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잡을’ 삼각편대 작계

개혁위 던지면 법무부 띄우고 민주당 내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이 ‘삼면초가’ 상태에 빠졌다. 어느 쪽으로도 답이 없는 상태다. 신임 검사들 앞에서 강한 어조로 소신껏 발언했지만 ‘식물총장’서 벗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법무부가 단행한 검찰인사로 또 한 방 세게 맞은 모양새다.
 

▲ 윤석열 검찰총장 ⓒ문병희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이 한 달 만에 침묵을 깨고 작심발언을 터트렸다. 신임 검사들을 만난 자리서 한 말이지만, 발언이 향하는 방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정치권은 윤 총장 발언의 배경과 속내를 두고 저마다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달 만에…
저마다 목소리

지난 3일 윤 총장은 대검찰청서 열린 신임 검사 신고식서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평등을 무시하고 자유만 중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한다”며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서 실현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정의롭게 법 집행을 해야 한다”며 “특히 부정부패와 권력형 비리는 국민 모두가 잠재적 이해 당사자와 피해자라는 점을 명심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 집행 권한을 엄정하게 행사해야 한다”고 신임 검사들에게 당부했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이후 침묵을 지켜온 윤 총장의 첫 대외 발언이다. 윤 총장은 그동안 검찰 관련 현안에 대해 어떤 입장도 내지 않았다.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윤 총장은 신임검사 신고식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언급과 함께 ‘독재’라는 수위 높은 표현을 사용했다. 윤 총장이 검찰을 둘러싼 법무부와 민주당의 행태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일각에선 권력형 비리에 대한 지속적인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도 있다.

윤 총장의 이 같은 발언에 민주당은 예민하게 반응했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들은 윤 총장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이 문제 삼은 부분은 ‘독재 배격’. 일부 의원들은 윤 총장의 발언이 정치적이라고 비판했고, 당 외부에선 검찰총장 탄핵까지 언급됐다. 

민주당의 비례대표 정당인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지낸 건국대 최배근 교수는 “미래통합당의 검찰, 정치 검찰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라며 “정치를 하려면 검찰 옷을 벗어야 하기에 민주당은 윤 총장을 탄핵하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그를 징계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검 개혁 구체적 방안 제시
조국 전 장관 때 2기 출범

지난 5일에는 민주당 지도부서 윤 총장의 공개 사퇴 요구가 나왔다.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이날 국회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윤 총장이 지난 3일 신임 검사 신고식서 독재와 진짜 민주주의 발언을 한 것은 문재인정부가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 전체주의란 주장으로 해석된다”며 “문재인정부라는 주어만 뺀 교묘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제 윤 총장은 물러나야 한다”며 “문재인정부를 독재와 전체주의라면서 검찰총장직을 유지한다면 이는 독재와 전체주의 대열에 합류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 물러나서 본격적인 정치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 윤석열의 귀한을 환영한다”며 긍정적인 메시지를 냈다.

통합당 김은혜 대변인은 “정권의 충견이 아닌 국민의 검찰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해석한다”며 “윤 총장의 의지가 진심이 되려면 조국, 송철호, 윤미향,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 등 살아있는 권력에 숨죽였던 수사를 되살려야 한다”고 밝혔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윤 총장의 발언에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지만 지속성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 이후 법무부의 ‘검찰 힘 빼기’는 가속화됐고 추 장관은 검찰 인사를 통해 윤 총장의 수족을 모두 잘라냈다. 민주당은 입법으로 검찰 개혁을 거드는 중이다. 윤 총장의 이번 발언이 식물총장의 마지막 외침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실제 윤 총장은 현재 법무·검찰개혁위원회(이하 검찰개혁위), 법무부, 민주당이라는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져있다. 검찰개혁위가 권고안을 통해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하면 법무부가 이를 수용하고 민주당서 법을 개정하는 방식이다. 특히 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장악했고, 의석도 과반인만큼 입법 부문은 일사천리다. 

여 “사퇴”
야 “환영”

‘검찰총장 권한을 축소하라’는 검찰개혁위의 권고안을 법무부가 하루 만에 수용 의사를 밝힌 뒤, 민주당서 검찰청법 개정안을 준비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달 27일 검찰개혁위는 검찰총장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없애야 한다는 권고안을 내놨다. 또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는 검찰총장이 아닌 고검장에게 하도록 법을 바꾸라고 권고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는 검찰청법 8조를 개정하라는 것이다. 검찰인사 과정서도 검찰총장이 아닌 검찰인사위원회의 의견을 들으라고 했다. 현행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이 인사를 할 때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법무부는 검찰개혁위의 권고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형사사법의 주체는 검찰총장이 아닌 검사다. 검찰총장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도록 개혁할 필요가 있다”며 “수사 지휘체계 다원화 등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논의인 만큼 개혁위 권고안 등을 참고해 심층적인 검토를 해나갈 예정”이라고 수용 의사를 보였다. 

그 다음날에는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현재 장관급으로 대우받고 있는 검찰총장을 차관급으로 명문화하고 총장의 인사개입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검찰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 의원은 “현재 검찰총장은 법률적 근거 없이 장관급으로 대우받고 있다”며 “중앙행정기관의 조직·직무범위 등을 규정한 검찰청법에는 총장을 장관급으로 대우한다는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인사 과정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 보직을 제청하도록 하는 현행 인사규정에 대해서도 “법률로 명시할 필요가 없는 내용을 법률로 만들면서 소모적인 논란과 분쟁의 씨앗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하는 부분을 삭제했다.
 

▲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김 의원은 조 전 장관 시절 검찰개혁위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검찰 개혁은 문정부의 최대 화두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의 핵심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립을 언급했다. 대선 후보 당시 1호 공약이기도 했다. 문정부는 검찰 개혁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2017년 8월9일 검찰개혁위를 만들었다.

1기 검찰개혁위(한인섭 위원장)는 ▲법무부 탈검찰화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안 ▲검사장 관련 제도 및 운용의 시정 ▲검사의 타 기관 파견 최소화 ▲공안 기능의 재조정 ▲검찰 내 성폭력 ▲젠더 폭력 관련법 재정비 등의 권고안을 내놨다. 

말만 하면
이뤄진다?

1기 검찰개혁위 권고안 중 공수처 신설,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의 사안은 입법을 통해 근거가 만들어졌다. 인사청문회법·국회법 개정안·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 운영규칙 제정안 등 이른바 공수처 후속 3법도 법사위를 거쳐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조 전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2호 지시로 2기 검찰개혁위(김남준 위원장)를 발족시켰다. 2기 검찰개혁위는 검찰 현안에 적극적으로 권고안을 내고 인사개혁안을 제시하는 등 검찰 개혁에 힘을 실었다. 

2기 검찰개혁위는 지난해 10월1일 ‘검찰 직접수사 축소’ ‘형사·공판부로의 중심 이동’을 골자로 하는 첫 번째 권고안을 시작으로 지난 5일까지 모두 21차례 권고안을 냈다. 첫 번째 권고안은 3개월 뒤인 올해 1월 검찰 직제개편을 통해 현실화됐다. 추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취임한 직후였다. 


그 결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는 기존 4곳서 2곳으로 축소됐고, 전문 사건에 대한 주요 전담수서부서들도 몸집이 줄어들었다. 서울중앙지검 조세범죄조사부와 과학기술범죄수사부는 형사부로 전환됐고 비직제 수사단으로 ‘저승사자’로 불리며 각종 금융·증권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도 사라졌다. 

공공수사부는 기존 11개청 13개부서 7개청 8개부로 축소됐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와 서울남부·의정부·울산·창원 등 4개청 5개 공공수사부는 형사부로 전환했다. 서울중앙지검 총무부는 공판부로, 외사부는 형사부로 바뀌었다. 인천·부산지검 등 공항·항만 소재지로 외사 사건이 많은 곳만 부서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 ⓒ문병희 기자

검찰 내부를 발칵 뒤집어 놓은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개혁위는 긴급 권고안을 낸 바 있다. 지난달 2일 검찰개혁위는 검언유착 의혹 수사의 적정성을 논의하는 전문수사자문단(이하 전문자문단) 소집을 앞두고 이를 중단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냈다. 

검찰개혁위는 “전문자문단은 규정상 대검과 일선 검찰청 간에 중요사건 처리 등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이 존재해 전문적인 자문을 바탕으로 협의가 필요할 때 소집할 수 있다”며 “이번 대검의 전문자문단 소집은 검찰 지휘부의 ‘제 식구 감싸기’ ‘사건 관계자들의 수사 흔들기’ ‘검찰 내부 알력 다툼’의 도구로 변질됐다는 점에서 비판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 장관은 검찰개혁위의 권고를 사실상 받아들여 이날 윤 총장의 검언유착 의혹 수사 배제를 골자로 하는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에 이어 15년 만이자 헌정 사상 두 번째 수사지휘권 발동이다. 대검과 법무부의 갈등은 극한까지 치닫다가 윤 총장이 수사지휘권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간신히 봉합됐다. 

인사·검찰총장 권한 축소
통합당 “답정너 위원회”

추 장관의 두 번째 검찰 정기인사 역시 검찰개혁위 권고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앞서 검찰개혁위는 지난 5월18일 18차 권고안서 형사·공판부 검사를 중심으로 임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사 인사제도 개혁안’을 내놨다. 

권고안에는 검찰의 중심을 형사·공판부로 이동하기 위해선 기관장인 검사장과 지청장을 형사·공판부 경력검사로 다수 채워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체 검찰 내 분야별 검사 비중을 반영해 기관장의 60% 이상을 형사·공판부 경력검사를 임용하라고 권고했다.

법무부는 지난 6일 인사서 윤 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부장급 간부 5명을 7개월 만에 교체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한 이정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은 검사장으로 승진, 대검 공공수사부장에 임명됐다. 삼성그룹 승계 의혹 등의 수사 지휘를 맡아온 신성식 서울중앙지검 3차장도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했다.

관심을 모았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유임됐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에 대해 “형사·공판부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해온 검사들을 적극 우대하는 한편 민생과 직결된 형사 분야의 공인 전문검사를 발탁했다”며 “여성 검사의 검사장 발탁과 주요 보임을 통해 차별 없는 균형 인사를 도모했다”고 배경을 밝혔다.  

‘특수부 힘 빼기’는 문 정부 내내 이어진 검찰 개혁 주요 과제였다. 지난해 10월 조 전 장관은 윤 총장이 제안한 서울중앙지검 등 3개 검찰청을 제외한 전국 특수부 폐지안을 담은 관련 개혁안을 제시했다. 서울중앙지검, 대구지검, 광주지검 3개청에만 특수부를 남기고, 해당 부서 명칭은 반부패수사부로 변경하는 안이 핵심이었다.

다 날아간
총장 측근

일각에선 검찰개혁위가 법무부나 민주당에 명분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찰개혁위를 통해 검찰 개혁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한 다음 법무부나 민주당서 이를 현실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합당은 검찰총장 권한 축소를 권고한 검찰개혁위를 비판하는 과정서 “결국 법무·검찰개혁위원회란 애초부터 검찰장악이라는 목적을 정해둔 ‘답정너 위원회’임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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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