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05.08 12:14
동해바다에 반가운 초겨울 손님이 찾아왔다. 알배기 도루묵과 양미리가 주인공이다. 노릇노릇 고소한 도루묵구이, 얼큰한 도루묵찌개, 술안주로 일품인 양미리구이, 짭짤한 밑반찬 양미리조림까지 지금 강원도 동해안 일대 횟집과 식당 어디나 양미리와 도루묵이 지천이다. 날이 더 추워지면 곰치, 도치, 장치 등 못난이 삼형제에게 주인공 자리를 내줘야 하니 서두르자. 칼슘과 철분, 단백질 풍부한 동해의 양미리 별미와 함께 ‘볼거리 가득’ 속초 여행코스 요즘 속초항 양미리 부두는 하루 종일 활기가 넘친다. 이른 아침 양미리 잡이 어선이 부두로 들어와 그물을 부려놓으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능숙한 솜씨로 그물코에 박힌 양미리를 일일이 떼어낸다. 한쪽의 포장마차에서는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고, 부지런한 여행객은 일찌감치 간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양미리와 도루묵을 굽기 시작했다. 둘이서 만원이면 금방 잡아온 양미리 13~15마리와 도루묵 서너 마리를 배부르게 먹는다. 저렴하게 구입도 가능하다. 양미리가 30~40마리에 만원, 알배기 도루묵은 15~20마리에 1만5000원~2만원선이다. 속초항 양미리 대포항 도루묵 도루묵은 인근 대포항 등에서 이곳으로 온다. 서해안
살아온 하루가, 지나온 한 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지만, 시간은 어느덧 2015년의 마지막을 향해 내달린다. 저물어 가는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기에는 겨울바다만큼 좋을 곳이 없다. 짠 내 가득한 포구에서 제철 맞은 굴을 구워 먹으며 바다 너머로 잠기는 석양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한다. 굴 따던 아낙들 입맛 사로잡은 구이 키조개 생산지로 유명해진 오천항 잠시라도 도시에서 몸을 빼내 여유로운 겨울의 한 자락을 만나러 천북 굴단지로 떠난다. 그곳에는 제철 맞은 굴과 향긋한 바다 내음이 우리를 유혹한다.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 위치한 굴단지는 ‘굴 구이’의 원조격이다. 보통 굴 하면 경남 통영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굴 구이하면 천북 굴단지가 먼저 생각난다. 천북면 장은리와 사호리 일대 해변에서 채취한 굴이 맛 좋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일조량도 많고,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개펄에 미네랄이 풍부해 양질의 자연산 굴이 지천이었다. 굴을 따던 아낙들이 겨울 한기를 달래고자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장작불에 손을 녹이며 굴을 껍질째 구워 먹었다. 의외로 짜지 않고 고소한 맛이 갯일 하는 아낙들의 입맛을 매료시켰고,
‘예향’ 강릉에 방짜수저를 만들며 외길 인생을 걷는 젊은 장인 김우찬 전수조교가 있다. 16세 때 강원무형문화재 제14호인 아버지 고 김영락 방짜수저장에게서 방짜수저 만드는 일을 배운 뒤 지금까지 한길을 걷는다. 2001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입선, 전국공예품대전 강원도 은상, 강원무형문화대전 신진상, 2013년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특선 등 수 많은 상을 받았다. 2008년에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방짜수저보존회를 설립해 방짜수저의 명맥을 잇는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인고의 과정 생김새 따라 구분되는 수저의 종류 방짜수저는 구리와 주석을 정확한 비율로 섞은 방짜를 망치로 두드려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이다. 방짜는 구리 1근(600g)에 주석 4.5냥(168.75g)을 더한 것인데, 정확한 비율을 따지면 구리가 78%, 주석이 22%를 차지한다. 구리가 조금이라도 더 들어가면 쇳덩이가 딱딱해서 망치로 칠 수 없고, 주석이 더 들어가면 망치질할 때 쇠가 터지고 만다. 방짜는 ‘참쇠’라고도 부르는데, 그만큼 질이 좋다는 뜻이다. 예전엔 참한 며느리가 들어오면 방짜 같은 며느리가 들어왔다고 칭찬했다. 방짜수저를 만드는 모든
한과는 우리의 전통 과자다. 손님을 대접하는 다과상이나 주안상은 물론, 생일과 혼례, 제사 등 의례 상차림에 빠지지 않은 음식이다. 찹쌀가루에 콩물과 술을 넣은 반죽을 삶아서 얇게 밀어 말렸다가 기름에 튀긴 다음 쌀 고물을 묻힌 유과, 밀가루에 참기름과 꿀을 넣어 만드는 약과, 과일이나 식물의 뿌리 혹은 열매에 꿀을 넣고 조린 정과, 녹말이나 송홧가루 등을 꿀로 반죽해 다식판에 찍어낸 다식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한과에 대한 열정, 대한민국 한과명장 등극 국내 유일 한과문화박물관 한가원 개관 해방 이후 경제가 급성장하고 양과자가 보편화되면서 한과는 명절이나 제사 때 필요한 음식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한과 만들기를 숙명으로 여기고, 한과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인생의 과제로 여기는 이가 있다. 국가 지정 전통 한과 제조 기능 명인이자, 대한민국 한과명장 1호(약과 분야) 김규흔씨다. 김규흔 명장에게 한과는 아련한 추억이 담긴 음식이다. 60가구 정도가 모여 사는 영덕의 바닷가에서 보낸 어린 시절, 과자는 언감생심이었다. 한과도 제사 때나 명절에 겨우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바삭하게 씹히는데다 달콤한 조청 맛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먹거리가 풍성하
옹기는 따스하고 투박한 생김에 비해 쓰임이 많다. 한민족은 예부터 옹기에 곡식을 저장하고, 장과 김치를 담고, 찌개를 끓였다. 장식용 도기와 달리 옹기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렇듯 음식에 쓰이기 때문이다. 미세한 공기구멍이 있어 장을 발효하고, 김치 맛을 좋게 하고, 잿물 성분이 쌀벌레를 막아준다. 전통 기법 그대로 ‘살아 있는 그릇’ 옹기를 빚는 황충길 명장을 만났다. 한 길만 보고 달려온 옹기 인생 냉장고용 김칫독 발명으로 재기 황충길 명장의 집안에서 대대로 옹기를 빚은 바탕에는 천주교가 있다. 할아버지 황춘백씨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떠나 옹기점을 시작한 것이 1850년, 아버지 황동월씨가 뒤를 이었고, 황충길 명장이 예산 땅에 정착했으며, 지금은 명장의 아들이 함께 일하니 4대가 160년 전통을 잇는 셈이다. 부친이 가마에 불을 때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뒤, 명장은 힘들고 알아주지도 않는 옹기 일을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마다 집안에 우환이 생겨 마음을 다잡고 옹기에 전념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집집마다 냉장고가 생기고 아파트 생활이 늘자, 김칫독이나 장독 사용이 급격히 줄면서 문 닫는
가업이란 무엇이고 장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그들의 뼛속 깊이 스민 시간은 또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까?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3호 궁장 권무석 선생은 12대째 각궁을 만든다. 아들 오정 씨까지 치면 13대째다. 아들과 함께 13대째 이어진 가업 활 문화 보존과 궁도 교육에 앞장 “우리 집안(가업)의 대가 끊겼다.” 1978년 추석을 맞아 고향에 왔을 때, 이제는 고인이 된 형 영호씨의 독백 같은 말을 들었다. 두 조카가 교사의 길로 들어서며 활 만들기를 포기하자, 가업이 끊길 위기에 처했다. 당시 권무석 궁장은 우체국 공무원으로 일하다 버스를 운전하고 있었다. 6남매의 막내로 어릴 때부터 활을 일상처럼 접했다. 대나무를 불에 쬐어 반달구비대소를 만들 때면 뒷산에서 노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한눈을 팔면 형님이 대나무로 등줄기를 후려쳤다. 16세 때 가출한 뒤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다. 활 만드는 일은 형님의 업이지, 자신이 이을 거라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가업이 끊겼다’는 형님의 말은 서울에 와서도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한참 고민한 끝에 가업을 잇기로 결정했다. 누님과 가족 모두 반대했다. 활을
하늘 높고 바람 좋은 가을날, 가족과 손잡고 느긋하게 즐길 만한 여행지 없을까. 그리 멀지 않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을 원한다면 서산을 추천한다. 조선시대 역사를 오롯이 간직한 읍성,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을 수 있는 아담하고 고즈넉한 절, 맛있는 먹거리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조선시대 읍성의 모습 간직한 해미읍성 드넓은 잔디밭에서 즐기는 전통 놀이 서산 여행의 첫 코스는 해미읍성이다. 서해안고속도로 해미 IC로 나와 5분이면 닿는다. 읍내 한가운데 우뚝 선 성이 인상적이다. 해미읍성은 조선 태종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기 시작해 세종 3년(1421)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며, 높이 5m, 둘레 1.8km로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우리나라 읍성 중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었다고 평가받으며 전남 순천의 낙안읍성, 전북 고창의 고창읍성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읍성’이라 불린다. 해미읍성은 조선 초기 충청병마절도사가 근무한 영(사령부)이 자리한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1579년(선조12) 훈련원 교관으로 부임해 전라도로 전임될 때까지 10개월간 근무했다. 들어서기 전에 성곽의 돌을 살펴봐야 한다. 돌에 청주, 공주 등 희미하게
태백시는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와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이 있는 땅이다. 4대강 가운데 두 강이 한 고장에서 발원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함백산, 금대봉, 매봉산 등 백두대간이 아우르는 산세 역시 장관이다. 그 중심에 태백산이 우뚝하다. 백두에서 비롯한 큰 산줄기로, 남쪽의 백두산이라 여겨 해마다 개천절에 천제를 지내는 민족의 영산이다. 태백의 자연과 탄광촌 역사 둘러보는 여행 365세이프타운의 유익한 재난 대처 체험 태백산과 백두대간의 산하가 태백 땅의 근간이라면, 태백 사람들은 오랜 시간 그 땅이 선물한 석탄에 의지했다. 한때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640만 t을 생산했으며, 정부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펴기 전까지 약 50개 광산이 태백을 이끌었다. 그 가운데 철암 일대는 석탄을 운반하던 철암역과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등록문화재 제 21호)로 번성했다. 철암초등학교 앞에 단풍군락지도 있어 태백이 간직한 자연과 역사를 돌아보는 이색 가을 여행에 제격이다. 그 여정은 태백고원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한다. 철암동이라는 이름은 북쪽의 철 함량이 높고 큰 바위(쇠바우)에서 유래했다. 원래 새터 부근이 철암이었으나 철암역이 생기며 새뜨리를 철암
남도의 끝자락, 호수처럼 잔잔한 득량만 바다를 품은 전남 장흥은 온화한 기운이 흐르는 평화로운 고장이다. 산자락 아래 펼쳐진 너른 들판과 섬들이 겹겹이 에워싼 고요한 바다가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준다. 따사로운 햇살과 선선한 바람이 여행을 부추기는 가을, 아름다운 장흥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모세의 기적’ 체험하는 신비로운 섬 정남진전망대서 펼쳐지는 남도의 정경 장흥반도 동쪽에 자리한 남포마을은 이청준 작가의 동명 소설이자 영화 〈축제〉 촬영지로 유명하다. 해안가 외길을 따라 한 굽이 돌아 들어선 어촌이 한적하다 못해 고요한 느낌이다. 낯선 여행자에겐 이런 적막감이 오히려 마음 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남포마을이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앞바다에 있는 바위섬 때문이다. 먼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남편과 가족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불빛을 따라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여인네들이 밤새 호롱불을 켜놓고 빌었다고 소등(小燈)섬이라 불린다. 바위섬 가운데 오롯이 자란 노송과 잡목 군락이 거센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호롱불 심지처럼 굳건해 보인다. 소등섬에는 바닷속 용이 승천하지 않고 섬과 마을 주민을 지키며 영원토록 머문다는 전설이
태안군은 북쪽 이원면에서 남쪽 고남면까지 세로로 길쭉한 반도다. 학암포에서 영목까지 약 230km에 리아스식 해안이 펼쳐진다. 그 주변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해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태안해안국립공원이고, 모래가 고운 해수욕장이 이어져 피서지로 인기다. 그 사이에 이름난 곳도 많다. 수려한 풍경과 흥겨운 축제가 다양한 태안이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귀한 보물처럼 오랜 시간 꼭꼭 숨겨둔 장소가 있게 마련이다. ‘옹도’의미 담은 옹기 조형물 자리한 섬 봄에는 붉은 빛, 여름엔 초록 빛 선사 옹도 역시 태안의 명소 가운데 하나로, 지난 2013년에 개방했다. 1907년 옹도등대가 세워지고 100여 년간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항로표지원이 외로이 섬을 지키는 동안 소문은 계속 퍼졌다. 2007년에는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포함됐고, 2012년에는 국토경제신문이 발간한 <한국의 아름다운 등대섬 20선>에 이름을 올렸다. 일반에 개방하기 전부터 그 섬과 등대의 아름다움은 알음알음 섬 밖으로 향했다. 옹도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안흥외항까지 이동한다. 태안 읍내에서 약 20
하조도등대가 불을 밝히는 진도 조도면 일대는 섬들이 새 떼처럼 펼쳐진 곳이다. 조도군도의 170여개 섬 중 하조도는 ‘어미 새’ 같은 품새를 자랑한다. 조도라는 섬 이름도 새의 형상을 닮아 붙인 것이다. 하조도등대는 1909년 처음 점등해 100년 넘게 뱃길을 밝혀왔다. 진도와 조도 일대 장죽수도는 서남 해안에서 조류가 빠른 곳 중 하나로, 등대는 서해와 남해를 잇는 항로의 분기점인 하조도 끝자락을 지키고 서 있다. 서해와 남해 잇는 항로 분기점 지키는 등대 2013년 해양문화공간으로 새롭게 단장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위치한 하조도등대는 수려한 풍광으로 자태를 뽐낸다. 주변은 온통 기암괴석이다. 절벽 위에 세워진 등대의 높이는 해수면 기점 48m, 등탑 14m에 이른다. 등대에서 내려다보면 조도군도 일대의 섬들이 절벽의 바위와 어우러져 아득한 모습을 연출한다. 하조도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09년 2월에 세워진 뒤 질곡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봤다.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2013년 새롭게 단장된 등대는 해양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등대 초입에는 ‘새의 섬’ 조도를 나타내는 어미 새 형상 포토 조형물이 있다. 흰 탑에 붉은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5.7km 떨어진 섬 팔미도. 사주(沙洲)로 연결된 두 섬이 마치 여덟팔(八) 자 꼬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팔미도(八尾島)라는 이름이 붙었다. 팔미도는 섬 자체도 아름답지만, 우리나라 최초로 불을 밝힌 팔미도등대가 있어 더욱 의미 깊다. 팔미도 유람선 타고 등대 여행 전망대서 바라보는 광활한 서해 팔미도등대는 1903년 4월 만들어졌으며, 같은 해 6월1일 첫 불을 켰다. 현재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40호로 그 자리에 보존되고 있다. 지금 바다를 비추는 등대는 2003년 12월에 새로 만든 것이다. 등탑 높이 26m에 회전식 등명기가 50km까지 비추며, 10초에 한 번씩 빛을 발한다. 등대 외에도 전망대와 디오라마 영상관, 100주년 기념 상징 조형물 ‘천년의 빛’, 위성항법보정시스템(DGPS) 기준국 시설과 첨단 장비를 갖췄다. 팔미도등대 여행은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시작한다. 유람선이 연안부두와 팔미도 사이를 왕복 운항하는데, 약 45분이 걸린다. 팔미도를 오가는 시간을 포함해서 등대 여행에 2시간 30분 정도 잡으면 된다. 뱃길은 지루하지 않다. 배와 함께 출발한 갈매기가 팔미도에 닿을 때까지 따라온다
부산 최남단에 자리한 가덕도. 이 섬 끝자락에는 무려 100여 년 전부터 불을 밝혀온 가덕도등대가 있다. 1909년 12월 처음 점등한 가덕도등대는 2002년 새 등대가 세워질 때까지 인근 해역을 오가는 선박들에 희망의 빛이 되었다. 푸른 바다 위 새하얗게 보존된 외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50호 지정 가덕도는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게다가 부산과 거제도 양쪽 지역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부산에서 출발하면 가덕대교와 눌차대교를 지나며, 거제도에서는 거가대교를 건넌 뒤 가 해저터널을 거쳐 들어온다. 이후 천성·대항 방면 도로를 따라 섬 남단으로 내려가는 동안 대항마을과 외양포마을을 차례로 지난다. 외양포마을에서 남쪽 끝으로 이어진 외길을 따라 10여 분 가면 길 끝 해안 절벽에 가덕도등대가 있다. 좁고 가파른 길이니 운전에 주의해야 한다. 출입 시 방문자마다 신분증을 확인하므로 반드시 챙기자. 출입 제한 지역이라는 무게 때문인지 철망 문을 넘어 등대까지 가는 수백 m가 무척 멀게 느껴진다. 등대가 섬 끝에 자리하기도 했지만, 산 넘고 바다 건너 머나먼 곳까지 찾아든 기분이다. 그래서일까. 등대와 첫 만남은 감격스럽다. 사방이 푸
죽변등대로 가는 길, 먼저 죽변항을 통과한다. 수많은 어선이 드나드는 포구를 따라 활처럼 휜 죽변 중앙로를 지나 항구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때 왼쪽 언덕길을 따라 오르면 늘씬한 등대가 나타난다. 흰색 팔각형 콘크리트 건물로 높이 16m, 첫 점등일은 1910년 11월24일이다. 죽변항은 동해안 항로의 중간 지점에 있고, 직선거리로 울릉도까지 가장 가까운 항구다. 예부터 군사상 중요한 위치에 속했기에 왜구가 자주 침범했다. 신라 시대에는 왜구를 방어하는 성을 쌓고 군대가 상주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봉수대가 있던 자리에 해상을 감시하는 망루를 설치했고, 1910년에는 등대가 세워졌다. 등탑 건물의 오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경상북도 기념물 제 154호로 지정됐다. 등대원의 안내를 받아 등탑에 오른다. 열쇠로 철문을 열자 아담한 내부가 드러난다. 밖과 마찬가지로 하얀색이다. 4층 구조인데 각층을 연결하는 나선형 계단이 이국적이다. 각층 천장에 태극무늬가 선명하다. 사다리처럼 가파르게 연결된 계단을 기다시피 올라 등탑 꼭대기에 이른다. 외부로 나가는 문을 여니 등대에 불을 밝히는 등명기가 눈높이에 있다. 등명기 주위로 빛을 반사해서 더 강하게 해주
산으로 올라갈수록 계곡물이 줄고, 폭포 역시 규모가 작아지는 게 일반적이다. 내연산은 계곡이 깊어질수록, 산으로 올라갈수록 수량이 많고 근사한 폭포가 나온다. 계곡 따라 12개 폭포가 있는데, 저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개성이 넘친다. 마치 누가 더 아름다운지 우승자를 가리기 위해 오디션을 펼치는 듯하다. 내연산 12폭포가 벌이는 꿈의 오디션을 심사 위원이 된 듯 차례차례 감상해보자. 걷는 재미 더하는 돌, 흙, 바위 길 정비된 등산로에 가족 단위 인기 내연산은 활엽수가 빼곡하고 군데군데 적송이 모여 울창한 숲을 이룬다. 해발 710m로 그리 높지 않지만, 바다 가까이에 불쑥 솟아 정상에 오르면 동해의 푸른 물결을 감상할 수 있다. 숲길을 걷는 내내 계곡물이 따라와 발걸음이 가볍다. 돌길, 흙길, 바윗길, 데크 로드 등 길에 변화가 많아 재미있다. 계곡에 모두 12개 폭포가 있는데 비가 많이 오면 여기저기에 없던 폭포가 생겨나기도 하고, 가물 땐 얕은 폭포가 사라지기도 한다. 마침 비 내린 직후에 도착해 내연산 폭포가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등산로는 보경사 앞에서 시작된다. 절 앞으로 시원스레 물길이 통과한다. 계곡물을 절 앞까지 끌어와 마을 논밭에 대는데,
구례군의 가장 북쪽에 자리 잡은 산동면은 이른 봄 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로 유명하다. 산수유가 곱게 핀 산동면 일대에는 노란 봄의 색감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뜨거운 여름이 시작됨과 동시에 분주해지는 산동면의 명소도 있다. 바로 수락폭포다. 아픈 몸도 낫게 해주는 폭포의 효험 경외감마저 드는 거대한 물줄기 남원과 구례를 잇는 19번 국도 동편으로는 남원의 바래봉에서 시작해 세걸산과 정령치를 지나, 만복대와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능선이 남북으로 이어진다. 수락폭포가 자리 잡은 산동면 수기리는 면 소재지에서 4km 정도 들어가야 한다. 계곡을 따라가면 물소리가 크게 들리고, 1분도 안 돼 수락폭포의 위용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 사이로 높이 15m에서 폭포가 끊임없이 물을 토해낸다. 수락폭포는 날이 가물어도 일정한 수량을 유지할 정도로 물이 많아 물맞이 폭포로도 유명하다. 무더위 씻기는 물맞이 체험 물맞이는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선조의 지혜가 담긴 풍습이다. 수락폭포는 근처 주민들이 모내기와 김매기를 마치고 농한기로 접어들 때 허리 통증, 신경통을 다스리기 위해 찾은 곳이다. 농부들은 1년 내내 육체노동에
가평은 산 좋고 물 좋다는 말이 허구가 아니다. 명지산, 유명산, 축령산 등은 경기도에서 소문난 명산이다. 무엇보다 제 몸에 유려한 계곡을 간직해서, 굳이 바다를 찾지 않아도 더위를 거뜬히 물리친다. 가평8경만 봐도 알 수 있다. 청평호반과 호명호수가 1경과 2경이고, 용추구곡과 유명농계, 적목용소가 계곡이다. 어디인들 설레지 않을까만, 올여름은 그 가운데 5경 적목용소를 탐해도 좋겠다. 빼어난 경관 자랑하는 적목용소 용소의 기품 더해주는 용소폭포 흰 명주실 떠오르는 무주채폭포 도마치계곡에 자리 잡은 적목용소와 무주채폭포 등은 경관이 빼어난데다 여름 나기에 안성맞춤이다. 위치와 접근성 때문에 다른 8경에 비해 덜 알려졌다. 가평군 제일 북쪽으로 가평 읍내에서 약 30km 올라간다. 대중교통으로는 용수동 종점에서 내려 4km 남짓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부러 찾아드는 이가 적잖다. 가는 길부터 들뜬다. 도로는 가평천과 엎치락뒤치락 나아간다. 연인산, 명지산, 화악산 등 산수를 파고들어 달린다. 도착점은 과거 삼팔선이 지난 삼팔교를 거쳐 약 3km 거리다. 길가의 자그마한 주차장과 공중화장실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 주차장에서 적목용소까지 5분 정도 걷는다. 보통
동해시는 산과 바다, 계곡을 두루 갖춘 이상적인 피서지다. 망상, 대진, 추암 같은 청정 해변을 비롯해 산세가 빼어난 두타산과 청옥산, 트레킹과 물놀이 장소로 각광받는 무릉계곡까지 입맛대로 골라 가는 재미가 있다. 이 중 동해안의 내로라하는 해변을 제치고 강원도 국민관광지 1호로 지정된 곳이 두타산과 청옥산 등반의 들머리인 무릉계곡이다. 두타산·청옥산 들머리 무릉계곡, 국민관광지 1호 지정 절묘한 이중주 선보이는 쌍폭의 아름다운 풍경 감상 이곳의 이름은 신선이 노닐었다는 중국의 무릉도원에서 따왔다. 매표소부터 약 3km 구간에 맑고 풍부한 계곡물과 기암괴석,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이름값을 한다. 하이라이트는 계곡 트레킹 끝 무렵 등장하는 쌍폭이다. 바위를 타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 앞에 서면 이마의 땀은 어느새 사라지고 팔뚝엔 오스스 소름이 돋는다. 쌍폭까지 한 시간 안팎 걸리는 트레킹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탄하다. 울창한 나무 터널이 뜨거운 햇볕을 가려 시원하고, 무릉반석과 삼화사, 학소대, 선녀탕 등 변화무쌍한 절경이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매표소를 지나면 가장 먼저 거대한 너럭바위가 나타난다. 1000명이 앉아 쉴 수 있다는 무릉계
경북 성주군에는 아름다운 산이 있다. 경남과 경북의 경계에 우뚝 솟은 가야산국립공원이다. 가야산(약 1433m)은 골이 깊어 물이 풍부하고, 기암이 많아 오르는 동안 다양한 풍경을 누릴 수 있다. 특히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 만물상을 지나 서성재까지 이어지는 3km는 가야산의 웅장함이 돋보이는 코스로 손꼽힌다. 하지만 아이나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이 길을 오르기는 쉽지 않다. 이런 때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이 백운동탐방지원센터 바로 아래 해발 550m에 자리한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이다. 웅장한 풍경 감상하며 걷는 가야산식물원길 아이들 학습 장소로 제격인 가야산야생화식물원 2006년 6월에 문을 연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은 성주군이 직접 운영·관리한다. 여행자를 처음 맞이하는 공간은 식물원 입구의 실내 전시관과 온실이다. 야생화 표본과 나무·곤충·화석 표본까지 전시되어 아이들의 학습 장소로도 그만이다. 온실은 비 오는 날에도 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장소다. 하얗게 꽃 피운 약모밀로 둘러싸인 작은 연못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잉어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 가도 좋다. 7월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시기다. 이런 때 꽃은 제 모습을 보여주
지난 4월 포항 KTX가 개통했다. 포항은 이제 서울에서 2시간30분, 대전에서 1시간30~40분 거리다. 접근이 편리해지며 포항 여행에 대한 관심도 늘었다. 그간 포항은 제철 도시의 색깔이 강했다. 여행지는 일출 명소 호미곶과 바다가 앞섰다. 못내 아쉽다. 포항은 훨씬 다채로운 표정이 있는 여행지다. 조금 새로운 발견을 원한다면 북쪽으로 걸음을 옮겨보자. 여름날 꽃과 숲을 만나기 좋다. 처음 찾는 이들은 포항의 심상이 달라진다. 느린 걸음으로 고요한 숲이 주는 안락함 만끽 희귀멸종위기식물원에서 마주하는 진귀한 꽃 첫 방문지는 기청산식물원이다. 기청산은 기(箕)와 청산(靑山)을 합친 말이다. 기는 곡식을 까부르는 데 쓰는 키고, 청산은 익히 아는 대로 유토피아다. 키 모양 대나무 언덕이 있는 무릉도원, 좋은 식물과 사람의 참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삼우 원장의 취지가 담긴 이름이다. 그는 지난 1969년 기청산농원을 열며 식물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현재는 9ha에 식물 2500여종이 자란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했나. 그 가치는 식물원에 들어서는 순간 실감한다. 정문 일대부터 영화나 소설에 나올 법한 숲길이 펼쳐진다. 초록 숲 사이로 알록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