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 빅3’ 띄우는 친문 노림수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30 10:09:35
  • 호수 12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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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연급 붙여 본격 흥행몰이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친문이 대선 판을 뒤흔들고 있다. 양강으로 진행되고 있는 대권 구도에 제3후보론이라는 파장을 일으켰다. 친문 핵심 인사 입에서는 구체적인 제3후보들의 이름까지 거론됐다. <일요시사>는 친문이 띄우는 ‘대권주자 빅3’를 추적했다. 
 

▲ (사진 왼쪽부터)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청와대 외교안보특보,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친문(친 문재인)이 제3의 후보를 찾고 있다. 정치권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광재 의원이 유력한 제3의 후보로 거론된다.

범친문
공통점

친문이 띄우는 ‘빅3’는 모두 범친문에 속한다. 정 총리의 정세균계는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범친노의 최대 계파로 불렸다. 정세균계는 친노(친 노무현)와 오랜 기간 관계를 유지하며 정치적으로 연합해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세균계를 ‘호남 친노’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한명숙 전 총리, 이광재 의원 등 친노 직계 인사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온 정 총리의 정치적 뿌리는 호남이기 때문이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하 특보)은 신친문이다. 세 명 중 유일하게 친노 계열이 아니다. 앞서 박원순계로 분류되는 등 임 특보는 친문과 거리가 멀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았던 이력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 2017년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캠프에 영입됐다. 


임 특보는 대선 실무그룹이었던 ‘광흥창팀’에서 활동했다. 광흥창팀은 청와대 1기 참모진의 중심이다. 문 대통령 당선 후 광흥창팀 13명 중 12명(비서관급 이상 8명)이 청와대에 입성했다. 임 특보도 그중 한 명이었다. 정치권은 이후 임 특보를 신친문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임 특보는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문재인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했기에 친문 지지자들 사이에서 ‘개국공신’으로 통한다. 임 특보가 ‘친문 적자’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돈독한 사이라는 점도 친문의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이광재 의원은 친노 직계다. 한때 ‘좌희정 우광재’로 불렸을 정도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노 전 대통령의 보좌진으로 국회에 입성한 이 의원은 그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해왔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참여정부가 출범하자 이 의원은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제17대 총선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정치인으로의 변신에 성공했다. 열린우리당은 친노 직계 인사들이 민주당을 나와 만든 정당이다. 

싸움 말리고 흥정 붙인다
대선판 흔드는 태풍의 핵

친문 인사들은 ‘제3후보론’의 불씨를 당겼다.

친문 핵심 인사들이 속했던 ‘부엉이 모임’의 일원이었으며, 친문 인사 56명이 참여한 연구모임인 ‘민주주의4.0연구원(이하 연구원)’의 출범을 주도한 민주당 홍영표 의원은 지난 24일 “현재는 두 분(민주당 이낙연 대표, 이재명 경기도지사)이 경쟁하고 있지만, 상황 변화가 온다면 제2, 제3, 제4의 후보들이 등장해서 경쟁할 수도 있다고 본다”고 판 키우기에 나섰다.


홍 의원은 정 총리와 임 특보, 이 의원을 가리켜 ‘대권주자로서 충분한 자격과 비전을 가진 분들’이라고 평가했다.

마찬가지로 친문 핵심인 민주당 황희 의원은 지난 25일 이 의원에 대해 “당연히 이 의원도 훌륭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지도자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지난 23일 연구원의 이사로 선출됐다. 빅3 중 이 의원만이 연구원에 합류했다.

이 의원은 다음달 초 책을 출판한다. 책 제목은 <노무현이 옳았다>. 정치적 현안보다는 전환기를 맞은 우리 사회의 정책 방향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쪽에 무게를 두고 집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민주당 미래전환 K-뉴딜위원회 총괄본부장이다. 뉴딜은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이다. 
 

▲ 이인영 통일부 장관 ⓒ사진공동취재단

정치권은 출판을 기점으로 이 의원이 본격적인 대권 행보를 시작할 것이라 예상한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 의원은 ‘킹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며 본인이 직접 선수로 뛸 가능성을 열어뒀다.

임 특보는 최근 전국을 돌며 기초자치단체장 등 지역의 주요 인사들을 만나고 있다. 임 특보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하 경문협)’의 남북 도시 교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함이다. 이 같은 행보는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경수 지사가 항소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서 정치권은 그와 친분이 있는 임 특보의 대권 도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친문 핵심 인사들 사이에서는

친노 
운동권
임 특보와 이 의원이 차기 권력으로 가장 집중적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차기 대권에 도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장관과 임 특보는 경문협이라는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통일부가 지난 8월 입법예고한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에는 경문협이 운신의 폭을 넓히는 내용도 포함됐다. 

임 특보와 이 장관을 미는 세력은 민주당 내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86그룹의 대표주자 격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민주당 주류로 집권하고 있는 86그룹이 임 특보와 이 장관 중 한 명을 지원한다면 대선 판은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정치권에서는 정 총리의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본다. 최근 세종 총리공관에서 취임 300일 간담회를 연 정 총리는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시대정신’을 언급하며 대권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출했다. 

정 총리는 영남에서 정치적 보폭을 넓히고 있다. 포항(7일), 부산(11일), 울산(14일), 대구(28일) 등 11월에만 네 차례 영남을 찾았다. 이어 12월4일에는 창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행보만이 아니다. 발언으로도 영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포항의 사위’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정 총리는 지난 7일 포항을 방문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정 총리는 대구를 찾았을 당시 “나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중 유일한 TK(대구·경북)의 사위”라고 밝힌 바 있다. 


정 총리가 잇따라 영남을 찾는 이유로 확장성을 꼽는 해석이 존재한다. 전북 진안 출신으로 호남에 정치적 지분을 두고 있는 정 총리가 대권을 위해 영남에 소위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해석이다.

광폭 행보
바빠졌다

정 총리는 총리실 산하에 특별보좌관과 자문위원단을 꾸렸다. ‘보건의료’ ‘그린뉴딜’ ‘국민소통’ 세 분야에 대해 각각 특별보좌관 1명과 자문위원 2명을 위촉했다. 각 분야 관련 연구단체 관계자와 대학 교수가 주축이다. 정 총리는 이들을 위촉하는 자리에서 “총리의 또 다른 눈과 귀, 입이 돼 총리와 국민 사이에 가교 역할을 잘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들을 위촉하기 위해 정 총리는 총리실 직제를 개편했다. 이전 법령상으로는 총리실에 비서실장과 정무실장, 민정실장, 공보실장(대변인 겸임), 비서관 7명만 두게 돼있었다. 정 총리는 세 분야 외에도 경제, 복지, 행정 등 다른 분야에도 특별보좌관과 자문위원을 두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자문위원단 등을 ‘차기 대선 캠프’라고 해석한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정세균계도 정 총리와 보폭을 맞추는 모습이다. 정세균계가 주축인 ‘광화문 포럼’은 최근 공부모임을 재개했다. 광화문 포럼에 속한 민주당 의원은 50여명으로 추산된다. 민주당 의석의 3분의 1 수준이다. 

정세균계가 아닌 의원들도 일부 광화문 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포럼의 회장은 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운영위원장과 간사는 같은 당 이원욱 의원과 안호영 의원이 각각 맡고 있다.


과연 빅3 중 누가 친문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인가. 연구원 인사들은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정치권은 연구원을 부엉이 모임의 ‘확장판’으로 보고 있다. 더 나아가 연구원이 단순 연구모임에 그치지 않고 특정 후보를 밀어주는 식의 정치 행위를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연구원 출범이 친문 대권주자를 선택하기 전 ‘조직 다지기’라는 것. 

제3후보론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양강 구도로는 대선을 치를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 나온 대안론이다. 현재 양강 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지지율은 20%대 초반의 ‘박스권’에 머물러있다. 

‘제3후보론’ 군불 지피는 이유?
정세균·임종석·이광재 행보 주목

친문 일각에서는 여권 대선 레이스가 지금의 양강 구도를 유지할 경우 유권자들이 느끼는 피로감이 커질 것이라 우려한다. 여기에 더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지율이 이 대표와 이 지사를 위협하면서 여권 내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다. 한때 윤 총장의 지지율이 두 사람을 제쳤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친문이 띄우는 빅3 모두 ‘친노’ ‘열린우리당’ ‘운동권’이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돼있다. 반면 이 대표와 이 지사는 이러한 요소들과 다른 정치적 길을 걸어왔다.

이 대표는 동교동계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현재는 ‘이낙연계’라는 독자 계파의 수장이다. 과거 열린우리당 창당 당시 이 대표는 민주당에 잔류했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인 이 대표는 운동권과도 거리가 멀다.

이 지사는 비문(비 문재인)계로 분류된다. 스스로 무계파, ‘정치적 무수저’라고 말한다. 이 지사는 복수의 인터뷰를 통해 “정치적 유산을 이용해서 정치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해왔다. 변호사 출신의 시민운동가로 운동권도 아니다. 단, 이 지사는 열린우리당과의 접점을 갖고 있다.

지난 2006년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정치권에 입문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성준 기자

제3후보론의 등장에 정치권은 이 지사보다 이 대표가 더욱 타격받을 것이라 진단한다. 친문과의 관계에서 균열의 조짐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서다. 이 대표는 지난 8·29 전당대회에서 친문 성향 권리당원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 대표로 당선됐다. 

이 대표는 보은 차원에서 당선 직후 친문 인사들을 요직에 앉혔다. 친문 핵심인 박광온 의원을 당 사무총장에, 노무현정부 청와대 행사기획 비서관과 문재인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거친 김영배 의원을 정무실장으로 인선했다. 또 부산 친문 핵심인 재선의 최인호 의원을 수석대변인으로 발탁했다.

‘추-윤 갈등’ 국면에서도 이 대표는 중립을 지키기보다 친문의 손을 들어주는 쪽을 선택했다. 이 대표는 지난 25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법무부가 밝힌 윤석열 총장의 혐의는 충격적”이라며 “법무부와 병행해 국회에서 국정조사 추진 방안을 당에서 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위기의 NY
돌파구는?

이 대표가 돌연 국정조사 카드를 꺼내들며 윤 총장 찍어내기의 선봉에 나선 것이다. 국정조사 카드에는 지지율 답보 상태인 이 대표가 친문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도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이 대표를 향해 “대선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되기 위해 결국 친문의 환심을 사기로 결정한 것이냐”고 지적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정 라인’ 힘 받는 이유

‘연정 라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이 외교가 안팎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문재인정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연정 라인이 트럼프-바이든 교체기라는 민감한 시기를 어떻게 뚫고 나갈지에 관한 관심이다.

연정 라인은 문정부 외교안보 관련 최대 실세로 꼽힌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준형 국립외교원장, 김기정 국가정보원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최종건 외교부 1차관 등이 연정 라인의 주축으로 꼽힌다. 그중 문 특보가 연정 라인의 좌장을 맡고 있다.

연정 라인은 외교·안보 당국의 수뇌부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최 차관이 외교부로 자리를 옮겼을 당시 외교가 안팎에서는 놀랍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외교부 출신이 아닐 뿐더러 역대 최연소 차관 기록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최 차관은 연정 라인의 막내 격이다. 국가안보실 평화군비통제비서관으로서 지난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 차관을 외교부로 보낸 것을 두고 얼어붙은 비핵화 협상을 재개할 돌파구를 마련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원장과 최 차관은 문 대통령의 대선후보 캠프에서 외교·안보 관련 보좌진으로 활동한 이력을 갖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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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