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이후…추미애-윤석열 장외전

총장님 ‘꿈틀’ 장관님 ‘발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감 발언으로 발발한 ‘추·윤 대전’이 장외전으로 번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연일 윤 총장을 향해 맹공을 퍼붓는 중이다. 이전과 달리 추 장관에 대한 검사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어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윤석열 검찰총장

지난달 22일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독무대였다. 2013년 국감의 재연이라는 말도 나왔다. 당시 여주지청장이었던 윤 총장은 국감장에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에 대한 검찰 윗선의 외압을 폭로했다. 그해 국감을 강타한 핵폭탄이었다. 

2020년 국감
2013년 데자뷔

당시 국감에서 나온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윤 총장을 상징하는 수사로 자리 잡았다. 박근혜정부 시절 한직을 전전하면서도 그가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도 국감에서의 활약이 컸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에 합류하면서 부활의 날개짓을 시작한 윤 총장은 문재인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 꽃길의 시작점이 2013년 국감이었던 셈이다. 

윤 총장은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로 문정부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청문회에서 윤 총장을 치켜세웠던 집권여당은 태세전환에 나섰고 여론 역시 뒤집혔다. 


윤 총장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부터다. 지난 1월 추 장관은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에 입성했다. 5선 국회의원, 당 대표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던 추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검찰인사와 조직개편으로 윤 총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2번의 검찰인사로 윤 총장의 수족이 다 잘려 나갔다.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고 있던 검사들은 한직으로 좌천되거나 이 과정에서 옷을 벗었다. 그 자리는 친정부 검사들, 이른바 ‘추미애 라인’으로 채워졌다.

문정부에서 가장 승승장구하고 있는 검사로 꼽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대표적이다. 이 지검장은 불과 1년 만에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빅4’ 요직을 두루 거쳐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랐다. 

그 후로 사사건건 윤 총장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조 전 장관의 아들 조모씨에게 허위 인턴확인서를 써준 혐의를 받고 있는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건,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수사 등을 두고 윤 총장에 반기를 들었던 것. 

침묵 지키다 나온 작심발언
감찰 3건으로 거취 압박?

추 장관은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윤 총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윤 총장이 추 장관의 뜻을 사실상 수용하는 방식으로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동시에 윤 총장의 거취 문제가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포함한 여권이 지난 4·15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윤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본격적으로 언급된 것도 그쯤이다. 아내와 장모 등 가족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졌고 측근의 비위 의혹에 윤 총장 책임론이 불거졌다. 


하지만 윤 총장은 자리를 지켰다. 추 장관의 지시에 맞서다가도 끝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다 공식석상에 설 기회가 있으면 몇 마디로 말로 정치권을 들썩이게 했다. 윤 총장의 발언에 갑론을박 정치적 해석이 따라 붙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지난 8월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윤 총장은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 실현된다”고 말한 바 있다.

독재, 전체주의 등 수위 높은 표현에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추 장관의 검찰인사, 수사지휘권 발동, 집권여당의 사퇴 압박, 검찰 개혁에 대한 드라이브 등을 에둘러 비판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윤 총장은 더 이상의 추가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대검찰청 국감에서 작심발언이 쏟아진 것이다. 당초 윤 총장이 국감에서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식물총장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과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나선 만큼 지난 2013년 국감에서처럼 대형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1월부터
압박 커져

윤 총장의 입에 모였던 관심은 그가 국감 시작과 동시에 여당 의원들의 공격을 맞받아치기 시작하면서 크게 달아올랐다.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이어진 국감에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시청률이 폭주했고 언론은 윤 총장의 발언에 주목했다. 

윤 총장은 라임·옵티머스 금융사기 사건에 검찰이 연루됐고 부실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무슨 근거로 제가 관련돼 있다고 발표했느냐”라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대검이 ‘중상모략’이라고 입장을 낸 데에 대해선 “중상모략이라는 단어,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추 장관은 SNS에 ‘검찰총장은 중상모략이라고 화부터 내기 전에 사과와 성찰부터 말했어야 한다’고 쓴 바 있다. 이외에도 윤 총장은 이날 국감장에서 추 장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추 장관의 (라임·옵티머스 사건에 대한)수사지휘권 행사는 범죄자 말만 믿고 한 것”이라며 의견을 묻자 윤 총장은 “법리적으로 보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수사지휘권 발동과 관련해서도 “위법하고 부당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지난 1월 인사를 두고 언론에서 ‘검찰총장 측근 대학살 인사’라고 표현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법에서 말하는 협의는 실질적으로 논의하라는 것”이라고 검찰 인사에 대해 비판했다. 

검찰청법 34조1항에 따르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하도록 명시돼있다. 또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돼있다.


윤 총장과 추 장관은 지난 1월 첫 검찰인사 때부터 이 부분을 두고 힘겨루기를 벌였다. 그러면서 ‘윤석열 패싱’ 논란도 불거졌다. 

실력 있는 검사들이 좌천됐다는 질문에 대해서도 “힘 있는 사람 수사는 굉장히 힘들고 어렵다. 여러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는 게 맞다”며 사실상 인정했다. 권력 수사하면 좌천으로 압축된다는 또 다른 의원의 말에 대해서도 재차 “그렇다”고 답했다. 

사퇴 압박에
“임기 지킬 것”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사퇴 압력으로 느껴지는 지에 대해서는 “임기라는 것은 취임하면서 국민들과 한 약속이다. 압력이 있더라도 제가 할 소임은 다 할 생각”이라며 물러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문 대통령이 총선 후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임기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도 말했다. 
 

▲ ▲▲ 최근 사퇴한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 ⓒ고성준 기자

윤 총장의 작심발언에 추 장관 감찰로 응수했다. 수사지휘권 발동에 이어 감찰 카드를 통해 윤 총장을 옭아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재 추 장관이 언급한 윤 총장 관련 감찰 사안은 언론사 사주 만남 의혹, 라임 사건 보고절차 위반 의혹 등이다. 

라임 사건과 관련한 검사·야권 정치인 로비 의혹이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의혹은 이미 지난달 22일 추 장관의 지시로 감찰이 진행 중이다.


라임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검이 수사 과정에 드러난 야권 로비 의혹을 지난 5월 윤 총장에게 직접 대면보고 했으면서도 3개월 동안 대검 반부패부장에게 중간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윤 총장이 직접 감찰 대상에 거론되진 않았지만 추후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부무는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수사 의뢰한 옵티머스 관련 의혹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수천억원대 펀드 사기 피해로 이어졌다는 국감 지적에 대해서도 감찰 지시를 내렸다.

또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신분으로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한 유력 언론사 사주를 만났다는 의혹에 대해 “감찰 중”이라고 전했다.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검찰 내부는 들끓고 있다. 자칫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추 장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검사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전파진흥원 사건 당시 수사팀 부장검사였던 김유철 원주지청장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수사 의뢰인이 소극적이고 특히 ‘자체 조사와 금감원 조사 결과 문제가 없었다’ ‘수사의뢰서에 기재된 혐의 내용은 정확히 모른다’고 진술하는 이상 조사과나 형사과에서 수사력을 대량으로 투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옵티머스 사건은 2018년 10월 수리, 2019년 5월 처분돼 7개월이 초과된 사건으로 부장 전결이 아니라 차장 전결이라 윤석열 총장이 ‘보고를 못 받았다’고 한 건 잘못됐다”며 전결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한 것과 관련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 내부서 반발 움직임
여론도 “추 장관 교체?”

김 지청장은 “중앙지검 조사과 지휘 기간 4개월을 빼면 3개월 만에 처리된 사건이라 전결규정 위반이 아니다”라며 “무혐의로 처분한 사건도 중요 사건으로 차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지 이견이 있었다. 특히 형제번호가 아닌 수제번호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는 경우 장기사건이 아닌 한 부장 전결로 처리해왔다”고 해명했다.  

‘검찰 개혁이 실패했다’는 검사의 작심비판도 나왔다. 이환우 제주지검 형사1부 검사는 “검찰개혁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아니, 절망하고 있다”며 “역시 ‘정치인들은 다 거기서 거기로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금 정치를 혐오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목적과 속내를 감추지 않은 채 인사권, 지휘권, 감찰권이 남발되고 있다고 느낀다”며 “마음에 들면 한없이 치켜세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찍어 누르겠다는 권력의지도 느껴진다. 이미 시그널은 충분하고 넘친다”고 덧붙였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고성준 기자

아울러 “정치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정권이 선한 권력인지 부당한 권력인지 제가 평가할 바는 못 된다”며 “다만 의도를 가지고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리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먼 훗날 부당한 권력이 검찰 장악을 시도하면서 2020년 법무부 장관이 행했던 그 많은 선례들을 교묘히 들먹이지 않을지 우려된다”며 “법적·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라임 수사 지휘를 맡아온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도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며 사퇴했다. 박 지검장은 추 장관의 윤 총장 수사지휘권 박탈에 대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고 정면으로 비판한 바 있다. 

검사 비판↑
검란 될까?

한편 ‘교체해야할 국무위원’으로 추 장관을 뽑은 응답자가 37%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업체 데이터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0명에게 실시한 조사 결과 추 장관은 교체 대상 1위로 꼽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13.3%),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8.5%)이 뒤를 이었다. 윤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 등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추 장관의 수사지휘에 대한 조사에서도 52.7%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자세한 내용은 데이터리서치 홈페이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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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