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58년 차 가수
가황 나훈아는 1966년 노래 ‘천리길’로 데뷔했습니다.
2024년 데뷔 58년 차로 현재 진행 중인 마지막 콘서트(4~7월)를 끝으로 가요계를 떠납니다.
2. 싱어송라이터
나훈아는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을 내놨습니다.
앨범을 무려 200장 이상 냈고, 2600곡가량의 노래를 발표했습니다.
그중 800곡 이상은 그의 자작곡으로 보컬 실력뿐만 아니라 작사·작곡에도 능했습니다.
젊은 세대에까지 널리 알려진 ‘땡벌’도 그의 자작곡 중 하나입니다.
3. 나훈아 VS 남진
H.O.T VS 젝스키스, 핑클 VS S.E.S, 원더걸스 VS 소녀시대처럼 라이벌 구도였습니다.
가요계엔 수많은 대결구도가 있었지만 그중 최고는 단연 남진 VS 나훈아였습니다.
둘의 차이점은 명확했습니다.
남진은 세련된 도시 미남 이미지로 대중성이 강했고
집안의 재력 또한 어마어마했습니다.
나훈아는 투박한 이미지의 싱어송라이터로서 음악성을 더 어필했습니다.
둘의 가수 활동도 극명히 갈렸습니다.
남진은 TV 출연도 많았고 후배들과도 자주 협업하는 등 대중에게 자주 얼굴을 비췄던 반면, 나훈아는 신비주의로 TV서 얼굴을 보기 아주 힘들었습니다.
콘서트에 가야만 그를 볼 수 있었습니다.
4. 스타 철학
“아무데서나 볼 수 있는 별은 별이 아닙니다.”
그에겐 확실한 스타 철학이 있었습니다.
“별은 하늘서 반짝반짝 스스로 빛나야 합니다. 빛나려면 항상 닦아야 합니다”라는 신조가 있었습니다.
콘서트가 아니면 보기 힘들기 때문에 그의 콘서트 티켓팅은 아주 치열합니다.
“내가 저 동네 아저씨 같다면 사람들이 돈 주고 시간 버려 가면서 왜 보러 옵니까? 공짜 표 줘도 안 올 겁니다. TV에도 잘 안 보이고, 보려 해도 방법이 없고, 보고는 싶은데… 이럴 때 사람들이 보러 오게 되는 겁니다. 우리는 스타입니다. 우리는 꿈을 파는 사람들”이라며 “내가 가야 할 자리를 골라서 결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누가 말해도 설 자리가 아니면 절대 안 섭니다”라는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5. 공연 신조
과거에, 가수들은 삼성가에서 두세 곡을 공연하면 3000만원가량의 출연료를 받았습니다.
상당히 고가의 출연료였는데도 불구하고 나훈아는 “나는 대중 예술가다.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노래한다”며 공연을 거절했습니다.
과거 평양 공연도 두 차례나 손사래를 쳤습니다.
“평양 공연을 하면 북한 당국으로부터 출연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반대로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가서 북한 당국 지시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나훈아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습니다.
그런 그가 15년 만에 방송 출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2020년 KBS서 마련한 <한가위 대축제 대한민국 어게인>이라는 특별공연서 2시간가량의 공연을 선보인 것인데, 다시 보기 및 클립 영상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방송이었습니다.
애초부터 그가 스스로 코로나19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노 개런티로 직접 기획한 것이고, KBS는 생방송 중계와 플랫폼 지원만 담당했다고 합니다.
6. 정치 제안
당대 최고의 개그맨 고 이주일이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 나훈아도 여당서 프로포즈를 받았습니다.
국회의원 출마 제안에 그는 전화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아래 통화 대화문을 추가합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정치를 하셔야 하겠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정말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나는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한 가지만 물어 봅시다. ‘울긴 왜 울어’를 이 세상서 누가 제일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이클 잭슨이 저보다 ‘울긴 왜 울어’를 더 잘 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죠, 그거야 선생이 최고로 잘 부르죠.”
“그러면 내가 뭘 해야 합니까? 정치를 해야 합니까? 노래를 해야 합니까?”
그는 추후 인터뷰서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참 미워요.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뭘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아, 저놈 인기 있으니 내보내면 당선되겠다. 그럼, 우리 당이 한 석 더 차지한다’ 이런 생각만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라며 한국 정치에 대해 쓴소리했습니다.
7. 훈장 제안
노태우 대통령 시절, 그는 훈장 제안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받을 때가 아니다”라며 번번히 거절했습니다.
나훈아는 “선배들 중엔 히트곡이 많아도 밥도 못 먹고, 잘 곳이 없어 떠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불러온 분들이 많다”며 “그런 분들을 못 본 체하며 훈장 받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거절했습니다.
8. 기자회견
2008년, 안 좋은 루머에 휩싸이자 별안간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당시 잘못된 기사 하나로 연예인 한 명쯤은 은퇴시킬 수도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연예인들도 명예훼손이나 허위 사실유포에 관한 기사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것이 관행이었던 만큼 펜의 힘이 아주 강력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서 루머 해명을 위한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동시에 기자들에게 “여러분들이 펜으로 사람을 죽이는 겁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9. 소신 발언
위의 사례들만 봐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키며, 할 말은 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무려 15년 만의 KBS 방송 때도 노개런티로 출연하는 대신 KBS로부터 공연 중 자신이 하는 말을 하나도 편집하지 않을 것을 약속받았다고 합니다.
1996년 일본 오사카 공연에서는 관중들과 함께 ‘쾌지나칭칭나네’를 합창하던 중 즉흥적으로 노랫말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가사를 즉흥적으로 넣어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후 일본 우익 세력들에게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는데, 그는 “때리 직일라면 지기삐라 캐라”라고 응대했다고 합니다.
10. 뽕짝론
그는 “뽕짝은 영원하다”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의 주류 장르는 아니지만 그들마저 회식 때는 뽕짝을 부르고, 그들이 나이가 들면 다시 ‘영영’ ‘무시로’ 같은 자신의 노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또 한국은 젓가락 문화이기에 밥 먹은 후, 술 먹은 후 기분이 좋을 때 젓가락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추게 되는데 그때 가장 잘 어울리는 리듬이 뽕짝이라며 한국인과 뽕짝의 필연적 이유를 언급했습니다.
11. 박수칠 때 떠난다.
그는 오래전부터 은퇴를 꿈꿔왔습니다.
한 인터뷰에선 ‘조용히 노래를 접고 보통 사람으로 사는 것’을 가장 하고 싶은 일로 꼽기도 했습니다.
또 자신이 가수 생활을 하며 아주 비싸게 굴었다면서 “내 노래 들으려면 얼마 내!”라고 하면 세상이 그걸 받아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 “그래? 그럼 그만둬!”라고 하는 날이 올 거라며 그전에 스스로 먼저 그만둘 것임을 결심해 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현재도 여전히 가황이라 불리며 엄청난 사랑을 받는 가수임에도 불구하고, ‘때 이른 은퇴’를 하기로 결정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기획/구성/편집: 김미나
일러스트: 정두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