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VS 공수처, 고위공직자 ‘우선수사권 기싸움’ 내막

‘용호상박’ 밀리면 끝이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서로 수사 칼날을 겨눈 데 이어 법무부까지 공수처 압박에 나섰다. 상황은 악화일로다. 법무부와 검찰은 공수처법 제24조 1항 폐지를 강조하고 있다. 고위공직자 범죄를 공수처가 우선적으로 수사하는 게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고위공직자 범죄 척결을 위해 탄생한 공수처가 우선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으면 사실상 종이 호랑이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공수처법 제24조 1항은 공수처의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타 수사기관의 범죄 수사에 대해 공수처장이 이첩을 요구하면 해당 수사기관이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돼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해당 조항이 ‘독소조항’이라며 폐지를 공약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폐지 플랜이 실행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악화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윤 대통령에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불리는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시행에 따른 검찰 직접수사권 축소 대응 방안 등을 보고했다.

한 장관은 공수처가 다른 수사기관에 사건이첩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공수처법 24조 1항에 대해선 개정 등을 통해 ‘우선적 수사권’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검경이 수사 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하면 공수처에 이를 통보하도록 한 24조2항을 남용할 경우 수사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만큼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수처는 법무부와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공수처 업무보고에서 여운국 차장은 “24조1항은 반드시 필요한 조항”이라며 법무부와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개정 논의를 하려면 기존 수사기관이 불공정함 없이 수사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얘기다. 검찰이 그동안 불공정한 수사를 해온 게 있는 만큼 우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우선 수사권 개정 논의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선 수사권 논란은 ‘서해 공무원 피살’ ‘북한 어민 강제북송’ 사건으로도 옮겨붙었다. 두 사건의 피고발인 대다수가 고위공직자지만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3부에서 조사 중이다. 검찰은 고위공직자 관련 인지 사건은 공수처에 알려야 하지만 두 건은 고발사건이기 때문에 통보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수처는 일단 이첩 요구 검토 없이 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공수처법 24조와 관련해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며 임기 중 우선 수사권을 규정한 1항 관련 이첩 요청권 행사의 기준과 절차, 방법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수처에 따르면, 해당 조항이 행사된 경우는 2건에 불과하다. 공수처 ‘1호 사건’으로 꼽히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부당 특별채용 의혹과 관련해 경찰에 이첩을 요청한 건,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이첩을 요청한 건이 전부다.

이처럼 초라한 수사 실적으로 인해 공수처는 반박할 명분조차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공수처가 발표한 사건처리 실적에 따르면, 사건사무규칙 개정 전인 지난해 1월부터 지난 3월13일까지 공수처가 처리한 3007건 중 검·경 등 기타 수사기관에 이첩한 사건은 2620건으로 전체의 87.1%에 달했다.

반면 공소제기, 불기소, 불입건 등 자체 처리 사건 수는 387건으로 전체의 12.9%에 불과하다.


한동훈 장관, 검수완박 대응 의지
감사원, 기자 통신조회 논란 감사?

공수처가 몸을 바짝 낮추고 있으나 윤석열정부의 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재해 감사원장은 공수처의 통신자료 수집 논란과 관련 “올 하반기에 기관 운영 감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수처는 지난 3월 이미 결산검사를 받은 바 있다. 정부 전체 연간 회계검사의 일환으로 통상적 수순이다. 하지만 감사원의 기관 운영 감사를 작년에 출범한 공수처가 받게 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란 평가다. 통상 기관 운영 감사가 길게는 5년 주기로 이뤄지는 데 비춰보면 감사원이 공수처를 상대로 칼을 빼들었다는 분석이다.

최 원장은 ‘공수처가 감사원 감사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기관인가’라는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의 질의에 “그렇지 않다”며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감사 대상이 된다”고 대대적 감사를 시사했다. 실제 감사가 이뤄질 경우 파장은 커질 수 있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광범위한 통신 조회를 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 수사 대상이 아닌 기자 등에 대해 통신영장을 청구한 이유 등은 밝히지 않았다”며 “위법하다고도 볼 수 있기에 감사 결과에 따라 수사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검찰도 공수처를 정조준하고 있다. 통신 조회 사찰 논란과 관련해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이 중요 사건이 몰리는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고, 김 처장의 ‘관용차 에스코트’ 관련 허위공문서 작성·직무유기 고발 건도 함께 서울중앙지검이 수사하도록 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언급해온 ‘공수처 폐지’ 플랜이 실행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빠른 폐지로 역풍을 맞을 수 있기에 공수처 핵심이 되는 24조1항 손보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앞서 지난 4월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윤정부의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에 따르면 공수처법과 관련된 내용이 즐비하다. 해당 문서는 총 1170페이지가량의 대외비 문서로 지난 4월 대통령선거 운동 기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법무·대검 연일 공수처 공개 압박
대통령 ‘공수처법 독소조항’ 지적

이행계획서의 내용이 지난 5월3일 발표된 110대 국정과제로 대부분 반영된 것을 보면 일부 수정을 거쳐 최종 채택이 된 것으로 보인다.

110대 국정과제 중 4번째 과제가 ‘형사사법 개혁을 통한 공정한 법 집행’이다. 이행계획서에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검찰, 경찰, 공수처 관련 발언과 공약들이 실천과제와 함께 명시돼있다. 대표적 실천과제로 ‘공수처법의 독소조항을 폐지, 검찰과 경찰도 고위공직자 부패를 수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수처를 정상화시키겠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차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한 장관의 발언이 날이 갈수록 과감해지고 있다. 검찰 수사 개편에 이어 정상화라는 워딩까지 쓰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던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면 비판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 장관이 대타로 나서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공수처 폐지와 공수처법 손보기의 벽은 높다. 공수처법 제24조1항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등 국회 법률 개정 사안이다. 여소야대인 국회 상황상 국민의힘과 윤정부가 공수처법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공수처 힘 실어주기에 나서면서 협조를 구하는 일도 어려운 실정이다. 현 정부와 각을 세우는 민주당을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정부 입법도 고려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야권의 반발이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하위법령으로 법에 규정된 기관의 권한을 통제하려 한다면 헌법재판소로 갈 여지도 있다.

한 장관도 “(우선적 수사권 폐지는)국회 입법 사항”이라며 “법무부는 행정부를 대표해 그런 식의 문제 인식을 갖고 국회 입법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손본다”

한 장관은 또 직접수사 강화를 위해 강력부와 외사부 등 직접수사 부서를 복원하고 금융증권, 보이스피싱, 조세범죄 등 다양한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합동수사단을 운영하겠다고 보고했다. 범죄정보 수집 능력 회복을 위해 올 하반기(7∼12월) 중 대검찰청 정보관리담당관실의 인력과 권한을 확대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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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선고 이후…’ 대폭동 주의보 막전막후

‘탄핵 선고 이후…’ 대폭동 주의보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시간이 갈수록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심판관의 입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미 후폭풍은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갈등 수준이 임계점까지 치솟으면 폭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운마저 감도는 모양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헌재는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세번째 탄핵 심판 사건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 때는 최종 변론 이후 14일, 박 전 대통령 때는 11일 만에 결정이 나왔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변론은 지난달 25일로 마무리됐다. 벌써 2주 넘게 지난 셈이다. 이전보다 길어졌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이나 박 전 대통령 때와는 다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두 전직 대통령 사례를 윤 대통령 사건에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여권의 주도로 국회서 탄핵 소추됐지만 헌재는 탄핵안을 기각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여권이 나서서 탄핵 소추안 통과를 이끌었고 헌재도 인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헌재 판결 직후 직무에 복귀해 임기를 채웠고 박 전 대통령은 파면돼 직을 상실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특검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형사 처분까지 받았다. 사상 초유의 일이 매일 일어나던 시기였다. 당시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참여했던 윤 대통령은 8년 만에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처지가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같은 달 14일 통과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나온 이탈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동시에 진행됐다. 대통령의 불소추특권도 소용없는 ‘내란죄’ 혐의가 윤 대통령을 옭아맸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인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를 받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때 역할을 한 군·경찰 관련자들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일부 국무위원은 야권의 탄핵소추에 직무가 정지됐다. 모든 상황이 윤 대통령에게 악재로 작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여론의 움직임을 미묘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탄핵소추 전 10% 후반대를 오가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 곡선을 그렸고 국민의힘의 지지율 역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힘이 실렸다. 거리로 나온 찬반 집회 여론조사와 다른 양상 지지율이 바닥을 치던 박 전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 중 하나로 들고 나온 ‘부정선거’ 의혹이 극우 유튜버를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전선이 형성됐다.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쪽은 거리로 나와 세를 과시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 전한길 한국사 강사 등이 주축이 된 탄핵 반대 집회에 수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여론조사에서는 탄핵 찬성 응답이 여전히 높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0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이 55.6%,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43%로 집계됐다. 국민의 과반이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실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응답 비율이 탄핵 반대보다 낮았던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층과 중도층, 무당층이 탄핵 찬성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보수라고 답한 응답층은 탄핵 반대쪽에 무게감을 더하는 중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와 다른 양상을 띠는 게 이 지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전부터 이미 지지율이 급전직하해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IMF 사태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율 6%보다도 낮은 4%까지 떨어졌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 지지율이다. 당시 보수층이 ‘궤멸했다’는 표현이 나온 이유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달리 현재 보수층은 강하게 결집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한때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설 때도 보수층이 뭉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보수층서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면서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줄었다는 것이다. 거세지는 반대 여론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이들이 거리로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여론조사와 달리 탄핵 찬성 집회 인원보다 더 많은 수가 운집하고 있다. 3·1절에 서울 광화문·여의도 등지에 모인 시민은 12만명(경찰 추산)에 달했다. 2만명(경찰 추산)이 모인 같은 날 서울 안국역 등지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와 비교해 6배가량 많은 수다. 문제는 헌재의 선고 결과에 따라 유혈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탄핵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박 전 대통령 때도 헌재의 선고 당일 2명 등 총 4명이 사망했다. 당시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측은 2017년 3월10일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직후 불복을 선언했다. 한 집회 참가자는 경찰 버스를 탈취해 차벽을 50여차례 들이받았고 이 과정서 대형 스피커가 떨어지면서 70대 남성이 사망했다. 60대 남성 1명도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된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또 다른 70대 남성 2명도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돼 결국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박 전 대통령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찰력을 총동원한다는 입장이다. 탄핵 심판 선고 전후로 외부인이 헌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벽으로 주변을 ‘진공 상태’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선고 당일 종로·중구 일대를 특별범죄 예방 강화구역으로 선포하고 8개 지역으로 나눠 질서 유지와 인파 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국민저항권 폭동 예고? 일각에서는 아무리 대비해도 폭력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1월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통해 예고편을 봤다는 것이다. 지난 1월18일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난동을 벌인 사건이다. 지지자들은 법원의 기물을 파손하고 영장 판사를 찾아다녔다. 법원이 공격당하는 사상 초유의 일에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국민저항권’을 내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했다. 저항권은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라고 정의된다. 실정법상에 승인된 권리는 아니지만, 서부지법에 난입한 지지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도 저항권을 언급하는 등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측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여기에 서울중앙지법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윤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탄핵 기각을 외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이 만료된 후 기소가 이뤄졌다고 보고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체포적부심사와 구속적부심사,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소요된 기간을 ‘일수’가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검찰이 즉시항고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으면서 윤 대통령은 자유의 몸이 됐다. 또 재판부서 구속 취소 인용 배경으로 밝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권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현행법상 내란죄 수사는 경찰만 가능하다.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는 물론 향후 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 수사와 재판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나타난 셈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52일 만에 구치소서 나와 관저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내려 90도 인사를 하고 지지자들과 악수하는 모습 등이 탄핵 반대를 외치는 측의 집결을 부추기는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원로들 “헌재 판결 승복해야” 윤, 최후 변론서도 언급 안 해 실제 지난 9일 대통령 관저 인근서 열린 집회서 전 목사는 “윤 대통령이 석방되며 탄핵 재판은 하나 마나가 됐다. 끝났다”며 “만약 헌재가 딴짓을 했다? 국민저항권을 발동해 한칼에 날려버리겠다”고 발언했다. 사랑제일교회가 주도한 이날 집회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4500명이 모였다. 정치권의 행보가 탄핵 찬성과 반대 양측 모두를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판결 이후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마은혁 헌재 재판관 후보자를 빨리 임명해야 한다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의 탄핵소추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지난 11일부터 윤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신속한 파면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가용할 수 있는 투쟁 수단을 총동원해 여론전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비판하면서 민생을 지키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이 릴레이 시위를 진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상황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지지자뿐만 아니라 정치권서도 헌재의 선고에 반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0일에는 여야 정치원로 등이 국회에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에 승복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간담회 직후 발표한 성명문을 통해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빠져드는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구국의 차원에서 모든 국민이 곧 있게 될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에 승복할 것을 적극 권고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앞서 다수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위해 헌재서 어떤 판결을 내리든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대통령의 최후 변론에 진정성이 담기려면 인용이든 기각이든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헌재 판결에 승복하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67분 동안 최후 변론을 할 당시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도 헌재 판결 이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 책임총리제 등을 통해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구상만 밝혔을 뿐이다. 정치권이 부추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로 불씨를 던진 양쪽 진영의 갈등은 각종 변수를 발판 삼아 장작이 돼 활활 타오르고 있다. 보수, 진보 양측 모두 통합보다는 분열을 자양분으로 여론몰이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제 갈등 수위는 임계점까지 치솟았다. 헌재의 판결이 폭발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