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쳤나 놔줬나' 공수처 미스터리

먹여줘도…이쪽저쪽 간 보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력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출범 9개월이 지나도록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을 1호 공약으로 내걸고 검찰개혁을 천명했다. 공수처 설립과 공수처장 후보 추천 문제를 두고 여야 간 입법 줄다리기가 1년여 동안 이어진 끝에 올해 1월 기대와 우려 속에 새 기구가 첫발을 뗐다. 

출범 9개월
초라한 성적

올 1월21일 공수처가 출범한 이후 9개월이 흘렀다. 지금까지 공수처의 성적표는 초라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기대는 사그라졌고 우려는 증폭됐다. 인력 구성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하더니 여러 차례에 걸쳐 수사력의 한계를 드러냈다. 여기에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 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문제는 공수처를 둘러싼 논란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최근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한 체포영장과 사전 구속영장이 연달아 기각됐다. 공수처 입장에서는 출범 이후 1호 체포영장, 1호 구속영장이었기 때문에 더 뼈아픈 대목이다.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달 26일,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에 대한 출석 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심문 과정에서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법원은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도 기각한 바 있다. 체포영장이 기각되고 사흘 만에 청구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또 다시 기각되면서 공수처는 말 그대로 망신을 자초했다는 비판에 휩싸였다. 특히 구속영장 청구에 앞서 손 검사에 대한 조사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은 점을 두고 법조계에서도 무리수였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손 검사는 지난 4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으로 일하던 중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등 여권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 작성과 관련 자료 수집을 성명불상의 직원에게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1호 체포·구속영장 기각
무리한 청구 지적 망신살

또 ‘검언 유착’ 보도의 제보자로 알려진 지모씨 실명 판결문 유출, 이를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전달해 4·15 총선에 개입하려 한 혐의도 있다. 

공수처는 손 검사를 고발장의 전달자로 특정했다. 제보자 조성은씨가 제출한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한 결과, 조씨와 김 의원이 나눈 텔레그램 대화방 캡처 화면에 ‘손준성 보냄’ 문구가 남아있는 점을 근거로 삼았다. 

공수처는 지난달 10일 손 검사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뒤 당시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사와 수사관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후 공수처와 손 검사는 소환 일정을 두고 줄다리기를 벌였다.


먼저 공수처는 지난 4일 손 검사에게 “10월14일 또는 15일에 출석해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손 검사는 “변호인 선임이 지연되고 있다”며 출석일자를 미루다 지난달 11일 “10월22일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공수처에 전달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그보다 사흘 앞선 20일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이를 법원이 기각한 것이다.

손 검사는 21일 변호인을 선임했고 사건 파악에 시간이 필요하다며 “11월2일에 출석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하지만 공수처는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또 다시 기각하면서 공수처의 수사 역량과 함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공수처는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손 검사가 성명불상의 상급 검찰 간부들이 성명불상의 검찰공무원에게 고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고발장을 작성하도록 했다”고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도 정작 ‘성명불상자’가 누구인지는 명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후보
노렸지만?

또 영장청구서에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름이 여러 차례 나오지만 정작 범죄 혐의와 관련해서는 윤 전 총장의 이름을 적시하지 못했다고 한다. 부실한 영장청구서가 법원의 기각을 불렀다는 게 법조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으로 공수처의 수사엔 제동이 걸렸다. 공수처의 당초 목표는 손 검사의 신병을 확보한 뒤 수사를 확대해 윗선의 개입 여부 등을 확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 단추가 어긋나면서 공수처의 운신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공수처 역시 당분간 손 검사와 김웅 의원에 대한 혐의 입증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구속영장 청구 사실을 통보한 시점에 대해서도 공방이 오가는 등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공수처는 지난달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실제 손 검사에게 통보한 시기는 영장실질심사 전날인 같은 달 25일이었다. 손 검사가 ‘늑장 통보’라고 비판하는 부분이다. 

공수처는 논란이 계속되자 같은 달 27일 “영장 청구 시 통보는 피의자 조사가 이뤄지는 등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경우에 해당한다”며 “이번 구속영장 청구는 손 검사의 계속되는 출석 불응에 대응하고 출석을 담보해 조사를 진행하려는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공수처에서 손 검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선후보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해 조속한 출석 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정당한 이유 없이 예정된 출석에 불응하면 강제수사에 의할 수밖에 없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손 검사 측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명백히 야당 경선에 개입하는 수사를 하겠다는 정치적 의도”라고 공수처를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공수처의 구속영장 청구 배경엔 더불어민주당의 압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민주당에서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한 빠른 수사를 촉구하자 공수처가 이에 발맞추느라 무리한 행보를 보였다는 것이다.

황제 조사
또 언급돼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 측은 공수처의 손 검사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 청구와 관련해 “야당 후보의 경선 일정을 고려해 수사를 서두른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명백한 선거개입이자 선거공작”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수처를 비롯한 수사기관의 핵심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5일 공수처 출범을 한 달여 앞둔 시점에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공수처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다. 검찰로부터 독립과 중립을 지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며 “공수처가 철저한 정치적 중립 속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야를 넘어 함께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도 청문회에서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고위공직자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고 발언했다. 공수처 설립 과정에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공수처장 후보자는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해당 발언들은 ‘공염불’에 가까워졌다. 

지난 3월 이 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도 재차 거론되고 있다. 당시 김 처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금 수사’를 무마한 혐의를 받던 이 고검장을 휴일에 관용차량을 이용해 청사에 들인 뒤 면담을 진행해 황제 조사 논란에 휩싸였다. 

이후 한 언론을 통해 이 고검장이 김 처장의 제네시스 관용차에 옮겨 타는 장면이 정부과천청사 인근 도로변 CCTV 영상을 통해 공개되면서 김 처장은 “보안상 어쩔 수 없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사건 조사와 관련해 공정성 논란이 제기되지 않도록 더욱 유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 경선 일정 언급 
“선거 개입” 반발 불러

김 처장의 이 같은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 고검장에 대한 황제 조사 논란은 두고두고 공수처의 발목을 잡았다. 

또 공수처가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연달아 청구하는 등 적극성을 보인 반면 윤중천 면담보고서 왜곡‧유출 의혹을 재조사하는 사건은 지지부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5~6월 사이 이 검사를 3차례 소환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는 듯했으나 이후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현재 공수처에는 수많은 사건이 쌓여있지만 마무리까지 이뤄진 사건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 교사 부당 특별채용 의혹이 유일하다. 나머지 10여건은 아직 결론까지 요원한 상태다. 그나마 조 교육감 사건의 경우에도 공수처가 기소권을 가질 수 없는 고위공직자여서 검찰에 공소제기 요구까지만 했다.

사실상 기소 사건은 전무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사세행)이 고발한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 공수처가 사흘 만에 수사에 착수하면서 윤 전 총장을 표적으로 삼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공수처의 가용 수사 인력의 절반 가까이 해당 사건에 투입되면서 기존에 진행되던 사건은 뒷전으로 밀렸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외압 의혹 사건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문홍성 대검 반부패강력부장과 윤대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 등 6명이 입건된 상태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과 ‘스폰서 검사’로 알려진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수수 의혹 사건도 입건 이후 지지부진하다. 

기대 못 미쳐
없어질 수도?

공수처가 처음 기대와 달리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일각에서는 존폐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던 기소권을 분산시키고 ‘고위공직자 및 그 가족이 범한 직권남용, 수뢰, 허위공문서 작성 및 정치자금 부정수수 등의 특정범죄를 척결하고, 공직사회의 특혜와 비리를 근절해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임으로써, 국민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도입 취지는 이미 무색해졌다는 평가를 피해갈 수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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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선고 이후…’ 대폭동 주의보 막전막후

‘탄핵 선고 이후…’ 대폭동 주의보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시간이 갈수록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심판관의 입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미 후폭풍은 피해갈 수 없게 됐다. 갈등 수준이 임계점까지 치솟으면 폭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운마저 감도는 모양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고민이 길어지고 있다. 헌재는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세번째 탄핵 심판 사건을 맡았다. 노 전 대통령 때는 최종 변론 이후 14일, 박 전 대통령 때는 11일 만에 결정이 나왔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변론은 지난달 25일로 마무리됐다. 벌써 2주 넘게 지난 셈이다. 이전보다 길어졌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이나 박 전 대통령 때와는 다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두 전직 대통령 사례를 윤 대통령 사건에 대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노 전 대통령은 여권의 주도로 국회서 탄핵 소추됐지만 헌재는 탄핵안을 기각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여권이 나서서 탄핵 소추안 통과를 이끌었고 헌재도 인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헌재 판결 직후 직무에 복귀해 임기를 채웠고 박 전 대통령은 파면돼 직을 상실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특검의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형사 처분까지 받았다. 사상 초유의 일이 매일 일어나던 시기였다. 당시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참여했던 윤 대통령은 8년 만에 박 전 대통령과 같은 처지가 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45년 만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고 같은 달 14일 통과됐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 나온 이탈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도 동시에 진행됐다. 대통령의 불소추특권도 소용없는 ‘내란죄’ 혐의가 윤 대통령을 옭아맸다. 심지어 윤 대통령은 법정형이 사형, 무기징역, 무기금고뿐인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를 받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때 역할을 한 군·경찰 관련자들이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됐고 일부 국무위원은 야권의 탄핵소추에 직무가 정지됐다. 모든 상황이 윤 대통령에게 악재로 작용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여론의 움직임을 미묘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탄핵소추 전 10% 후반대를 오가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 곡선을 그렸고 국민의힘의 지지율 역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힘이 실렸다. 거리로 나온 찬반 집회 여론조사와 다른 양상 지지율이 바닥을 치던 박 전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 중 하나로 들고 나온 ‘부정선거’ 의혹이 극우 유튜버를 중심으로 확산하면서 전선이 형성됐다.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쪽은 거리로 나와 세를 과시했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 전한길 한국사 강사 등이 주축이 된 탄핵 반대 집회에 수만명의 시민이 모였다. 여론조사에서는 탄핵 찬성 응답이 여전히 높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0일 전국 18세 이상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의견이 55.6%,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43%로 집계됐다. 국민의 과반이 탄핵에 찬성한다고 답한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실제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 응답 비율이 탄핵 반대보다 낮았던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자신의 정치 성향을 ‘진보’라고 답한 응답층과 중도층, 무당층이 탄핵 찬성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보수라고 답한 응답층은 탄핵 반대쪽에 무게감을 더하는 중이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때와 다른 양상을 띠는 게 이 지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소추 전부터 이미 지지율이 급전직하해서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IMF 사태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지율 6%보다도 낮은 4%까지 떨어졌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 지지율이다. 당시 보수층이 ‘궤멸했다’는 표현이 나온 이유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달리 현재 보수층은 강하게 결집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한때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설 때도 보수층이 뭉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보수층서 여론조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면서 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가 줄었다는 것이다. 거세지는 반대 여론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이들이 거리로도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여론조사와 달리 탄핵 찬성 집회 인원보다 더 많은 수가 운집하고 있다. 3·1절에 서울 광화문·여의도 등지에 모인 시민은 12만명(경찰 추산)에 달했다. 2만명(경찰 추산)이 모인 같은 날 서울 안국역 등지서 열린 탄핵 찬성 집회와 비교해 6배가량 많은 수다. 문제는 헌재의 선고 결과에 따라 유혈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탄핵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박 전 대통령 때도 헌재의 선고 당일 2명 등 총 4명이 사망했다. 당시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한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 측은 2017년 3월10일 헌재가 박 전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한 직후 불복을 선언했다. 한 집회 참가자는 경찰 버스를 탈취해 차벽을 50여차례 들이받았고 이 과정서 대형 스피커가 떨어지면서 70대 남성이 사망했다. 60대 남성 1명도 의식 불명 상태로 발견된 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또 다른 70대 남성 2명도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돼 결국 목숨을 잃었다. 경찰은 박 전 대통령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경찰력을 총동원한다는 입장이다. 탄핵 심판 선고 전후로 외부인이 헌재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벽으로 주변을 ‘진공 상태’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선고 당일 종로·중구 일대를 특별범죄 예방 강화구역으로 선포하고 8개 지역으로 나눠 질서 유지와 인파 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국민저항권 폭동 예고? 일각에서는 아무리 대비해도 폭력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1월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통해 예고편을 봤다는 것이다. 지난 1월18일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난동을 벌인 사건이다. 지지자들은 법원의 기물을 파손하고 영장 판사를 찾아다녔다. 법원이 공격당하는 사상 초유의 일에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이들은 ‘국민저항권’을 내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했다. 저항권은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라고 정의된다. 실정법상에 승인된 권리는 아니지만, 서부지법에 난입한 지지자들을 변호하는 변호사도 저항권을 언급하는 등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측의 핵심 개념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여기에 서울중앙지법의 구속 취소 결정으로 윤 대통령이 석방되면서 탄핵 기각을 외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간이 만료된 후 기소가 이뤄졌다고 보고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체포적부심사와 구속적부심사,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소요된 기간을 ‘일수’가 아닌 ‘시간’ 단위로 계산해야 한다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검찰이 즉시항고 등을 통해 법원의 결정에 이의 제기를 하지 않으면서 윤 대통령은 자유의 몸이 됐다. 또 재판부서 구속 취소 인용 배경으로 밝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 권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재판부는 수사 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현행법상 내란죄 수사는 경찰만 가능하다. 헌재의 탄핵 심판 선고는 물론 향후 윤 대통령의 내란죄 혐의 수사와 재판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나타난 셈이다. 특히 윤 대통령이 52일 만에 구치소서 나와 관저로 돌아가는 길에 차에서 내려 90도 인사를 하고 지지자들과 악수하는 모습 등이 탄핵 반대를 외치는 측의 집결을 부추기는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원로들 “헌재 판결 승복해야” 윤, 최후 변론서도 언급 안 해 실제 지난 9일 대통령 관저 인근서 열린 집회서 전 목사는 “윤 대통령이 석방되며 탄핵 재판은 하나 마나가 됐다. 끝났다”며 “만약 헌재가 딴짓을 했다? 국민저항권을 발동해 한칼에 날려버리겠다”고 발언했다. 사랑제일교회가 주도한 이날 집회에는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4500명이 모였다. 정치권의 행보가 탄핵 찬성과 반대 양측 모두를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판결 이후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마은혁 헌재 재판관 후보자를 빨리 임명해야 한다면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의 탄핵소추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지난 11일부터 윤 대통령에 대한 헌재의 신속한 파면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가용할 수 있는 투쟁 수단을 총동원해 여론전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장외투쟁을 비판하면서 민생을 지키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이 릴레이 시위를 진행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류하는 상황도 아니다. 일각에서는 지지자뿐만 아니라 정치권서도 헌재의 선고에 반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 10일에는 여야 정치원로 등이 국회에 윤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에 승복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채택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간담회 직후 발표한 성명문을 통해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위기에 빠져드는 대한민국을 구한다는 구국의 차원에서 모든 국민이 곧 있게 될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에 승복할 것을 적극 권고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앞서 다수의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위해 헌재서 어떤 판결을 내리든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윤 대통령의 최후 변론에 진정성이 담기려면 인용이든 기각이든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헌재 판결에 승복하겠다는 뜻을 밝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67분 동안 최후 변론을 할 당시 12·3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적극적으로 부인하면서도 헌재 판결 이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았다. 직무에 복귀하면 개헌, 책임총리제 등을 통해 권력을 분산하겠다는 구상만 밝혔을 뿐이다. 정치권이 부추긴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로 불씨를 던진 양쪽 진영의 갈등은 각종 변수를 발판 삼아 장작이 돼 활활 타오르고 있다. 보수, 진보 양측 모두 통합보다는 분열을 자양분으로 여론몰이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제 갈등 수위는 임계점까지 치솟았다. 헌재의 판결이 폭발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