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이후…추미애-윤석열 장외전

총장님 ‘꿈틀’ 장관님 ‘발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의 국감 발언으로 발발한 ‘추·윤 대전’이 장외전으로 번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연일 윤 총장을 향해 맹공을 퍼붓는 중이다. 이전과 달리 추 장관에 대한 검사들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어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윤석열 검찰총장

지난달 22일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독무대였다. 2013년 국감의 재연이라는 말도 나왔다. 당시 여주지청장이었던 윤 총장은 국감장에서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에 대한 검찰 윗선의 외압을 폭로했다. 그해 국감을 강타한 핵폭탄이었다. 

2020년 국감
2013년 데자뷔

당시 국감에서 나온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윤 총장을 상징하는 수사로 자리 잡았다. 박근혜정부 시절 한직을 전전하면서도 그가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도 국감에서의 활약이 컸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에 합류하면서 부활의 날개짓을 시작한 윤 총장은 문재인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그 꽃길의 시작점이 2013년 국감이었던 셈이다. 

윤 총장은 검찰총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로 문정부와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청문회에서 윤 총장을 치켜세웠던 집권여당은 태세전환에 나섰고 여론 역시 뒤집혔다. 


윤 총장의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한 것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부터다. 지난 1월 추 장관은 조 전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에 입성했다. 5선 국회의원, 당 대표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던 추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검찰인사와 조직개편으로 윤 총장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2번의 검찰인사로 윤 총장의 수족이 다 잘려 나갔다. 청와대와 여권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맡고 있던 검사들은 한직으로 좌천되거나 이 과정에서 옷을 벗었다. 그 자리는 친정부 검사들, 이른바 ‘추미애 라인’으로 채워졌다.

문정부에서 가장 승승장구하고 있는 검사로 꼽히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대표적이다. 이 지검장은 불과 1년 만에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빅4’ 요직을 두루 거쳐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랐다. 

그 후로 사사건건 윤 총장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조 전 장관의 아들 조모씨에게 허위 인턴확인서를 써준 혐의를 받고 있는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당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건,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수사 등을 두고 윤 총장에 반기를 들었던 것. 

침묵 지키다 나온 작심발언
감찰 3건으로 거취 압박?

추 장관은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윤 총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은 윤 총장이 추 장관의 뜻을 사실상 수용하는 방식으로 일단락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와 동시에 윤 총장의 거취 문제가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포함한 여권이 지난 4·15 총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검찰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윤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이 본격적으로 언급된 것도 그쯤이다. 아내와 장모 등 가족에 대한 고소·고발이 이어졌고 측근의 비위 의혹에 윤 총장 책임론이 불거졌다. 


하지만 윤 총장은 자리를 지켰다. 추 장관의 지시에 맞서다가도 끝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다 공식석상에 설 기회가 있으면 몇 마디로 말로 정치권을 들썩이게 했다. 윤 총장의 발언에 갑론을박 정치적 해석이 따라 붙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지난 8월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당시 윤 총장은 “헌법의 핵심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를 통해 실현된다”고 말한 바 있다.

독재, 전체주의 등 수위 높은 표현에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추 장관의 검찰인사, 수사지휘권 발동, 집권여당의 사퇴 압박, 검찰 개혁에 대한 드라이브 등을 에둘러 비판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윤 총장은 더 이상의 추가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대검찰청 국감에서 작심발언이 쏟아진 것이다. 당초 윤 총장이 국감에서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식물총장으로 전락한 상황에서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과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나선 만큼 지난 2013년 국감에서처럼 대형 폭로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1월부터
압박 커져

윤 총장의 입에 모였던 관심은 그가 국감 시작과 동시에 여당 의원들의 공격을 맞받아치기 시작하면서 크게 달아올랐다.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이어진 국감에 국민들의 관심이 폭발했다. 시청률이 폭주했고 언론은 윤 총장의 발언에 주목했다. 

윤 총장은 라임·옵티머스 금융사기 사건에 검찰이 연루됐고 부실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무슨 근거로 제가 관련돼 있다고 발표했느냐”라고 반발했다. 이와 관련해 대검이 ‘중상모략’이라고 입장을 낸 데에 대해선 “중상모략이라는 단어,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점잖은 단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추 장관은 SNS에 ‘검찰총장은 중상모략이라고 화부터 내기 전에 사과와 성찰부터 말했어야 한다’고 쓴 바 있다. 이외에도 윤 총장은 이날 국감장에서 추 장관에 대한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추 장관의 (라임·옵티머스 사건에 대한)수사지휘권 행사는 범죄자 말만 믿고 한 것”이라며 의견을 묻자 윤 총장은 “법리적으로 보면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수사지휘권 발동과 관련해서도 “위법하고 부당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이 “지난 1월 인사를 두고 언론에서 ‘검찰총장 측근 대학살 인사’라고 표현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법에서 말하는 협의는 실질적으로 논의하라는 것”이라고 검찰 인사에 대해 비판했다. 

검찰청법 34조1항에 따르면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하도록 명시돼있다. 또 법무부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돼있다.


윤 총장과 추 장관은 지난 1월 첫 검찰인사 때부터 이 부분을 두고 힘겨루기를 벌였다. 그러면서 ‘윤석열 패싱’ 논란도 불거졌다. 

실력 있는 검사들이 좌천됐다는 질문에 대해서도 “힘 있는 사람 수사는 굉장히 힘들고 어렵다. 여러 불이익을 각오해야 하는 게 맞다”며 사실상 인정했다. 권력 수사하면 좌천으로 압축된다는 또 다른 의원의 말에 대해서도 재차 “그렇다”고 답했다. 

사퇴 압박에
“임기 지킬 것”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이 사퇴 압력으로 느껴지는 지에 대해서는 “임기라는 것은 취임하면서 국민들과 한 약속이다. 압력이 있더라도 제가 할 소임은 다 할 생각”이라며 물러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문 대통령이 총선 후 적절한 메신저를 통해 임기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도 말했다. 
 

▲ ▲▲ 최근 사퇴한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 ⓒ고성준 기자

윤 총장의 작심발언에 추 장관 감찰로 응수했다. 수사지휘권 발동에 이어 감찰 카드를 통해 윤 총장을 옭아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재 추 장관이 언급한 윤 총장 관련 감찰 사안은 언론사 사주 만남 의혹, 라임 사건 보고절차 위반 의혹 등이다. 

라임 사건과 관련한 검사·야권 정치인 로비 의혹이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보고되지 않았다는 의혹은 이미 지난달 22일 추 장관의 지시로 감찰이 진행 중이다.


라임 사건을 맡은 서울남부지검이 수사 과정에 드러난 야권 로비 의혹을 지난 5월 윤 총장에게 직접 대면보고 했으면서도 3개월 동안 대검 반부패부장에게 중간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다. 윤 총장이 직접 감찰 대상에 거론되진 않았지만 추후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부무는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수사 의뢰한 옵티머스 관련 의혹을 무혐의 처분하면서 수천억원대 펀드 사기 피해로 이어졌다는 국감 지적에 대해서도 감찰 지시를 내렸다.

또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신분으로 수사 중인 사건과 관련한 유력 언론사 사주를 만났다는 의혹에 대해 “감찰 중”이라고 전했다.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 가능성이 가시화되면서 검찰 내부는 들끓고 있다. 자칫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추 장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검사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전파진흥원 사건 당시 수사팀 부장검사였던 김유철 원주지청장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수사 의뢰인이 소극적이고 특히 ‘자체 조사와 금감원 조사 결과 문제가 없었다’ ‘수사의뢰서에 기재된 혐의 내용은 정확히 모른다’고 진술하는 이상 조사과나 형사과에서 수사력을 대량으로 투입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옵티머스 사건은 2018년 10월 수리, 2019년 5월 처분돼 7개월이 초과된 사건으로 부장 전결이 아니라 차장 전결이라 윤석열 총장이 ‘보고를 못 받았다’고 한 건 잘못됐다”며 전결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한 것과 관련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 내부서 반발 움직임
여론도 “추 장관 교체?”

김 지청장은 “중앙지검 조사과 지휘 기간 4개월을 빼면 3개월 만에 처리된 사건이라 전결규정 위반이 아니다”라며 “무혐의로 처분한 사건도 중요 사건으로 차장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지 이견이 있었다. 특히 형제번호가 아닌 수제번호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는 경우 장기사건이 아닌 한 부장 전결로 처리해왔다”고 해명했다.  

‘검찰 개혁이 실패했다’는 검사의 작심비판도 나왔다. 이환우 제주지검 형사1부 검사는 “검찰개혁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아니, 절망하고 있다”며 “역시 ‘정치인들은 다 거기서 거기로구나’ 하는 생각에 다시금 정치를 혐오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목적과 속내를 감추지 않은 채 인사권, 지휘권, 감찰권이 남발되고 있다고 느낀다”며 “마음에 들면 한없이 치켜세우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찍어 누르겠다는 권력의지도 느껴진다. 이미 시그널은 충분하고 넘친다”고 덧붙였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고성준 기자

아울러 “정치는 잘 모르겠다. 지금의 정권이 선한 권력인지 부당한 권력인지 제가 평가할 바는 못 된다”며 “다만 의도를 가지고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리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먼 훗날 부당한 권력이 검찰 장악을 시도하면서 2020년 법무부 장관이 행했던 그 많은 선례들을 교묘히 들먹이지 않을지 우려된다”며 “법적·역사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라임 수사 지휘를 맡아온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도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며 사퇴했다. 박 지검장은 추 장관의 윤 총장 수사지휘권 박탈에 대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행사돼야 한다”고 정면으로 비판한 바 있다. 

검사 비판↑
검란 될까?

한편 ‘교체해야할 국무위원’으로 추 장관을 뽑은 응답자가 37%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쿠키뉴스가 여론조사업체 데이터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 1000명에게 실시한 조사 결과 추 장관은 교체 대상 1위로 꼽혔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13.3%),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8.5%)이 뒤를 이었다. 윤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 발동 등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추 장관의 수사지휘에 대한 조사에서도 52.7%가 ‘부적절하다’고 답했다. (자세한 내용은 데이터리서치 홈페이지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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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