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검찰 파워게임 2라운드’ 한동훈 VS 이성윤 대리전 막전막후

지금까진 서막…대반전은 지금부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과 법무부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대립은 이제 최측근들의 대리전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기자와 검사 사이의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검사장 ⓒ문병희 기자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검찰과 법무부가 요동치고 있다. MBC의 첫 보도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사건을 둘러싼 갈등이 곳곳서 터져 나왔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법무부와 검찰,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이 한 사건을 두고 강하게 부딪쳤다. 

MBC 보도
4개월 공방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발단은 4개월 전 MBC의 보도였다. 지난 3월31일 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당시 채널A 기자가 고위급 검사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불법 투자 혐의로 수감 중인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 측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위를 제공하라고 강요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다. 

등장인물은 현재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 제보자 X로 불렸던 지모씨다. 지씨는 검언유착 의혹을 처음 MBC에 알린 제보자로, 이 전 기자가 만난 이 전 대표 측 대리인이다. 

앞서 이 전 기자는 이 전 대표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검찰이 이철 대표의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털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로 등재됐던 배우자와 가족, 친지까지 조사할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유시민 이사장 등 여권 인사들이 관련됐다는 정보를 내놓아라. 그러면 검찰도 좋아할 것이다. 여권 인사의 비위를 제공하지 않을 시 더욱 가혹한 검찰수사를 받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후 이 전 대표의 대리인으로 이 전 기자를 만난 제보자 X 지씨는 대화 내용을 전부 녹음해 MBC에 제보했다. 지씨는 이 전 기자가 검찰 고위층, 즉 한 검사장과 친분을 과시하면서 이 전 대표와 협상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이 전 기자가 지씨를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서 한 검사장의 목소리를 들려줬다는 것. 

하지만 이 전 기자가 한 검사장의 목소리라며 들려준 부분은 지씨가 이어폰을 통해 들었기 때문에 녹음이 이뤄지지 않았다. 채널A 압수수색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검찰서 확보하지 못했다. 또 이 전 기자는 수사가 시작되자 휴대폰과 노트북을 초기화했다. 한 검사장이라고 했던 목소리도 ‘대역을 시켜서 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KBS 오보 내고 사과 방송
녹취록·녹음파일 공개돼

상황이 이렇게 되다 보니 지난 2월 이 전 기자가 한 검사장을 만났을 때 후배 기자가 녹음한 내용이 중요하면서도 거의 유일한 물리적 증거로 떠올랐다. 

윤 총장은 지난 2월13일 총장으로 취임하고 처음으로 지방검찰청 격려 방문에 나섰다. 이때 그가 처음으로 찾았던 곳이 부산고검과 지검이었다. 당시 한 검사장은 추 장관 취임 이후 대대적으로 이뤄진 문책성 인사서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이동했다. 그 이후 윤 총장과의 만남이 이뤄진 것이다. 

이 전 기자와 후배 기자도 이날 부산을 찾았고, 한 검사장과 대화를 나눴다. 이때의 대화가 녹음된 것이다.

검언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 수사팀은 물론 언론 등에서도 당시의 대화 녹음파일을 ‘스모킹 건’으로 여겨왔다. 이 때문에 녹음파일의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MBC 보도 이후 4개월이 흐르는 동안 대화 내용에 대해서는 추측만 무성했다.
 

▲ 지난 21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배우자 김건희씨와 장모 최씨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고 있다. ⓒ문병희 기자

녹취록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KBS였다. KBS는 지난 18일 <9시뉴스>를 통해 이 전 기자가 부산서 한 검사장을 만나 유시민 이사장의 신라젠 주가 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하자고 공모한 정황이 확인됐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이 전 기자가 총선 관련 유 이사장에 대한 취재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한 검사장이 동조하고 독려했다는 것이다. 

또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대화를 나누는 과정서 ‘유 이사장은 정계 은퇴를 했다. 그러니 수사하더라도 정치적 부담이 크지 않다’ 이런 취지의 말과 또 이 보도 내용을 ‘총선을 앞두고 어떤 시점에 과연 이걸 보도해야 하느냐’ 이런 이야기도 오갔다고 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의 공모를 입증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될 터였다. 

전문 공개
진실 공방

하지만 KBS 보도 이후 이 전 기자의 변호인 측에서 보도 내용이 실제 녹취록의 내용과 다르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한 검사장 측도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대화가 있었던 것처럼 꾸며낸 완전한 허구며 창작에 불과하고 보도 시점과 내용도 너무나 악의적”이라며 KBS 보도 관계자 등을 지난 19일 서울남부지검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KBS는 결국 다음날 사과 방송을 내고 오보임을 인정했다. 여기에 KBS가 제3의 인물로부터 청부, 하명을 받아 보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언유착 오보방송 진상규명을 위한 연대 서명’에 참여한 직원 105명은 “진상조사를 실시해 해당 인물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 오보를 낸 KBS 법조팀은 “누군가의 하명 또는 청부로 이뤄진 보도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KBS의 오보 이틀 뒤인 21일 MBC가 녹취록에 대해 보도했다.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와 그 가족을 압박해 유 이사장 등의 범죄 정보를 구하고 있다고 편지를 썼고, 갖고 다닌다는 취지의 말을 하자 한 검사장이 ‘그런 것은 해볼 만하다, 그런 거 하다가 한두 개 걸리면 된다’라고 말했다는 것.

여기에 대해 ‘덕담 차원서 한 말’이라는 한 검사장 측의 해명을 붙였다. 
 

KBS와 MBC서 보도가 연달아 나오자 이 전 기자 측에서는 21일 녹취록 전문을, 22일에는 녹음파일 자체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특정 사안에 대해 공모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공방이 이어졌다. 

이 과정서 한 검사장이 추 장관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정치권에서는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한 검사장이 사용한 ‘일개 장관’이라는 표현에 추 장관이 ‘자괴감을 느낀다’고 언급한 것.

윤 VS 추
한 VS 이


정치권서도 해당 발언을 문제 삼고 나섰다. 그러자 일각에선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검언유착 의혹이 흐지부지되니 한 검사장의 발언 일부를 꼬투리 잡아 시선을 돌리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검언유착 의혹 사건은 이제 해석의 영역으로 진입한 모양새다. 그러면서 검찰 수사팀과 이 전 기자, 한 검사장 측 간의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녹취록 공개 후 “해당 일자 녹취록 전문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안과 관련성 있는 내용 중 일부 대화가 축약되거나 (한 검사장이)기자들의 취재 계획에 동조한 취지의 언급이 일부 누락되는 등 표현과 맥락이 정확하게 녹취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기자의 변호인은 “의도적으로 누락·축약된 부분은 전혀 없다”고 재반박했다. 

녹취록 공개를 기점으로 검언유착 의혹 사건의 진행 방향이 바뀌고 있다. 이전까지는 수사 주체나 방식을 두고 윤 총장과 추 장관의 갈등이 주였다. 실제 전문수사자문단(이하 전문자문단) 소집을 두고 법무부와 검찰, 대검과 서울중앙지검은 첨예하게 대립했다. 추 장관이 2005년 이후 15년 만에 수사지휘권을 발동했고 윤 총장이 이를 사실상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갈등은 간신히 봉합됐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수사팀과 피의자들 간의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대립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한 검사장 간의 대리전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 지검장은 추 장관의 첫 검찰 인사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보됐고, 한 검사장은 윤 총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이 지검장은 문재인정부 들어 승승장구했다.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올랐다. 검찰 요직 빅4 중 세 자리나 거친 것이다. 그는 문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이고, 노무현 정부 당시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 시절 청와대 특별감찰반장을 지낸 인연도 있다. 일각에선 가장 강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이성윤, 문정부서 승승장구
윤석열 최측근 잡아넣을까

한 검사장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검사다. 현대고, 서울대 법대를 거쳐 사법고시에 합격해 검사의 길을 걸었다. 한 검사장의 이력을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게 윤 총장과의 관계다. 윤 총장과 한 검사장은 2016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수사를 맡았던 박영수 특검팀에 함께 파견나간 경험이 있다. 

윤 총장이 검찰총장에 임명된 이후 지난해 7월 인사서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을 맡았다.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을 맡았을 때도 한 검사장은 3차장검사로 임명됐다. 3차장검사는 옛 특수부인 반부패수사부를 지휘하기 때문에 검찰의 핵심 보직으로 꼽힌다. 윤 총장 밑에서 요직에 배치됐던 그는 추 장관 취임 후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전보된 데 이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사실상 좌천됐다. 
 

▲ 윤석열 검찰총장

이 지검장은 검언유착 의혹을 두고 전문자문단을 소집한 윤 총장과 대립한 바 있다. 지난달 말 검언유착 의혹 수사팀은 대검에 “전문수사자문단 소집 절차를 중단하고 특임검사급 독립성을 부여해 달라”고 건의했다. 건의 형식을 띠었지만 윤 총장의 지시에 이 지검장이 정면으로 공개 항명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대검은 “그간 자문단은 대검 의견에 손을 들기도 하고 일선(검찰청) 의견에 손을 들기도 했다”며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 피의자의 법리상 범죄 성립과 혐의 입증에 자신이 있다면 자문단에 참여해 합리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순리”라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 지검장의 카운터 파트너는 이제 한 검사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들은 24일 검찰수사심의위원회(이하 수사심의위)를 시작으로 건건이 마주칠 전망이다. 이날 수사심의위에는 이 전 대표, 이 전 기자, 한 검사장 등이 참석했다.

수사심의위는 외부전문가들이 사건에 대한 수사·기소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기구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쏠린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기 위한 제도로 2018년 도입됐다. 

사사건건 대립
누가 이길까?

앞서 지난달 26일 열린 수사심의위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에 대해 수사 중단·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다. 수사팀의 권고를 토대로 기소 여부와 기소 대상자, 적용 혐의 등을 최종 검토 중이다. 수사심의위는 지난 24일 한 검사장에 대해 수사 중단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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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