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동대문구 전세 사기 피해자 고소장 공개

분양사기 말고 전세 사기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피해자는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마음의 고통은 몸으로도 나타났다. 전화는 꼬박꼬박 받으면서도 돈을 내주지 않는 가해자에 화병이 돋을 지경이었다. 이 같은 상황이 2019년부터 벌써 6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제 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홍모씨의 구속 소식을 전해 들은 피해자 A씨가 되물었다. A씨는 서울 성북구, 동대문구 등 7개 현장서 일어난 분양 사기 사건의 피해자가 아니다. 해당 사건에 관한 기사를 보고 자신도 홍씨의 피해자라면서 연락해 온 전세 사기 피해자였다.

한숨 돌렸지만…

<일요시사>와 만난 A씨는 이 일을 겪으면서 건강이 많이 나빠졌다고 토로했다. 전세 세입자로 입주해 경매를 거쳐 원치 않게 집주인이 되기까지 6년 동안 일어난 일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했다. 문제는 이 마음고생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A씨는 “(홍씨는)전화는 다 받아요. 피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돈은 안 주는 거죠”라고 말했다. A씨의 아내는 홍씨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묻곤 했다. A씨는 홍씨의 뻔뻔한 대응에 스트레스를 받는 아내를 보면서 안쓰러움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아내에게)전화하지 말라고 말하긴 하는데….”

지난해 7월 A씨는 홍씨를 상대로 보증금 반환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전세 보증금 2억2600만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이다. A씨는 등기부등본상의 소유주가 아닌 홍씨를 실소유주로 지목했다. 등기부등본에 소유주로 돼있던 최모씨는 홍씨에게 명의를 빌려준 이른바 ‘바지’라고 주장했다.


2019년 4월 A씨는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한 빌라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보증금은 2억2500만원, 계약 기간은 2년으로 2021년 5월까지였다. 문제는 신탁사의 존재였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신탁등기가 된 주택은 들어가지 않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권리관계가 복잡해지고 문제가 발생하면 보증금 반환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A씨는 부동산 임대차 계약서에 포함된 ‘신탁 및 근저당권은 잔금과 동시에 말소하기로 한다’는 특약을 믿었다. 공인중개사도 “홍씨가 업자니까 잔금을 치르면서 신탁등기를 말소한다. 보통 그렇게들 한다”고 했다. A씨는 계약서와 공인중개사를 믿고 그해 5월 잔금 2억원을 지급한 뒤 해당 빌라에 입주했다.

하지만 신탁사로 넘어간 소유권은 A씨 부부가 입주한 뒤는 물론 첫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도 유지됐다. A씨 부부가 이 부분에 대해 항의하자 홍씨는 2021년 6월 ‘약속 이행 각서’를 작성해줬다. 이미 이 시기 최씨 대신 홍씨가 실소유주로서 A씨 부부와 대화를 나눈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홍씨의 자필 각서에는 “본인은 답십리동 (해당 세대의 주소) ○○○씨(A씨) 은행권의 신탁 대출 연기로 인해 2021년 6월11일까지 일천구백(1900만원) 우선 변제하며 이자 부분 2달치 (선입금)을 6월14일까지 지불해 늦어도 2021년 8월14일까지 신탁 말소한다”라고 쓰여있다.

전세 기간이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보증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A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2년 더 계약을 연장했다. 보증금은 100만원 올려 2억2600만원, 계약 기간은 2023년 5월까지 똑같이 2년이었다. 두 번째 임대차 계약서에도 ‘신탁등기 해지’ 문구가 들어갔다.

홍씨가 써준 이행 각서 내용대로 2021년 8월14일까지로 날짜도 못 박았다.

하지만 두 번째 전세 계약이 끝날 때까지도 홍씨의 약속은 어떤 것도 이행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월에는 A씨가 살고 있던 집의 공매 절차가 시작됐다. 공매가 진행돼 다른 사람이 집을 낙찰받게 되면 A씨 가족은 보증금은커녕 꼼짝없이 길가에 나앉을 판이었다.


<일요시사> 보도 보고 연락
경매 넘어간 집 결국 낙찰

홍씨는 이때에도 확인서를 작성해 준 것으로 파악됐다. 공매 절차가 시작되고 3개월 후인 지난해 4월에 작성한 것이다. 확인서에 따르면 홍씨는 A씨의 보증금에 대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했다. 또 A씨가 집을 낙찰받을 경우 부동산의 시세, 낙찰대금을 참작해 모든 손해를 배상하겠다고도 했다.

결국 A씨는 지난해 4월 2억9100여만원에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을 낙찰받았다. 졸지에 집주인이 된 것이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지난해 6월에야 신탁사로 돼있던 소유권이 A씨로 바뀌었다. 2억2600만원의 보증금에 2억9100여만원의 매매대금 등 총 5억원이 넘는 돈을 집에 쏟아부은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A씨가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로부터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다. 국토부는 A씨를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4호 다목에 따라 전세 사기 피해자로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임차인으로서 임차주택을 인도받았으며 전입신고를 하고 그 임대차계약증서상의 확정일자를 받은 자로서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국토부 장관이 결정한 임차인’을 전세 사기 피해자로 명시하고 있다.

국토부의 결정으로 당장 은행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거나 현재 사는 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 하는 등의 급박한 상황에서는 일단 벗어났다. 하지만 아직 받지 못한 보증금 문제가 남았고 무엇보다 2019년부터 이어진 마음고생은 보상받을 길이 없는 상태다.

A씨는 “집값이라도 오르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것 같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형사 고소와 민사소송 등 수사기관의 움직임이 더딘 것도 A씨로선 힘든 대목이다. A씨는 지난해 4월 실소유주 홍씨, 바지 최씨, 공인중개사 최모씨 등 3명을 사기죄의 공범으로 고소했다. 또 홍씨와 공인중개사 최씨는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죄를 적용했다.

홍씨 등이 공모해 문제가 된 집의 신탁등기를 말소할 것처럼 A씨를 기망하고 보증금을 편취했다는 주장이다. A씨는 “공인중개사와 바지 소유주는 무혐의, 홍씨만 검찰에 넘겨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보증금 반환 관련 민사소송은 아직 경찰 수사 단계다.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로 현재 송파경찰서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최근에야 경찰로부터 한 차례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홍씨가 구속된 이후다.

수사 지지부진

A씨는 “우리 말고도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을 잘 몰랐다. 이전까지는 왜 홍씨가 구속되지 않고 계속 활개 치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라도 구속돼서 정말 다행”이라며 “경찰이 조금 더 노력해서 홍씨가 지은 죄에 걸맞은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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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