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 ‘트럼프 취임식 직관기’

MAGA 시대를 마중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다시’ 트럼프 시대가 도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뒤 1기 때보다 더 강한 행보를 공언했다. ‘Make America Great Again(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세계 질서 재편에 나섰다. <일요시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을 만나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8년 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던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포부와 함께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의 당선을 예측하지 않았지만 당선 이후 행보는 더더욱 예상 밖이었다.

4년 만
재집권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고 불법 이민자를 추방했다. 미국에 무역 흑자를 기록한 나라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지도자가 관례, 관행처럼 따르던 선을 서슴없이 넘나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없는 언행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지지 세력과 반지지 세력 모두를 자극했다.

재선에 도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밀려 낙선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성추문 의혹으로 기소되는 등 송사에 휘말렸다.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한 선거를 ‘부정선거’로 단정 짓고 ‘STOP THE STEAL’을 외치며 국회의사당을 점거, 폭동을 일으켰다.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을 대신해 민주당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크게 이겼다. 31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고 전국 득표율에서도 상대 후보를 200만표 차로 따돌렸다. 상·하원 의석수도 공화당이 우세한 상황이라 의회 권력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힘을 싣고 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각)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은 4년 만에 세계 패권국의 수장으로 다시 올라선 그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이날 취임식은 원래 국회의사당 앞 야외 무대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한파로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국회의사당 중앙홀로 장소가 바뀌었다.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600여명, 인근 체육관 ‘캐피털 원 아레나’에 2만여명이 실내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을 지켜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의사당서 취임식을 진행한 이후 캐피털 원 아레나로 이동해 즉흥 연설을 펼쳤다. 지지자들 앞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사용한 펜을 던져주는 ‘쇼맨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캐피털 원 아레나 메인 좌석서 취임식을 지켜본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은 “우아하고 장엄했다. 생동감 넘치는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의 공식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김회창 박사(미국 공화당 필승 한인팀 총회장), 박문희 예당미디어 대표, 임주영 중국 목포그룹 대표 등이 함께했다.

유 원장은 지난 1985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에 현역 의원 자격으로 참석했던 바 있다. 당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1년 당선된 뒤 4년 뒤 재임에 성공했다. 유 원장은 그 시기를 “(자신의)정치적 변곡점”이라고 언급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난 것이다.

공화당 하원의원 직접 초청으로 참석
국내 참석자 중 가장 가까운 메인 좌석

전두환정권의 정치 탄압을 피해 1982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 전 대통령은 3년 만인 1985년 2월 총선을 사흘 앞두고 귀국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미국으로 갔던 유 원장은 워싱턴 D.C.가 아닌 LA로 날아가 김 전 대통령을 만났고, 1985년 1월19일 귀국 기자회견에 배석했다.

그로부터 꼭 40년 만에 유 원장은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다시 미국을 찾았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은 경제 침체와 정치 불안정성이라는 이중고를 겪던 미국의 새 출발을 다짐하는 자리였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은 기존의 외교·경제정책을 대대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현장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40년을 사이에 뒀지만 두 대통령의 취임식은 미국이 세계 패권국가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레이건정부 때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했고 트럼프정부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당일 현장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갑작스러운 한파에도 수십만 명의 미국 국민은 행사장인 캐피털 원 아레나에 입장하기 위해 밤을 새우는 등 열정을 보였다. 취임식 전날인 지난달 19일 열린 전야제 ‘MAGA 승리(VICTORY)의 랠리’ 역시 대규모 집회를 방불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전야제에 참석해 1시간 동안 즉흥 연설을 선보였다.

유 원장은 “1973년 서울 여의도 집회 당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연설을 연상케 할 정도로 대단했다”고 감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명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아들과 함께 깜짝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의 1등 공신으로 꼽히는 머스크에게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기는 등 신임을 보내고 있다.

유 원장은 “이틀에 걸쳐 진행된 전야제와 취임식 행사는 미국 국민에게 강한 지지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정치 이벤트를 넘어 미국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논의의 장이 됐다고 말하고 싶다. 2기 트럼프 정부에 대한 미국 국민의 기대감이 느껴졌고 전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100여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성별과 인종 등을 고려한 다양성 정책을 폐기하는 행정명령도 포함됐다. 그는 “오늘부로 미국에는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별만 존재한다”고 공언했다. ‘PC(정치적 올바름)’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등 민주당 정부의 정책을 180도 뒤집었다.

40년 전엔
현역으로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 등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통상 전쟁의 막을 열었다. 덴마크의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등을 언급하면서 ‘영토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국주의로의 회귀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드라이브를 거는 모양새다.

유 원장은 2기 트럼프정부에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여러 측면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미국의 경제 회복과 성장에 대한 강력한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1기 정부 때 경제 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내 제조업과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대북 정책 역시 트럼프 대통령만의 방식대로 풀어갈 가능성이 크다. 취임식서 본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그걸 추진할 힘을 가진 인물로 봤다. 실제 보기 전까지는 사업가 마인드로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연설을 들어보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했다”고 평했다.

또 “27세 최연소 대변인을 백악관의 얼굴로 내세우는 등 정부를 조각하는 과정도 이전보다 자신감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중 ‘함께 일한다면 이룰 수 없는 꿈은 없다(If work together, No dream cannot achieve)’는 구절이 인상 깊었는데, 취임식 과정서 주변 사람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가 환기됐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야제와 취임식 당일 가족은 물론 각료, 주변 인사들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유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막내아들인 배런 트럼프를 소개할 때 가장 큰 환호성이 터졌다”고 현장 상황을 언급했다. 배런 트럼프는 트럼프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 사이에 낳은 아들이다.


유 원장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해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 원칙 아래 동맹국과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2기 트럼프정부 출범과 공화당의 재집권은 미국과 한국 모두에 긍정적인 변화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상황
우려 드러내

미국이 세계 패권국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데, 이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중심축을 담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 원장은 “굳건한 한미동맹과 일본, 기타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은 아태 지역서의 미국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인 4년 동안 이 같은 방향으로 정책이 유지된다면 한국과 미국의 관계도 여러 변화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한국 상황이다. 4선(11~14대) 국회의원이자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유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미국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개탄스러움을 표했다.

국민의힘 상임고문도 맡고 있는 유 원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일련의 정치 상황에 대해 국가 원로로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유 원장은 현재 한국의 상황을 ‘무정부 상태’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구속된 상태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대에도 올라있다. 국무총리도 탄핵소추돼 직무가 정지됐다. 경제부총리로까지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이 넘어가 있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이다.


유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은 한국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무역 갈등이 역으로 한국에는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무역 기회를 창출할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갈 수 있다. 현재의 기회를 잘 활용해 국제 사회서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정치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실망감이 최고조에 달한 만큼 협치를 통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는 물론 국민도 반으로 쪼개져 대화와 협력이 사라진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되,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우아하고 장엄한, 생동감 넘쳐”
‘미국 우선주의’ 앞세워 드라이브

유 원장은 ‘이미 많이 늦은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역할이 어려울 경우에는 시민사회단체, 정당, 기업 등이 다각도로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 이후 오랜 시간 ‘스포츠맨’으로 살아온 그는 스포츠 외교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과정서 유 원장은 이동섭 국기원장을 언급했다. 이 원장은 2021년 11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태권도 명예 9단증을 수여하고 태권도복을 증정한 인연이 있다. 이 원장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해 그레이스 멩 뉴욕주 하원의원과 마르크 베세이 텍사스주 하원의원에게 명예 7단증을 수여하는 등 ‘태권도 외교’를 펼쳤다.

유 원장은 “스포츠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스포츠 외교가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나도 이 원장으로부터 명예 7단증을 받았다. 이번에 다른 일정 때문에 이 원장과 일정을 함께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전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상황서 차기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유 원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의 지도자는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안보와 경제 분야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고 북핵 문제에 대해 함께 대응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외교 전략’을 강조했다.

개헌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유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개헌의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대통령 5년 단임제’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 높은 확률로 감옥에 가거나 죽는 결말에 이르렀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1987년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바꿔야 한다. 헌법재판소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서 ‘원포인트’ 개헌으로, 탄핵안이 기각되면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개헌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권력을 분산하고 견제 장치가 작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유 원장은 “지난달 17일부터 25일까지 9일 동안 체류하면서 미국의 다양한 정치인, 전문가와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시각서 바라본 한미 관계와 미래,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한 시간이다.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교 전략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각적인 접근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87년 체제
종말 고해

그러면서 “한국은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나라다. 주요 7개국 모임으로 불리는 G7(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20년 동안 정치인으로, 또 스포츠인으로, 야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느낀 것은 결국 국민에게 달렸다는 점이다. 미국 국민이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을 정치권에 불러낸 것처럼 한국 국민도 행동을 통해 현재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최근 2030세대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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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