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먹어도 고' 검수완박 무서운 후폭풍

남은 시간 4개월 검찰 명운 달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땅, 땅, 땅’ 의사봉 소리가 형사사법체계를 뒤흔들었다. 70년 넘게 이어온 체계가 대변혁을 맞이하면서 국민은 또 다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와 마주하게 됐다. 이제 검찰에 남은 시간은 4개월. 본격적인 속도전이 시작됐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거부권 행사는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일, 퇴임 전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공포했다. 문 대통령의 법안 공포로 73년 동안 유지된 형사사법체계가 큰 변화를 맞게 됐다.

퇴임 6일 전
속전속결 처리

문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현 정부의 검찰개혁 성과를 언급한 뒤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검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선택적 정의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국민의 신뢰를 얻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있어 국회가 수사와 기소의 분리에 한걸음 더 나아간 이유”라고 했다.

검찰은 물론 법조계와 학계, 시민단체 등에서 검수완박에 대한 저항이 상당했지만 문 대통령의 법안 공포로 검찰개혁이 마무리 수순을 밟는 모양새다.

문재인정부 초기부터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된 검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으로 권한이 축소된 데 이어 검수완박 법안 공포로 그나마 있던 권한도 빼앗길 위기에 처했다. 


검수완박 법안은 검찰의 직접 수사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현행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 참사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중요범죄’에서 ‘경제·부패 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중요범죄’로 수사 범위가 축소됐다.

시행령 등을 통해 직접 수사 범위 확대가 이뤄질 수는 있지만 법으로 못 박아 둔 만큼 큰 변화는 요원할 전망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검찰은 권력자의 직권남용이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포착해도 직접 수사할 수 없다. 다만 경찰 공무원과 공수처 공무원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수사 개시권은 검찰이 갖는다. 

현행 6개에서 2개로
9월부터 수사범위 축소

검찰청법 신설 조항 ‘검사는 자신이 수사 개시한 범죄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에 따라 수사 검사와 기소 검사도 분리된다. 다시 말해 경제·부패 범죄 등을 직접 수사한 검사는 관련 자료와 증거 등을 수사에 관여하지 않은 다른 검사에게 제시하고 기소 여부에 대한 판단을 받아야 한다. 

고발인의 이의신청권도 사라진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따르면 경찰이 사건을 자체 종결할 경우 고소인이나 피해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고발인은 불가하다. 여러 사안에 대해 고발을 진행하는 시민단체는 이 부분을 ‘독소조항’으로 꼽았다.

직접 수사 부서 현황 보고도 진행된다. 검찰총장은 앞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부서의 소속 검사‧수사관 등의 현황을 분기별로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검수완박 법안 시행 유예기간은 4개월이다. 6월 지방선거를 고려해 선거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 개시권은 12월 말까지 유지된다. 선거범죄는 공소시효가 6개월로 짧기 때문에 정확한 법리 검토와 신속한 증거수집이 필요하다.

이번 지방선거 이후 검찰의 직접 수사가 폐지되면 선거범죄수사가 부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민주당은 검수완박 법안 통과의 여세를 몰아 지난 3일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가칭 한국형FBI) 설치를 논의하는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구성안도 통과시켰다. 사개특위 구성 결의안에는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했다. 국민의힘에서 파기한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안 내용이 담겼다. 

70년 체계
한 달 만에

결의안에 따르면 사개특위는 검찰의 수사권을 넘겨받을 중수청 신설, 이에 따른 수사권 조정뿐만 아니라 모든 수사기관의 공정성·중립성 및 사법적 통제를 담보할 수 있는 방안 등 사법체계 전반에 대해 논의한다. 활동기한은 올해 말까지다. 국민의힘은 이날 본회의 표결 전 퇴장했다.

검찰은 헌법 소송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 수단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오수 검찰총장의 사표 제출로 총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는 박성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이 준수되지 않아 참담하다”고 밝혔다. 지난 3일 그는 “검수완박 법안의 내용 및 절차상 위헌성, 선량한 국민들께 미칠 피해, 국민적 공감대 부재 등을 이유로 재의 요구를 건의 드렸으나 국무회의에서 그대로 의결됐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검수완박 법안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상호 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 범위를 헌재가 판단하는 절차다. 검찰 역시 지난달 공판송무부를 중심으로 TF를 구성해 법안의 위헌적 요소를 검토해왔다. 

권한쟁의심판은 헌재 재판권 전원(9명)이 심리한다. 재판관 과반(5명 이상)의 찬성이 있으면 인용·기각·각하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국회의원이 심의.표결권 침해를 주장하며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심판이 받아들여진 판례가 있다. 1997년 노동법 등 ‘날치기’ 입법 사태와 2011년 이정희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한국정책금융공사법 등의 심의 중 반대토론이 묵살됐다며 제기한 청구 관련 판례다.

검찰 역시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시기는 법무부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점인 차기 정부 출범 이후로 예측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줄곧 반대 입장을 고수한 바 있다. 

한 후보자는 지난 4일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양항자 의원실이 확보한 청문회 답변자료에서 “검수완박 법안의 무리한 입법 추진으로 범죄자들은 죄를 짓고도 처벌받지 않고 힘 없는 국민만 피해를 볼 수 있는 제도적 허점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검찰 대응
헌재에 달려

이어 “검찰의 직접 보완수사나 보완수사 요구가 폐지된다면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진다”며 “중요범죄의 대응 역량도 저하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수사가 불가능해지면서 일반 서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시간이다. 9월이 되면 검찰의 6대 범죄수사권 중 3개가 사라진다. 검찰 안팎에서는 4개월 안에 주요 수사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의견과 무리라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통상 검사가 일반 사건을 처리하는 데 2~3개월이 걸리는 만큼 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는 반면 전문적인 법률 검토 등에 4개월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엇갈린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월성 원전 의혹,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에 대한 수사는 계속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이 수사 중인 사건은 지방경찰청이 승계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부칙이 본회의 통과 때 빠졌기 때문. 대장동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서,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서울동부지검에서 맡고 있다.

이 부분을 두고도 검찰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 사건,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으로 4개월 안에 검찰의 수사능력을 확실하게 증명해 법안의 부조리함을 알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검수완박 법안이 공포된 직후 이미 수사 동력을 상실했다는 의견이 나온다. 별건 수사를 금지하는 조항이 형사소송법에 신설된 만큼 수사 과정에서 다른 혐의가 나오더라도 수사 확대가 어려워진 점도 회의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검수완박 법안 공포와는 별개로 ‘검찰 독립성 강화’라는 공약을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지난 3일 서울 통의동 기자회견장에서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국민께 드리는 약속’을 공개했다. 국정과제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 공약 등 검찰 권한 복원 공약이 대부분 그대로 추진된다. 

부칙 빠져 대장동·블랙리스트는 계속 수사
“수사 능력 증명” vs “이미 끝났다” 갈려

수사지휘권 폐지를 위해서는 검찰청법 8조를 개정해야 하지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반대하고 있다. 인수위는 장기적으로 법안 개정을 추진하되, 법 개정이 안 되더라도 수사지휘권 행사를 제한한다는 방침이다. 한동훈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인터뷰에서 수사지휘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 예산 편성과 배정 사무를 법무부에서 대검으로 이관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대신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을 의무화해 국회가 직접 검찰을 통제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 시행령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또 경찰은 경찰 수사 단계를, 검찰은 검찰 수사 단계를 책임지는 검경 책임수사 시스템도 구축한다. 

공수처법 24조 폐지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경찰에 대한 공수처의 우월적 권한을 없애겠다는 것.

공수처법 24조는 ▲공수처로부터 이첩을 요청받은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인지한 경우 즉시 공수처에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부분 역시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윤 대통령은 시행령을 통해 무력화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권한이 집중된 검찰개혁은 필요하지만, 검수완박은 경찰에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형태로서 방향이 잘못돼 바로잡아야 한다”며 “향후 검경 수사권이 상호 견제‧균형이 바로 잡히게 제대로 정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검찰 권력이 약해진 만큼 상대적으로 많은 권한을 갖게 된 경찰이 권력형 비리 사건 수사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최근 경찰은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앞서 경찰은 이 사건을 불송치했다가 고발인의 이의신청 후 검찰로부터 보완수사 요구를 받았다. 9월 이후에는 경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 재차 불송치 판단을 내리면 검찰은 추가 수사를 할 수 없다.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의 부인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도 경찰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국민의힘은 이 상임고문과 김씨, 전직 5급 공무원 배모씨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이 사건도 9월 이후 경찰이 불송치 할 경우 검찰은 수사가 불가능하다. 

차기 정부
그대로 간다

경찰은 역량을 증명하겠다는 입장이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검수완박 법안 공포 후 “범죄수사가 차질 없이 이뤄져 국민께서 느끼는 불편이 최소화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게 임하고, 검찰과 상호 존중, 협력을 통해 일각에서 제기하는 우려를 해소해 국민의 더 많은 신뢰를 받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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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박 터질’ 11월 국회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9월 정기국회 첫날부터 한복과 상복으로 기싸움을 벌이던 여의도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12월 정기국회 종료까지 겨우 한 달 남았지만 여야 간의 파열음은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은 개혁 추진 동력을 얻기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에 질세라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거대 여당의 폭주에 맞서겠다며 맞불을 놨다. 고성과 퇴장이 난무하던 이재명정부 첫 국정감사(이하 국감)가 종합감사만 남긴 채 막바지에 돌입했다. 수많은 안건 속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언급된 건 김현지·조희대 두 사람의 이름이다. 여전히 베일에 싸인 김현지 제1대통령실 부속실장과 사퇴 압박에도 꼿꼿하게 버티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국감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김현지 조희대 오는 6일 열리는 국회 운영위원회가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한 종합감사에 김 실장 이름을 증인으로 올렸지만 끝내 불발됐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김 실장을 증인으로 불러 모든 의혹을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감사가 아닌 정치공세”라며 이를 거부했다. 민주당은 김 실장이 국감 당일 오전 또는 오후 1시까지만 출석할 수 있다고 밝혔고 ‘반반 출석’ 논란을 키웠다.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김현지 증인 출석을 놓고 민주당이 내놓은 안은 오전 출석, 오후 불출석이라고 하는데 국감이 치킨인가? 반반 출석하게”라며 “김 실장 한 사람을 지키려고 하니 이런 코미디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이 ‘김현지 흔들기’에 나서자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을 도마 위에 올렸다. 민주당은 “국감이 끝난 이후 사법개혁을 처리하겠다”며 조 대법원장이 스스로 거취를 정할 수 있는 데드라인을 그어줬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이번 사법개혁안은 제왕적 대법원장의 전횡을 막고 재판의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기 위한 사법정상화법이다. 사법 독립성과 책임성을 두텁게 하고 국민의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사법부 장악 논란을 사전에 잠재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혁신당 조국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법원이 조 대법원장의 사퇴 요구를 외면할 경우 탄핵을 포함한 모든 법적·정치적 수단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두 사람의 이름은 오는 12월 정기국회를 마치고 해를 넘겨서도 호명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를 겨냥해 상대편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지겠다는 전략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김건희 특검이 12월까지 갈 것으로 봤는데 조희대라는 새로운 공격 포인트가 생겼다. 민주당이 쉽게 놔주지 않을 것”이라며 “‘내란 세트’로 묶어서 지방선거까지 끌고 가겠다는 심산이다. 내란이라는 키워드만큼 국민의힘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반면에 민주당은 부동산 실책이 뼈아프다. 그걸 덮기 위해 조 대법원장을 계속해서 끌어들일 것”이라며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추경호 의원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면 이제 그쪽을 노리지 않겠나? 여아가 머리채만 안 잡았지, 아마 역대급 국회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야 ‘사이좋게’ 하나씩 쥔 약점 특검 앞 권성동·추경호 운명은? 추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회의 계엄해제 의결을 방해한 혐의로 첫 조사를 받았다. 특검은 당시 원내대표였던 추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의원총회 장소를 여러 차례 변경함으로써 고의로 표결을 방해했는지를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날 추 의원은 조은석 내란특검에서 진행되는 1차 피의자 소환조사에 응해 “무도한 정치 탄압”이라며 “당당하게 특검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권성동 전 원내대표의 첫 재판은 오는 3일로 예정돼있다. 권 전 원내대표는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아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처럼 각종 악재가 국민의힘을 단단히 휘감자 부동산으로 한차례 휘청한 민주당이 반사이익 효과를 볼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여기에 여론조사 대납 의혹을 받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의 대질이 오는 8일 예정돼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 판까지 흔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는 5일부터 시작되는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놓고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정부 출범 후 첫 예산 심사로 국민의힘은 지역사랑 상품권 등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지역 화폐를 겨냥해 맹공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민주당 주도로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민의힘이 크게 반발했고, 지난 8월 정부 예산안이 공개되면서 본격적으로 ‘이재명식 포퓰리즘’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5일 있을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6∼7일 이틀간 종합정책질의를 실시할 예정이다. 10~11일에는 경제부처, 12∼13일에는 비경제부처 부별 심사가 진행되고 17일에는 소위원회 예산안의 감·증액을 심사하는 예산안조정소위가 가동된다. 각 소위의 논의를 거친 예산안은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본회의에 상정된다. 예산안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매년 12월2일이지만 늘 그렇듯 여야의 예산 샅바싸움으로 해당 날짜를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정부는 지난 8월 728조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올해 본예산에 견줬을 때 8.1% 늘어난 규모다. 이 대통령은 초혁신 경제 분야 등에 큰 폭으로 투자해 경제의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예산안이 의결되던 날 이 대통령은 “지금은 어느 때보다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려서 농사를 준비하는 게 상식이고 순리”라고 말했다. 역대급 규모 쩐의 전쟁 이어 “현재 우리 경제는 신기술 주도의 산업 경제 혁신, 그리고 외풍에 취약한 수출 의존형 경제의 개선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는 내년도 예산안은 이런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경제 대혁신을 통해 회복과 성장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설명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AI 투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은 AI 3대 강국을 강조한 만큼 예산 역시 이에 맞춰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10조1000억원으로 책정했다. 자동차·조선, 반도체 등 주요 산업에 AI를 접목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용 AI 모델 등 ‘피지컬 AI’ 분야에도 집중 투자를 예고했다.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예산은 지난해보다 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이다. 역대 규모인 이번 예산 중 10조6000억원이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제조 등 6대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투입된다. 이 중에서도 국민의힘은 26조2000억원으로 책정된 ‘민생경제 회복과 사회연대경제 기반 구축’ 부문을 눈여겨보고 있다. 정부는 24조원 규모로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을 지원하고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국비 보조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은 24조원은 총 발행되는 상품권의 액면가이며 이 중 3~7%를 예산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예산은 4000억원으로 도합 4조5000억원 규모로 책정됐다. 또 정부는 연 매출 1억4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 230만개 사에 경영안정 바우처 25만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민 부담 가중 청구서’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이정부 예산이 올해보다 8.1% 늘어난 728조원 규모로 편성됐다. 조세감면까지 포함하면 실질 지출은 무려 808조5000억원에 달한다”며 “내년도 국가채무는 1415조원, 2029년에는 무려 1789조 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9.1%에서 내년 51.6%, 2029년에는 58%까지 치솟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난 문재인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 비율이 33.9%에서 46.8%로 뛰어올랐는데 이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는 나랏빚을 통제하기는커녕, 폭발 직전까지 끌어올릴 심산”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거짓 선동”이라며 민생 최우선에 초점을 맞췄다고 반박했다. ‘올려’ ‘내려’ 본회의 난타전 쟁점 법안 처리 여부도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은 사법개혁을 위한 법 왜곡죄를, 국민의힘은 이정부의 부동산을 겨냥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를 밀어붙이고 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각각 법 왜곡죄를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판·검사가 증거를 조작하거나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등 잘못된 사실관계에 법을 적용해 기소나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 법 왜곡죄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지난달 28일 국정감사 대책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사법개혁안에 대해 “이번달 까지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백혜련 사법개혁특별위원장도 MBC 라디오를 통해 “특위에서 낸 5대 개혁안은 상당한 공감대가 이미 이뤄져 있다”며 “당내, 국민적으로 그리고 법원과도 대법관 증원 문제 빼고는 의사소통이 이뤄졌다. 법사위 논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면 이번 정기국회 내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개혁 골든타임을 절대로 실기하지 않고 연내에 반드시 마무리 짓겠다”며 힘을 실었다. 헌법 제84조이자 형사소송법 개정안인 ‘대통령 재판중지법’에도 군불을 땠다. 법사위 국감에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이 “이 대통령 파기환송심은 다시 기일을 잡아 (재개)할 수 있느냐” 고 물은 데 대해 김대웅 서울고등법원장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답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에 발생한 범죄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당시 사법 리스크 족쇄를 풀지 못한 이재명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대통령의 불소추특권’ 조항을 놓고 여러 갈래의 해석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법안이 당론은 아니라면서도 향후 사법부의 행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압박에 나섰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YTN 라디오를 통해 “많은 국민이 지난 국감에서 서울고등법원장의 발언을 보고 깜짝 놀라셨을 것”이라며 “벌써 몇 달째 계류 중인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이 만들어주신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사법개혁? 부동산? 마음은 지선 노발대발 ‘쇼츠각’ 잡는 의원들 거대 여당인 민주당이 의석수로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국민의힘은 막아낼 도리가 없다. 대신 국민의힘은 부동산 규제를 파고들면서 이정부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향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재건축 활성화의 핵심인 재초환은 재건축으로 얻은 초과이익에 부담금을 부담하는 규제다. 앞서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당 차원의 결정은 아니”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예상보다 후폭풍이 크자 신중론을 내세운 것이다. 여당의 갈지자 부동산 행보가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민의힘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10·15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국민적 비난과 여론의 뭇매로 궁지에 몰리자 이제야 국민의힘이 줄곧 주장해 온 재초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한다”며 “이미 김은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해 놨다. 정기국회에서 재초환 폐지 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 처리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감에서 재초환 유지 방향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여야 간 이견만 커지는 모양새다. 민주당 이연희 의원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재초환 폐지는 투기 광풍을 불러올 조치기 때문에 결코 안 된다.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에 김 장관은 “공감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은 재초환 폐지를 정기국회 내 처리하자는 국민의힙 요구에 대해 “원내 중심의 대화를 기대한다”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다. 다만 더 이상 부동산 문제로 자책골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한 만큼 국민 여론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당인 민주당이 언제까지나 ‘신중하게’ 입장을 보류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국민의힘 페이스에 말려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기류가 흐르는 만큼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여야의 강대강 대치는 불가피해 보인다. 지난달 26일 국회가 이례적으로 국감 도중 본회의를 열고 비쟁점 민생 법안 70여건을 일괄 처리하면서 협치의 물꼬가 트이나 싶었지만 또다시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는 형국이다. 앞서 민주당은 APEC 주간을 앞두고 국민의힘을 향해 “무정쟁 주간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국민의힘은 “경제 참사·부동산 참사를 덮기 위한 침묵 강요이자 정치적 물타기”라고 오히려 비판 수위를 높였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이정부와 민주당이 독선과 독재를 멈추고 정치를 회복시키면 정쟁은 없어진다”고 훈수했다. 손 내밀어도 고개만 팽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인 민주당은 정부의 외교 성과를 띄우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야당으로서 잘한 것과 아쉬운 것을 구분해 견제해야 하는데 지금 의원 한 명 한 명이 국회를 자기 정치의 장으로 쓰고 있다”며 “내년 지방선거 영향이 크다. 선거를 앞뒀는데 어떤 정당이든 서로 의견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회의감을 내비쳤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