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라인’ 순장조 딜레마

‘승승장구 1년’ 끝이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수장이 바뀌면 조직 내부는 불가피하게 물갈이 과정을 거친다. 수장의 성향에 따라 인사의 향방은 엇갈린다. 승승장구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한직으로 밀려나 있던 사람이 깜짝 발탁되기도 한다. 
 

▲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법무부 수장이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임명안을 재가하면서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후보자 딱지를 뗐다. 박 장관은 취임 첫날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몸살을 앓은 서울 동부구치소로 출근했다. 교정본부의 코로나19 관련 상황을 살핀다는 의도였다.

공 많았지만
과도 뚜렷해

같은 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를 떠났다. 지난해 1월 장관으로 임명된 지 1년여 만이다. 추 전 장관은 이날 이임식에서 “모든 개혁에는 응당 저항이 있을 수 있다. 영원한 개혁은 있어도 영원한 저항은 있을 수 없다”며 “그것이 우리가 걸어온 변함없는 역사의 경로이며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라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의 공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조국 전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에 입성한 추 전 장관은 임기 초부터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실제 392일간의 재임기간 동안 추 전 장관은 검찰의 권한 줄이기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를 제한하고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이뤄냈다. 진보 진영의 숙원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출범시켰다. 부모의 자녀 체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민법 개정안을 성사시켰다.


또 증권 분야에 한정된 집단소송제를 전 분야로 확대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일반화하는 상법 개정안도 마련했다. 소비자 보호와 피해구제 강화에 힘썼다는 평가다. 

하지만 공만큼이나 과도 뚜렷했다. 추 전 장관은 임기 내내 윤석열 검찰총장과 갈등을 빚었다. 추윤대전, 추윤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극심한 대립이었다. 두 사람은 추 전 장관의 취임 직후 검찰 고위간부급 인사 과정에서 검찰총장의 의견 청취 문제를 두고 맞부딪쳤다. 이 과정에서 ‘윤석열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수사지휘권도 여러 차례 발동했다. 수사지휘권은 추 전 장관 이전까지 딱 한 차례만 발동된 바 있다. 지난해 7월 ‘채널A 사건’ 수사와 관련해 윤 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강행하려 하자 이를 중단하라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10월에는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과 윤 총장 가족 의혹 사건 등에서 윤 총장을 배제하는 수사지휘권을 재차 행사했다. 

고위간부급 인사 단행 예정
이성윤·심재철 향방에 관심

지난해 11월 추 전 장관은 윤 총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면서 징계를 청구했다.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와 직무집행 정지명령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후 검사징계위원회를 강행, 윤 총장에 대한 정직 2개월을 끌어냈다. 하지만 두 번 모두 법원이 윤 총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추 전 장관은 치명상을 입었다.

그 사이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윤 총장은 한때 지지율 조사에서 1위에 오를 만큼 반사이익을 얻었다. 추 전 장관은 체면을 구긴 것은 물론,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문 대통령이 재가한 윤 총장에 대한 징계가 법원에서 뒤집히면서 추 전 장관이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 ⓒ박성원 기자

그에게는 아들 특혜 휴가 의혹 사건이 임기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소설 쓰시네” “김도읍(국민의힘 의원), 검사 안 하길 잘 해” 등의 발언으로 야당 의원들과 여러 차례 대립했다. 최근에는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1000명이 넘는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책임론도 나왔다. 결국 추 전 장관은 “국민께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추 전 장관의 법무부는 지난해 정부 업무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C 등급을 받은 법무부는 3년째 최하위 평가를 받고 있다. 법무부는 정부 혁신(B 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 모두 최하위인 C 등급을 받아 종합평가 최하위 그룹을 형성했다. 특히 일자리·국정과제 분야에서 “권력기관 개혁의 성공적 안착 등 지속적인 노력이 요구된다”는 평가를 받았다.

추 전 장관은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남았다. 특히 이른바 ‘추미애 라인’으로 불리는 인사들의 향방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달 21일 평검사 인사에 이어 고위간부급 인사를 앞두고 있다. 새로 취임한 박 장관이 고위간부급 인사를 단행하면 추미애 라인의 변화도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게다가 추미애 라인 인사들의 현 상황도 그리 좋지 못하다.

총장과 갈등
완벽한 패배

고기영 전 법무부 차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이용구 차관은 ‘택시기사 폭행사건’으로 사면초가 상태다. 고 전 차관은 지난해 11월30일 추 전 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12월1일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의 직무 배제 효력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리기 하루 전날이다. 

문 대통령은 고 전 차관의 사의 표명이 있은 다음날 바로 이 차관을 내정했다. 당시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이 차관은 징계위원회에 참석, 윤 총장의 정직 2개월 결정을 내렸다. 

이후 지난해 12월19일 언론보도를 통해 이 차관이 연루된 택시기사 폭행사건이 알려졌다. 사건이 일어난 건 지난해 11월6일. 당시 이 차관은 변호사였다. 이틀 뒤인 8일 택시기사는 이 차관과 직접 만나 사과를 받고 합의했다. 그러고 나서 9일 택시기사가 서초경찰서에 출석해 피해자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사건 발생 엿새 만인 12일 내사종결 처리했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고성준 기자

경찰은 폭행 상황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없고 피해자가 합의했기 때문에 내사종결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블랙박스 영상이 드러나면서 경찰이 수세에 몰렸다. 심지어 경찰은 영상을 직접 보고도 “못 본 걸로 하겠다”며 사건을 덮었다. 경찰은 논란이 커진 이후에야 사과문을 내고 진상조사에 나섰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김학의 출금 사건’으로 곤란한 처지에 처했다. 이 지검장은 문재인정부 들어 검찰 내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대검찰청 공공수사부장은 검찰 빅4로 불린다. 이 지검장은 3년 만에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장까지 올랐다.

서울중앙지검장은 주요 관공서와 대기업 본사가 밀집한 서울을 관할하는 만큼 ‘검사장의 꽃’으로 불린다. 

1년 만에
상황 악화

이 지검장도 추 전 장관만큼은 아니어도 윤 총장과 자주 갈등을 빚었다. 조국 전 장관 아들의 인턴 경력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 기소 건과 채널A 사건에 대한 전문수사자문단 구성을 두고 윤 총장에게 반기를 든 바 있다. 채널A 사건과 관련해서는 한동훈 검사장을 무혐의 처리해야 한다는 수사팀 보고서의 결재를 피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최근 이 지검장은 김학의 전 차관의 출금 의혹과 관련해 사건을 무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지검장은 당시 대검 반부패부장이었다. 이 지검장은 김 전 차관을 출국금지한 날 서울동부지검에 ‘지검장이 출금서류 제출을 사후 승인한 걸로 해달라’는 부탁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26일 대검 반부패강력부를 압수수색하면서 수사망을 좁히고 있다.


검찰이 이 지검장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상갓집 항명’의 주인공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상갓집 항명은 한 장례식장에서 양석조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이 직속상관이던 심 국장에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왜 무혐의냐. 당신이 검사냐”고 공개적으로 항명한 사건이다. 
 

▲ ▲심재철 법무부 검찰국장 ⓒ박성원 기자

심 국장은 추 전 장관의 인사청문회준비단에서 언론홍보팀장을 맡았다. 그리고 지난해 1월 추 전 장관의 첫 인사에서 반부패부장을 달았고, 두 번째 인사에서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추 전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법무부 검찰국장은 검찰 인사와 예산을 총괄하는 요직이다. 

심 국장은 윤 총장 징계위원회에 합류했다가 ‘자진회피’ 형식으로 빠졌다.

박범계 “총장 의견 듣겠다”
좌천 검사들 다시 돌아오나

당시 심 국장은 윤 총장 직무정지의 주요 사유였던 대검의 ‘재판부 성향 분석’ 문건을 추 전 장관에게 제보하고, 윤 총장 징계 절차와 윤 총장 수사 의뢰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심 국장이 윤 총장 징계위원회에서 제보자와 징계위원, 진술자 역할을 맡은 사실이 알려져 비판이 일기도 했다.


지난 18일 미래대안행동은 법조비리 사건인 ‘정운호 게이트’와 관련해 심 국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대검에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정운호 게이트는 검사장,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상습도박 혐의로 기소된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보석 청탁 등을 대가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 챙긴 대형 법조비리 사건이다. 

이 단체는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이었던 심 국장이 정 전 대표의 변호인이었던 최유정 변호사로부터 뇌물을 수수하고 정 전 대표의 보석 청구에 ‘재판부 적의 처리’ 의견을 냈는지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통상 피고인의 구속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반대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재판부의 판단에 맡긴다는 ‘적의 처리’ 의견은 보석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 이용구 법무부 차관 ⓒ고성준 기자

추 전 장관은 장관직에서 물러나기 전 평검사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 21일 법무부는 고검검사급 검사 11명과 평검사 531명 등 542명에 대한 인사를 2월1일자로 진행했다. 법무부는 추 장관이 유지해 온 형사부 우대 원칙을 적용해 전국 검찰청 내 우수 형사부 검사를 발탁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지난달 28일 “검찰 인사가 급선무”라며 “인사 원칙과 기준을 가다듬은 뒤 윤 총장과 만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 장관이 윤 총장과 인사를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추 전 장관 때처럼 ‘윤석열 패싱’ 논란은 불거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까지
인사 단행

윤 총장이 검찰 인사에 의견을 내게 되면 추미애 라인 검사들이 밀려나고 윤석열 라인이 다시 중심부로 옮겨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특히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의 거취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채널A 사건 수사팀은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 결과를 ‘혐의 없음’으로 결론 내 재가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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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사분오열’ 의료계 내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뚝심인가, 고집인가?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대통령의 뜻이 확고해도 너무 확고하다. 겉으로는 유연한 대처를 언급하면서 ‘2000명’이라는 수치는 굽히지 않을 기세다. 강 대 강 대치에 나섰던 의료계는 우왕좌왕하는 모양새다. 의료계 내부의 의견을 모으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일요시사>와 인터뷰한 지방의대 A 교수는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밀어붙이는 윤석열정부의 강경 기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정규군은 수뇌부만 처리하면 와해되기 쉽다. 하지만 현재 의료계는 게릴라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주동자를 찾기 어렵고 실제 주동자도 없다. 전공의, 의대생 모두 조직의 통제하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윤정부 입장에서는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괄 협상에 따른 일괄 타결은 어렵다고 본다.” 2월 이후 평행선만 실제 의료계는 대학의사협회(의협),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등 여러 단체가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의대 정원 확대 반대’를 큰 틀로 하되 대응 방식이나 세부적인 요구사항은 각각 다른 상황이다. A 교수의 말대로 의료계는 현재 단일협의체가 없다. 협상테이블이 마련된다 해도 앞에 대표로 나설 사람이 없는 셈이다. 과거 의정갈등이 일어났을 때 주로 의협이 나서서 의료계 입장을 전달하고 대응을 이끌었다면 현재는 각개전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의협의 대표성에 대해 의문을 표한 상태다. 정부는 지난 2월 말 의협 대신 ‘대표성을 갖춘 협의체’를 구성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대해 대화하자고 의료계에 요청했다. 의협이 전체 의사들의 대표성을 띠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당시 주수호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은 “의협 회원엔 전공의·봉직의 등 모든 직역이 포함돼있고 모든 직역이 배출한 대의원 총회 의결을 거쳐 만들어진 조직이 비대위”라며 “정부가 의협의 대표성을 부정하는 이유는 내부 분열을 조장하기 위함”이라고 반발했다. 의협은 의료법에 근거해 모든 의사가 가입하는 법정 단체지만 개원의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번 의정갈등 국면서 가장 선봉에 선 단체는 전공의가 모인 대전협이 꼽힌다. 전공의가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병원을 떠나는 등 집단 강경 투쟁에 나서면서 의정갈등에 불이 붙었다. 의대생은 집단 휴학으로 힘을 실었다. 유급 마지노선에 이른 대학들이 수업을 재개했지만 의대생은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집단사직에 나선 전공의가 여전히 버티고 있는 상황서 의대생의 복귀 가능성 역시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대통령실 1년 유예안 일축하면서도 ‘2000명 정원’ 논의 가능성 제시해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학칙에 따른 형식적인 신청 요건을 지킨 의대생의 휴학 신청은 누적 1만242명으로 전체 의대 재학생 대비 54.5% 규모에 이른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과 수업 거부는 지난 2월부터 시작됐다. 대학 사이에선 이달 중순이 지나면 여름방학까지 총동원해도 유급을 막을 수 없다. 의대는 특정 수업서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을 결석하면 낙제(F) 처리되고 F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유급이 되도록 학칙을 세워둔 곳이 많다. 전공의의 집단사직으로 병원 업무가 마비되고 일부 의료진에 업무가 과중되는 이른바 ‘의료대란’이 벌어졌다. 여기에 의대생의 집단 휴학은 의사 수급 부족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의료현장에 구멍이 생기면서 의사를 찾지 못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일어났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지난 2월6일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을 5058명으로 현행보다 2000명 늘리겠다고 발표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요지부동 상태다. 정부는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2006년 이후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한 것이다. 당시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발표 당시 의료계와 소통한 결과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10월26일 ‘의대정원 확대 추진계획’을 발표한 이후 40개 대학으로부터 증원 수요와 교육역량에 대한 자료를 받았고 현장점검을 포함한 검증을 마쳤다고 밝혔다. 의료계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했다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강조했다. 언론사 여론조사 등에서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에 대해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을 의미있게 언급했다. “흔들림 없는 의료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국민의 응원을 지지대로 삼은 것이다. 요구 다른 의사단체 윤석열 대통령의 의지는 더 강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민께 드리는 말씀’ 대국민담화서 “역대 정부들이 9번 싸워 9번 모두 졌고 의사들의 직역 카르텔은 더욱 공고해졌다”며 “이제는 결코 그런 실패를 반복할 여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00명이라는 숫자는 정부가 꼼꼼하게 계산해 산출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며 “이를 결정하기까지 의사단체를 비롯한 의료계와 충분하고 광범위한 논의를 거쳤다”고 설명했다. 연구 결과를 들어 그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국책연구소 등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된 의사 인력 수급 체계를 검토했다. 수요 측면서 저출산 고령화와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 만성질환의 증가와 같은 질병구조의 변화, 소득 증가에 따른 의료수요 변화까지 반영했다”며 “어떤 방법론이더라도 지금부터 10년 후인 2035년에는 자연 증감분을 고려하고도 최소 1만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은 동일하다”고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 시기에 대해서도 정부는 가차없는 태도를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8일, 의협이 제안한 의대 증원 1년 유예안에 대해 “정부는 그간 검토한 바 없고 앞으로도 검토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앞서 박민수 복지부 차관이 “내부 검토는 하겠고 현재로서 수용 여부를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내놓은 답변서 더 강경해진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1년 유예안을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만약 의료계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그리고 통일된 의견으로 제시한다면 논의할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팔짱 낀 정부 공은 의료계로 일각에서는 정부는 초지일관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현재로선 ‘2000명’이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장벽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0명이라는 수치를 꿋꿋하게 고수하고 의료계는 2000명 백지화가 대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뜻을 굽히지 않는 중이다. 정부든 의료계든 어느 한쪽이라도 구부려야 맞닿는 법인데 평행선만 그리는 모양새다. 이 와중에 의료계는 내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의료계에 요구하는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 회장을 선출한 의협이 그 중심에 있는 상황이다. ‘강성’으로 꼽히는 임현택 의협 회장 당선인과 의협 비대위가 엇박자를 내고 있고 대전협의 박단 비대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갈등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현재 의협은 비대위원장과 차기 회장이 공존하는 상태다. 의협은 지난달 26일, 임 당선인을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 임 당선인은 결선투표서 65%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고 임기는 다음 달 1일부터다. 임 당선인의 등장으로 의협의 대정부 투쟁 수위가 올라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임 당선인은 의대 정원 증원 철회를 비롯해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파면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의사단체에 비해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마찰음이 나온 건 ‘단일대오’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였다. 의협 비대위는 지난 7일, 기자회견서 전의교협, 대전협, 의대협 등과 함께 합동 기자회견을 이번주 안에 열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임 당선인이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의협 비대위, 차기 회장·전공의 회장 갈등 삐걱거리는 단일대오에 대화 공전 가능성도 의협 회장직 인수위원회는 의협 비대위와 대의원회에 공문을 보내 임 당선인이 김택우 현 비대위원장 대신 의협 비대위원장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한 지붕 두 가족’ 상황의 의협 창구를 단일화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전협 박 위원장도 의협 비대위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의협 비대위 김택우 위원장, 전의교협 김창수 회장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있지만 합동 브리핑 진행에 합의한 적은 없다”고 적었다. 합동 기자회견은 일단 취소된 상태다. 박 위원장과 임 당선인의 갈등도 관심사다. 임 당선인은 지난 4일,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비공개 만남에 불만을 드러냈다. 의협 비대위는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만남을 ‘의미 있다’고 평가했지만 임 당선인은 SNS에 ‘내부의 적’을 운운하며 박 위원장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듯한 글을 남겼다. 박 위원장은 이 같은 보도 내용을 게시글에 공유하며 ‘유감’이라고 적었다. 전의교협은 의대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전의교협은 전국 40개 의과대학 교수협의회로 구성된 단체다. 김창수 전의교협 회장이 의협 비대위에 합류하면서 의료계 단일대오 구성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단일협의체 구성 속도에 따라 의정갈등의 타결 가능성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협 비대위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구성하려던 시도가 임 당선인과 박 위원장의 행보로 삐걱거리면서 의료계 상황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여기에 협상테이블이 마련돼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이뤄진다 해도 합의까지 가는 데는 하 세월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입장차가 그만큼 첨예하다는 뜻이다. 타결까지 첩첩산중 일각에서는 정부와 의료계 모두 환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에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이후 두 달 넘게 갈등이 계속되면서 환자들은 불편을 겪고 있고 일부 의료진은 업무 과중으로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전공의가 떠난 병원은 매일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10번째 갈등이 어떤 결론으로 끝나느냐에 따라 의료계 지각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