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 찾아서 ②황충길 명장

160년 전통 ‘살아 있는 그릇’ 빚다

옹기는 따스하고 투박한 생김에 비해 쓰임이 많다. 한민족은 예부터 옹기에 곡식을 저장하고, 장과 김치를 담고, 찌개를 끓였다. 장식용 도기와 달리 옹기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은 이렇듯 음식에 쓰이기 때문이다. 미세한 공기구멍이 있어 장을 발효하고, 김치 맛을 좋게 하고, 잿물 성분이 쌀벌레를 막아준다. 전통 기법 그대로 ‘살아 있는 그릇’ 옹기를 빚는 황충길 명장을 만났다.

한 길만 보고 달려온 옹기 인생
냉장고용 김칫독 발명으로 재기

황충길 명장의 집안에서 대대로 옹기를 빚은 바탕에는 천주교가 있다. 할아버지 황춘백씨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서 고향을 떠나 옹기점을 시작한 것이 1850년, 아버지 황동월씨가 뒤를 이었고, 황충길 명장이 예산 땅에 정착했으며, 지금은 명장의 아들이 함께 일하니 4대가 160년 전통을 잇는 셈이다. 부친이 가마에 불을 때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뒤, 명장은 힘들고 알아주지도 않는 옹기 일을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했다. 그때마다 집안에 우환이 생겨 마음을 다잡고 옹기에 전념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집집마다 냉장고가 생기고 아파트 생활이 늘자, 김칫독이나 장독 사용이 급격히 줄면서 문 닫는 옹기점이 많았다. 명장도 몇 년을 고전하다가 1996년, 냉장고용 김칫독을 발명하고 반전을 맞았다. 플라스틱 통에 보관하면 김치가 빨리 익거나 군내가 나서 먹지 못하는 일이 잦았는데, 냉장고용 김칫독은 다 먹을 때까지 시원한 맛을 유지했다. 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찾아와 트럭으로 사 가느라 옹기점 주변이 시끌벅적했다.

실생활 유용
다양한 구성

상 복도 따랐다. 1996년 열린 제1회 농민의 날 공예 부문 대상과 충남발전대상 수상에 이어, 1998년 월드컵 유망 업체로 지정되며 2~3년 사이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1998년, 드디어 도자기 공예 부문에서 대한민국 명장(98-23호)에 선정된다. 3대에 걸쳐 쌓은 기술과 평생 한길만 보고 달려온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그제야 벗어나려고 한 옹기 인생이 천직임을 깨달았다.


명성도 얻고 기반도 탄탄해졌지만, 옹기에 대한 명장의 철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옹기 한점 한점이 빼어난 작품이라는 마음으로 정성을 들인다. 편하고 쉬운 전기 물레 대신 전통방식 그대로의 물레를 고집하며, 흙 고르는 일이나 천연 재료로 잿물 만드는 일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평생 해온 일이라 물레에 흙 반죽을 올리면 몸이 알아서 움직인다. 눈 감고도 만들 정도로 몸에 익었지만,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집중한다. 밑바닥을 만들고, 흙가래를 올리고, 두드리고, 다듬기를 반복하면서 항아리가 모양을 갖춰간다. 수많은 손길을 거쳐야 아담한 항아리 하나가 빚어진다. 좀더 매끈하게 다듬으려는 마음이 손끝에 나타난다.

전통예산옹기의 전시실에는 판매용 옹기와 함께 명장의 작품도 전시된다. 쌀독, 김칫독, 장독, 시루, 뚝배기 등 전통적으로 쓰인 옹기는 물론, 현대 가정에 어울리는 식기 세트, 원형 접시, 양념통, 머그잔, 냄비, 다기 세트까지 100종이 넘는다. 명장이 발명한 냉장고용 김칫독은 크기가 다양해 반찬을 넣어도 좋다.

옹기는 음식의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고, 저장 중에도 계속 발효하며, 냄새가 나지 않는다. 길쭉한 새우젓 독을 우산꽂이나 화분으로 쓰고, 물을 저장하거나 채소를 절이는 자배기를 어항이나 수반으로 쓰는 등 전통 옹기를 현대식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성인 여덟명이 겨우 들 정도로 큰 독, 작품으로 만든 아름다운 옹기 등 전시실 내부에 볼거리가 많다.

나만의 옹기를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흙 반죽을 가래떡처럼 길게 만들어 동그랗게 쌓아서 컵이나 그릇, 연필꽂이 등을 완성한다. 흙을 둥글넓적하게 펴서 손 모양을 찍고 가장자리 꾸미기도 쉽고 재미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물레 성형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정성들여 나온
매끈한 자태

2015년 6월, 예산황새공원이 문을 열었다. 공원이 자리한 광시면 대리 일대는 개발이 거의 없고,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지어 오염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구리, 메뚜기, 도롱뇽, 뱀 등 먹잇감이 풍부하다. 공원에는 황새 문화관, 황새 오픈장, 야외 습지, 사회화 훈련장, 야생화 훈련장, 번식장 등이 있다.

문화관에서 관련 전시를 보고 황새를 이해한 다음 야외에 마련된 오픈장으로 이동한다. 천연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된 황새는 두루미나 왜가리와 혼동하기 쉽다. 두루미나 왜가리는 발가락이 앞으로 세개뿐인데, 황새는 앞에 세개, 뒤에 한개가 있어 나뭇가지를 잘 잡고 앉는다.


오픈장은 울타리가 있지만 지붕은 열렸다. 여기 서식하는 황새는 일부 깃털을 잘라 날지 못한다. 깃털은 손톱처럼 두 달이면 다시 자라고, 자를 때 통증도 없다. 살아 있는 미꾸라지, 붕어 등 공원이 제공하는 먹이를 먹으며 세상에 적응하고, 야생화 훈련을 마치면 야생으로 날려 보낸다.

문화관 바로 옆에 오픈장이 있다. 오픈장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황새를 관찰하거나, 문화관 카페 앞 전망대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다. 카페에 가면 황새마을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구입하거나, 팔찌와 목걸이 만들기 등 체험도 가능하다.

전통예산옹기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김정희 선생 고택(충남 유형문화재 제43호)이 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서예가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다. ㄱ자형 사랑채, ㅁ자형 안채, 추사 영정을 모신 영당 등이 있다. 고택 기둥에 걸린 글귀는 모두 추사체인데, 추사의 글도 있고 예부터 전해진 좋은 글귀도 있다. 고택 바로 앞에 자리한 문화해설사의 집에 청하면 추사의 삶과 예술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고택 옆 추사기념관에서는 추사의 일생을 살펴보고,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수덕사는 백제 위덕왕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천년 고찰이다. 1308년에 건립된 대웅전은 고건축학에서도 손꼽는 건물로, 측면에서 볼 때 특히 간결하고 아름답다. 범종각 앞에서 내려다보이는 예산 들녘 풍광도 빼어나다.
‘의좋은 형제’ 이야기의 고향이자 슬로시티로 지정된 대흥면에는 하룻밤 묵으며 전통 한옥의 멋을 느낄 수 있는 교촌한옥문화체험관이 있다. 넓은 대청마루, 부엌의 환기를 좋게 하는 홍살, 불을 지펴 뜨끈한 온돌방 등 한옥의 운치가 곳곳에서 전해진다.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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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코스

· 전통문화 답사: 전통예산옹기→김정희 선생 고택→예산황새공원→수덕사
· 명소 탐방 코스: 예산황새공원→광시한우마을→교촌한옥문화체험관→전통예산옹기→김정희 선생 고택
1박 2일 코스
· 첫째 날: 전통예산옹기→김정희 선생 고택→예산황새공원→광시한우마을→의좋은형제공원→교촌한옥문화체험관                 (숙박)
· 둘째 날: 예당저수지→수덕사→덕산온천
관련 웹사이트
· 예산군 문화관광 http://tour.yesan.go.kr
· 전통예산옹기 www.yesanonggi.co.kr
· 예산황새공원 www.yesanstork.net
· 수덕사 www.sudeoksa.com
문의 전화
· 전통예산옹기 041-332-9888
· 예산군청 문화관광과 041-339-7323
· 예산황새공원 041-339-8271~2
· 수덕사 041-330-7700
· 추사기념관 041-339-8242
대중교통
· 기차: 용산역-예산역, 새마을호대전복합터미널 1577-2259
          무궁화호 하루 15회(05:35~20:35) 운행, 약 1시간 50분 소요.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예산,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4회(07:00~19:30) 운행, 약 2시간 소요.
         대전-예산, 대전복합터미널에서 하루 8회(06:40~19:55) 운행, 약 1시간10분~1시간50분 소요.
         문의 : 서울남부터미널 1688-0540 대전복합터미널 1577-2259
                  전국시외버스통합예약안내서비스 www.busterminal.or.kr
자가운전
· 서해안고속도로 당진 IC→예산·합덕 방면 우측→반촌로→예산·삽교호 방면 좌측→옛터골길→거산2교차로 우회전→예당평야로→신택교차로 신암·용궁리 방면 우회전→오신로→오촌사거리 좌회전→황금뜰로 우회전→전통예산옹기
· 당진영덕고속도로 예산수덕사 IC→아산·예산 방면 좌측→충서로→발연삼거리 운산·고덕 방면 좌회전→황금뜰로 좌회전→오촌중앙길→전통예산옹기
숙박
· 슬로시티 교촌한옥 : 대흥면 교촌향교길, 041-335-0163, http://cafe.daum.net/slowyedang
· 봉수산 자연휴양림 : 대흥면 임존성길, 041-339-8936~8, www.bongsoosan.com
· 덕산온천관광호텔 : 덕산면 덕산온천로, 041-338-5000, www.ducksanhotel.co.kr
식당
· 중앙산채명가 : 더덕구이산채정식, 덕산면 수덕사안길, 041-337-6677
· 도랑골손맛 : 추사밥상, 고덕면 상장2길, 041-337-8636, http://cityfood.co.kr/h9/dolanggolsonmas
· 민속촌가든 : 오향오리, 예산읍 수철길, 041-334-5520
주변 볼거리
예산삼베길쌈마을, 슬로시티 대흥, 봉수산 자연휴양림, 덕산도립공원, 한국고건축박물관, 예당관광지, 윤봉길의사기념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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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