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산업개발 뇌물 의혹’ 공수처 진땀 흘리는 내막

“검사가 직접 프린트” 수사할 사람이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설립된 지 2년이 넘었다. 출범 이후 기대와는 다르게 무기력한 모습만 보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검찰로부터 사건을 가져와 재판에 넘겨도 재판부로부터 뭇매를 맞을 정도로 수사 전문성에도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최근 ‘대우산업개발 뇌물’ 사건 인지수사를 진행 중이지만 이미 검사와 수사관들의 사기는 땅으로 떨어진 상황이다.

“검사가 직접 프린트를 해야 할 정도로 인력난이 극심하다. 미래가 보장되지 않고 매력적인 기관이 아니라는 게 외부의 시선이다. 답답하다.” 지난 5일 <일요시사>와 접촉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신 관계자가 한숨을 쉬며 한 말이다. 사실상 윤석열정부로부터 외면받은 이후 정치권의 관심도 꺼졌다. 첫 자체 수사에 착수했으나 고질적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수처 안팎서 나온다.

첩보 입수 후
강제수사 전환

공수처가 ‘대우산업개발 뇌물’ 사건을 인지한 것은 올해 초다. 경찰 간부가 약 2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는 첩보를 입수해 수상한 자금흐름까지 포착했다.

지난달 13일 공수처 수사3부(부장검사 송창진)는 김모 서울경찰청 경무관에게 뇌물을 공여한 의혹을 받는 이상영 대우산업개발 회장이 지인 A씨에게 2억원가량을 송금해 현금화한 정황을 확인했다. 이 회장이 ‘삼촌’으로 부르는 A씨는 2억원을 전액 5만원권으로 인출해 이 회장에게 다시 건넸다.

공수처는 이 돈이 김 경무관이 받기로 했던 3억원의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회장은 가족의 부동산 매매 대금일 뿐 자금세탁과 무관하고 현재도 금고에 보관 중이라며 의혹을 부인 중이다.


공수처는 분식회계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이 회장이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 계장과 친분이 있는 김 경무관을 통해 수사무마를 청탁했다는 혐의도 수사하고 있다.

김 경무관은 지난해 하반기 서울경찰청에 보임하기 전 강원경찰청에 재직하며 금품을 수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청탁 대가로 3억여원을 약속하고 실제 1억여원을 김 경무관에게 건넨 혐의를 받는다. 추후 자금 거래 추적 결과에 따라 수뢰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통화 분석을 통해 이 회장이 분식회계에 대한 경찰 수사정보를 인지한 정황을 확보하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공수처는 수사 과정서 이 회장의 변호인 B 변호사가 수사를 방해한 정황을 포착하고 대한변호사협회(변협)에 징계 개시를 신청했다.

자신이 사건관계인의 변호인으로 선임됐다면서 조사 전날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이 그 이유다. 공수처는 B 변호사가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이 회장과 사건관계인을 동시에 변론하는 행위 등이 위법하다고 봤다.

이외에도 공수처는 대우산업개발을 법률 자문하는 법무법인의 변호사들이 변호인 선임서를 제출하지 않은 채 대우산업개발 압수수색 절차에 참여했다면서 이들에 대한 징계 개시도 변협에 신청했다. 또 지난달 21일과 22일, 이달 3일 서울경찰청, 대우산업개발 사무실, 관련자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첫 인지수사…성과 내기 안간힘
“인력난 해소 안 돼” 수사 골머리

공수처가 최근 확보한 대우산업개발 이 회장과 한재준 대표의 통화 녹취록엔 수사정보가 유출된 듯한 대화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는 이 회장이 지난해 8월 한 대표와의 통화에서 “방금 경찰 전화를 받았다”며 경찰 측으로부터 수사정보를 들은 듯한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사자들은 수사에 반발 중이다. 김 경무관은 이 회장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하면서 억울함을 토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장 측은 “김 경무관에게 전달했다는 1억여원은 김 경무관이 아니라 이번 사건과 무관한 후배 사업가와 채무관계를 정리한 것이고, 입증이 가능하다”고 해명했다. 경찰청은 지난 2월, 김 경무관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번 사건은 공수처의 첫 인지 범죄 사건이다. 지난 2월 검찰 출신 ‘특별수사통’ 송창진(사법연수원 33기) 부장검사를 새로 임명한 뒤 수사3부는 공수처의 주력 수사부서로 거듭났다.

이번 수사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으면 사실상 ‘존재 이유’는 증명한 셈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공수처 내부에선 ‘인력난’이라는 고질적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꺼지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와 만난 공수처 전·현직 관계자들은 산적한 업무량 때문에 휴직계를 마음대로 내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대변인실 직원이 행정업무 부서에 발령될 만큼 기본적 사무 업무를 처리할 인력이 타 기관보다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전직 공수처 관계자는 “휴직했던 직원이 출산 직전까지 근무하다가 바로 복귀했다. 사람 1명이 없으면 여러 명이 배로 일을 해야 한다. 대변인실 관계자가 행정업무 부서로 가는 등 어쩔 수 없는 인력난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인력 문제는 김진욱 공수처장도 직시하고 있다. 지난해 출범 기념 기자간담회서 김 처장은 “인력난이 제일 큰 문제”라고 밝혔다. 공수처 정원은 85명이다. 검사 25명, 수사관 40명, 행정직원 20명으로 구성된다. 2023년 3월 기준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은 각각 23명, 38명으로 정원 미달이다.

특수통 영입
주력 부서로

행정직원도 미달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전체 정원이 채워진 바 없다.

한 공수처 검사 출신 관계자는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사정기관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거나 수사 의뢰가 온 사건만 수사한다. 인지수사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고 수사 과정상 여건이 되지 않으면 검찰에 다시 넘기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서 법 자체가 개정돼야 한다. 그러나 윤석열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정치권마저 공수처에 큰 관심이 없다”고 비판했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수사 전문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비서·감사·예산·인사·급여·계약·지출·결산·기록관리 등 공수처 운영의 기반이 되는 행정직원들의 환경이 바뀌는 게 급선무다. 현재 공수처는 분야당 1명의 직원으로 구성돼있다.

조직 운영 업무도 밀리고 있는 형국이라 중앙·지자체·공공기관서 정원 외 파견 직원을 받고 있다. 검찰과 경찰로부터 지원받는 수사 담당 인력과는 별개다. 파견된 행정직원들은 통상 6개월~1년 단위로 근무한다. 원소속 기관과 지자체 사정에 따라 파견 기간이 다르지만 업무에 익숙해질 때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때문에 인수인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고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와중에 정치권과 법조계로부터 ‘종이호랑이’라는 비판과 함께 “존재 이유가 무의미하다”는 지적은 검사와 수사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공수처는 ‘메리트’ 없는 기관으로 낙인찍혔고 ‘가고 싶지 않은 기관’으로 불리게 됐다.

문서 출력할
인원도 없다?

한국정책능력진흥원은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정책연구용역을 수행한 뒤 <공수처 조직역량 강화 방안 마련 정책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공수처는 중앙행정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정도로 인력이 부족하다.

공수처 정원은 85명서 170명으로 2배가량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검사(공수처장·차장 포함)는 부장검사 5명·부부장검사 7명·검사 26명 등 총 40명이 필요하고, 수사관은 검사 인력의 두 배인 80명, 행정직원은 50명이 적정 인력이라고 분석했다.

공수처 인력이 늘어나려면 국회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수사관을 40명서 80명, 행정직원을 20명서 50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았다. 같은 당 기동민 의원안은 검사를 25명서 40명으로 늘리는 방안이다.

그러나 공수처 설립을 주도한 민주당 의원들은 해당 법안에 관심이 없다. 민주당 일각에선 공수처가 자초한 일이라는 견해가 나온다. 과거 감사원이 수사 의뢰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건과 대통령 직속 검찰 과거사위원회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이던 이규원 검사에 대한 수사가 이뤄진 것이 ‘태클’이었다는 주장이다.


‘고발 사주’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공수처가 맡았던 사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7개월가량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했으나 실패했다는 평가가 전반적이다. 구속영장·체포영장 등이 모두 기각됐다. 문제의 ‘고발장 작성자’도 특정하지 못했다. 그 밖에 공수처 1호 기소 사건인 김형준 전 검사 뇌물수수 혐의 사건 역시 1심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수사 전문성 논란도 지속됐다.

‘공수처 폐지’를 거듭 강조하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도 조용하긴 매한가지다. 지난해 4월 작성된 윤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공수처법 개정이 언급된 것과는 딴판이다. 해당 문서는 총 1170페이지가량의 대외비 문서다.

수사관이 행정업무까지 커버 “국회서 법개정 시급”
설립 주도한 민주당조차 무관심…스스로 자초했다?

이행계획서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검찰·경찰·공수처 관련 발언과 공약들이 실천 과제와 함께 담겼다. 대표적 실천 과제로는 ‘공수처법의 독소조항을 폐지, 검찰과 경찰도 고위공직자 부패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수처를 정상화하겠다’는 내용이 제시됐다.

이행계획서는 “공수처법 제24조 폐지 등 관련 법령 제·개정을 통해 검찰·경찰·공수처가 함께 부패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사기관 상호 간의 견제와 균형, 공정한 경쟁과 협력을 통해 부패와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더불어 검찰, 경찰, 공수처 3자 협의를 통해 수사중복 등으로 인한 인권침해와 수사 지연 등을 방지토록 하고 있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도 애매한 부분으로 꼽힌다. 대상의 한계 때문에 수사에 제동이 걸린다는 지적이다. 공수처 수사 대상은 판사, 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공무원, 정무직 공무원 및 고위공무원단 이상(대체로 2급 이상)과 가족이다.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정보원, 감사원, 금융위원회 등의 경우 3급 이상 공무원까지 수사 대상에 속한다.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는 ▲직무유기 ▲직권남용 ▲뇌물범죄 ▲허위 공문서 작성, 강요, 공갈, 횡령·배임, 알선수재 등 ▲변호사법 위반, 정치자금 부정수수, 정치 관여, 공무원 등의 선거 관여, 국회 위증 등이다.

통상 고위공직자 비리는 기업인과 얽힌 구조가 많다. 예시로 대장동과 같은 부동산·금융 범죄가 그렇다. 검찰과 경찰은 경제범죄를 수사할 때 공여자인 민간인 조사를 시작으로 자금 흐름을 먼저 파악한다. 정황이 포착되면 사건에 연루된 공무원을 소환 조사한 이후 고위공직자의 혐의 입증에 매달린다.

현행 공수처법상 이 같은 수사를 할 수 없는 이유는 고위공직자 본인이 부하 직원, 실무자를 거치지 않고 민간으로부터 직접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건에 연루된 공무원이 3급 이상이 아니면 수사에 제동이 걸리거나 분리 후 타 수사기관에 이첩해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차이도 크다. 공수처는 대법원장 및 대법관, 검찰총장, 판사 및 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만 재판에 넘길 수 있다. 수사 대상이어도 기소 대상이 아니라면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이첩해야 한다. 공수처가 고발 사주 사건서 손준성 검사의 공범으로 판단했던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대표적이다.

애매한
수사 대상

김 의원은 사건 당시 변호사였다. 고위공직자가 아니라서 손준성 검사와 따로 떼어내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이첩했지만 불기소 처분됐다.

수사 대상과 수사권, 기소권 역시 공수처 설치법을 둘러싼 국회 여야 합의 과정서 원안이 바뀐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법 설계 문제는 공수처 안팎서도 신중히 검토한 뒤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수처 권한 확대와 직결되는 만큼 학계와 전문가, 관계 기관, 국회 등과 협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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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