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4.12.04 16:31
‘한국의 마추픽추’ ‘한국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에 가면 전통신전수관이 있다.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17호로 지정된 화혜장 안해표 장인의 공방이다. 백성이 주로 신은 신이 짚신과 미투리라면, 왕가나 양반층은 가죽신을 신었다. 이 가죽신을 화혜라 부르는데, 화(靴)는 신목이 있는 신발이고 혜(鞋)는 신목이 없는 신발이다. 쉽게 얘기하면 화는 목이 긴 신발, 혜는 목이 없는 신발이다. 예로부터 화혜를 만드는 사람을 각각 화장, 혜장이라 불렀고, 순우리말로는 ‘갖바치’다. 3대째 가업이어 전통 신 만들어온 장인 다양한 전통 신이 전시된 전통신전수관 화혜장 안해표 선생은 40년이 넘게 전통 신을 만들어온 장인이다. 선생의 할아버지가 경남 합천에서 관청에 납품할 화혜를 만든 뒤,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물려받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장인의 길을 걸었던 것은 19세 되던 해, 지금의 용두산공원 아래에서 전통 신 가게를 운영하던 김현경 선생에게 전수한 뒤로 부터다. 지금은 그의 아들이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우리 전통 신은 좌우가 없는 게 특징이다. 유럽이나 중국과 달리 유독 우리나라
좌식 생활을 하던 우리네 문화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입식 문화로 바뀌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음식을 올려놓고 먹는 데 사용하는 소반이 그중 하나다. 과거에는 식생활부터 제사까지 다양한 용도로 쓰였으며, 소반 제작이 발달해 지방마다 전통적인 형태가 형성되었다. 생산지에 따라 특징이 있어 나주반, 해주반, 통영반 등 고장 이름과 함께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서구식 주거 방식이 보편화되면서 식탁에 밀려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나주반·통영반…’ 생산지 따르는 소반 명칭 좌식문화의 서양화 속 뿌리 깊은 장인 정신 전남 나주 지방에서 만드는 나주반도 한때 맥이 끊어졌다고 여겼다. 일본의 민예 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는 1922년에 펴낸 <조선과 그 예술>에 “그렇게 번영했다는 소반 업자는 지금 대부분 끊어졌다. 나주반을 구하려고 해도 파는 가게가 없다”고 적었다. 그는 어렵게 이석규라는 명공을 만나 나주반을 구입했으나, 광복 후 나주반 제작 기술은 사라져갔다.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출 뻔한 나주반은 김춘식 선생(중요무형문화재 99호 소반장)에 의해 전통이 유지되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법주사 대웅전, 월정사 산신각과 진영각, 창덕궁 가정당, 남한산성 행궁, 수원 화성 팔달문, 도봉산 망월사 대웅전, 관악산 연주암 등에는 모두 고건축의 대가로 존경 받는 한 사람의 손길이 스며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전흥수 선생이다. 전재산 들여 지은 ‘한국고건축박물관’ 숭례문 등 국보급 목조건물 모형전시 나무를 다루는 목수는 궁궐, 사찰, 주택 같은 건축물을 짓는 대목장과 가구나 공예품을 만드는 소목장으로 나뉜다. 대목장은 설계에서 완성까지 건축의 전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건축의 모든 단계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각 분야 장인들을 지휘하는 자리인 만큼 익혀야 할 지식이 많고, 솜씨도 좋아야 한다. 대목장 한 사람이 배출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는 까닭이다. 전흥수 선생은 1938년생으로 올해 78세다. 가난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18세 때 목공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목수인 부친 밑에서 심부름을 하다가, 곧 수덕사 도편수로 있던 고 김중희 선생 문하에 들어가 체계적으로 일을 배웠다. 생계 때문에 시작한 일이지만, 차츰 전통을 지켜 나간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이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남다른 눈썰미와 손재주, 타고난 성실함으로
진도 지산면에서 대한민국 식품명인 53호 김영숙 선생을 만났다. 외할머니처럼 푸근한 인상이다. 그가 명인이 된 것은 한약재로 많이 쓰이는 복령으로 만든 ‘복령조화고’ 덕분이다. 복령조화고는 조선 시대에 가정 살림 전반에 관해 기술한 <규합총서>에도 나올 만큼 조상 대대로 즐겨 먹던 전통 떡이다. 백설기와 비슷한데 멥쌀과 복령을 주재료로 만들어 복령조화고라 한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쉽게 복령떡이라고 부른다. 시간과 정성으로 빚어낸 전통 떡 ‘복령조화고’ 직접 재배·생산한 재료 사용해 만족감 두 배 김영숙 명인은 춘궁기에 복령을 캐서 덥석덥석 베어 먹기도 하고, 설을 쇠기 위해 복령 가루를 넣어 조청을 고았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그때는 복령이 귀한 약재인 줄도 몰랐다. 명인이 복령조화고를 안 것은 1966년 지산면으로 시집오고 나서다. 시할머니에게 떡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시댁에서는 손이 많이 가도 큰일이 있을 때마다 복령조화고를 냈다. 복령은 벌채한 소나무나 죽은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버섯으로, 땅속 30cm 깊이에서 자란다. 이뇨, 강장, 진정에 효능이 있어 한약재로
오랜 친구와 마주 앉아 고운 햇살 담긴 차 한잔 나누고 싶은 봄날이다. 좋은 차 한 모금을 머금으면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 향기가 입안에 퍼져 거친 말을 뱉을 수 없고, 맑은 찻물을 내려다보며 마음까지 겸손해진다. 차 맛을 위해 평생을 바친 제다 명인을 만나러 하동 화개로 간다. 화개천·지리산 정기 받고 자라는 화개동 차나무 가장 좋은 찻잎 수확시기 ‘초세작부터 중작’ 하동 야생차의 시작은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828년(흥덕왕3) 당나라 사신으로 간 김대렴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왔고, 왕은 지리산 화개동 일대에 심으라고 명한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임금에게 진상하는 차가 화개동에서 재배되었다. 하동의 야생차를 ‘왕의 차’라 부르는 까닭이다. 지리산 화개동은 화개장터에서 화개천을 거슬러 오르는 곳으로, 지금도 양안의 산자락 곳곳에는 차나무를 키우고 찻잎을 덖는 다원이 있다. 섬진강과 화개천이 만든 안개를 먹고 지리산의 정기를 받아 향이 좋은 차를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업 형태로 운영되는 곳부터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다원까지 20여곳에 이른다. 그중 화개제다는 화개동에 자리한 많은
장흥에서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것은 빨간 동백꽃이다. 장흥 곳곳에서 동백나무를 흔히 볼 수 있는데, 넓게 숲을 이룬 곳은 묵촌리(행정구역 접정리) 동백림과 천관산 동백생태숲 두 군데다. 묵촌리 동백림은 용산면 묵촌을 적시는 하천을 따라 약 2000㎡에 140여그루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수령 250~300년에 이르는 동백나무는 붉은 꽃잎이 5장 달리는 토종 동백이다. 꽃송이가 작아서 화려하진 않지만, 한국 여인네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닮았다. 한국 여인네의 단아함 닮은 토종 동백 4월 초까지 즐기는 묵촌리 동백꽃·낙화 동백림은 풍수적인 이유로 조성했다. 마을을 감싸는 산자락이 청룡의 등에 해당하는데, 그 길이가 짧아 마을에 액운이 미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동백나무와 소나무, 대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백나무만 남았다. 꽃은 3월 중순에 만개하며, 3월 초부터 4월 초까지 꽃과 낙화를 즐길 수 있다. 나뭇가지에 달린 동백꽃도 좋지만, 송이째 떨어져 붉은 융단이 깔릴 때 더욱 볼 만하다. 묵촌리는 동학농민운동 당시 접주 이방언이 태어난 곳이다. 동백림 입구에 이방언을 기리는 비석과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소설가 송기숙의 <녹두장군>
‘수줍은 봄’은 경남 거제의 바다에 먼저 깃든다. 붉게 핀 동백꽃이 3월이면 해안선 훈풍을 따라 소담스런 자태를 뽐낸다. 장승포항 남쪽의 지심도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동백 군락지 가운데 한 곳이다. 거제팔경 중 봄이 되면 더욱 들썩이는 곳도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지심도다. 거제의 섬과 해안 곳곳에서 동백이 피어나지만, 지심도가 유일하게 ‘동백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산책하며 만나는 수백년 된 동백꽃 희귀 동·식물 서식하는 경남의 ‘보고’ 지심도의 식생 중 50%가량이 동백으로 채워진다. 원시림을 간직한 섬은 봄이 오면 동백 터널을 만들어낸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12월 초부터 피기 시작해 4월 하순이면 대부분 꽃잎을 감춘다. 2월 말~3월 중순이 꽃구경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지심도에서는 100년 이상 된 동백이 숲을 이룬다. 수백년 된 동백이 서식하고, 전국에 몇 안 된다는 흰 동백꽃도 이곳에서 핀다. 흰 동백꽃은 날씨가 맞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행운의 꽃이다. 동백꽃에는 ‘하나뿐인 사랑’이라는 꽃말이 있다. 지심도의 동백꽃은 오붓하게 산책하며 만나는 꽃
이른 봄, 글 읽는 선비들이 도포 자락을 날리며 매화를 찾아 나서는 여행을 ‘탐매(探梅)’라 했다. ‘매화를 탐하다’라는 뜻으로, 그저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애틋하고도 간절한 마음이 담긴 여행이다.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맨 앞에 두었으니, 혹독한 겨울을 지나 도도하고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 매화 한 송이는 고매한 군자를 대하는 것과 같았으리라. 선비의 걸음으로 탐매하며 오르는 선암사 계곡 발걸음 멈추게 하는 수백 년 된 홍매화 돌담길 탐매에 나선 선비의 걸음을 떠올리며 전남 순천의 선암사 계곡에 오른다. 따스한 햇살이 녹아든 계곡물 소리가 다정하게 속삭이고, 고운 바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길이다. 아치가 아름다운 승선교와 신선이 오른다는 강선루의 그윽한 풍광도 이 계곡에서 만난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동백, 금식나무, 벚나무, 철쭉 등 꽃나무가 아담한 전각 사이로 합장하듯 서 있다. 선암사의 다양한 꽃나무 가운데 홍매화가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 대웅전 지나 각황전과 무우전이 있는 종정원 돌담을 따라 수백 년 된 홍매화 20여그루가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이다. 원통전 돌담의 백매와 더불어 ‘
‘목포’하면 옛 가요 ‘목포의 눈물’과 유달산이, 홍어와 낙지 같은 맛깔스런 남도의 음식이 떠오른다. 그런데 알고 보면 한 가지 더 있다. 목포는 박물관 투어를 떠나기에 안성맞춤인 도시다. 박물관 사이 거리가 가깝고, 자연사부터 수중고고학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갓바위 주변에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문학관, 남농기념관, 목포생활도자박물관, 문예역사관,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등 박물관과 전시관이 모여 있어 도보로 이동하며 관람을 즐길 수 있다. 직접 만져볼 수 있는 각종 공룡 전신 골격 매시 정각 4D 상영, 공룡시대 온 생동감 자녀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목포자연사박물관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를 둘러보고, 차로 10분 거리인 목포어린이바다과학관까지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지구 46억년 역사를 전시한 목포자연사박물관에서 인상적이고 압도적인 장면은 중앙홀의 거대한 공룡 뼈와 화석이다. 쥐라기의 대형 초식 공룡 디플로도쿠스, 디플로도쿠스를 공격하는 육식 공룡 알로사우루스, 백악기 하늘을 점령하던 익룡 등의 골격을 실제 크기로 재현했다. 관람 동선은 1층 지질관과 육상생명1관, 2층의 육상생명2관과 수중생명관, 지역생태관으로 이어진
세계의 언어학자들에게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는 찬사를 받는 한글. 날마다 듣고 쓰는 우리말과 글이지만, 과연 우리는 한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글이 언제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한글의 변천사와 그 원리는 무엇인지, 현 시대에 한글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다면 국립한글박물관에 가보자. 한글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한글의 탄생과 변천사 그리고 원리와 가치 한글놀이터,기념품점,카페,도서관 자리 국립한글박물관은 지난해 10월9일 문을 열었다. 모음 글자의 배경이 된 하늘, 사람, 땅을 형상화한 3층 건물에 전시실과 한글놀이터, 기념품점, 카페, 도서관이 고루 자리한다. 박물관 주 전시실은 2층에 있는 상설전시실이다. ‘한글이 걸어온 길’을 주제로 한글 창제 원리를 설명하고, 그에 따라 나타난 변화와 한글이 국어로 정착되기까지 과정을 다양한 자료와 전시물을 이용해 흥미롭게 꾸며 놓았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1443년부터 우리말과 글을 빼앗긴 일제강점기까지 차례로 표현한 디오라마가 가장 먼저 시선을 끈다. 이밖에 정조가 직접 쓴 한글 편지첩, 금속제 한글 활자, 최초의 국어 교과서 등 귀한 자료가 많
원주시 곳곳에 감영이 있던 시절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자리한다. 책을 만들기 위해 글자나 그림을 나무에 새긴 목판과 판화를 소장·전시하는 고판화박물관, 한지부터 현대의 종이까지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뮤지엄 산(SAN), 책 속 이야기와 구전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오랜미래 신화미술관이다. 오랜 시간 지났는데도 화려한 색채 자랑 직접 만든 판화 이용한 전통 책 만들기 강원도 원주시는 조선 초기부터 500년간 강원감영이 있던 도시다. 관찰사의 업무 공간이자, 중앙의 정치이념과 문화를 지역에 전하던 감영은 새로운 생각과 정보가 가득한 책도 출판했다. 중앙에서 만든 책을 지역에서 필요한 만큼 제작·배포하거나, 지역의 정보를 모아 직접 책을 만든 것. 자연스레 목판을 제작하고, 종이를 만들고, 책이 손상되지 않도록 보관하는 기술도 발달했을 터이다. 신림면 물안길에 자리한 고판화박물관은 고즈넉한 절집 명주사 경내에 있다. 명주사 주지이자 고판화박물관 관장인 한선학 스님은 군 법사 시절부터 판화를 모으기 시작해, 지금은 목판과 판화 4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은 그중 일부로, 주제를 정해 전시한다. 2월
1977년 9월15일 고 고상돈 대장이 대한민국 산악인으로는 처음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우뚝 섰다. 이후 고 박영석 대장을 비롯해 여러 명이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를 배출한 나라가 되었다. 지금도 ‘무산소 등정’ ‘알파인 방식 등반’ 등 새 기록을 세우려는 산악인이 줄을 잇고, 주말이면 무수히 많은 등산객이 산을 찾는다. 네팔 화가들의 그림 통해 보는 히말라야 근대 등반의 역사와 대표 산악인 50인 세계적인 산악 강국이 된 우리의 등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 국립산악박물관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산악인은 세계 등반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 각종 매체에서는 등산 인구가 1800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등산 역사나 문화와 관련된 전문적인 전시 공간이 없었다. 국립산악박물관은 우리의 등산 문화와 등반 기록을 재조명하고, 우리 산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2014년 10월 개관했다. 국립산악박물관은 미시령터널을 통과해 속초시내로 들어가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외관에 하늘을 향해 걷는 등산객
가슴 트이는 바다 풍광을 보여주는 시화방조제를 따라가면 드넓은 호수와 바다를 품은 대부도에 닿는다. 느긋한 드라이브를 즐기고 푸짐한 바지락칼국수 한 그릇 먹고 돌아오는 나들이 명소이자, 지난 2014년 환경부가 ‘생태관광지역’으로 선정한 곳이다. 겨울 추위에 스산한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길목마다 맑고 순수한 감성을 일깨우는 체험 공간이 자리한다. 유리조형물로 꾸며진 환상적인 분위기 유리작품 제작 시연 펼쳐지는 신세계 대부도 유리섬은 유리조형작품을 전시하는 유리섬미술관, 유리공예시연장, 야외조각공원, 아트샵 등이 자리한 박물관이다. 생활 속에서 흔히 만나는 유리를 예술 작품으로 접하는 환상적인 시간이 펼쳐진다. 유리로 만든 연꽃이 가득 피어난 수변 공간을 지나 유리섬미술관으로 들어서면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유리공예의 역사를 연표로 제작, 전시한다. 앞에 놓인 유리 벤치에 앉아 차근차근 읽어보면 좋겠다. 이어지는 공간은 유리로 꾸며진 동화 속 세상이다. 하늘을 나는 새, 바닷속 산호, 동화 속 신데렐라가 탄 호박 마차까지 모두 유리로 만들어졌다. 반짝이는 유리 왕국을 걸으면 어른들도 동심으로 돌아간다. 2층 갤러리
순창읍 재래시장 골목에는 순댓집이 여러 군데다. 2대째 한다고 ‘2대째순대’, 대를 이어 연달아 해서 ‘연다라전통순대’, 먹어봉깨(보니) 맛있더라 해서 ‘봉깨순대’…. 상호도 투박하니 정감이 넘친다. 터미널 맞은편에 연다라전통순대가 보이고 그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2대째순대, 봉깨순대 등이 연이어 나온다. 골목 안팎으로 예닐곱 집이 성업 중이다. 인조 껍질, 찹쌀, 당면 NO 돼지 창자, 선지, 야채 YES 순창 순대는 인조 껍질, 찹쌀, 당면을 쓰지 않는다. 여러 번 깨끗이 씻은 돼지 창자에 선지와 콩나물, 마늘, 양파, 당근 등을 넣어 순대를 채운다. 선지를 넣는다 하여 피순대다. 팔팔 끓는 물에 삶은 순대는 누린내가 거의 나지 않는다. 순대 껍질은 쫄깃하고 선지는 고소하다. 채소가 적당히 씹는 맛과 선지의 고소함을 더해준다. 순대만 먹어도 좋고, 개운한 국물을 넣고 끓인 순댓국도 좋다. 콩나물이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해장국처럼 개운하다. 여러 명이라면 순대에 머리 고기, 채소까지 푸짐하게 올린 순대전골이 어울린다. 전국 각지 손님 위해 다양한 양념 준비 상차림은 투박하다. 깍두
한겨울에 떠나는 담양 여행은 종합 선물 세트 같다. 온기를 품은 음식과 계절, 거슬러 올라간 듯 아름다운 풍경, 느릿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한데 버무려져 소박하지만 마음 가득 풍성한 추억을 안겨준다. 담양까지 와서 국수를? “일단 한번 잡숴봐~ 진한 멸치 육수에 간장 양념 곁들여 ‘후루룩’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먼저 국수거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담양 국수거리에는 관방천을 따라 국숫집 12곳이 늘어서 있다. 50년 전부터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국숫집이 어느새 담양의 명물 음식 거리로 자리 잡았다. 담양까지 와서 웬 국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 국수 한 그릇 안 먹고 가면 섭섭하다. 담양 국수거리에서 꼭 맛봐야 할 메뉴는 물국수, 비빔국수, 약달걀이다. 특히 멸치 국수에 간장 양념을 풀어 먹는 물국수는 겨울철 인기 메뉴다. 국수거리 원조라 할 수 있는 ‘진우네집국수’는 질 좋은 멸치를 넣고 센 불과 약한 불에 번갈아가며 국물을 끓이는데, 진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멸치 외에 다른 재료는 사용하지 않아 잡맛이 없다. 삶은 국수사리에 진한 국물을 붓고 직접 만든 간장
‘눈 본 대구 비 본 청어’라는 속담을 아는 미식가들은 겨울이면 거제 외포리로 모여든다. 찬바람이 부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대구 산란기고, 이때 잡히는 대구가 가장 맛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외포리는 대구 산란기에도 조업과 위판이 허용되는 유일한 곳이다. 큰 입, 부리부리한 눈, 얼룩덜룩한 무늬 입 호사시키고, 풍경으로 눈 행복하게 경남 거제 동부 해안가에 위치한 외포리는 전국 대구 물량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집산지다. 부산 가덕도와 거제도로 둘러싸인 진해만이 대표적인 대구어장이다. 진해만에서 부화한 새끼대구가 찬 바닷물을 따라 멀리 베링해까지 나갔다가, 성어가 되어 산란하러 돌아오기에 겨울철 거제도는 대구가 풍년이다. 한때 지나친 어획으로 대구가 잡히지 않은 적도 있었다. 대구 한 마리 값이 쌀 한 가마니를 호가하기도 했다. 멸종 위기에 몰린 대구를 살리기 위해 인공수정으로 방류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대구가 거제 앞바다로 돌아왔다. 요즘 대구잡이 배는 매일 새벽 물때에 맞춰 바다로 나간다. 어장에 설치한 그물을 걷어 올리기 위해서다. 대구잡이에는 통발 모양 호망을 사용한다. 호망은 길그물과 포위망, 그리고 끝에 원추형
부드럽고 따뜻하며, 정감 있고 소박하다. 음식에 성품이 있다면 두부가 딱 그렇다. 찌개에 넣으면 뜨거운 국물에서 건져 후후 불어가며 먹는 맛이고, 잘 익은 김치를 올리면 입안에서 몽글몽글 부드럽게 녹는 맛이다. 따뜻한 순두부 한 그릇은 두꺼운 겨울 코트도 막지 못하는 마음의 추위를 녹여주는 착한 음식이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게 해주는 두부 요리를 만나러 충북 청주의 상당산성으로 간다. 그날 쓸 양만 만들어 끓여내는 비지찌개 식당 손님 아니어도 누구나 즐기는 순두부 상당산성 안에 자리한 산성마을은 닭백숙을 비롯해 청국장, 두부 요리 등 토속 음식을 내는 식당이 모여 있는 한옥 마을이다. 대부분 식당으로 개조되어 전통 한옥의 멋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상당산성 동문 아래 언덕을 따라 걸으며 만나는 겨울 풍경이 정겹다. 산성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온 여행자들이 두부김치와 막걸리 한 사발로 소박한 즐거움을 누리고, 구수한 청국장찌개와 비지찌개로 기운을 얻는 식당도 곳곳에 있다. 마을 입구의 ‘상당집’은 직접 만든 두부와 청국장, 비지장을 내는 식당으로 점심시간이면 대기하는 줄이 길다. 닭백숙 집을 하던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은 두 아들이 1997년
요즘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는 도치, 장치, 곰치가 한창이다. 생김새가 추해 ‘못난이 삼형제’라 불리는 녀석들이 명태가 사라진 동해에서 겨울철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데 해장국 재료로 애주가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곰치와 달리 도치, 장치는 내륙 출신 사람들에게 맛은커녕 이름조차 생소하다. 외지에 내다 팔만큼 많이 잡히지 않을뿐더러, 예부터 어부들의 겨울 밥상에 단골로 오르던 생선이라 대부분 산지에서 소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해안 겨울 별미 삼총사를 만나려면 포구 여행이 필수다. 곰치국으로 지난밤 숙취 말끔히 해소 부드럽게 씹히는 알의 식감 도치알탕 동해 최북단 포구인 대진항과 고성 최대 거진항은 해 뜰 무렵 경매와 함께 하루가 시작된다. 대진항은 거진항에 비해 규모가 작아도 도치와 장치, 곰치 거래량이 훨씬 많다. 경매가 끝난 도치와 장치, 곰치는 대부분 인근 식당으로 팔려간다. 세 못난이 중 모양이 가장 독특한 놈은 도치다. 막 잡은 도치는 몸을 빵빵하게 부풀려 공처럼 보인다. 물에 둥둥 떠서 헤엄치는 모습이 귀엽다. 장치는 뱀과 비슷한 생김새 때문에 어부들조차 외면하던 생선이다. 그물에 걸리면 재수 없다고 버려지던 곰
청송에는 수백년을 내려온 아름다운 고택이 많다. 고택은 집의 역사와 건축물 자체의 멋스러움이 더해져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규모나 시설적인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옥의 멋을 놓치지 않으면서 깨끗한 화장실과 욕실 등 현대적인 시설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곳이 주왕산 입구에 자리한 청송한옥민예촌이다. 한옥의 멋과 현대적 시설, 청송한옥민예촌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감댁 ‘쿵덕쿵덕 방아’ 대감댁, 영감댁, 훈장댁, 정승댁, 참봉댁, 교수댁, 생원댁, 주막 등 모두 8동에 28개 방이 있다. 대부분 청송에 있는 고택을 모델로 지어, 청송군의 전형적인 가옥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대감댁은 송소고택이 있는 파천면 덕천마을 가옥 중 초전댁을 재현한 것으로, 상류층 양반집 형태를 감상할 수 있다. 솟을대문을 지나 들어가면 마당이 나오고, 사랑채 문을 통과하면 ‘ㅁ’자형 안마당에 이른다. 안채와 사랑채, 대문채까지 방이 여러 개 있다. 안채 방과 방 사이에는 넓은 대청마루가 있어 요즘 같은 계절엔 발이 시리지만, 여름철엔 시원하게 낮잠 자기 좋겠다. 부엌에는 사용할 수는 없지만 옛 모습 그대로 부뚜막과 가마솥, 맷돌, 소반
한옥 여행은 따뜻해야 제격이다. 아침이면 창호 문 너머 따사로운 햇볕이 깃들어야 하고, 시린 웃풍이 불더라도 아랫목은 뜨끈한 게 좋다. 주인장 인심 역시 툇마루에 내려앉은 햇살처럼 따뜻해야 정감이 간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한옥 종부의 목소리가 푸근할 때 발걸음이 동하고, 은근슬쩍 내준 고구마 몇 개, 차 한잔에도 여행자들은 깊게 감명받는다. 겨울의 문턱에서 한옥 여행을 꿈꾸는 것은 그런 따뜻함에 대한 추억과 동경 때문이다. 옛것과 새것의 적절한 조화 ‘주천고택 조견당’ 전통 시골집의 정서가 남아있는 우구정한옥 강원도 영월에는 가볼 만한 전통 한옥이 두 곳 있다. 주천면의 조견당(김종길가옥)과 남면의 우구정가옥이다. 100년 세월을 뛰어넘은 두 옛집은 서로 다른 개성으로 한옥 여행을 부추긴다. 남부 지방에 내로라하는 고택들이 유명세를 타지만, 이들 한옥은 추운 강원도에서 꼿꼿한 자태를 지키기에 가치가 더욱 새삼스럽다. 주천고택 조견당은 옛것과 새것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한옥이다. 느티나무 고목 아래 안채는 1827년에 상량했으니 그 세월이 200년 가까이 된다. 안채 대청마루의 천장을 떠받친 웅장한 대들보만 봐도 당시의 위세를 짐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