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추 라인’ 타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12.07 10:30:37
  • 호수 13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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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지우기’ 협공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이용구 전 법무실장이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돼 출근하기 시작했다. 법조계에선 여권 성향의 이 차관의 합류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강행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 이용구 법무부 차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새 법무부 차관에 이용구 전 법무실장을 내정했다. 청와대는 “법률 전문성은 물론 법무부 업무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기에 검찰개혁 등 법무부 당면 현안을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해결하고 조직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번 인사의 배경을 밝혔다.

첫 출근
행보 주목

이 차관이 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며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에 대해 “결과를 예단하지 마시고 지켜봐주시기 바란다”며 “모든 것은 적법한 절차와 법 원칙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이날 기자들이 ‘징계위에 참석할 예정이냐’고 묻자 “제 임무”라고 답하면서 “모든 개혁에는 큰 고통이 따르지만, 특히 이번에는 국민들의 걱정이 많다고 알고 있다”며 “(추미애 법무부)장관을 모시고 이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해서 개혁 과제를 완수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소통이 막힌 곳은 뚫고 신뢰를 공고히 하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여러 중요한 현안이 있다. 그런데 가장 기본인 ‘절차적 정의가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국가 작용이 적법 절차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 헌법의 요청이고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 위한 기본”이라며 “판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다시 검토해서 공정하고 투명하게 중립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전날 추 장관이 문 대통령을 독대한 자리에서 이용구 전 법무부 법무실장을 발탁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대통령도 이를 수용했다”며 “다만 문 대통령은 추 장관에게 ‘차관에는 추 장관이 원하는 측근을 임명해도(윤석열 징계위) 징계위원장으로는 그를 임명하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 출신
국민의 힘 “임명 철회 촉구”

당초 예정됐던 ‘윤석열 징계위’의 위원장은 고기영 전 법무부 차관이었다. 하지만 고 전 차관은 징계위 개최에 반발해 지난달 30일 추 장관에게 그만두겠다는 뜻을 피력했고, 1일 서울행정법원이 윤 총장의 직무배제 효력 중지 결정을 내리자 곧바로 사의를 표했다. 위원장 공석과 함께 징계위도 오는 10일로 연기됐다.

지난달 30일 사임계를 제출한 고 전 차관은 “소임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게 돼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이임식 없이 지난 2일 법무부를 떠났다. 법조계에 따르면 고 전차관은 이날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를 통해 사직 인사를 했다.

고 차관은 “이제 공직을 내려놓고자 한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제 소임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나게 돼 죄송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 24년간의 공직생활 동안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보람된 시간이었다”며 “그동안 저와 함께하거나 인연을 맺은 많은 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고 전 차관은 “검찰 구성원 모두가 지혜를 모아 잘 극복해내리라 믿는다”며 “그럴 수 있기를 기원한다”고 언급했다. 고 차관은 지난달 30일 “윤 총장에 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정지 및 징계청구 등의 사태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의를 표명했다. 
 

▲ 이용구 법무부 차관 ⓒ청와대

검사징계법 5조에 따르면 검사 징계심의위원회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이 맡게 돼있다. 다만 추 장관은 징계 청구 당사자라 위원장을 맡을 수 없다. 이럴 경우 추 장관이 징계위원 중 1인을 위원장으로 지정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는 법무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는 게 관례였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신임 차관 징계위원장 불가 지시는 “대통령이 ‘윤석열 징계위’ 위원장을 직접 임명했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질질∼
징계위 연기

이번 인사에 대해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반발하고 나섰다. 하 의원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 편을 들어 법무 차관의 후임을 신속하게 임명했다”며 “징계위를 강행해 기어코 윤석열 검찰총장을 쫓아내고야 말겠다는 문 대통령 의도가 확인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원은 추미애 장관의 윤 총장 직무배제가 헌법 제12조가 정한 적법절차원칙에 위배된다고 명시했고 검찰청법과 검사징계법, 형사소송법, 국회법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며 “윤 총장 축출 시도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이런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면 윤 총장 징계를 즉각 중단하고 추 장관을 해임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 차관에 대해 “검찰이 수사 중인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과 관련,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변호인이었다는 것 자체가 이해충돌 방지에 저촉이 된다”며 “지금이라도 지명을 철회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는 특히 “아마 추미애 법무부 장관만으로 검찰을 핍박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니 응원군으로 이용구를 보낸 것밖에 되지 않는다”며 “망가지려면 너무 망가지는데 지금이라도 중지해야 한다”고도 했다.

이 차관은 경기 용인시 출생으로 서울 대원고등학교와 서울대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노동대학원을 수료했다.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23기로 윤석열 검찰총장, 전임 고 차관과 동기다. 또 1994년 인천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약 20년간 법원에서 재직했다.

이 차관은 2003년 최종영 대법원장 시절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라’며 서열에 따른 인사를 비판했고, 동료 판사들의 ‘연판장’을 돌리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이광범 변호사가 창업한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로 활동했다. 또 판사 시절의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의 핵심 멤버였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3년, “연공서열로만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했다”는 비판 글을 법원 내부게시판에 올렸다. 또 소장 판사들이 서명 연판장을 돌렸던 ‘4차 사법파동’을 주도했다.  

칼자루 
쥐었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2차 사법파동의 영향으로 창립한 진보 성향 판사들의 학술 모임이다. 2차 사법파동이란 1988년 6·29 선언 직후 민주화 물결이 거센 가운데 노태우정부가 전두환 정부 시절 임명된 김용철 대법원장이 유임시키자 젊고 개혁적인 판사들이 이에 반대해 사법부 수뇌부의 개편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한 사건이다.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였던 이 차관은 당시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에 가르친 제자들이 공익 전담 변호사가 돼 힘들게 활동하고 좌절하는 것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단체 창립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법연구회의 회원은 노무현정부 당시 140여명에 이르렀으며 박시환 대법관, 강금실 법무부 장관,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 이 단체 회원들이 요직에 발탁됐다. 이로 인해 법원 내 사조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논란 끝에 2010년 해체됐다.

또 2016년 말 대통령 탄핵심판 소추위원 대리인에 합류했다. 당시 변호사였던 이 차관은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맡아 박 전 대통령이 국민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지만, 파면 사유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다만 김이수, 이진성 두 재판관이 ‘대통령이 성실의무를 져버렸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에는 법무부 ‘탈검찰화’ 기조에 따라 2017년 8월 법무부 법무실장에 임명됐는데, 당시에도 50년간 검사가 독점해 온 법무실장에 외부 인사가 영입된 것은 처음이었다. 법무실장 시절이던 지난해 12월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내정되자 인사청문회 준비단장을 맡을 만큼 추 장관의 측근으로 꼽힌다.

당시 청문회 준비단에는 이종근 검찰개혁 추진지원단 부단장, 심재철 서울 남부지검 1차장 검사가 포함됐다. 이들은 모두 추 장관 취임 이후 각각 검사장으로 승진하며 대검 형사부장(이종근), 법무부 검찰국장(심재철)을 맡아 ‘추미애 핵심 라인’ 검사들로 활약했다. 이종근 대검 형사부장의 아내가 추 장관의 지시로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면 감찰 조사를 시도하고 수사 의뢰를 주도했던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이다.

법률 전문성 인정받아 단행
추미애 장관 측근으로 평가


한편 ‘고위공직자에 1주택자를 우선적으로 앉힌다’는 청와대 인선 기준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차관이 집 한 채를 매각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차관은 강남 아파트를 중개업소에 매물로 내놨다. 다주택자를 적대시하는 문정부에서 고위 공직자가 됐음에도 2년 반 이상 팔지 않고 버텨온 아파트 2채 중 1채였다. 호가(呼價)대로 팔릴 경우 8억5000만원 시세차익을 본다. 매입 4년 만이다.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이 차관 아내 명의의 서울 도곡동 A아파트(34평형)가 이날 중개업소에 매물로 나왔다. 이 차관 측이 요구한 가격은 16억9000만원으로 알려졌다.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시세보다 특별히 비싸지도, 싸지도 않은 가격”이라고 평가했다.
 

이 아파트는 투자용으로 보인다. 이 차관 부부는 서초동에 B아파트(50평형)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던 2016년 2월, 8억4000만원을 주고 A아파트를 샀다. 집값 상승기 초입이었다. 이 집에사는 세입자는 월세를 120만원씩 이 내정자 부부에게 낸다. 월세 계약 기간이 2022년 상반기까지여서 당장 입주가 가능한 다른 아파트보다 5000만원 정도 싸다.

이 차관이 부른 가격에 거래가 성사되면 4년여 만에 8억5000만원, 매입가의 100%가 넘는 이익을 본다. 도곡동 아파트를 팔더라도 이 차관 부부에겐 서초동 아파트 한 채가 남는다. 2014년 12억5000만원에 매입한 서초동 아파트도 현 시세는 25억원으로, 매입가격 대비 이익률이100%다.

이 차관 부부에게는 또 다른 부동산이 있다. 본인과 아내, 두 딸 각각의 명의로 경기도 용인의 땅(임야) 총 300평가량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 예금 16억원이 있고, 본인 명의의 그랜저 1대, 부부 명의의 독일제 아우디 A6 한 대가 있다고 신고했다.

아파트 2채
용인 땅도

앞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난 8월에도 차관급 인사를 발표하면서 “1주택은 청와대뿐만 아니라 정부부처 인사의 뉴노멀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도 차관급 인사를 발표하면서 다주택자가 임명되자 “처분 의사를 확인하고 인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 차관이 다주택자라는 점에 대해 “매각 의사를 확인했다”며 인사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이용구 차관 법조계 우려 왜?

이용구 차관 취임 소식을 법조계에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본다.

청와대는 이를 “징계위의 중립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이 차관이 월성 1호기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백운규 전 장관의 변호인이었던 점을 들면서 “원전 의혹을 부정하는 변호 활동을 해온 법조인을 윤 총장 해임 과정에 참여하도록 한 것 자체가 문제인데 위원장을 안 맡긴다고 중립성이 지켜지느냐.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청와대로선 고 차관 사의 표명 하루 만에 우리법연구회 출신이자 비(非)검찰 출신인 이 내정자를 발탁한 만큼,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이 차관은 월성 사건의 핵심 피의자로 검찰 수사를 받아 온 백운규 전 장관의 변호인이었다. ‘원전 의혹’을 부정하는 변호 활동을 해온 법조인이 법무차관으로 가게 된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전형적인 이해 충돌이자 사실상 ‘정권 수사 저지’ 목적의 인사”라며 “대통령이 이를 모르고 이 변호사를 임명했겠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 차관은 지난해 9월 감사원이 월성 원전 감사에 착수한 이후 선임계를 정식 제출했고, 최근 검찰 조사 단계까지 백 전 장관의 변호 업무를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차관은 지난달 초 대전지검이 백 전 장관 자택을 압수 수색할 때 현장에 있었고, 백 전 장관 휴대전화 등에 대한 검찰의 디지털 포렌식(복구)에도 참관했다고 한다.

한 법조인은 “(이 차관은) 월성 사건 전반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인물”이라고 했다. 이 차관은 이날 대한변협에 휴업계를 냈다.

검찰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희도 청주지검 형사1부장은 이날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리고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월성 원전 사건 변호인을 차관으로 투입해 징계위원으로 투입하는 건 정말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현 집권 세력이 태도를 바꿔 검찰총장을 공격하게 된, 계기가 된 조국 전 장관 수사와 관련해 (이 차관이)어떤 입장을 보이셨는지에 대해 검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소문이 파다하다”고 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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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