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한동훈 집요한 평행이론

승천한 용의 칼 물려받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3·9 대선으로 진보-보수 집권 10년 주기설이 깨졌다. 탄핵 정국 이후 진보 진영이 정권을 잡은 지 5년 만에 공수가 바뀌게 됐다. 특히 검찰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미묘한 지각변동이 느껴진다. 그 중심에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문재인정부 들어 꽃길과 가시밭길을 동시에 걸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깜짝 발탁된 데 이어 검찰총장으로 임명됐다. 박근혜정부 시절 대구고검으로 좌천돼 한직에서 보낸 시간을 전부 보상받는 듯했다.

대선 승리로
칼자루 잡아

윤 당선인의 꽃길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검찰총장이 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윤석열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의혹에 칼을 댔다. 전격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수사에 돌입하면서 윤 당선인은 문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기에 이른다.

광화문과 서초동에 각각 수십만~수백만의 시민이 모여 ‘조국 수호’와 ‘조국 구속’을 외쳤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윤 당선인 앞에 본격적으로 가시밭길이 펼쳐졌다. 검찰인사에서 주변 측근들이 ‘추풍낙엽’처럼 썰려 나갔고, 본인도 검찰총장 권한이 축소돼 뼈아팠다. 전쟁과도 같은 갈등 상황은 1년 넘게 이어졌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대립에 국민이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였다.

결국 윤 당선인은 지난해 3월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 같은 해 11월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지난 9일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윤 당선인의 승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정부 검찰총장이 상대당의 대선후보로 출마한 것도 충격인데 5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냈기 때문.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진 집권 10년 주기설도 깨졌다. 문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상황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진 부분도 눈여겨볼 만하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임기를 두 달 남긴 현재도 40% 안팎을 넘나들고 있다.

사상 첫 레임덕 없는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정권교체를 당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0.73%p, 24만7000표라는 역대 최소 득표 차. 대선 결과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층의 막판 결집이 대단했다’는 평이 나왔다. 여론조사 상으로는 윤 당선인이 이재명 대선후보에 비해 우세한 결과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거는 승자독식 체제다.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막강하다.

국회 의석은 민주당이 172석으로 다수 당이지만 대통령은 국민의힘에서 배출되면서 공수는 이미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다. 대통령의 힘은 인사권에서 나온다. 오는 5월 윤 당선인 취임 이후 정부부처, 산하기관의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특히 윤 당선인의 ‘친정’인 검찰은 이미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정권교체로 공수 뒤바뀌어
검찰 내부 분위기 뒤숭숭

이규원 춘천지검 부부장검사는 대선 이튿날 사의를 표명했다. 이 검사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 접대 의혹’과 관련한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후 불법으로 출국금지 조처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과 징계 절차가 진행 중인 만큼 이 검사의 사표가 곧장 수리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럼에도 대선 결과가 나온 다음 날 이 검사가 사표를 낸 사안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김오수 검찰총장의 거취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법으로 보장된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이다. 김 총장은 내년 5월31일까지 검찰총장직을 수행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이 취임하고 1년 이상 동행해야 한다. 현재 임기 10개월 차인 김 총장이 2년 임기를 모두 채울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국민의힘 측에서는 김 총장이 먼저 거취 표명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사퇴를 압박하는 취지로 풀이됐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윤 당선인이 검찰의 독립성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고 맞섰다.

김 총장은 “법과 원칙에 따라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사실상 사퇴 거부다.

검사의 사의 표명, 검찰총장의 거취 등을 두고 검찰 안팎이 뒤숭숭한 중에 윤 당선인 이상으로 관심을 받는 인사가 있다. 바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이다.

검사 사의
총장 나가?

한 부원장의 이름은 윤 당선인과 함께 언론은 물론 정치권 관계자, 누리꾼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한 부원장이 문정부 관련 사건,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 등 대형 사건의 수사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부원장은 문정부 들어 온탕과 냉탕을 오갔다. 일각에서는 부침의 정도로만 따지면 윤 당선인보다 더 심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 추 전 장관 취임 이후 검찰인사 때마다 좌천을 거듭해 특수통 검사였던 그가 비수사 부서로 밀려났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 휘말렸고, 이 과정에서 압수수색을 하러 온 검사에 독직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1973년생인 한 부원장은 1995년 22세 나이로 사법시험에 합격, 2001년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 검사로 평가받는다. 특히 굵직한 사건에 참여해 재벌 총수 등 거물급 인사를 구속시키는 데 일조하면서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평검사 시절 SK그룹 분식회계 사건과 불법 대선자금 수사, 현대자동차그룹 비리 수사 등에 참여했다. 2007년에는 뇌물수수 혐의를 받은 현직 국세청장을 구속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윤 당선인과 여러 차례 호흡을 맞춘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특검팀에 합류했다.

2017년 문정부가 출범했을 때부터 한 부원장은 윤 당선인과 함께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윤 당선인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을 때는 3차장 검사로 이름을 올렸다. 2018년 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을 구속 기소한다고 발표한 것도 한 부원장이었다.

요직 있다
나락으로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으로 임명됐을 때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발탁됐다. 반부패‧강력부장은 검찰 내 ‘빅4’로 꼽히는 요직이다.

거기까지였다. 윤 당선인이 추 전 장관과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한 부원장 역시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2020년 1월 추 전 장관의 첫 검찰인사, 이른바 ‘검찰대학살’ 당시 부산고검 차장으로 좌천된 데 이어 법무연수원 용인분원→법무연수원 진천본원→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거듭 인사를 당했다.


부산고검으로 좌천된 이후엔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검언유착’ 의혹에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취재 과정에서 한 부원장을 언급하며 취재원을 협박했다는 내용이다. 한 부원장은 줄곧 결백을 주장했다.

실제 수사팀은 한 부원장과 이 전 기자의 공모를 입증하지 못했다. 

해당 수사와 관련해 휴대전화 유심을 압수하려다 한 부원장의 몸을 눌러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로 기소된 정진웅 전 울산지검 차장검사는 독직폭행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정 전 차장검사에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이후 정 전 차장검사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인사 조치됐다. 

거듭된 좌천에도 한 부원장은 검찰을 떠나지 않았다. “검찰에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는 취지의 인터뷰가 보도되기도 했다. 윤 당선인의 대선 승리로 한 부원장이 오는 8~9월 검찰 정기인사 때 수사 부서로 이동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의 ‘중용 0순위’가 한 부원장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4번 좌천되고도 버텨
서울중앙지검장 가나?

실제 윤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부원장을 지칭하며 “이 정권(문정부)에서 피해를 보고 거의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며 “중앙지검장이 되면 안 된다는 얘기는 일제 독립운동가가 정부 중요 직책을 가면 일본이 싫어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랑 똑같은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한 부원장의 거취를 두고 벌써부터 신경전이 팽팽하다. 민주당에서는 한 부원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윤 당선인과 한 부원장이 엄청 가까운 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서울중앙지검이라는 게 어떤 데냐면 지금 윤 당선인 본인을 포함해 그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사건들, 이런 다수의 사건이 존재하는 곳인데 거기 그렇게 어마무시하게 특별한 관계인 사람을 검사장으로 앉힌다는 것은 사건의 공정한 수사를 담보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한동훈 검사에 대해서 어떤 인사 계획도 나온 게 없는데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한동훈 검사가 공무상 잘못한 것이 있다면 배제를 주장해도 된다. 그런데 민주당이 한동훈 검사를 집단 린치 해놓고 이제 와서 자신들의 집단 린치 과거가 마음에 걸리니까 불이익을 주자는 것이라는 이게 바로 2차 가해”라고 반박했다.

일각에서는 윤 당선인과 한 부원장이 평행이론이 언급된다. 윤 당선인은 국정원 댓글 수사팀장 시절 국정감사에서 상부의 외압을 폭로한 뒤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후 대구고검으로 좌천돼있던 그를 박영수 전 특별검사가 중앙으로 이끌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특검팀에 수사팀장으로 불러들인 것. 

당겨주면
날아오를까?

특검팀 합류 이후 윤 당선인은 훨훨 날기 시작했다. 현재 한직으로 밀려나 있는 한 부원장 역시 윤 당선인의 부름을 받아 그와 비슷한 길을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부원장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는 이미 검찰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태풍의 눈’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오는 8~9월 검찰인사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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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