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 ‘트럼프 취임식 직관기’

MAGA 시대를 마중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다시’ 트럼프 시대가 도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한 뒤 1기 때보다 더 강한 행보를 공언했다. ‘Make America Great Again(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며 세계 질서 재편에 나섰다. <일요시사>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했던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을 만나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8년 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다. 사업가로 이름을 날리던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포부와 함께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처음에는 아무도 그의 당선을 예측하지 않았지만 당선 이후 행보는 더더욱 예상 밖이었다.

4년 만
재집권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고 불법 이민자를 추방했다. 미국에 무역 흑자를 기록한 나라를 상대로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지도자가 관례, 관행처럼 따르던 선을 서슴없이 넘나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없는 언행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은 지지 세력과 반지지 세력 모두를 자극했다.

재선에 도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게 밀려 낙선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성추문 의혹으로 기소되는 등 송사에 휘말렸다. 지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낙선한 선거를 ‘부정선거’로 단정 짓고 ‘STOP THE STEAL’을 외치며 국회의사당을 점거, 폭동을 일으켰다.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을 대신해 민주당 후보로 나선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크게 이겼다. 312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고 전국 득표율에서도 상대 후보를 200만표 차로 따돌렸다. 상·하원 의석수도 공화당이 우세한 상황이라 의회 권력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힘을 싣고 있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각)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은 4년 만에 세계 패권국의 수장으로 다시 올라선 그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다. 이날 취임식은 원래 국회의사당 앞 야외 무대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한파로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국회의사당 중앙홀로 장소가 바뀌었다.

국회의사당 중앙홀에 600여명, 인근 체육관 ‘캐피털 원 아레나’에 2만여명이 실내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을 지켜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의사당서 취임식을 진행한 이후 캐피털 원 아레나로 이동해 즉흥 연설을 펼쳤다. 지지자들 앞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사용한 펜을 던져주는 ‘쇼맨십’을 보여주기도 했다.

캐피털 원 아레나 메인 좌석서 취임식을 지켜본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은 “우아하고 장엄했다. 생동감 넘치는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유 원장은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의 공식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김회창 박사(미국 공화당 필승 한인팀 총회장), 박문희 예당미디어 대표, 임주영 중국 목포그룹 대표 등이 함께했다.

유 원장은 지난 1985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에 현역 의원 자격으로 참석했던 바 있다. 당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81년 당선된 뒤 4년 뒤 재임에 성공했다. 유 원장은 그 시기를 “(자신의)정치적 변곡점”이라고 언급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미국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만난 것이다.

공화당 하원의원 직접 초청으로 참석
국내 참석자 중 가장 가까운 메인 좌석

전두환정권의 정치 탄압을 피해 1982년 미국으로 망명한 김 전 대통령은 3년 만인 1985년 2월 총선을 사흘 앞두고 귀국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 취임식 참석차 미국으로 갔던 유 원장은 워싱턴 D.C.가 아닌 LA로 날아가 김 전 대통령을 만났고, 1985년 1월19일 귀국 기자회견에 배석했다.

그로부터 꼭 40년 만에 유 원장은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다시 미국을 찾았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은 경제 침체와 정치 불안정성이라는 이중고를 겪던 미국의 새 출발을 다짐하는 자리였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은 기존의 외교·경제정책을 대대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가 드러난 현장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40년을 사이에 뒀지만 두 대통령의 취임식은 미국이 세계 패권국가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레이건정부 때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했고 트럼프정부는 중국과의 패권 경쟁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당일 현장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갑작스러운 한파에도 수십만 명의 미국 국민은 행사장인 캐피털 원 아레나에 입장하기 위해 밤을 새우는 등 열정을 보였다. 취임식 전날인 지난달 19일 열린 전야제 ‘MAGA 승리(VICTORY)의 랠리’ 역시 대규모 집회를 방불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전야제에 참석해 1시간 동안 즉흥 연설을 선보였다.

유 원장은 “1973년 서울 여의도 집회 당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연설을 연상케 할 정도로 대단했다”고 감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명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아들과 함께 깜짝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의 1등 공신으로 꼽히는 머스크에게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기는 등 신임을 보내고 있다.

유 원장은 “이틀에 걸쳐 진행된 전야제와 취임식 행사는 미국 국민에게 강한 지지와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정치 이벤트를 넘어 미국의 정체성과 미래에 대한 논의의 장이 됐다고 말하고 싶다. 2기 트럼프 정부에 대한 미국 국민의 기대감이 느껴졌고 전 세계가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100여개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성별과 인종 등을 고려한 다양성 정책을 폐기하는 행정명령도 포함됐다. 그는 “오늘부로 미국에는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별만 존재한다”고 공언했다. ‘PC(정치적 올바름)’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등 민주당 정부의 정책을 180도 뒤집었다.

40년 전엔
현역으로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 등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통상 전쟁의 막을 열었다. 덴마크의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 등을 언급하면서 ‘영토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국주의로의 회귀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드라이브를 거는 모양새다.

유 원장은 2기 트럼프정부에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은 여러 측면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미국의 경제 회복과 성장에 대한 강력한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1기 정부 때 경제 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내 제조업과 일자리 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대북 정책 역시 트럼프 대통령만의 방식대로 풀어갈 가능성이 크다. 취임식서 본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그걸 추진할 힘을 가진 인물로 봤다. 실제 보기 전까지는 사업가 마인드로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연설을 들어보니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했다”고 평했다.

또 “27세 최연소 대변인을 백악관의 얼굴로 내세우는 등 정부를 조각하는 과정도 이전보다 자신감이 붙었다고 생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중 ‘함께 일한다면 이룰 수 없는 꿈은 없다(If work together, No dream cannot achieve)’는 구절이 인상 깊었는데, 취임식 과정서 주변 사람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가 환기됐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야제와 취임식 당일 가족은 물론 각료, 주변 인사들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유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막내아들인 배런 트럼프를 소개할 때 가장 큰 환호성이 터졌다”고 현장 상황을 언급했다. 배런 트럼프는 트럼프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 여사 사이에 낳은 아들이다.


유 원장은 트럼프 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긴 시간을 할애해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 원칙 아래 동맹국과의 관계를 끈끈하게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재확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진다. 2기 트럼프정부 출범과 공화당의 재집권은 미국과 한국 모두에 긍정적인 변화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상황
우려 드러내

미국이 세계 패권국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국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는데, 이때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이 중심축을 담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유 원장은 “굳건한 한미동맹과 일본, 기타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은 아태 지역서의 미국 입지를 공고히 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인 4년 동안 이 같은 방향으로 정책이 유지된다면 한국과 미국의 관계도 여러 변화가 예상된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한국 상황이다. 4선(11~14대) 국회의원이자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유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미국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개탄스러움을 표했다.

국민의힘 상임고문도 맡고 있는 유 원장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일련의 정치 상황에 대해 국가 원로로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유 원장은 현재 한국의 상황을 ‘무정부 상태’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구속된 상태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대에도 올라있다. 국무총리도 탄핵소추돼 직무가 정지됐다. 경제부총리로까지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이 넘어가 있는 헌정사상 초유의 상황이다.


유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등장은 한국에 전략적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무역 갈등이 역으로 한국에는 미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무역 기회를 창출할 방향으로 상황을 끌고갈 수 있다. 현재의 기회를 잘 활용해 국제 사회서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하루라도 빨리 정치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실망감이 최고조에 달한 만큼 협치를 통해 이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는 물론 국민도 반으로 쪼개져 대화와 협력이 사라진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되, 소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우아하고 장엄한, 생동감 넘쳐”
‘미국 우선주의’ 앞세워 드라이브

유 원장은 ‘이미 많이 늦은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이 제일 빠르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역할이 어려울 경우에는 시민사회단체, 정당, 기업 등이 다각도로 외교전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국회의원 이후 오랜 시간 ‘스포츠맨’으로 살아온 그는 스포츠 외교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 과정서 유 원장은 이동섭 국기원장을 언급했다. 이 원장은 2021년 11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태권도 명예 9단증을 수여하고 태권도복을 증정한 인연이 있다. 이 원장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참석해 그레이스 멩 뉴욕주 하원의원과 마르크 베세이 텍사스주 하원의원에게 명예 7단증을 수여하는 등 ‘태권도 외교’를 펼쳤다.

유 원장은 “스포츠는 모든 사람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다. 스포츠 외교가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 나도 이 원장으로부터 명예 7단증을 받았다. 이번에 다른 일정 때문에 이 원장과 일정을 함께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전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상황서 차기 지도자의 덕목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유 원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의 지도자는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안보와 경제 분야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고 북핵 문제에 대해 함께 대응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균형 잡힌 외교 전략’을 강조했다.

개헌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유 원장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서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모습을 보고 개헌의 필요성을 느꼈다”면서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대통령 5년 단임제’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 높은 확률로 감옥에 가거나 죽는 결말에 이르렀다. 이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1987년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바꿔야 한다. 헌법재판소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서 ‘원포인트’ 개헌으로, 탄핵안이 기각되면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개헌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권력을 분산하고 견제 장치가 작동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유 원장은 “지난달 17일부터 25일까지 9일 동안 체류하면서 미국의 다양한 정치인, 전문가와 대화를 나눴다. 그들의 시각서 바라본 한미 관계와 미래,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깊이 고민한 시간이다. 동북아시아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교 전략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각적인 접근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87년 체제
종말 고해

그러면서 “한국은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나라다. 주요 7개국 모임으로 불리는 G7(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20년 동안 정치인으로, 또 스포츠인으로, 야인으로 살아오는 동안 느낀 것은 결국 국민에게 달렸다는 점이다. 미국 국민이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을 정치권에 불러낸 것처럼 한국 국민도 행동을 통해 현재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최근 2030세대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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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바빠진 검찰의 두 얼굴

갑자기 바빠진 검찰의 두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검찰을 비판하기 바쁘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4년간 수사해 무혐의로 판단했는데 재수사에 들어가자, 주가조작 입증 정황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내란 핵심 피의자에 대한 보석을 법원에 요청한 것에 대한 지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두 사건 모두 특검과 연관돼 검찰이 특검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검찰이 정권이 바뀌자 미진했던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3대 특검과 관련된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에 대해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검찰의 부실 수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특검과 주도권 경쟁을 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재수사하자 정황 증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검찰이 김 여사의 육성이 담긴 통화 녹음파일 수백개를 새롭게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했을 때와 달리 김 여사가 주가조작 가능성을 인식한 정황이 담긴 증거를 확보한 것이다. 김 여사는 또 지난해 7월 초 검찰의 조사가 임박했을 당시 김주현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과도 30분 넘게 통화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서울고검 형사부(부장검사 차순길)는 최근 미래에셋증권을 압수수색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동원된 김 여사 명의 미래에셋증권 계좌 거래 경위를 확인하기 위한 압수수색으로, 검찰은 이 과정에서 김 여사가 미래에셋증권 계좌를 담당하던 직원과 2009년부터 약 3년 동안 통화한 녹음파일 수백개를 새로 확보했다고 한다. 이 시기는 2010년 말경부터 시작된 2차 주가조작 시기와 겹친다. 검찰이 해당 녹음파일들을 분석한 결과 김 여사가 ‘주가조작 일당에게 계좌를 맡기고 수익이 나면 그중 40%를 그 일당들에게 주기로 했다’ ‘그쪽에서 주가를 관리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한 육성 녹음파일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녹음파일에 등장하는 증권사 직원도 최근 검찰 조사에서 김 여사가 주식 매매 세력에 가담했다고 당시 생각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은 김 여사가 본인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 여사 측은 “원래 일임매매하면 10~30% 수익은 보장해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을 2020년부터 4년 넘게 맡았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같은 증권사를 압수수색하면서도 해당 통화 녹음을 확보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걸로 파악돼 ‘부실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수사팀은 김 여사 미래에셋 계좌에서는 2010년 11월 3일~12월 3일 사이 주가조작이 의심되는 거래가 발생했는데, 전화 주문을 한 게 아니라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이뤄진 거래여서 김 여사가 증권사 직원과 통화한 내용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김 여사 육성 수백개 녹취파일 이제야? 계좌 로그인 기록엔 블랙펄 IP 주소도 당시 수사팀은 전화 주문 방식으로 거래된 다른 증권사 5곳(신한·DS·DB금융·한화·대신)에서는 김 여사가 통화한 녹음파일을 모두 확보해 분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재수사를 통해 블랙펄인베스트먼트(이하 블랙펄)와 김 여사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정황도 파악했다. 김 여사 명의의 주식 계좌에 여러 차례 접속한 IP 주소가 블랙펄 사무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전 수사팀은 김 여사 계좌에서 주식 매매 시점에 HTS에 접속해 있던 IP 주소들만 분석했는데, 재수사팀은 HTS 프로그램에 로그인하는 시점에 사용된 IP 주소들까지 미래에셋증권에 추가 요구한 끝에 해당 흔적을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재수사팀은 블랙펄 측이 IP 주소를 숨기기 위해 김 여사 아이디로 HTS를 이용할 때 별도의 무선 인터넷 장비를 이용했지만, HTS 프로그램 로그인 시점에는 실수로 사무실 인터넷망을 몇 차례 이용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김 여사 계좌를 관리하며 주가조작을 주도했던 블랙펄의 IP가 없는 것이 김 여사 불기소 결정 이유 중 하나였지만 이마저도 뒤집힌 것이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검찰이 혐의 없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재수사에 들어가 파일을 찾아냈다”며 “정말 스스로 자폭한 일이다. 국민들이 보기엔 참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 전 총장은 “미래에셋도 압수수색했다고는 하지만, 그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 아니냐”며 “검찰이 그걸 알고 그랬든, 모르고 그랬든 지금 와서 보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검찰이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인지 정황이 담긴 녹음파일을 언제 확보했는지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 문금주 원내대변인은 지난 19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4년 전 압수수색을 하고도 확보하지 못했던 김건희 주가조작 증거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검찰발로 쏟아지고 있다”면서 “주가조작의 ‘스모킹건’인 녹음파일을 검찰이 언제 확보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변인은 “새롭게 공개된 육성 파일에는 김 여사가 맡긴 구체적 액수와 수익 배분 내용이 명확하게 담겨있다”면서 “검찰은 4년 동안 존재를 몰랐다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우연히 파일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이 말을 믿으라는 말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지난 4년 동안 권력에 기생하며 선택적 수사로 김건희에게 면죄부를 줘왔던 검찰의 족적이 확연히 남아있는데 국민을 우롱하지 말라”고 지적했다. 뒤집히는 불기소 이유 문 대변인은 “김건희만이 아니라 검찰도 특검 대상”이라며 “민중기 특검은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뿐만 아니라 검찰 면죄부 수사의 진실도 철저히 수사해 책임자를 법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18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김건희에게 면죄부를 줬던 검사들을 당장 수사해야 하고, 당장 구속시켜야 한다”며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김건희 특검의 수사 대상”이라고 말했다. 부실 수사로 김씨를 무혐의 처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다. 정 의원은 “같은 검사인데 그때 수사했던 검사는 왜 그걸(통화 녹취 파일) 발견 못했을까? 왜 지금 검사들은 이걸 발견했을까”라며 “국민들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같은 당 박주민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검찰이 봐줬다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다. 주가조작보다 더 심각한 범죄는 주가조작을 봐주는 것”이라며 “특검으로 낱낱이 밝혀야 한다. 김건희씨 주가조작을 봐준 사람들 모두 국민을 우롱한 죄까지 모아 최대한의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장경태 의원도 최소한 수사팀에 대한 감찰·감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 의원은 19일 YTN 라디오 <뉴스파이팅 김영수입니다>와 인터뷰에서 “해당 검사와 수사관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 감찰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통화 녹취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파일 확보를) 안 했다면 왜 안 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의원은 “(주가조작) 1~2차에 걸쳐 3개 계좌를 이용한 사람은 김건희씨밖에 없다”며 “‘공범 중에 왕공범’인 김건희씨만 왜 수사 안 했느냐는 의혹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특검이 출범하자 이제야 증거를 찾았다는 점에서 수사의 진정성보다는 수사의 주도권 다툼에 더 가까운 행보로 읽힌다”며 “특검이 제대로 수사하기 전에 검찰이 기소한다면 특검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는 수사를 할 수 없고 공소 유지에만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다르다? 김 여사의 주가조작 외에도 검찰은 내란 핵심 피의자의 보석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내란 수사는 하지 않고 오히려 핵심 피의자를 풀어주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오는 26일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 조건부 보석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보석 허가 이유에 대해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른 1심의 구속 기간이 최장 6개월로 그 기간 내 심리를 마치는 게 어렵다”며 “구속 기간 만료를 앞두고 피고인 출석을 확보하고 증거인멸을 방지할 보석 조건을 부가하는 결정을 하는 것이 통상의 실무례라는 점을 고려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27일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 기간은 2개월이 원칙이며, 필요 시 2개월 단위로 2차례 갱신할 수 있다. 이에 법원은 지난 2월25일과 4월22일 김 전 장관의 구속 기간을 갱신했다. 검찰 측은 구속 기간 만료를 열흘가량 앞둔 상황에서 재판부에 보석 조건부 직권보석을 요청했고, 김 전 장관 측은 보석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구속 기간 만료 시에는 단순 석방되는 반면, 보석으로 풀려날 경우 여러 조건이 따라붙는 탓이다. 재판부는 보석 조건으로 ▲법원이 지정하는 일시와 장소에 출석할 것 ▲증거를 인멸하지 않을 것 ▲법원 허가 없이 외국으로 출국하지 않을 것 ▲사건과 관련된 피의자나 피고인, 참고인이나 증인 등과 연락을 주고받지 않을 것 ▲주거 제한 ▲보증금 1억원 납부 등을 명령했다. 김 전 장관이 이 같은 보석 조건을 어길 시에는 보석이 취소되고 보증금이 몰취되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20일 이내의 감치에 처하게 된다. 앞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지호 경찰청장은 혈액암에 따른 건강악화를 이유로 보석 청구가 받아들여져 지난 1월 보증금 1억원 납부와 사건 관계인 등과 연락 금지 등을 조건으로 석방됐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따라 석방됐다. 김 전 장관의 보석으로 인해 노상원 전 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국군수도방위사령관,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 문상호 전 국군정보사령관 등 내란 핵심 피의자들도 보석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군 검찰은 최근 재판에서 이들에게 직권 보석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실 수사·내란 동조 등 비판 나와 “특검 시작하면 검찰은 할 게 없다” 다만 김 전 장관이 보증금 제출과 사건 관계자와 연락할 수 없는 조건이 붙은 이런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복했으며 이로 인해 오는 26일 무조건 석방될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다른 내란 핵심 피의자들도 보석 결정에 불복하고 석방을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과 군검찰은 구속 기간 만료로 석방돼 내란 핵심 피의자들이 다시 모이는 것을 방지하고자 조건부 보석을 요청했다는 입장이지만 ‘내란을 비호하는 행위’ ‘특검을 견제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검에서 내란종사혐의로 내란 핵심 피의자들의 신병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은석 특검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 18일 김 전 장관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비상계엄 하루 전인 지난해 12월2일 대통령경호처를 속여 비화폰을 지급받아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에게 전달하고, 같은 달 5일엔 수행비서 역할을 한 민간인 양모씨에게 계엄 서류를 없애라고 한 혐의다. 이는 경찰청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수사로 새롭게 드러난 부분이다. 수사 기록을 넘겨받은 조 특검이 임명 6일 만에 곧장 수사에 돌입한 것은 김 전 장관의 신병 확보를 유지하기 위한 의지로 풀이된다. 내란 특검이 김 전 장관에게 새 혐의로 추가 기소한 데 이어 구속영장을 청구한다면 그의 구속 상태가 유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김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 등 사건 관계자와 연락하거나 당시 상황에 대한 ‘말 맞추기’를 할 수 있다는 우려를 일정 부분 덜 수 있다. 특검 입장에서는 기존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외환 의혹 수사를 위해서도 김 전 장관의 신병 확보를 수사의 ‘첫 단추’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같은 이유로 내란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주요 군 장성들이 내란 특검 초기 수사의 주요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검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특검 입장에서는 (주요 인물을) 그냥 풀려 나가게 둘 수 없다는 기조일 것”이라며 “(다른 사령관에 대해서도) 추가로 기소할 것을 찾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다만 김 전 장관 측은 특검의 기소를 두고 “수사 준비 기간 중에 있어 공소 제기할 권한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권을 남용해 김 전 장관을 불법 기소했다”며 공소가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특검이 수사 시작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특검이 수사를 시작하면 검찰에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추가 기소 가능성은? 특검을 경험한 한 변호사는 “최근 검찰의 행보는 검찰개혁을 앞두고 특검과 힘겨루기를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특검 임명 후 20일 동안 특검팀을 구성하는 동안 수사 실적으로 올리거나 해서 특검 내에서 검찰의 목소리를 더 키우기 위해 갑자기 새로운 증거를 갖고 오고 구속 만료를 앞둔 피의자들의 보석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조은석 특검처럼 특검이 수사를 빨리 시작해 검찰이 사건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 우선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