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 빅3’ 띄우는 친문 노림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30 10:09:35
  • 호수 1299호
  • 댓글 0개

주조연급 붙여 본격 흥행몰이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친문이 대선 판을 뒤흔들고 있다. 양강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권 구도에 제3후보론이라는 파장을 일으켰다. 친문 핵심 인사 입에서는 구체적인 제3후보들의 이름까지 거론됐다. <일요시사>는 친문이 띄우는 ‘대권주자 빅3’를 추적했다. 
 

▲ (사진 왼쪽부터)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친문(친 문재인)이 제3의 후보를 찾고 있다. 정치권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유력한 제3의 후보로 거론된다.

범친문
공통점

친문이 띄우는 ‘빅3’는 모두 범친문에 속한다. 정 총리의 정세균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범친노의 최대 계파로 불렸다. 정세균계는 친노(친 노무현)와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적으로 연합해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세균계를 ‘호남 친노’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한명숙 전 총리, 이광재 의원 등 친노 직계 인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정 총리의 정치적 뿌리는 호남이기 때문이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하 특보)은 신친문이다. 세 명 중 유일하게 친노 계열이 아니다. 앞서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등 임 특보는 친문과 거리가 멀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았던 이력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2017년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캠프에 영입됐다. 


임 특보는 대선 실무그룹이었던 ‘광흥창팀’에서 활동했다. 광흥창팀은 청와대 1기 참모진의 중심이다. 문 대통령 당선 후 광흥창팀 13명 중 12명(비서관급 이상 8명)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임 특보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정치권은 이후 임 특보를 신친문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임 특보는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문재인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했기에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서 ‘개국공신’으로 통한다. 임 특보가 ‘친문 적자’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돈독한 사이라는 점도 친문의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이광재 의원은 친노 직계다. 한때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을 정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노 전 대통령의 보좌진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 의원은 그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해왔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참여정부가 출범하자 이 의원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제17대 총선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열린우리당은 친노 직계 인사들이 민주당을 나와 만든 정당이다. 

싸움 말리고 흥정 붙인다
대선판 흔드는 태풍의 핵

친문 인사들은 ‘제3후보론’의 불씨를 당겼다.

친문 핵심 인사들이 속했던 ‘부엉이 모임’의 일원이었으며, 친문 인사 56명이 참여한 연구모임인 ‘민주주의4.0연구원(이하 연구원)’의 출범을 주도한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지난 24일 “현재는 두 분(민주당 이낙연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이 경쟁하고 있지만, 상황 변화가 온다면 제2, 제3, 제4의 후보들이 등장해서 경쟁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판 키우기에 나섰다.


홍 의원은 정 총리와 임 특보, 이 의원을 가리켜 ‘대권주자로서 충분한 자격과 비전을 가진 분들’이라고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친문 핵심인 민주당 황희 의원은 지난 25일 이 의원에 대해 “당연히 이 의원도 훌륭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 23일 연구원의 이사로 선출됐다. 빅3 중 이 의원만이 연구원에 합류했다.

이 의원은 다음달 초 책을 출판한다. 책 제목은 <노무현이 옳았다>. 정치적 현안보다는 전환기를 맞은 우리 사회의 정책 방향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쪽에 무게를 두고 집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민주당 미래전환 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이다. 뉴딜은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이다. 
 

▲ 이인영 통일부 장관 ⓒ사진공동취재단

정치권은 출판을 기점으로 이 의원이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시작할 것이라 예상한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 의원은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며 본인이 직접 선수로 뛸 가능성을 열어뒀다.

임 특보는 최근 전국을 돌며 기초자치단체장 등 지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있다. 임 특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의 남북 도시 교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함이다. 이 같은 행보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수 지사가 항소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서 정치권은 그와 친분이 있는 임 특보의 대권 도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친문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는

친노 
운동권
임 특보와 이 의원이 차기 권력으로 가장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차기 대권에 도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장관과 임 특보는 경문협이라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통일부가 지난 8월 입법예고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에는 경문협이 운신의 폭을 넓히는 내용도 포함됐다. 

임 특보와 이 장관을 미는 세력은 민주당 내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86그룹의 대표주자 격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민주당 주류로 집권하고 있는 86그룹이 임 특보와 이 장관 중 한 명을 지원한다면 대선 판은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 총리의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본다. 최근 세종 총리공관에서 취임 300일 간담회를 연 정 총리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시대정신’을 언급하며 대권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출했다. 

정 총리는 영남에서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포항(7일), 부산(11일), 울산(14일), 대구(28일) 등 11월에만 네 차례 영남을 찾았다. 이어 12월4일에는 창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행보만이 아니다. 발언으로도 영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포항의 사위’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정 총리는 지난 7일 포항을 방문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정 총리는 대구를 찾았을 당시 “나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중 유일한 TK(대구·경북)의 사위”라고 밝힌 바 있다. 


정 총리가 잇따라 영남을 찾는 이유로 확장성을 꼽는 해석이 존재한다. 전북 진안 출신으로 호남에 정치적 지분을 두고 있는 정 총리가 대권을 위해 영남에 소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해석이다.

광폭 행보
바빠졌다

정 총리는 총리실 산하에 특별보좌관과 자문위원단을 꾸렸다. ‘보건의료’ ‘그린뉴딜’ ‘국민소통’ 세 분야에 대해 각각 특별보좌관 1명과 자문위원 2명을 위촉했다. 각 분야 관련 연구단체 관계자와 대학 교수가 주축이다. 정 총리는 이들을 위촉하는 자리에서 “총리의 또 다른 눈과 귀, 입이 돼 총리와 국민 사이에 가교 역할을 잘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들을 위촉하기 위해 정 총리는 총리실 직제를 개편했다. 이전 법령상으로는 총리실에 비서실장과 정무실장, 민정실장, 공보실장(대변인 겸임), 비서관 7명만 두게 돼있었다. 정 총리는 세 분야 외에도 경제, 복지, 행정 등 다른 분야에도 특별보좌관과 자문위원을 두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문위원단 등을 ‘차기 대선 캠프’라고 해석한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정세균계도 정 총리와 보폭을 맞추는 모습이다. 정세균계가 주축인 ‘광화문 포럼’은 최근 공부모임을 재개했다. 광화문 포럼에 속한 민주당 의원은 50여명으로 추산된다. 민주당 의석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세균계가 아닌 의원들도 일부 광화문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포럼의 회장은 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운영위원장과 간사는 같은 당 이원욱 의원과 안호영 의원이 각각 맡고 있다.


과연 빅3 중 누가 친문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인가. 연구원 인사들은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정치권은 연구원을 부엉이 모임의 ‘확장판’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연구원이 단순 연구모임에 그치지 않고 특정 후보를 밀어주는 식의 정치 행위를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연구원 출범이 친문 대권주자를 선택하기 전 ‘조직 다지기’라는 것. 

제3후보론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양강 구도로는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대안론이다. 현재 양강 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지율은 20%대 초반의 ‘박스권’에 머물러있다. 

‘제3후보론’ 군불 지피는 이유?
정세균·임종석·이광재 행보 주목

친문 일각에서는 여권 대선 레이스가 지금의 양강 구도를 유지할 경우 유권자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커질 것이라 우려한다. 여기에 더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지율이 이 대표와 이 지사를 위협하면서 여권 내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다. 한때 윤 총장의 지지율이 두 사람을 제쳤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친문이 띄우는 빅3 모두 ‘친노’ ‘열린우리당’ ‘운동권’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돼있다. 반면 이 대표와 이 지사는 이러한 요소들과 다른 정치적 길을 걸어왔다.

이 대표는 동교동계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현재는 ‘이낙연계’라는 독자 계파의 수장이다.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이 대표는 민주당에 잔류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 대표는 운동권과도 거리가 멀다.

이 지사는 비문(비 문재인)계로 분류된다. 스스로 무계파, ‘정치적 무수저’라고 말한다. 이 지사는 복수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 유산을 이용해서 정치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해왔다. 변호사 출신의 시민운동가로 운동권도 아니다. 단, 이 지사는 열린우리당과의 접점을 갖고 있다.

지난 2006년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성준 기자

제3후보론의 등장에 정치권은 이 지사보다 이 대표가 더욱 타격받을 것이라 진단한다. 친문과의 관계에서 균열의 조짐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서다. 이 대표는 지난 8·29 전당대회에서 친문 성향 권리당원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당선됐다. 

이 대표는 보은 차원에서 당선 직후 친문 인사들을 요직에 앉혔다. 친문 핵심인 박광온 의원을 당 사무총장에, 노무현정부 청와대 행사기획 비서관과 문재인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거친 김영배 의원을 정무실장으로 인선했다. 또 부산 친문 핵심인 재선의 최인호 의원을 수석대변인으로 발탁했다.

‘추-윤 갈등’ 국면에서도 이 대표는 중립을 지키기보다 친문의 손을 들어주는 쪽을 선택했다. 이 대표는 지난 25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법무부가 밝힌 윤석열 총장의 혐의는 충격적”이라며 “법무부와 병행해 국회에서 국정조사 추진 방안을 당에서 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위기의 NY
돌파구는?

이 대표가 돌연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들며 윤 총장 찍어내기의 선봉에 나선 것이다. 국정조사 카드에는 지지율 답보 상태인 이 대표가 친문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 대표를 향해 “대선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결국 친문의 환심을 사기로 결정한 것이냐”고 지적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정 라인’ 힘 받는 이유

‘연정 라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 외교가 안팎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문재인정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연정 라인이 트럼프-바이든 교체기라는 민감한 시기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에 관한 관심이다.

연정 라인은 문정부 외교안보 관련 최대 실세로 꼽힌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김기정 국가정보원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이 연정 라인의 주축으로 꼽힌다. 그중 문 특보가 연정 라인의 좌장을 맡고 있다.

연정 라인은 외교·안보 당국의 수뇌부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최 차관이 외교부로 자리를 옮겼을 당시 외교가 안팎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외교부 출신이 아닐 뿐더러 역대 최연소 차관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최 차관은 연정 라인의 막내 격이다. 국가안보실 평화군비통제비서관으로서 지난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 차관을 외교부로 보낸 것을 두고 얼어붙은 비핵화 협상을 재개할 돌파구를 마련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원장과 최 차관은 문 대통령의 대선후보 캠프에서 외교·안보 관련 보좌진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