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폭포여행 ③강원도 태백시

해발 700m 숲의 하룻밤 ‘이색 체험’ 태백 가을 여행

태백시는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와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이 있는 땅이다. 4대강 가운데 두 강이 한 고장에서 발원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함백산, 금대봉, 매봉산 등 백두대간이 아우르는 산세 역시 장관이다. 그 중심에 태백산이 우뚝하다. 백두에서 비롯한 큰 산줄기로, 남쪽의 백두산이라 여겨 해마다 개천절에 천제를 지내는 민족의 영산이다.

태백의 자연과 탄광촌 역사 둘러보는 여행
365세이프타운의 유익한 재난 대처 체험

태백산과 백두대간의 산하가 태백 땅의 근간이라면, 태백 사람들은 오랜 시간 그 땅이 선물한 석탄에 의지했다. 한때 전국 석탄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640만 t을 생산했으며, 정부가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을 펴기 전까지 약 50개 광산이 태백을 이끌었다. 그 가운데 철암 일대는 석탄을 운반하던 철암역과 태백 철암역두 선탄시설(등록문화재 제 21호)로 번성했다. 철암초등학교 앞에 단풍군락지도 있어 태백이 간직한 자연과 역사를 돌아보는 이색 가을 여행에 제격이다.

그 여정은 태백고원자연휴양림에서 출발한다. 철암동이라는 이름은 북쪽의 철 함량이 높고 큰 바위(쇠바우)에서 유래했다. 원래 새터 부근이 철암이었으나 철암역이 생기며 새뜨리를 철암, 본래 마을인 새터를 상철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은 그중 철암과 동해를 오가던 새터 동쪽 토산령에 위치한다. 사람의 신체가 가장 편안하게 느낀다는 해발 700m 지점이다. ‘행복이 가득한 숲 속에서 하룻밤’이라는 콘셉트로, 휴양림의 구성도 해발 700m 고원에 슬며시 기댄 모양새다. 서둘러 가을을 쫓기보다 계절의 기운이 다가서길 느긋하게 기다리며 머물기에 적합하다.

백두의 줄기
태백산 산세

관리사무소를 지나 좌우 샛길로 접어들면 숲속의 집 2~3단지가 나온다. 2단지는 23㎡ 규모로 독립된 숙소가 여럿이다. 산림문화휴양관의 23㎡ 숙소와 더불어 평일 1박 3만원으로 저렴하다. 계곡 건너 반대편 3단지는 89㎡ 복층 구조다. 2층의 너른 창으로 숲을 품을 수 있으며, 넓고 한적한 별장 분위기라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 알맞다. 거기서 500m 정도 들어가면 산림문화휴양관과 숲속의 집 1단지가 나온다. 다락을 갖춘 숙소가 인기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의 넉넉한 인심도 숲의 여유를 더한다. 다른 휴양림과 달리 기준 인원에 1~2명 추가 입실해도 추가 요금이 없다. 


숙소는 계곡에서 멀지 않다. 계곡은 여름이 제격이라지만 가을에도 나름의 정취가 있다. 가을 계곡은 공기와 어울린 계절감으로 다가온다. 물론 손발을 담글 수도 있다. 길가나 다리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는 길이 났다. 물빛에 어리는 가을을 좀더 가까이 누린다.

산책하고 싶을 때는 산림문화휴양관 앞에서 다리를 건너 호식총까지 다녀온다. 왕복 30분 남짓한 길을 쉬엄쉬엄 걸어볼 수 있다. 침엽수림이 울창해 피톤치드의 청량감이 좋다. 쉼터의 처마 아래 숨을 고르면 행복이 가득한 숲을 실감한다. 10월 초입에는 그 사이로 살포시 붉은빛이 어른거린다. 성격 급한 활엽수의 가을 손짓이다.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이 단풍을 뽐내는 숲은 아니지만, 계절의 매혹은 예외가 없다.

가을 산행도 무난하다. 숲속의 집 1단지를 출발해서 토산령 정상과 덕거리봉을 거쳐 하산하는 약 7km 구간이 3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이른 산행에 나서 토산령 정상에서 동해 일출을 감상하는 이도 있다. 단풍을 더 즐기고 싶을 때는 휴양림 초입 철암초등학교 방면으로 걸음을 옮긴다.

철암은 비교적 이른 시기인 10월 9~10일 사이 ‘태백 철암단풍어울마당’을 연다. 철암초등학교 도로 건너편 철암천변의 단풍군락지가 주 무대다. 철암단풍어울마당의 가장 큰 장점은 태백고원자연휴양림이 가깝고, 단풍 구경에 험한 산행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도로와 나란한 하천을 걸으며 가득 찬 단풍을 감상한다. 긴 구간은 아니라도 물에 비친 단풍이 탄성을 자아낸다.

철암단풍군락지에서 철암천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철암탄광역사촌이 기다린다. 처음 찾는 이들은 도로와 접한 상가라고 여긴다. 실제로 몇몇 식당은 영업 중이다. 하지만 이들 식당은 석탄 산업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생활사 박물관이기도 하다. 페리카나치킨 문을 열고 들어서자 역사촌 안내소가 나타난다. 리플릿 한 장 들고 이웃한 호남슈퍼로, 봉화식당으로, 한양다방으로 미로처럼 열리고 닫히는 전시 공간을 탐험한다. 남쪽 신설교에서는 하천 위에 다리를 세운 탄광촌 까치발 건물이 또렷하다. 한때 철암의 인구는 4만5000명에 이르렀고, 까치발 건물 맞은편 산등성에도 집이 가득했다. 

교육+놀이 결합
에듀테인먼트 체험

태백에 와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공간이 또 있다. 철암과 장성을 아우르는 365세이프타운이다. 체험으로 배우는 안전 테마파크이자, 교육과 놀이를 결합한 에듀테인먼트 시설이다. 크게 장성지구(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와 중앙지구(챌린지월드), 철암지구(강원도소방학교)로 나뉜다. 그 사이를 곤돌라로 이동할 만큼 넓고 다채롭게 꾸며졌다. 전체를 알차게 체험하고 싶을 때는 서울의 테마파크에 갈 때처럼 하루를 비워둔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이다. HERO 체험관을 중심으로 소방문화전시관, 곤충체험전시관, 키즈랜드 등을 돌아본다. HERO 체험관은 산불, 설해, 풍수해, 지진, 대테러 등 다섯 가지 체험으로 구성된다. 모든 체험은 프리 쇼, 메인 쇼, 포스트 쇼로 진행한다. 해당 재난 상황을 전달하고 실제 체험을 한 뒤, 사후 조치를 설명하는 순서다. 3D와 4D 영상 속에 라이더를 타고 체험해서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재난 대처 요령을 익힌다.

챌린지월드에서는 최고 높이 11m 트리트랙,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100m 거리 플라잉폭스 등 극한 도전이 이어진다. 자연에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구성원의 친밀감을 도모한다. 만 11세, 키 145cm 이상 아이들부터 체험이 가능하며 예약제로 운영한다.  강원도소방학교 HERO 아카데미에서는 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보다 진지하게 재난 대처법을 익힌다. CPR 체험, 소화기 체험, 암흑 미로 피난 체험 등을 실습한다. 하루 세 차례 두 시간 동안 진행하며, 7일 전 예약 필수다. 20명 이상에 한해 운영하므로 주말 이용 시 예약하는 게 유리하다.

태백을 찾은 날이 끝 자리 5일이라면 꼭 통리장에 들러봐야 한다. 통리장은 태백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열흘마다 장이 선다. 석탄 산업이 번창한 도시를 대변하듯, 옛 경동탄광 사택(경동아파트)을 에둘러 걷는 길 주변이다. 삼척과 울진에서 올라온 통리역의 어물전부터 통리초등학교 입구까지 농산물, 약초, 농기구 등 옛 재래시장의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통리장을 나와서 닭갈비로 여행을 갈무리해도 좋겠다. 태백 닭갈비는 광원이 즐겨 먹던 음식이다. 춘천 닭갈비와 달리 국물을 넣고 끓여 ‘물닭갈비’ ‘국물닭갈비’로 불린다. 겨울이 긴 태백의 기후와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가을의 적적한 기분을 달래기에도 그만이다.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여행 정보>---------------------------
당일 코스

· 풍경 여행 코스 : 태백고원자연휴양림→철암단풍군락지→철암탄광역사촌
· 체험 학습 코스 : 태백고원자연휴양림→365세이프타운 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365세이프타운 강원도소방학교→철암탄광역사촌
1박 2일 코스
· 첫째 날 : 태백고원자연휴양림→철암단풍군락지→철암탄광역사촌
· 둘째 날 : 365세이프타운(한국청소년안전체험관)→365세이프타운(강원도소방학교)→통리장(혹은 구문소)
관련 웹사이트
· 태백시 문화관광 http://tour.taebaek.go.kr
· 태백고원자연휴양림 http://forest.taebaek.go.kr
· 365세이프타운 www.365safetown.com
문의 전화
·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033)550-2081
· 태백시관광안내소 033)550-2828
· 태백고원자연휴양림 033)582-7440
· 철암탄광역사촌 033)582-8070
· 365세이프타운 033)550-3101~5
· 태백 철암단풍어울마당(철암동주민센터) 033)550-2608
대중교통
· 기차 : 청량리역-태백역, 무궁화호 하루 6~7회(07:05~23:25) 운행, 약 3시간 50분 소요. 태백역에서 버스 이용 상철암 정류장 하차, 태백고원자연휴양림까지 약 1.4km 이동.
서울역-철암역, O-train 하루 1회(08:15) 운행, 약 5시간 40분 소요. 철암역에서 버스 이용 태백고원자연휴양림 입구 정류장 하차, 휴양림까지 약 1.4km 이동.
*문의 :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 버스 : 서울-태백,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34회(06:00~23:00) 운행, 약 3시간 10분 소요.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 이용 상철암 정류장 하차, 태백고원자연휴양림까지 약 1.4km 이동.
*문의 : 동서울종합터미널 1688-5979, www.ti21.co.kr 태백시외버스터미널 1688-3166, www.bustaja.com
자가운전
중부고속도로 제천 IC→1.2km 직진 후 신동 IC 육교 앞 영월·단양 방면 우회전→북부로 31km→강원남로 67km→황지교사거리 동해 방면 좌회전→강원남부로 4.2km 직진 후 철암 방면 우회전→동태백로 4.86km 직진 후 태백고원자연휴양림 방면 좌회전 2km→태백고원자연휴양림
숙박
· 태백산한옥펜션 : 태백시 소롯골길, 033)554-4732, www.hanoak.kr
· 태백고원자연휴양림 : 태백시 머리골길, 033)582-7440, http://forest.taebaek.go.kr
· 오투리조트 : 태백시 서학로, 033)580-7000, www.o2resort.com
· 태백산민박촌 : 태백시 천제단길, 033)553-7440, http://minbak.taebaek.go.kr
식당
· 태백닭갈비 : 닭갈비, 태백시 중앙남1길, 033)553-8119, http://cityfood.co.kr/h9/taebaeg11
· 태백한우골 : 한우, 태백시 대학길, 033)554-4599
· 시장실비식당 : 한우, 태백시 시장북길, 033)552-2085
주변 볼거리
구문소,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검룡소, 태백산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