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찍어내기 투트랙 히든카드

감찰 막히면 공수처로 토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에 대한 여야의 온도 차가 상당하다. 집권여당은 공수처 출범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 공수처를 활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2명의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는 작업이 끝내 무산됐다. 공수처의 출범 시기는 이미 4개월 이상 넘긴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여야가 공수처장 후보를 내놨지만 이를 추리는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7명 위원 중
6명 찬성해야

지난 18일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가 3차 회의를 진행했다. 10명의 공수처장 후보를 대상으로 약 4시간30분간 마라톤 검증 작업을 진행했지만 최종 후보자 2명을 선정하지는 못했다. 

앞서 추천위는 지난달 30일 첫 회의를 갖고 조재연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당시 조 위원장은 “위원장으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위원회가 생산적으로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으로부터 위촉을 받고 정식 출범한 추천위는 조 위원장을 포함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 김종철 연세대 교수, 박경준·이헌·임정혁 변호사 등 총 7명이다. 


위원 7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으로 공수처장 후보 2명을 의결해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구조다. 대통령은 이 중 1명을 지명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수처장을 임명한다. 김종철 교수와 박경준 변호사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추천, 이헌·임정혁 변호사는 국민의힘 추천 2인이었다. 

추천위는 지난 9일 추천위원들로부터 1차 후보 추천을 받았다. 이찬희 변협 회장은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한명관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등 3명을 추천했다. 김 선임연구관은 판사, 이 부위원장과 한 변호사는 검사 출신이다. 

민주당 측 추천위원들은 판사 출신인 전종민·권동주 변호사 2명을 추천했다. 전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에서 소추위원 대리인단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국민의힘 측 추천위원들은 김경수·강찬우·석동현·손기호 변호사 등 검찰 출신으로만 4명을 추천했다. 김 전 대구고검장은 201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사라지기 전 마지막 중수부장을 지냈다. 강 변호사, 석 변호사도 검사장 출신이다. 

후보 추천위 3번 회의에도
2명으로 못 좁히고 종료돼

추 장관은 전현정 변호사를 추천했다. 김재형 대법관의 부인인 전 변호사는 공수처장 후보 중 유일한 여성이다. 조 위원장은 최운식 변호사를 추천했다. 최 변호사는 이명박정부 시절 대검 중수부 산하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장을 맡았던 특수통 검사 출신이다. 

추천위는 11명의 후보군 가운데 사퇴 의사를 밝힌 손기호 변호사를 제외하고 총 10명의 후보를 두고 검증 작업에 돌입했다. 국민의힘 측 추천 후보였던 손 변호사는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후보직에서 사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추천위는 2차 회의를 열고 10명의 후보를 2명으로 압축하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지만 실패했다. 심사 대상에 오른 10명의 후보 가운데 단 1명도 제외하지 못했다. 추천위원 간 신중론과 신속론이 맞서면서 합의 도출에 이르지 못한 것.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추천위 실무지원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오늘 회의에서 추천위원들은 먼저 각자가 추천한 심사 대상자에 대한 추천 사유 및 공수처장으로서 갖는 장점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시작해 공수처장으로서 꼭 필요한 자질 및 부적당한 자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오전에 이어 속개된 오후 회의에서는 각자가 추천한 심사 대상자뿐 아니라 다른 위원들이 추천한 심사 대상자 중에서 적절한 사람을 제시하는 시간을 가졌다”면서도 “후보자 추천을 위해 추가로 확인할 사항이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하며 18일에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후로 열린 지난 18일 3차 회의에서도 추천위는 2명의 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활동을 마쳤다. 이날 회의에서 후보 선정을 위한 표결까지 진행됐지만 모두 정족수인 6명을 넘기지 못했다. 다수 득표자 4명으로 범위를 좁혀 표결을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다수 득표자는 변협이 추천한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한명관 변호사와 추 장관이 추천한 전현정 변호사다. 김 연구관과 전 변호사가 5표씩을, 이 부위원장과 한 변호사가 4표씩을 받았다.  

빈손으로 
마무리?

추천위는 “야당 측 추천위원들이 회의를 계속하자는 제안을 했으나 위원회 결의로 부결됐고, 이로써 추천위 활동은 사실상 종료됐다”고 전했다.

추천위원 3분의 1 이상(3명)의 속개 요청이 있거나 국회의장 또는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장이 소집을 요구하면 회의가 다시 열릴 수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야당 측 추천위원 2명을 제외한 5명이 활동 종료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3차례에 걸친 추천위 회의가 ‘빈손’으로 마무리되면서 공은 다시 정치권으로 넘어왔다.

앞서 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지난 16일 2차 회의에서 후보 압축 불발과 관련해 “이번 수요일(18일)에 다시 회의를 연다고 하니 반드시 결론 내주길 바란다”며 “혹시라도 야당이 시간 끌기에 나선다면 우리는 결코 좌시할 수 없다. 이달 안에 공수처장을 임명하고 공수처가 출범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데드라인으로 잡았던 18일까지도 후보가 압축되지 않자 법 개정 카드를 꺼내 들었다. 추천위원 6명의 지지를 받아야 공수처장 후보로 결정되는 현행법을 고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다시 말해 공수처장 후보 선정 과정에서 야당이 비토권을 행사하는 현 상황을 법 개정을 통해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다. 
 

▲ 윤석열 검찰총장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회의 직후 논평에서 “사실상 국민의힘의 반대로 합의에 의한 추천이 좌절된 것”이라며 “법사위를 중심으로 대안을 신속히 추진하도록 할 것이다. 법을 개정해서 올해 안에 반드시 공수처를 출범시키겠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야당 쪽 추천위원들이 회의를 계속하자고 제안했음에도 공수처장 추진위를 자진 해체한 것은 민주당이 공수처장 추천을 마음대로 하도록 상납한 법치 파괴 행위”라고 비판했다. 앞서 같은 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공수처법을 만들 때는 야당 추천권이 보장되면 대통령 마음대로 운영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강조하지 않았나”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한 뒤 오는 12월2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다. 야당 추천위원 2명이 반대하면 후보 추천을 할 수 없는 현재의 의결구조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여야는
서로 탓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는 이유로 윤석열 검찰총장을 들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이 점차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수처를 또 다른 카드로 사용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지난 1월 추 장관이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한 이후 윤 총장은 검찰인사에서 패싱당하기도 하고,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수사에서 배제되는 등 수모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을 비롯해 수족으로 분류됐던 검사들이 좌천당했다. 식물총장이라 불리며 자진사퇴 압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대검찰청 국감 이후 상황이 반전됐다. 지난달 22일 법사위 국감장에 모습을 드러낸 윤 총장은 2013년 국감 때처럼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추 장관 취임 이후 약 10개월에 걸쳐 쌓아둔 불만을 한꺼번에 터트리는 모양새였다. 정치권은 윤 총장의 발언에 엇갈린 반응을 내놨다. 

윤 총장에게 저격당한 추 장관은 감찰 지시로 응대했다. 흥미로운 점은 추 장관이 윤 총장을 두드릴 때마다 그의 지지율이 급속도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윤 총장의 지지율이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던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넘어서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17일에는 윤 총장이 이 대표나 이 지사와 각각 양자대결을 벌일 경우 초접전을 벌인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은 <아시아경제> 의뢰로 15~16일 양일간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고위공직자수사법

그 결과 윤 총장은 이 대표와 맞불을 경우 42.5% 대 42.3%로 오차범위(95% 신뢰수준에 ± 3.09%) 내에서 앞섰다. 이 지사와의 양자대결에서는 윤 총장 41.9% 대 이 지사 42.6%로 나타나 윤 총장이 근소하게 뒤졌다. 

특히 윤 총장은 ‘지지하는 정당이 없다’고 응답한 무당층에서 이 대표와 이 지사를 압도했다. 무당층만 놓고 보면 49.6% 대 15.1%(이 대표), 44.2% 대 24.6%(이 지사)로 압도적으로 앞섰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총장의 존재감이 대선후보급으로 커지면서 이를 견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검찰총장이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나오자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에서도 윤 총장의 정치 진출을 반대하는 의견이 제기된다. 추 장관은 좀 더 노골적으로 윤 총장을 압박하고 나섰다. 

여 “법 개정 해서라도 연내에”
야 “정권 비리수사 막으려고?”

검찰인사, 수사지휘권 발동 등의 공격에도 윤 총장이 사퇴할 조짐을 보이지 않자 감찰 카드로 찍어내려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법무부가 윤 총장에 대한 직접 감찰을 강행하려 하면서 갈등이 고조됐다.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직접 감찰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포석은 미리 깔아뒀다. 추 장관은 지난 3일 법무부 훈령인 ‘법무부 감찰 규정’을 기습 개정했다. 법무부가 검찰총장 등 중요사항을 감찰할 때 법무부 감찰위원회의 자문을 받도록 한 강제조항을 임의조항으로 바꾼 것이다. 다시 말해 윤 총장을 겨냥한 법무부 감찰에 따른 징계 결정은 외부인사가 포함된 감찰위원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지난 17일 법무부에 파견돼 근무하고 있던 평검사 2명이 윤 총장에 대한 감찰 관련 대면조사를 위해 대검찰청을 찾았다가 대검 반발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의혹에 대한 사전 자료 요구나 질문 검토도 없이 윤 총장과 면담을 하겠다며 평검사를 보낸 것은 윤 총장을 의도적으로 망신주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검찰총장에 대한 대면 감찰은 사실상 사퇴에 대한 최후통첩이나 다름없다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견해다. 감찰에 착수하면 직무배제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추 장관 입장에서도 이번 감찰 결과에 따라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다. 사퇴 여론이 더욱 높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나마 법무부에서 윤 총장에 대한 대면 감찰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한 지난 19일 오후 2시 직전 취소를 결정하면서 파국은 피한 상태다. 하지만 추‧윤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어지고 있는 갈등 상황에서 공수처가 윤 총장을 압박하는 마지막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민주당을 비롯한 여권에서는 검찰 개혁의 핵심 정책으로 공수처 출범을 촉구하면서 윤 총장이 ‘수사 대상 1호’가 될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 

초유의 감찰
윤, 버틸까?

국민의힘 의원들은 지난 19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정부·여당은 월성 원전 조기 폐쇄를 위한 경제성 조작 사건, 초유의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공작 사건, 여권 실세들이 연루된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건 등 정권 비리를 매장해버리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공수처 조기 출범에 목을 매는 것은 악취가 진동하는 각종 정권 비리를 막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공수처 수사대상 1호는 윤석열이라는 여권의 오랜 으름장은 빈 말이 아니다”며 “무소불위의 권한을 갖는 공수처장이기에 최소한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최소한의 업무능력은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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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