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LH 사태 오버랩 내막

투기로 엎친 데…검풍 덮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형 사건 전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기 마련이다. 원인 규명을 위해 상황을 되짚다 보면 ‘시발점’이 된 사건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특정 사안이 거대한 후폭풍을 불러오기도 한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다. 정당의 행보는 4~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에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 선거는 ‘승자독식’ 구조로 돼있다. 말 그대로 이기는 쪽이 모든 영광을 갖게 된다.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선거 등 선출직의 수가 줄어들수록 그 집중도는 더욱 커진다.

승승장구하다
내리 2번 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탄핵 정국 이후 선거에서 승승장구했다. 2017년 3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된 후 보궐선거로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게 시작이었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말이 대선 기간 내내 나올 정도로 싱거운 싸움이었다. 

1년 뒤인 2018년 6월13일 열린 7회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압도했다. 총 8석의 광역시장 중 대구(자유한국당)를 제외한 7석을 싹쓸이했고, 총 9석의 도지사 중에서도 경북(자유한국당)과 제주(무소속)를 제외한 7석을 차지했다. 

21대 총선은 그야말로 민주당 잔치였다. 민주당은 180석(민주당 163석+더불어시민당 17석)을 확보하면서 ‘슈퍼여당’으로 거듭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개헌을 제외한 입법 활동에서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103석(미래통합당 84석+미래한국당 19석)으로 개헌 저지선(100석)보다 3석 더 얻는 데 그쳤다. 지역별 의석 수를 보면 민주당의 승리는 더 압도적이다. 서울에서 41석(총 49석), 경기에서 51석(총 59석), 인천에서 11석(총 13석) 등 수도권에서 의석을 싹쓸이했다. 

파죽지세로 선거마다 이기던 민주당이 고꾸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4월7일에 치러진 재보궐선거부터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의혹을 받아 사퇴하면서 다시 선거가 열린 것. 수도와 제2도시의 광역시장이 한꺼번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양당 모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선거가 됐다.

선거 앞두고 터진 악재
서울·부산 압도적 패배

민주당은 ‘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생긴 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개정하면서까지 서울과 부산에 후보를 냈다. 결과는 서울과 부산 모두 참패. 서울시장은 오세훈 후보, 부산시장은 박형준 후보가 당선됐다. 1~2위간 격차가 20%p 이상 나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민주당은 보궐선거 한 달 뒤인 지난해 5월12일 패배 원인을 자체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민주당 서울시당이 외부 조사기관에 의뢰해 진행한 ‘서울시 유권자 대상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보고서다. 그 결과 민주당 지지층이 재보궐선거에서 지지를 철회한 이유로 조국·검찰개혁 사태와 부동산·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문, 젠더 갈등 등이 꼽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 의혹 이른바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은 문재인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던 사안이다. 반면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보궐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불거졌다. 당시 20차례가 넘는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면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부동산 민심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LH 사태가 쐐기를 박은 것.


그 후폭풍은 대선까지 이어졌다. LH 사태로 드러난 ‘내로남불’이 대선 기간 내내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민주당은 대선에서 ‘정치신인’을 후보로 내세운 국민의힘에 0.7%p 차이로 졌다. 불과 24만표 차의 석패였지만 패자에게 가해진 타격은 어마어마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5년 만에, 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정권을 내주자 민주당은 내홍에 빠졌다. 문제는 민주당의 최근 행보가 향후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오는 6월1일 지방선거가 있고, 2년 뒤 22대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한 번 터지니
후폭풍 계속

대선에서 진 민주당으로선 지방의회와 중앙의회 권력을 내주게 되면 다시 정권을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지층과 반비례해 비토층 역시 견고해지고 있기 때문.

게다가 6월 지방선거는 차기 정부 출범 직후에 치러진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차기 정부에 일단 힘을 실어주자’는 여론을 뚫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위해 ‘오로지 직진 모드’에 돌입하면서 민심의 역풍을 맞는 모양새다. 검찰, 경찰, 심지어 대법원까지 검수완박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2년 동안 이미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진행하지 않았던 검수완박 입법을 문 대통령의 임기가 20여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밀어붙이는 것을 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각이 많다. 문정부 관련 수사, 이재명 상임고문 관련 수사 등을 검수완박 입법을 통해 무마하려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민주당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말까지 나온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검찰개혁의 마지막 단추라 여기고 있다. 출범 직후부터 검찰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왔던 문정부에 민주당은 입법으로 발을 맞췄다.

그 결과 경찰의 숙원이던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진보진영의 숙원이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설치됐다. 

모두 반대해도
무조건 통과?

현재 검찰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만 수사할 수 있다. 검수완박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찰의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마저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한 데 이어 172명 전원 발의로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다음 달 3일 문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법을 공포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속도전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결사 반대에 나섰고 김오수 검찰총장은 직을 걸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검수완박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법안의 위헌성까지 언급됐다. 


검찰 내부는 당연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기인 2003년 이후 19년 만에 전국 평검사 회의가 열렸으며 서울·대전·대구 등 전국 6개 고검장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의 권한을 이어받을 경찰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반대 입장이 속속 나오는 중이다.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속도 조절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강경파에 밀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여기에 민주당은 ‘위장 탈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민주당이 왜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지난 7일 국민의힘이 검수완박법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할 것을 대비해 양 의원을 법제사법위원회로 사보임했다. 국회법상 여야 동수 3명씩 총 6명으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는 최장 90일까지 법안을 심사할 수 있다. 법안이 안건조정위에 회부되면 문 대통령 임기 내 처리는 물 건너 가는 셈이다.

안건조정위는 조정위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안건을 곧바로 처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6명 중 비교섭단체 몫으로 양 의원을 임명해 안건조정위 비율을 4대2로 만들어 처리하겠다는 ‘꼼수’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위장 탈당’ 카드까지 
입법 폭주에 지지층도?

양 의원이 현재는 무소속이지만 민주당에 적을 뒀던 만큼 여당의 손을 들어주리라고 판단한 것.


이 꼼수는 민주당의 예상과 달리 양 의원이 검수완박에 반대 입장을 드러내면서 무너졌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20일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켰다. 무소속이 된 민 의원을 양 의원의 자리에 앉히려는 이른바 ‘위장 탈당’ 카드였다. 어떻게 해서든 안건조정위 회부를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민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검찰 정상화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까 싶어 용기를 냈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역할에 대비하려는 뜻”이라고 적었다. 양 의원은 민 의원의 탈당에 입장문을 내고 “다수당이라고 해서 자당 국회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하겠다는 발상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지적했다.

검수완박 입법은 지난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내놓으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박 의장은 미국‧캐나다 해외 순방 일정을 보류한 바 있다. 당시 검수완박 입법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됐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먼저 수용 의사를 밝힌 데 이어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도 중재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양당이 중재안을 모두 수용하기로 하면서 검수완박 법안은 임시회의를 거쳐 다음 달 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검수완박 입법 강행이 민주당 ‘폭망’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민주당의 다급한 행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 지지층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지층을 잡으려다 민심을 잃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집토끼 잡다
폭망의 시작?

부동산 문제는 문정부를 통째로 흔드는 뇌관으로 작용했다. 부동산 문제로 민심이 돌아선 이후 민주당은 중요한 선거에서 이미 두 번 패했다. 문정부 내내 화두였던 검찰개혁이 향후 민주당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20여일, 지방선거는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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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