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몰리는 공수처 속사정

‘시끌벅적’ 요란한 빈수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표류하고 있다. 내부의 불만, 외부의 불신이 겹치면서 구성원의 사기가 크게 떨어진 모양새다. 전열을 가다듬은 검찰이 주요 인사를 겨냥하고 있는 것과 크게 대조된다는 분석이다. 

계륵, 큰 쓸모나 이익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것.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계륵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야심차게 시작한 초기와 비교해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갈수록 존재감이 옅어지는 상황이다. 

처음부터
불안불안

공수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및운영에관한법률’에 따라 지난해 1월21일 출범했다.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공수처는 출범까지 지독한 산통을 겪었다. 60년 넘게 유지된 검찰 권력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라 안팎으로 장애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공수처 출범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안 발의로 힘을 실었다. 2019년 12월30일 공수처법이 국회 패스트트랙에 오른 지 8개월여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이후 65년 동안 이어진 검찰의 기소독점주의가 깨진 순간이다. 


공수처법 통과 직후 ‘강력한 검찰 견제기구’가 등장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은 고위공직자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범죄까지로 광범위해 그 규모가 7000여명에 달한다. 

특히 검사와 판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서는 기소권까지 부여받아 수사 개시와 종결, 기소에 있어 독점적 권력을 누렸던 검찰의 권한을 나눠 갖게 됐다. 다른 수사기관에서 같은 사건에 대한 중복 수사가 발생했을 경우 필요시 해당 기관에 요청해 사건을 이첩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검찰에 이어 ‘무소불위’ 권력 기관이 등장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설립 근거가 된 법안이 통과됐지만 출범까지는 첩첩산중이었다. 당장 공수처장을 뽑는 문제부터 난항에 빠졌다. 당초 공수처법에 따르면 공수처장은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가 15년 이상 법조 경력을 가진 사람 2명을 후보로 추천하면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한 뒤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한다. 

산통 끝 출범했지만
1년8개월 성과 없어

이때 공수처장후보추천위는 법무부 장관과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여당 추천 인사 2명, 야당 추천 인사 2명 등 7명으로 구성된다. 이중 6명의 찬성이 있어야 의결할 수 있도록 했다. 야당의 비토권을 인정해준 것이다.

당시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에서 후보 추천을 두고 비토권을 행사하면서 공수처장을 둘러싼 정쟁이 계속됐다.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민주당은 수적 우세를 무기로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기에 이른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야당의 비토권을 축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의 의결 정족수를 당초 ‘7명 가운데 6명 이상’에서 ‘3분의 2이상(5명 이상)’으로 완화하고, 정당이 10일 이내에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학계 인사를 대신 추천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출범도 전에 개정안까지 나오는 곡절을 겪은 끝에 김진욱 당시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이 공수처장으로 임명된 후 공수처가 닻을 올렸다. 정치권에서는 ‘김진욱호’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왔다. 정치적 중립성을 비롯해 공수처장과 공수처 차장(여운국)의 부족한 수사 경험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그로부터 1년8개월. 공수처는 존폐 위기에 빠졌다. 일단 인력 구성에 있어 여전히 난항을 보이고 있는 점이 존폐 논란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공수처 조직은 차관급인 공수처장과 차장 각 1명을 포함해 검사 25명, 수사관 40명, 행정직원 20명으로 구성된다.

칼 줬지만
무딘 칼날

문제는 공수처 출범 이후 현재까지 정원을 채워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공수처 수사 1부 소속 이승규·김일로 검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6월에는 최석규 부장검사와 문형석·김승현 검사가 사의를 표명했고 이 가운데 문 검사와 김 검사는 사직 처리됐다. 석달 간 5명이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추가 이탈 가능성도 나오고 있어 공수처 인력난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공수처 상황이 출범 때부터 예견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사력 부족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지적이다.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사건은 높은 수사력을 요구하는데 수사 경험이 적은 공수처장과 차장이 어느 정도의 역량을 발휘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던 것.

게다가 인선 과정에서 특수수사 경험이 적은 인력이 포진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수사를 밀고 나가는 동력이 떨어진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 공수처가 사활을 걸다시피 한 ‘고발사주 의혹’ 사건에서 부족한 수사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망신살이 뻗쳤다. 고발사주 의혹은 2020년 4월 21대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범여권 인사 등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한 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총선 후보였던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전달해 고발을 사주했다는 내용이다. 

공수처는 지난해 9월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 인물인 손준성 서울고검 송무부장의 신병 확보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모조리 실패했다. 체포‧구속영장이 무려 3번이나 기각당한 것. 손 검사는 김 의원에게 텔레그램으로 고발장을 전달한 인물로 의심받았다. 

특히 손 검사에 대한 두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될 당시 여운국 공수처 차장은 공수처를 ‘아마추어’라고 칭했다. 여 차장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우리 공수처는 아마추어다. 10년 이상 특별수사를 한 손 검사와 변호인이 아마추어인 공수처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면서 구속 필요성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실제 손 검사는 특수부 근무 경험이 적다.

사사건건
논란만


여 차장의 아마추어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공수처 차장이 하기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지적과 함께 수사력 부족,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됐다. 손 검사의 신병 확보에 좌절하면서 ‘윗선’을 노리려던 공수처의 계획도 무너졌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고발사주 의혹 사건 수사 실패가 구성원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1년8개월 동안 공수처의 수사 결과는 ‘스폰서 검사 사건’ ‘고발사주 의혹 사건’ 등 기소 2건이 전부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부정 채용 의혹’을 1호 사건으로 잡고 수사를 시작한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전혀 내지 못한 셈이다. 특히 1호 사건인 조희연 교육감 의혹은 공수처에 기소권이 없어 의구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수사력 부족뿐만 아니라 정치적 독립성·사찰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공수처에 대한 평가는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통신조회 논란은 이미 하락세를 탄 공수처 평가에 기름을 부었다. 공수처가 수사 대상이 아닌 언론사 기자와 가족, 심지어 공수처와 관련이 없는 민간인까지 통신자료 조회를 한 것을 두고 사찰 의혹으로까지 확대됐다. 

공수처의 무더기 통신자료 조회 논란은 헌법재판소로까지 이어졌다. 헌재는 지난 7월 전기통신사업법 83조3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수사‧정보기관에 가입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공하면 통신사업자가 반드시 사후 통지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다. 

당시 공수처는 헌재 결정에 대해 “무분별한 조회를 차단하기 위해 자체 통제 방안을 마련해 시행 중으로 자료 확보의 적법성을 넘어 적정성까지도 확보해나가겠다”며 “국회가 법 개정을 추진할 경우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수사상 목적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치적 독립성 논란은 아직도 떼어내지 못한 꼬리표다. 특히 지난해 3월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 외압 의혹’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의 제네시스 관용차를 타고 청사로 들어와 비공개 조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황제 조사’ 논란이 불거졌다.


사찰 논란·정치적 독립성
검사 못 채워 인력난 계속

김 처장은 지난 5월 황제 조사 논란에 대해 “수사 보안 유지를 위한 조치였지만 경솔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기관장이 자기 차량을 보내는 것은 특혜로 보일 수 있어 지극히 조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처음 논란이 불거지고 1년여 뒤에 공수처장이 당시 상황에 대해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출범 이후 유독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고발 사건만 수사에 나서 ‘윤수처’로 불렸던 과거도 아직 회자되고 있다. 공수처는 ‘옵티머스 부실 수사 의혹’ ‘한명숙 사건 감찰·수사 방해 의혹’ ‘고발사주 의혹’ ‘판사 문건 작성 의혹’ 등 윤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해왔다.

이중 옵티머스 부실 수사 의혹, 한명숙 사건 감찰·수사 방해 의혹, 고발사주 의혹 등은 무혐의 처분했다. 한명숙 감찰·수사방해 의혹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한 전 국무총리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에 대해 감찰과 수사를 막았다는 내용이다. 지난 2월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판사 문건 작성 의혹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당시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실을 동원,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등 주요 재판부의 성향을 수집해 정리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공수처에서 아직 수사 중이지만 무혐의 처분으로 종결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윤 대통령을 입건한 사건 중 한 건도 기소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공수처는 수사력 부족, 통신자료 조회 논란, 정치적 독립성 문제, 인력난 등 안팎에서 불거진 문제로 몸살을 앓으면서 존폐 기로에 섰다. 문제는 정권이 바뀌면서 공수처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정부 들어 검찰이 권한 찾기에 나서면서 상대적으로 더 쪼그라드는 추세다.

캄캄한
앞날은?

실제 윤정부와 여당은 공수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문정부의 유산이면서 검찰 견제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관을 굳이 안고 갈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치권의 관심도 줄어드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공수처를 ‘버린 카드’로 여긴다는 말까지 나온다. 공수처의 내년을 장담할 수 없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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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