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05.20 06:21
지난 4월 포항 KTX가 개통했다. 포항은 이제 서울에서 2시간30분, 대전에서 1시간30~40분 거리다. 접근이 편리해지며 포항 여행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그간 포항은 제철 도시의 색깔이 강했다. 여행지는 일출 명소 호미곶과 바다가 앞섰다. 못내 아쉽다. 포항은 훨씬 다채로운 표정이 있는 여행지다. 조금 새로운 발견을 원한다면 북쪽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여름날 꽃과 숲을 만나기 좋다. 처음 찾는 이들은 포항의 심상이 달라진다. 느린 걸음으로 고요한 숲이 주는 안락함 만끽 희귀멸종위기식물원에서 마주하는 진귀한 꽃 첫 방문지는 기청산식물원이다. 기청산은 기(箕)와 청산(靑山)을 합친 말이다. 기는 곡식을 까부르는 데 쓰는 키고, 청산은 익히 아는 대로 유토피아다. 키 모양 대나무 언덕이 있는 무릉도원, 좋은 식물과 사람의 참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삼우 원장의 취지가 담긴 이름이다. 그는 지난 1969년 기청산농원을 열며 식물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현재는 9ha에 식물 2500여종이 자란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했나. 그 가치는 식물원에 들어서는 순간 실감한다. 정문 일대부터 영화나 소설에 나올 법한 숲길이 펼쳐진다. 초록 숲 사이로 알록달
한여름 더위에도 꽃과 나무는 쉬지 않는다. 해가 길어지는 때에 맞춰 꽃을 피우고,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열매를 맺고, 진 꽃은 흙 속에서 단단하게 몸을 키우며 내년을 기다린다. 꽃 한 송이에 담긴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섭리를 배우고, 그 어여쁜 자태에 미소 짓는 여름 숲과 정원으로 떠나보자. 수목과 꽃 8800여종으로 채워진 알찬 수목원 조각정원·사계정원 등 다양한 테마 정원 여행 충남 청양의 고운식물원은 37ha에 이르는 숲 전체가 정원으로 꾸며진 야생화 배움터다. 수종에 따라 식재된 다양한 테마 정원과 야생화가 피고 지는 탐방로를 돌아보며 마음도 식물원의 이름처럼 고운 빛을 닮아가는 공간이다. 1990년 부지를 조성하기 시작해서 25년이 지나며 수목과 꽃 8800여종으로 알뜰하게 채워졌다. 야생화와 희귀 식물 자원을 보호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설립 취지가 특별하다. 식물과 조경을 공부하는 학생은 물론, 국내외 조경가와 일반 여행자가 함께하는 공간으로 꾸며진 것도 그 때문이다. 탐방객이 꽃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하고, 다양한 야생화와 원예식물을 식재해 정원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선물한
양구의 여름은 자연의 강한 생명력을 실감하는 계절이다. 양구 어디를 가든지 무성한 녹음과 마주한다. 꽃과 풀, 나무가 어우러진 숲을 찾아 나선 길 끝에 양구생태식물원이 있다. 대암산 자락 6만여평 너른 부지를 끌어안은 곳이다. 대암산은 정상에서 금강산과 설악산을 조망할 수 있고, 산마루에 희귀 식물이 자생하는 용늪이 자리한 생태계의 보고다. 나무와 야생화의 강한 생명력이 풍기는 비밀의 숲 직접 보는 희귀식물·사진으로 보는 멸종위기 동식물 양구생태식물원의 입구는 선인장다육식물전시관, 연못과 노천극장 등 지극히 평범하다. 히어리, 깽깽이풀, 대청부채 같은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한 식물을 직접 보거나 야생화학습관 안에서 멸종 위기 동식물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우주과학놀이터, 버섯 조형물이 귀여운 피크닉광장은 이름 그대로 돗자리 펴고 도시락 먹기 좋다. 이곳의 매력은 계곡 위에 걸린 초롱다리를 건너면 나타난다. 다리를 건너 계단에 올라가자 비밀의 숲이 시작된다. 대암산 자락을 그대로 활용한 이곳은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아 원시림을 밟는 느낌이다. 봄에는 얼레지와 노루귀가 꽃을 피우고, 여름에는 기린초가 인사하고 산딸기가 익어간다.
돌이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 암태도라 불리는 섬이 있다. 비금도, 도초도, 홍도, 흑산도 등 같은 신안군에 속한 이름난 섬에 비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 일반 관광객보다 등산객이 주로 찾는다. 드넓은 논밭과 저수지가 펼쳐져 섬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드는 이곳은 어민보다 농업 인구가 훨씬 많다. 목포에서 서쪽으로 28.5km, 압해도 송공선착장에서 배로 25분이면 닿는 이 섬에 묵직한 근현대사의 자취가 깃들었다. 묵직한 근현대사의 자취 깃든 암태도 소작쟁의 기폭제가 된 항일농민운동 암태도는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소작쟁의이자, 한국 농민운동사에 큰 획을 그은 암태도 소작쟁의가 일어난 현장이다. 쟁의가 발발한 1920년대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 증식 계획으로 전국 농민 80%가 소작농으로 전락한 상황. 암태도 역시 소수 자작농을 제외한 대다수 농민이 소작농이었고, 토지는 대부분 지주 문재철 소유였다. 문재철은 일제의 저미가 정책으로 수익이 감소하자 7~8할에 이르는 소작료를 징수해 손실분을 보충하려 했고, 이에 소작농들은 서태석을 중심으로 암태소작인회를 결성해 소작료를 4할로 낮춰줄 것을 요구했으나 묵살 당한다. 1923년 가을 추수를 앞두고 시작된 쟁의는
대구 사람들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대구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국채보상운동 때문이기도 하다. 1904년 이래 일제는 대한제국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기 위해 일본에서 막대한 차관을 도입하도록 강요한다. 흥미로운 사료 통한 국채보상운동 탐방 민중 계몽·민족 사상 교육하던 ‘조양회관’ 일제는 1905년 대한제국의 문란한 화폐를 정리한다는 명목으로 300만원을 차입한 뒤 1907년까지 들여온 차관 총액이 1300만원에 달하는데, 이는 대한제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일제의 경제적 예속 정책에 저항해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쉽게 말하면 국민의 힘으로 국채를 갚아 국권을 지키자는 운동으로, 1907년 1월29일 대구에서 서상돈이 발의했다. 2월 21일자 〈대한매일신보〉에 “국채 1300만원은 바로 우리 대한제국의 존망에 직결되는 것으로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것인데, 국고로는 해결할 도리가 없으므로 2000만 인민들이 3개월 동안 흡연을 폐지하고 그 대금으로 국고를 갚아 국가의 위기를 구하자”는 건의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
독립기념관은 일상의 삶과 친숙한 공간이다. 애국선열의 자주독립 의지를 고취하는 유적인 동시에, 가족 여행객에게는 안락한 휴식처다. 기념관에는 애국정신을 배우는 다양한 전시물과 더불어, 신록이 우거진 곳에서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숲길 코스가 갖춰졌다.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아이와 함께 나들이에 나선 가족들의 행복한 모습도 흔히 만날 수 있다. 가족 휴식처로 자리 잡은 천안 독립기념관 7개 전시관 일제 강점기·독립 운동 구현 거룩한 공간이라는 엄숙함을 잠시 걷어내면 독립기념관은 일상 속으로 익숙하게 파고든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할 수 있고, 숲이 어우러져 호젓한 나들이 장소를 찾기는 쉽지 않다. 기념관 곳곳에는 벤치가 마련되었고, 주변으로 여유로운 숲길이 이어진다. 여름이면 분수대에서 물이 치솟고, 기념관 둘레에 깔끔한 식당과 쉼터도 있다. 주말에 굳이 승용차를 타고 막히는 고속도로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천안종합터미널이나 천안역에서 독립기념관까지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오가며, 30분이면 입구까지 연결된다.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반나절이면 훌쩍 다녀올 수 있고, 체험 학습 기능까지 갖췄다. 일상생활 속에서 대중과 자주 만나는 것은
서울시 중랑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진 망우산 기슭에는 일제의 탄압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이 묻혔다. 수많은 독립 열사와 애국지사들이 잠든 곳, 망우리공원이다. 망우리공원은 전에 망우리공동묘지라 불리던 곳으로, 이 일대 83만2800㎡ 부지에 조성된 묘지공원이다. 일제강점기인 1933년부터 서울시 공동묘지로 사용되었으며, 1973년에는 분묘가 가득 차서 묘지를 쓰는 것이 금지되었다. 이후 이장과 납골이 장려되면서 주민을 위한 자연 휴식 공간으로 꾸며졌다. 12명의 독립운동가 잠든 망우산 기슭, 망우리공원 우리나라의 성장과정 전시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현재 망우리공원에는 3·1운동을 주도한 만해 한용운 선생을 비롯해 위창 오세창, 송암 서병호, 경아 서광조 등 12명의 독립운동가와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이 잠들었다. 원래 도산 안창호 선생도 망우리공원에 묻혀 있었지만 지금은 도산공원에 안장되었다. 수목이 울창하고 전망이 좋은 망우리공원은 평소 많은 이들이 산책이나 조깅을 하는 곳이다. 길이 평탄해 자전거 코스로도 이용된다. 서울둘레길, 구리둘레길 등 여러 도보 코스가 지나가며, 중간에 약수터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헌신해 독립 유공자로 포상된 1만3930명(2015년 3월1일 기준) 중 2080명이 경북 출신이다. 그중에서도 안동은 353명으로 그 수가 월등히 많다. 최초의 항일 의병운동으로 꼽히는 1894년 갑오의병의 발상지 역시 안동으로, 독립운동의 성지라 불린다. 특히 안동 선비들에게 독립운동은 의를 행하는 유교 정신의 실천이었기에 아버지와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 대를 이어 독립운동에 헌신한 집안도 많다. 일본에 주권을 빼앗기자 곡기를 끊고 자정 순국한 선비가 10명이고, 가산을 정리한 뒤 식솔과 만주로 망명해 독립군 양성에 이바지한 선비들도 있다. 최다 독립 유공자 출신지·갑오의병 발상지 독립운동기념관에서 항일 운동사 한눈에 1907년 류인식, 김동삼, 이상룡 등이 힘을 모아 설립한 협동학교는 당시 애국 계몽 운동을 이끈 선비들의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유적이다.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폐교된 협동학교 터 바로 아래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자리한다. 한옥 형태를 띠는 정갈한 외관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드는 기념관은 상설 전시관인 국내관과 국외관, 기획 전시실과 외부 공간으로 구성된다. 규모는 크지
여수 여행은 장어 요리와 서대회 덕에 여느 때보다 맛있고 풍성하다. 붕장어를 이용한 여수식 장어탕과 장어구이 외에 여름 보양식으로 인기 있는 갯장어샤부샤부를 5월부터 맛볼 수 있고, 사계절 음식 서대도 5~6월에 가장 많이 잡힌다. 여기에 도시와 바다, 365개 섬이 어우러져 수려한 풍경까지 더하니 미항 여수의 농익은 봄과 빼어난 맛을 만끽하기에 요즘처럼 좋은 때도 없다. 오동도 해돋이 전망대서 조망하는 탁 트인 바다 서대회, 장어구이, 게장…부지런히 맛보는 여수십미 먼저 찾을 곳은 여수십경 중 1경인 오동도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오동도는 여수를 대표하는 곳이다. 해마다 3월이면 붉은 동백꽃이 섬 전체를 붉게 물들인다. 지금 동백꽃은 모두 지고 없으나 빽빽한 신우대 터널이 훌륭한 산책로를 만들고, 후박나무를 비롯한 희귀 수목과 기암절벽이 섬을 감싸 멋진 풍광을 선사한다. 정상의 오동도 등대를 지나 해돋이 전망지에 서면 탁 트인 바다와 상쾌한 바람에 마음까지 시원하다. 햇살을 받아 부드럽게 일렁이는 바다 위로 유람선이 떠다니는 그림 같은 풍경도 만날 수 있다. 오동도는 섬이지만 육지와 이어져 방파제를 따라 걷거나 동백열차를 타고 들어간다. 오동도 방
온 도시를 들썩이던 벚꽃이 지고 경남 창원시 진해구로 향하던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진 5월, 북적이는 사람과 벚꽃에 가렸던 구도심의 다양한 매력이 드러난다. 100년 전 진해로 떠나는 여행이 그 첫 번째다. 두 번째는 다양한 즐거움이 있는 진해 바다와 숲.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온 가족이 창원시 진해구 여행을 계획해보자. 진해군항마을역사관서 1920년대 역사 여행 100년 전 설계 그대로인 진해구 도심 모습 100년 전 진해로 떠나는 여행은 중원로터리(진해8거리)에서 시작한다. 원형 광장을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며 사방으로 이어지는 8거리에 서면 여행자는 길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자. 8거리이기 때문에 조금만 이동하면 원하는 장소를 만날 수 있다. 근대 역사 여행은 진해군항마을역사관에서 시작한다. 국가기록원의 기록사랑마을로 선정되어 만들어진 진해군항마을역사관에는 주민들이 기증한 역사 기록물과 옛 사진이 가득하다. 여행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1920년대 진해 모습이다. 1912년에 설계된 8거리가 고스란히 유지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당시 도심 전체를 새로 설계했기 때문. 일본식 가옥이 있던 자리에 현대식 건물이 들
첫 목적지 내연산계곡은 봄 풍경을 만끽하며 트레킹을 즐기기 좋다. 계곡 따라 산길이 이어지는데, 곳곳에 폭포가 즐비해 지루할 틈이 없다. 내연산계곡의 입구 격인 보경사에서 경상북도수목원까지 12.8km 숲길에 데크 로드와 안전 펜스 등이 설치되어 남녀노소 모두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봄 나들이 떠나기 좋은 내연산계곡·기청산식물원 내연산계곡의 좋은 점은 굳이 모든 코스를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연산폭포까지 다녀와도 내연산계곡의 하이라이트는 다 구경하는 셈이다. 아이와 함께 걸어도 왕복 2시간이면 넉넉하다. 내연산계곡 최고 절경은 연산폭포다. 연산폭포 가기 전에 구름다리가 아찔하게 걸려 있고, 그 아래로 관음폭포가 흘러내린다. 출렁이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연산폭포를 만난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불리는 겸재 정선이 청하현감으로 재직할 때 〈내연산삼용추도〉라는 작품을 그리기도 했다니, 내연산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연산 절경 연산폭포 내연산계곡에서 나와 찾을 곳은 기청산식물원이다. 아름다운 식물원으로 손꼽히는 이곳에는 토종 들풀과 수목, 각종 꽃 등 식물 2500여종이 자란다. 5~6월이면 작약, 초
남원은 춘향의 고향이자 <춘향전>의 발상지다. 마을의 면면 역시 두 사람의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을 닮았다. 봄날에는 ‘남원 춘향제’ ‘지리산 운봉 바래봉 철쭉제’ 등이 열려 한층 풍성하다. 한우와 추어탕, 흑돼지 등 먹거리도 다양해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춘향의 고향에서 느끼는 봄날의 정취 <춘향전> 몸소 체험하는 춘향테마파크 첫 목적지는 역시 광한루원이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처음 만난 장소로, 광한루원은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부르는 말이다. <춘향전>의 무대라 귀에 익지만, 눈으로 보기 전에는 그 매력을 알 수 없다. 계절마다 작심한 듯 표정을 바꾸니 한 번 봤다고 모두 아는 것도 아니다. 남문으로 들어서면 푸른 잔디와 완월정이 반긴다. 완월정은 팔작지붕을 인 2층 누각으로, 옛 남원의 남문인 완월루의 이름을 땄다. 춘향제의 주요 행사가 치러지는 무대다. 광한루는 옥황상제의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재현했다. 완월정의 북쪽으로 둘 사이에는 저수지가 있고, 오작교와 방장정, 영주각 등이 삼신산을 이룬다. 물가로는 버드나무 고목이 줄지어 수면 위로 몸을 기울인다. 물에 어린 초
‘한국의 마추픽추’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에 가면 전통신전수관이 있다.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17호로 지정된 화혜장 안해표 장인의 공방이다. 백성이 주로 신은 신이 짚신과 미투리라면, 왕가나 양반층은 가죽신을 신었다. 이 가죽신을 화혜라 부르는데, 화(靴)는 신목이 있는 신발이고 혜(鞋)는 신목이 없는 신발이다. 쉽게 얘기하면 화는 목이 긴 신발, 혜는 목이 없는 신발이다. 예로부터 화혜를 만드는 사람을 각각 화장, 혜장이라 불렀고, 순우리말로는 ‘갖바치’다. 3대째 가업이어 전통 신 만들어온 장인 다양한 전통 신이 전시된 전통신전수관 화혜장 안해표 선생은 40년이 넘게 전통 신을 만들어온 장인이다. 선생의 할아버지가 경남 합천에서 관청에 납품할 화혜를 만든 뒤,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장인의 길을 걸었던 것은 19세 되던 해, 지금의 용두산공원 아래에서 전통 신 가게를 운영하던 김현경 선생에게 전수한 뒤로 부터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우리 전통 신은 좌우가 없는 게 특징이다. 유럽이나 중국과 달리 유독 우리나라
좌식 생활을 하던 우리네 문화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입식 문화로 바뀌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음식을 올려놓고 먹는 데 사용하는 소반이 그중 하나다. 과거에는 식생활부터 제사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였으며, 소반 제작이 발달해 지방마다 전통적인 형태가 형성되었다. 생산지에 따라 특징이 있어 나주반, 해주반, 통영반 등 고장 이름과 함께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서구식 주거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식탁에 밀려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나주반·통영반…’ 생산지 따르는 소반 명칭 좌식문화의 서양화 속 뿌리 깊은 장인 정신 전남 나주 지방에서 만드는 나주반도 한때 맥이 끊어졌다고 여겼다. 일본의 민예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1922년에 펴낸 <조선과 그 예술>에 “그렇게 번영했다는 소반 업자는 지금 대부분 끊어졌다. 나주반을 구하려고 해도 파는 가게가 없다”고 적었다. 그는 어렵게 이석규라는 명공을 만나 나주반을 구입했으나, 광복 후 나주반 제작 기술은 사라져갔다.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 뻔한 나주반은 김춘식 선생(중요무형문화재 99호 소반장)에 의해 전통이 유지되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법주사 대웅전, 월정사 산신각과 진영각, 창덕궁 가정당, 남한산성 행궁, 수원 화성 팔달문, 도봉산 망월사 대웅전, 관악산 연주암 등에는 모두 고건축의 대가로 존경 받는 한 사람의 손길이 스며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전흥수 선생이다. 전재산 들여 지은 ‘한국고건축박물관’ 숭례문 등 국보급 목조건물 모형전시 나무를 다루는 목수는 궁궐, 사찰, 주택 같은 건축물을 짓는 대목장과 가구나 공예품을 만드는 소목장으로 나뉜다. 대목장은 설계에서 완성까지 건축의 전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건축의 모든 단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각 분야 장인들을 지휘하는 자리인 만큼 익혀야 할 지식이 많고, 솜씨도 좋아야 한다. 대목장 한 사람이 배출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까닭이다. 전흥수 선생은 1938년생으로 올해 78세다.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18세 때 목공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목수인 부친 밑에서 심부름을 하다가, 곧 수덕사 도편수로 있던 고 김중희 선생 문하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일을 배웠다. 생계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차츰 전통을 지켜 나간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남다른 눈썰미와 손재주, 타고난 성실함으로
진도 지산면에서 대한민국 식품명인 53호 김영숙 선생을 만났다. 외할머니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그가 명인이 된 것은 한약재로 많이 쓰이는 복령으로 만든 ‘복령조화고’ 덕분이다. 복령조화고는 조선 시대에 가정 살림 전반에 관해 기술한 <규합총서>에도 나올 만큼 조상 대대로 즐겨 먹던 전통 떡이다. 백설기와 비슷한데 멥쌀과 복령을 주재료로 만들어 복령조화고라 한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쉽게 복령떡이라고 부른다. 시간과 정성으로 빚어낸 전통 떡 ‘복령조화고’ 직접 재배·생산한 재료 사용해 만족감 두 배 김영숙 명인은 춘궁기에 복령을 캐서 덥석덥석 베어 먹기도 하고, 설을 쇠기 위해 복령 가루를 넣어 조청을 고았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때는 복령이 귀한 약재인 줄도 몰랐다. 명인이 복령조화고를 안 것은 1966년 지산면으로 시집오고 나서다. 시할머니에게 떡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시댁에서는 손이 많이 가도 큰일이 있을 때마다 복령조화고를 냈다. 복령은 벌채한 소나무나 죽은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으로, 땅속 30cm 깊이에서 자란다. 이뇨, 강장, 진정에 효능이 있어 한약재로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고운 햇살 담긴 차 한잔 나누고 싶은 봄날이다. 좋은 차 한 모금을 머금으면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 향기가 입안에 퍼져 거친 말을 뱉을 수 없고, 맑은 찻물을 내려다보며 마음까지 겸손해진다. 차 맛을 위해 평생을 바친 제다 명인을 만나러 하동 화개로 간다. 화개천·지리산 정기 받고 자라는 화개동 차나무 가장 좋은 찻잎 수확시기 ‘초세작부터 중작’ 하동 야생차의 시작은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828년(흥덕왕3) 당나라 사신으로 간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왔고, 왕은 지리산 화개동 일대에 심으라고 명한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임금에게 진상하는 차가 화개동에서 재배되었다. 하동의 야생차를 ‘왕의 차’라 부르는 까닭이다. 지리산 화개동은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거슬러 오르는 곳으로, 지금도 양안의 산자락 곳곳에는 차나무를 키우고 찻잎을 덖는 다원이 있다.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든 안개를 먹고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향이 좋은 차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곳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다원까지 20여곳에 이른다. 그중 화개제다는 화개동에 자리한 많은
장흥에서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것은 빨간 동백꽃이다. 장흥 곳곳에서 동백나무를 흔히 볼 수 있는데, 넓게 숲을 이룬 곳은 묵촌리(행정구역 접정리) 동백림과 천관산 동백생태숲 두 군데다. 묵촌리 동백림은 용산면 묵촌을 적시는 하천을 따라 약 2000㎡에 140여그루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수령 250~300년에 이르는 동백나무는 붉은 꽃잎이 5장 달리는 토종 동백이다. 꽃송이가 작아서 화려하진 않지만, 한국 여인네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닮았다. 한국 여인네의 단아함 닮은 토종 동백 4월 초까지 즐기는 묵촌리 동백꽃·낙화 동백림은 풍수적인 이유로 조성했다. 마을을 감싸는 산자락이 청룡의 등에 해당하는데, 그 길이가 짧아 마을에 액운이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백나무와 소나무,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백나무만 남았다. 꽃은 3월 중순에 만개하며,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꽃과 낙화를 즐길 수 있다. 나뭇가지에 달린 동백꽃도 좋지만, 송이째 떨어져 붉은 융단이 깔릴 때 더욱 볼 만하다. 묵촌리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접주 이방언이 태어난 곳이다. 동백림 입구에 이방언을 기리는 비석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소설가 송기숙의 <녹두장군>
‘수줍은 봄’은 경남 거제의 바다에 먼저 깃든다. 붉게 핀 동백꽃이 3월이면 해안선 훈풍을 따라 소담스런 자태를 뽐낸다. 장승포항 남쪽의 지심도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동백 군락지 가운데 한 곳이다. 거제팔경 중 봄이 되면 더욱 들썩이는 곳도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지심도다. 거제의 섬과 해안 곳곳에서 동백이 피어나지만, 지심도가 유일하게 ‘동백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산책하며 만나는 수백년 된 동백꽃 희귀 동·식물 서식하는 경남의 ‘보고’ 지심도의 식생 중 50%가량이 동백으로 채워진다. 원시림을 간직한 섬은 봄이 오면 동백 터널을 만들어낸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4월 하순이면 대부분 꽃잎을 감춘다. 2월 말~3월 중순이 꽃구경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지심도에서는 100년 이상 된 동백이 숲을 이룬다. 수백년 된 동백이 서식하고, 전국에 몇 안 된다는 흰 동백꽃도 이곳에서 핀다. 흰 동백꽃은 날씨가 맞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행운의 꽃이다. 동백꽃에는 ‘하나뿐인 사랑’이라는 꽃말이 있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오붓하게 산책하며 만나는 꽃
이른 봄, 글 읽는 선비들이 도포 자락을 날리며 매화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탐매(探梅)’라 했다. ‘매화를 탐하다’라는 뜻으로, 그저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애틋하고도 간절한 마음이 담긴 여행이다.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맨 앞에 두었으니, 혹독한 겨울을 지나 도도하고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 매화 한 송이는 고매한 군자를 대하는 것과 같았으리라. 선비의 걸음으로 탐매하며 오르는 선암사 계곡 발걸음 멈추게 하는 수백 년 된 홍매화 돌담길 탐매에 나선 선비의 걸음을 떠올리며 전남 순천의 선암사 계곡에 오른다. 따스한 햇살이 녹아든 계곡물 소리가 다정하게 속삭이고, 고운 바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길이다. 아치가 아름다운 승선교와 신선이 오른다는 강선루의 그윽한 풍광도 이 계곡에서 만난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동백, 금식나무, 벚나무, 철쭉 등 꽃나무가 아담한 전각 사이로 합장하듯 서 있다. 선암사의 다양한 꽃나무 가운데 홍매화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대웅전 지나 각황전과 무우전이 있는 종정원 돌담을 따라 수백 년 된 홍매화 20여그루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이다. 원통전 돌담의 백매와 더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