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통령령(시행령)과 부령(시행규칙)이 법률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될 시 국회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조 의원은 개정안 발의 배경에 대해서 “하위법인 대통령령이나 부령이 상위법인 법률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거나 입법 취지에서 일탈할 경우 통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 속에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직속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하기 위해 정부조직법을 시행령(대통령령)으로 우회했고 윤 대통령이 지난 5월3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기업활동·경제활동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며 “대통령령과 부령으로 할 수 있는 규제들은 신속하게 처리하겠다”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즉, 윤 대통령이 법률이 아닌 시행령(대통령령)으로 우선 여소야대의 어려운 정국을 극복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조 의원이 윤 대통령의 시행령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로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볼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 발의에 대해 윤 대통령은 “시행령 내용이 법률의 취지에 반한다면 국회에서는 법률을 구체화하거나 개정해서 시행령을 무효화할 수 있다”며 “시행령은 대통령이 정하는 것이고, 시행령 문제 해결 방법은 헌법에 정해져 있는 절차와 방식대로 하면 된다”고 반대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국회법 개정안은 대선 불복이라고 주장하며 “민주당 일부 의원이 협치와 견제라는 미명 하에 국회법 개정, 즉 정부완박(정부 권한 완전 박탈)을 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나 여당 대표가 이처럼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당장 시행령을 개정해 만든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에 제동이 걸려 시행령 통치로 정국을 돌파하려던 윤석열정부가 큰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국회 의석 170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면 국민의힘이 이를 저지할 방법이 없지만,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윤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입법 저지는 할 수 있다.
헌법 개정은 국회 의결(재적 2/3 이상 찬성)을 거쳐 국민투표(과반 이상 찬성)로 효력이 발생하지만, 법률 개정은 국회 의결(1/2 이상 참석, 1/2 이상 찬성)을 거쳐 대통령이 서명·공포해야 그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5년에도 당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시행령 수정이 가능한 국회법 개정안을 처리했다가 이를 ‘배신의 정치’로 간주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막혀 무산된 바 있다.
거대 야당이 정부 발목을 잡는 것도 큰 문제고, 정부가 행정기관 권한을 위탁할 수 있도록 한 정부조직법을 근거로 대통령령과 부령을 고쳐 인사혁신처장의 인사검증 권한을 법무부로 넘긴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부의 행정권을 흔드는 야당이나 국회의 입법권을 흔드는 정부나 지금 둘 다 우리 국민으로부터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법은 헌법→법률→대통령령(시행령)→총리령(시행규칙)→조례·규칙 체계로 구성돼있으며,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통치구조에 관한 근본 법규의 총체고, 법률은 헌법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한 법으로 둘 다 상위법이다.
대통령령(시행령)은 법률의 세부적인 사항을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이고, 총리령(부령, 시행규칙)은 국무총리가 법률이나 대통령령의 위임 또는 직권에 의해 내리는 명령이다. 조례·규칙은 지방자치단체의 의회에서 제정하는 자치법규를 말한다.
우리나라 법 체계에 나타나듯이, 국회가 만든 법률을 정부가 시행령(대통령령)으로 구체화할 수는 있지만, 시행령이 법률 취지와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법률이 시행령보다 상위법이니 궁극적으로는 법률과 시행령 싸움에서 법률이 이길 것이고, 그래서 거대 야당과 정부 싸움에서도 야당이 이길 것이다.
그러나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패한 야당이 직접선거로 뽑은 대통령의 발목을 계속 잡는다면, 우리 국민으로부터 입법독주에 국정 발목잡기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통합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민주당도 국회법 개정안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정부도 논란 많은 시행령 통치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이번 국회법 개정안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권성동 원내대표와 달리, 이준석 대표는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직을 국민의힘에 넘겨 입법독주를 하지 않겠다는 신뢰만 준다면, 굳이 대통령이 시행령 통치를 할 이유도 없고, 국회법 개정안 역시 폭넓게 서로 얘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시행령 통치로 국정운영을 한다는 게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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