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등대여행 ⑤태안 옹도등대

100년의 보물 지닌 옹기 닮은 등대섬

태안군은 북쪽 이원면에서 남쪽 고남면까지 세로로 길쭉한 반도다. 학암포에서 영목까지 약 230km에 리아스식 해안이 펼쳐진다. 그 주변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해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태안해안국립공원이고, 모래가 고운 해수욕장이 이어져 피서지로 인기다. 그 사이에 이름난 곳도 많다. 수려한 풍경과 흥겨운 축제가 다양한 태안이니 당연하다. 그럼에도 귀한 보물처럼 오랜 시간 꼭꼭 숨겨둔 장소가 있게 마련이다.

‘옹도’의미 담은 옹기 조형물 자리한 섬
봄에는 붉은 빛, 여름엔 초록 빛 선사

옹도 역시 태안의 명소 가운데 하나로, 지난 2013년에 개방했다. 1907년 옹도등대가 세워지고 100여 년간 외부인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항로표지원이 외로이 섬을 지키는 동안 소문은 계속 퍼졌다. 2007년에는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등대 16경’에 포함됐고, 2012년에는 국토경제신문이 발간한 <한국의 아름다운 등대섬 20선>에 이름을 올렸다. 일반에 개방하기 전부터 그 섬과 등대의 아름다움은 알음알음 섬 밖으로 향했다. 

옹도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안흥외항까지 이동한다. 태안 읍내에서 약 20km 거리다. 안흥항은 내항과 외항으로 나뉜다. 내항과 외항은 신진대교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다. 육지 끝의 정죽리에는 내항이, 다리 건너 신진도에는 외항이 있다. 항구의 기능은 외항이 생겨난 뒤 내항에서 외항으로 중심이 옮겨갔다.

푸른바다 조망
동백꽃 쉼터

안흥외항에서 옹도까지 약 12km 거리다. 안흥외항을 떠난 배는 가의도 곁을 지나 옹도에 다다른다. 옹도 여행은 약간 아쉽다. 유람선이 하루 한 차례 오가고, 섬에 내려서는 1시간가량 머물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서두를 이유는 없다. 옹도는 산책로를 따라 섬 정상의 등대까지, 등대에서 선착장 반대편의 섬 서쪽까지 내려갔다 돌아오는 왕복 구간이다. 직선거리로 약 365m, 잠깐씩 숨을 고르며 천천히 다녀와도 부족하지 않다.
선착장에 내려서자 등명기 모양 쉼터 ‘환영의 빛’이 등대섬답게 여행자를 맞아준다. 산책로 초반은 계단을 따라 오른다. 첫 모퉁이를 돌 때 옹기 쉼터가 나온다. 섬의 중간 높이로 선착장 풍경을 품는다. 옹기는 이 섬에 옹도라는 이름이 붙은 기원이다. 섬이 옹기를 옆으로 뉘어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옹도다. 섬 곳곳에 있는 옹기 형상 조형물도 같은 의미다. 


두 번째 모퉁이에는 동백꽃 쉼터와 동백잎 쉼터가 반긴다. 동백꽃 쉼터는 동백꽃의 붉은색 차양, 동백잎 쉼터는 동백 잎의 초록색 차양으로 꾸민 쉼터다. 그 사이에 장승이 섰다. 동백꽃 쉼터는 옹기 포토 존과 가자미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옹기 포토 존은 옹기를 반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정상의 등대가 보이도록 배치했다. 동백꽃 쉼터는 옹기 쉼터보다 높아 전망대로는 한 수 위다. 단도와 가의도가 손에 닿을 듯 선명하고, 멀리 신진도까지 보인다. 가의도 남쪽은 목개도와 정족도가 눈을 맞춘다. 동백꽃 쉼터와 동백잎 쉼터를 지나면 동백 터널이다. 옹도는 봄날에 동백꽃이 섬을 물들인다. 붉은 꽃의 터널이 그 백미다. 여름에는 초록 잎이 반짝이며 길을 연다. 

동백 터널을 나오자 비로소 등대 앞 중앙광장이다. 섬의 정상은 등대와 중앙광장, 숙소동으로 구성된다. 중앙광장에는 커다란 옹기 조형물이 다시 한 번 옹도의 의미를 전달한다. 그 옆으로 고래 조형물이 있다. 그러고 보니 멀리서 본 옹도는 고래를 닮았다. 실제로 일대 어민들은 고래섬이라고 부른다. 등대에 전시관도 있다. 옹도 모형 등이 있어 발길이 닿지 않는 섬의 면면까지 살펴볼 수 있다.

충남 유일
유인 등대

산책로는 등대에서 서쪽 아래로 계속된다. 섬 가장자리 못미처 끝나는데, 울타리 너머에 물범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먼 바다에는 충남 최서단의 격렬비열도가 보인다. 그 이름처럼 새가 무리 지어 날아가듯 바다에 떠 있다. 굳이 전망대나 쉼터라고 이름 붙이지는 않았지만, 너른 바다가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선착장 방면에 비해 고즈넉하니 잠깐이나마 사색하는 시간을 보내도 좋겠다. 걸음을 돌리면 언덕 위에 옹도등대가 눈을 맞춘다. 100년 넘게 평택항과 대산항 등 서해를 오가는 배들의 길라잡이다. 충남에서 유일한 유인 등대로 바다의 파수꾼임을 실감한다.

옹도를 뒤로하고 나올 때는 섬의 모양을 눈여겨볼 일이다. 옹기를 누인 듯도 하고, 고래가 헤엄치는 듯도 하다. 바위섬을 유람하며 좀더 머물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옹도는 들어가는 데 30분이 걸리지만, 나오는 길은 1시간 조금 넘게 걸린다. 가의도 주변의 재미난 바위섬들을 관람하기 때문이다. 

가의도는 가의라는 중국 사람이 피신해서 가의도라 하고, 신진도의 가장자리라 그리 부른다고도 한다. 동서로 길게 뻗었는데 동쪽 바다에는 독립문바위와 돛대바위가 도열한다. 독립문처럼 문이 있는 바위와 돛대처럼 솟은 바위다. 사자바위와 거북바위 역시 바다에 줄지어 섰다. 사자바위는 고개를 돌린 사자의 모습과 신기할 만큼 닮았다. 멀리 중국 땅을 바라보며 태안반도를 지킨다고 전한다. 사자를 뒤따르는 자그마한 바위 끝에 거북바위가 있다. 섬 주민들이 제를 올리던 바위다. 코바위와 부부바위도 유람의 즐거움이다.

배에서 내리면 안흥항을 돌아본다. 항구에는 집어등을 단 배가 많다. 옹도 서쪽의 격렬비열도 일대는 오징어 집단 서식지다. 태안의 오징어 어획량은 이제 동해 못지않다. 오징어를 사기 위해 부러 안흥항을 찾는 이도 적잖다. 신진대교를 건너 태안 접어드는 길목에는 갈음이해수욕장이나 연포해수욕장이 마지막 더위를 쫓는다. 특히 갈음이해수욕장은 너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캠핑이 가능하다. 영화 〈번지 점프를 하다〉에서 두 주인공이 왈츠를 추던 해변으로, 아담한 백사장이 매력적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불가능했으며, 입장료를 내야 한다.


해변의 모래밭이 피서지이기만 할까. 조금 색다른 모래밭이 보고 싶다면 태안 북쪽 원북면 신두리를 찾는다. 신두리에는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된 우리나라 최대 해안사구 지역이 있다. 모래언덕과 모래 위 바람 자국 등이 사막을 연상케 한다. 탐방로를 따라 걷는 길도 운치 있다.

안흥외항에서 신두리 가는 길에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국보 307호)도 만나보길 권한다. 태안의 진산인 백화산 등성이 태을암 옆에 있다. 가운데 키가 작은 보살입상 1구와 양옆으로 불입상 2구가 자리한 구조다. 백제 시대 가장 오래된 마애불상으로 그 가치가 특별하다. 가만히 눈을 맞추면 마음에 염화미소가 떠오른다. 달리 ‘넉넉하고 편안한’ 태안(泰安)일까. 태을암 대웅전 마당에서 보면 태안 시가지도 더없이 평온하다.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여행 정보>----------------------
당일 코스
· 바다 체험 코스 : 안흥외항→옹도등대→갈음이해수욕장
· 풍경 여행 코스 :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옹도등대→태안신두리해안사구
1박 2일 코스
· 첫째 날 : 안흥외항→옹도등대→갈음이해수욕장
· 둘째 날 :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백화산→태안신두리해안사구
관련 웹사이트
· 태안군 문화관광 http://travel.taean.go.kr
· 신진도안흥유람선 www.shinjindo.com
· 갈음이해수욕장 www.galumlee.com
문의 전화
· 태안군청 관광진흥과 041-670-2772
· 신진도안흥유람선 041-675-1603, 674-1603
· 갈음이해수욕장 041-675-1363
· 태을암(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 041-672-1440
· 신두리사구센터 041-672-0499
대중교통
· 버스 : 서울-태안,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0회(07:10~20:10) 운행, 2시간 10분 소요. 태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신진(도) 방면 버스 이용, 30~40분 소요.
문의 :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이지티켓 www.hticket.co.kr
· 유람선 : 안흥외항-옹도, 하루 1회(14:00) 운항, 30분 소요(운항 시간 변동 가능, 사전 확인 필수).
문의 : 신진도안흥유람선 041-675-1603, 674-1603, www.shinjindo.com
자가운전
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서산·태안 방면 좌회전 570m→운산IC교 아래 지나 운산교차로에서 서산·당진 방면 좌회전→서해로 13km→예천사거리 안면도· 태안법원 방면 좌회전→서해로 15.9km→남문IC지하차도 진입, 서해로 3.1km→두야교차로 신진도리 방면 좌회전→태흥로 16.2km→신진부두길 우회전 300m→안흥외항
숙박
· 제이드리조텔 : 근흥면 신진도길, 041-674-4999, 5999, www.jaderesortel.com
· 샌드힐 : 원북면 신두해변길, 041-675-3102, www.sandhill.co.kr
· 리츠캐슬리조트 : 근흥면 마도길, 041-673-5727, http://ritzcastle.com
식당
· 화해당 : 간장게장, 근흥면 근흥로, 041-675-4443, www.hwahaedang.com
· 한국관 : 생갈비, 태안읍 독샘로, 041-675-2415
· 토담집 : 우럭젓국, 태안읍 동백로, 041-674-4561
축제와 행사
태안빛축제 2015 : 2015년 12월 31일까지, 태안꽃축제장, 041-675-7881, 9200,www.ffestival.co.kr, 우천 시 취소
주변 볼거리
안흥성, 백화산, 천리포수목원, 몽산포해수욕장, 꽃지해수욕장, 안면도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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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