관 ▲인권감찰관 ▲대변인 ▲기획재정담당관 ▲운영지원담당관 등 5명의 국·과장을 비롯해 인사혁신처, 법제처 등에서 특정한 직무를 맡기 위해 파견된 직제파견자 2명 등 7명을 제외하면 실제 공수처가 가용 가능한 행정인력은 불과 13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13명 중 1명은 현재 육아휴직 상태다.

맡아야 할 업무가 정해져 있다 보니 언론 대응과 감사, 예산 등을 포함한 정치권 대응, 정보화 기록관리를 1명이 맡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 인원 급감 “수사관이 전산처리까지”
파견 공무원 수십명 제자리로…사건 속도↓

공수처 관계자는 “법률에 따라 중앙행정기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공수처는 이 인원으로 1개 부처가 맡는 행정업무 전반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 결과 행정직원 13명 가운데 5명(약 38%)이 과중한 업무, 육아, 건강상 문제 등의 사유로 휴직 의사를 밝혔거나 휴직 예정이고 일부는 이직 요청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공수처의 인력난은 최근 들어 극심해졌다. 인력난 해소를 위해 타 공공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직원을 파견받거나 공무직 인력을 투입해 대응해왔으나 지난해 말 48명이었던 파견 인력이 11월 현재 20명으로 줄었다.


공수처 관계자는 “파견업무를 수행하던 공무원 대부분이 제자리고 돌아갔다. 임시방편에 불과한 파견을 지속할 수는 없다”며 “법 개정이 되지 않으면 수사관들이 행정업무를 맡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수사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공수처는 현재 급여담당 직원이 육아휴직에 들어가 대변인실 직원이 대체 투입돼 지원 근무를 하고 있고, 장기 병가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직원이 업무를 대행할 인력이 없어 조기 복귀해 통원치료를 하며 근무하고 있는가 하면, 밀린 현안 업무로 인해 육아휴직도 신청하지 못하는 직원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명의 행정인력은 인사, 총무, 회계, 국회, 홍보, 감찰 등 중앙행정기관이 수행해야 할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데 절대적으로 부족한 규모로 법률상 부여된 조직유지 기능 수행이 곤란하다는 게 공수처의 판단이다.

실제 대체 인력이 없는 조직 상황을 고려해 법이 보장하는 휴직 등 권리조차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보니, 조직의 사기 저하는 물론 일부 직원의 경우 이직을 요청하는 등 조직 이탈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정책능력진흥원은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정책연구용역을 수행한 뒤 최근 발간한 ‘공수처 조직역량 강화 방안 마련 정책연구 보고서’에서 공수처의 적정한 행정인력 규모를 50명으로 산출하기도 했다.

“초라한 성적표, 법 개정 명분 없다” 목소리도
윤석열 직접 폐지 불가…국힘, 지우기 나서나

공수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으나 정치권에서 관련 법 개정 후 통과까지 빠르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국민의힘에서는 “이 틈에 공수처를 폐지시켜야 한다”며 윤 대통령이 주장해온 ‘공수처 폐지설’을 꺼내는 분위기다.

수사력 논란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공수처가 법 개정을 요구할 명분이 없다는 점도 국민의힘의 움직임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실 민주당도 공수처를 통한 정권 수사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추세도 아니라서 당내에서 공수처와 관련된 반박을 하고 있지 않았다”며 “최근 법 개정 요구가 있었는데 공수처가 그런 주장을 할 명분이 있느냐는 식의 의견이 주를 이루는 건 맞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폐지시켜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공수처가 목소리만 컸지,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준 적이 없는 건 사실이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국민의힘 장동혁 의원실이 공수처로부터 받은 영장(체포·압수·구속) 청구 및 발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공수처는 2021년 1월부터 체포영장 4건과 구속영장 2건을 각각 법원에 청구했지만 한 건도 발부받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으로 손준성 당시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을 상대로 체포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이후 구속영장을 2차례나 청구했다가 모두 기각당했다. 같은 기간 피의자 주거지 등을 수색하는 행위인 압수수색 역시 60건을 청구했지만 16건(기각률 26.6%)은 기각됐다.


사건 처리는 전체 4550건 중 지난 3월 ‘스폰서 검사’로 불린 김형준 전 부장검사를 기소한 것을 포함해 총 3건을 재판에 넘기는 데 그쳤다.

공수처를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폐지시킬 수는 없다. 정부조직법상 부처가 아닌 별도 특별법에 근거한 조직으로 대통령이 아닌 국회의 감독·통제를 받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수사력 논란

대선 과정에서 공수처는 사실 윤 대통령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옵티머스 펀드 사기 부실수사와 고발 사주, 판사 사찰 문건 불법 작성 의혹 등으로 수사를 진행했으나 공수처의 칼날은 날카롭지 못했고 현재는 조준마저 불가능해졌다는 지적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도 공수처에 대한 관심을 끈 모양새다. 검찰 견제기구라는 명분으로 공수처 설립을 강행한 뒤 정권이 바뀌자 당내 핵심 논의에서 아예 제외됐다.


<hounder@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2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대법 VS 헌재 30년 충돌 속사정

대법 VS 헌재 30년 충돌 속사정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 행사에 맞서 야당이 거부권 행사 제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헌법 사안을 법률안으로 발의하자 법무부와 법제처는 ‘위헌’이라고 반대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권한 배분이 헌법이 아닌 법률에 규정된 이후 30년째 충돌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와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지난 9월7일 대통령 재의요구권(법률안거부권, 이하 ‘거부권’) 관련 법안 ‘대통령의 재의요구 권한 행사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공동발의했다. 법안에는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법안 등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해충돌 법안서 설명하는 이해충돌은 ▲공직자의 직무상 이해충돌 방지 의무 관련 사안 ▲본인·배우자·4촌 이내 혈족과 인척의 범죄 혐의 관련 사안 ▲그 외 중대한 이해충돌 가능성이 인정되는 사안이다. 아울러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 자제’를 요구하면서 ▲명백한 헌법 위반 ▲중대한 재정적 부담 ▲집행 불가능이 명백한 법률안 ▲그 외 명백하게 중대한 공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법률안이라는 거부권 행사 기준을 설정하고, 소명 의무를 부여했다. 정부는 같은 달 30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진행된 국무회의서 ‘김건희 특검법’과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후 약 2년4개월여 동안 총 24회에 걸쳐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승만정부가 총 45회의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장면 내각 8회 ▲박정희정부 5회 ▲노태우정부 6회 ▲참여정부(고건 권한대행 포함) 6회 ▲이명박정부 1회 ▲박근혜정부 2회 등 옛 정부들이 10회 이내의 거부권을 행사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문민정부·국민의정부는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한국민주당과 정치적으로 결별했고, 제헌의회부터 제3대 의회까지는 무소속 의원이 많았기 때문에 거부권 행사가 잦았다. 자유당이 원내 다수당이 된 시점은 제3대 의회였다. 윤 대통령도 취임 이후 줄곧 여소야대 정국을 직면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줄곧 여소야대 정국을 직면했지만, 거부권은 행사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 행사에 대해 야당은 특별법 발의로 맞서고 있다. 야, 대통령 거부권 제한 발의 정부 “위헌”…그 이유는? 현행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따라서 대통령이 본인·배우자·친인척·측근의 범죄 혐의와 관련된 사안에 거부권을 사용하는 것은 법안의 지적대로 이해충돌 가능성이 크다. 측근 관련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최도술·이광재·양길승 특검법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례가 있었다. 국회 운영위의 검토보고서에도 “공직자는 직무관련자가 사적 이해관계자임을 안 경우 신고·회피 신청을 해야 한다”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 제5조 규정을 언급했다. 법률 형식으로 거부권 행사를 제한시키려는 발상에 대해서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법무부와 법제처는 이미 국회 운영위에 “헌법에는 거부권 행사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고,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법률로 침해하기 때문에 권력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국회 운영위의 검토보고서에도 “헌법 사안이므로 개헌 시 논의하는 게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담겨있다.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은 헌법 제53조에 규정돼있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절차는 법률에 위임할 수 있다’는 위임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상 내용과 절차를 법률에 위임한 사안은 ▲사면권 ▲계엄 선포 ▲대법원장·대법관·헌법재판관의 연임 규정 등이 있다. 위임 규정이 없는데도 법률로써 헌법 사안을 제한하려고 한다면, 위헌 시비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2015년 6월 “시행령이 법률 제정의 취지에 맞지 않으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의 국회법 개정안 통과에 참여했기 때문에, 특별법으로 헌법 사안을 제한하려는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모순일 수도 있다. 헌법에 규정해야 할 사안을 법률로 제정해 기관의 큰 충돌을 초래한 사례는 대법원·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재판소원 관련 충돌이 있다. 사법부 최고기관의 위상을 두고 갈등 중인 두 기관은 한정위헌·재판소원을 놓고 1997년 이후 총 3회에 걸쳐 직접 충돌했다. 특별법으로 헌법 사안 제한? 제정 추진 모순 지적도 제기 헌재는 1987년 9차 개헌 이후 설치됐고, 헌법소원 제도도 그때부터 운용됐다.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의 2017년 7월26일 <법률저널> 기고 칼럼에 따르면, 9차 개헌 이후 대법원은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당황했다고 한다. 이 경우 헌재가 사법부 최고기관이 된다. 대법원은 헌법이 아닌 헌법재판소법을 통해 ‘헌법소원서 재판 배제’를 관철했다고 한다. 하지만 헌재는 1997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도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도 내에서는 재판을 취소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이후 대법원과 헌재는 “A를 B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어긋난다”는 취지의 한정위헌 결정의 인정 여부와 재판소원을 놓고 갈등을 이어갔다. 한정위헌은 헌재의 위헌결정 효력을 규정한 헌법재판소법 제47조에 명시되지 않은 재판 형식이고, ‘법령 해석·적용 기준’을 마련하는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식이다. 대법원은 1996년 4월 “한정위헌은 헌재의 의견 표명에 불과하므로 대법원을 기속하지 않는다”면서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무시한 판결을 제시했다. 그러자 헌재가 한정위헌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는 사태가 1997년 1회·2022년 2회 등 총 3회에 걸쳐 발생했다. 이 갈등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 농단 의혹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사안도 헌재와의 다툼이었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재판소원 허용’을 공개적으로 국회에 요구했던 박한철 당시 헌법재판소장 비난 기사를 대필해 특정 법률 전문지에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는 개헌 당시 두 기관의 갈등을 예상치 못한 채 헌법에 명확한 권한 배분을 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라고 볼 수 있다. 당사자가 뒤늦게 갈등의 씨앗을 깨닫고 차선책으로 법률에 담았지만, 갈등을 봉쇄하지는 못했다. 헌법과 법률은 무게감부터 다르다. 헌법개정안은 재적 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가결되지만, 법률은 재적 과반수 출석·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된다. 따라서 법률 위임 규정이 없는 헌법 사안을 법률로 제한하려고 하는 것에 대한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효력 갈등 <일요시사>는 법안을 대표발의한 김 의원 측과 황 의원 측에 ▲위헌 가능성 ▲한정위헌·재판소원 관련 대법원·헌재의 갈등에 대해 문의했다. 두 의원은 지난 9월30일부터 ‘김건희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 ‘지역화폐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규탄하는 천막농성에 참여하고 있다. 김 의원 측과는 연락이 닿았으나 답변하지 않았고, 황 의원 측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