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만난 휴식 ②광주광역시

무등산 자락에서 풍류와 자연 즐기다

무등산에서 발원한 증암천은 광주호로 흘러든 뒤 영산강으로 합수된다. 자미탄(紫薇灘)이라 부를 정도로 배롱나무 꽃 만발한 풍경이 아름답던 증암천은 담양군과 광주광역시의 경계가 되고, 증암천 곳곳에는 조선 시대 누정이 여럿 남았다. 담양군에 식영정과 소쇄원이 있다면, 광주광역시에는 환벽당과 취가정이 있다.

주말마다 열리는 환벽당 풍류체험
누정에 앉아 듣는 대금 연주와 판소리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가 지은 정자로, 증암천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김윤제는 조선 중종 때 나주목사로 있다가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에 내려와 은거했다. 가사 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이 과거에 급제할 때까지 10년을 머무르며 학문을 연마한 곳이기도 하다. 

환벽당에서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날 때 이야기가 전해 진다. 하루는 김윤제가 증암천 용소에서 용이 노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 증암천으로 가보니 한 소년이 멱을 감더란다. 정철은 순천에 내려간 형 정소를 만나러 가는 길에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상서로운 꿈이라 여긴 김윤제는 정철과 외손녀를 맺어주었다. 정철은 아버지가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집안이 풍비박산 나자, 담양 지실마을로 내려온 참이었다.

정철은 이곳에서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의 제자가 되어 학문을 익히고, 담양과 광주의 누정 주인들과 교유했다. 〈성산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은 정철이 담양에서 문장과 학식이 뛰어난 이들과 교유하며 쓴 글이다. 〈성산별곡〉에는 환벽당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환벽당에서는 주말마다 풍류 체험이 열린다. 주말과 공휴일에 운행하는 빛고을남도투어 담양·장성 코스에 포함되는 행사로, 광주송정역과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승차하면 장성 축령산자연휴양림, 광주 월봉서원, 담양 죽녹원과 소쇄원, 광주 환벽당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차례로 돌아본다. 환벽당 풍류 체험은 오후 2시30분에 진행된다. 시간에 맞춰 환벽당을 찾으면 빛고을남도투어 탑승자가 아니라도 참여할 수 있다.

방안이 무대
대청은 객석

운치 있는 산길을 따라 오르면 언덕 위에 앉은 환벽당에 닿는다. 환벽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 방과 대청, 툇마루가 있다. 정면 방문과 들어열개인 측면 창을 활짝 연다. 정자는 삼면이 트여 방이 무대가 되고, 대청은 객석이 된다. 환벽당 풍류 체험은 가슴을 파고드는 대금 연주, 걸쭉한 판소리, 은근한 차향이 어우러진다.

먼저 갓을 쓰고 한복을 입은 대금 연주자가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대금을 연주한다. 심금을 울리는 대금 소리가 환벽당 너머 증암천까지 울려 퍼진다. 지나던 여행자도 대금 연주에 빠져든다. 이어 명창이 전라도 광주에 왔으니 빠질 수 없는 노래라며 ‘호남가’를 한 곡조 뽑는다. 앉아서 호남을 유람하는 듯하다. ‘춘향가’ 한 대목이 이어졌고, 앙코르 소리와 함께 명창이 ‘쑥대머리’로 화답했다. 마지막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진도아리랑’으로 명창과 관람객이 하나가 된다. 명창이 선창하면 마루에 앉은 관람객에게 마이크가 돌아간다. 미리 나눠준 진도아리랑을 한 소절씩 부르거나 직접 작사한 노래로 불러본다.

오는 8월20일부터 새로운 풍류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환벽당과 담양의 식영정, 소쇄원이 연계해 전통 공연과 체험을 하는 ‘풍류 남도 나들이’다. 환벽당에서 전통 무예 체험과 청년 인문 교육 프로그램, 식영정에서 선비 체험과 나의 뿌리를 찾는 보학 교육, 소쇄원에서 풍류 정원 달빛 공연이 펼쳐진다.

환벽당과 이웃한 취가정은 ‘취해서 노래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이 독특한 이름은 꿈에 나온 ‘취시가’에서 유래한다. 정철의 제자인 석주 권필이 임진왜란 때 무고로 죽은 의병장 김덕령이 취시가를 부르는 꿈을 꾸었다. 권필은 “지난날 장군께서 쇠창을 잡으셨더니, 장한 뜻 중도에 꺾이니 천명을 어찌하리오…”라고 화답했다. 김덕령의 후손 김만식이 나중에 권필의 꿈 이야기를 듣고 조상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취가정을 지었다. 아쉽게도 취가정은 지금 복원 공사 중이다.

충효동은 의병장 김덕령의 고향이다. 광주호 호수생태원 입구에 노거수 세 그루가 나란하다. 천연기념물 539호로 지정된 광주 충효동 왕버들군이다. 김덕령이 태어날 때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김덕령나무’라고도 한다. 김덕령은 1596년 이몽학의 난을 진압하려고 출정했다가 난이 평정되어 돌아오던 중, 무고를 당해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결국 혹독한 고문 끝에 29세 나이로 옥사한다. 

왕버들 옆에 충장공 김덕령 충효리비가 있는데, 정조가 김덕령의 이야기를 듣고 윤음(지금의 법령)으로 만들어 세운 비석이다. 김덕령의 안타까운 죽음과 추월산에서 순절한 그의 부인, 금산에서 왜군과 싸우다 먼저 죽은 형 김덕홍 등의 충·효·열을 본받고 이들을 기리기 위해 그의 고향을 충효리라 명한다는 내용이다. 원래 이곳에는 소나무 한 그루, 매화나무 한 그루, 왕버들 다섯 그루[一松一梅五柳]를 심었다는데, 왕버들 세 그루가 살아남았다. 뒤틀린 왕버들의 줄기가 400년이 훨씬 넘은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푸르다. 요즘같이 더운 날이면 왕버들 그늘이 훌륭한 피서지가 된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쉬거나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시원한 휴식처
왕버들군 그늘

충효동 왕버들군 건너편이 광주호 호수생태원이다. 호숫가 생태탐방로는 햇빛을 피해 산책하거나 휴식을 즐기기 좋다. 생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습지대 위로 목재 데크를 설치했다. 메타세쿼이아 길이 아름답고, 호숫가에 40년 된 왕버들 수십 그루가 있다. 광주댐을 건설하고 주변이 호수가 된 후, 충효동 왕버들군의 씨앗이 날아가 자연적으로 싹을 틔웠다. 광주호 호수생태원에서는 둘째 토요일(오후 6시)에 ‘호수음악회’를 연다. 달에 포함된 24절기를 테마로 현대적인 풍류를 선보이는 음악회다.

무등산 자락을 따라 올라가면 신선이 풍류를 즐기기 위해 내려왔을 듯한 정자가 있다. 김덕령의 동생 김덕보가 지은 풍암정이다. 김덕보는 맏형 김덕홍이 금산싸움에서 죽고 작은형 김덕령마저 무고로 목숨을 잃자, 세상을 등지고 무등산 자락에 은거했다. 원효계곡의 커다란 바위 사이로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정자 옆에는 커다란 전나무 한 그루가 시립하듯이 있고, 아래로 시원한 물줄기가 거침없이 흐른다. 원효계곡은 여름이면 사람으로 붐빈다. 정자에서 책을 읽거나 바위에 앉아 탁족을 즐기면 한여름 풍류로 더할 나위 없다.

풍암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무등산수박마을과 광주 충효동 요지(사적 141호)를 차례로 만난다. 무등산수박마을은 이 일대에서 재배하는 무등산 수박의 산지다. 껍질이 두껍고, 겉에 줄무늬가 없으며, 최대 20kg이 넘을 정도로 큰 수박이다. 8월 말쯤부터 판매한다니 꼭 한 번 맛보자.

선비의 풍류를 직접 체험하는 곳도 있다. 광주 서북쪽 끝에 위치한 월봉서원이다. 조선 선조 때 문신인 고봉 기대승의 위패를 모시고 제를 올리는 곳이다. 체험 프로그램에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꼬마철학자상상학교’, 선비의 일상을 체험하는 ‘선비의 하루’, 어른 중심의 ‘살롱 드 월봉’ 등이 있다. 선비의 풍류를 즐기는 프로그램은 ‘선비의 하루’다. 서원이라면 결코 가볍지 않은 분위기에 매서운 규율을 떠올리지만, 월봉서원에서는 편견일 뿐이다. 서원의 사당 공간은 서원에서도 가장 중요시하는 곳이라 웬만하면 개방하지 않는데, 월봉서원은 체험을 위해 숭덕사를 열 정도다.

선비의 하루는 유생복을 입고 숭덕사에 배례하는 것으로 시작해 철학자의 길 산책, 전통 놀이를 즐기는 놀이마당, 족자 체험, 다담 등을 진행한다. 유생복이 어색해도 선비의 모습 그대로다. 발길을 천천히 옮겨 숭덕사에 오르면 사당과 제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뒤 배례를 올린다. 철학자의 길은 월봉서원에서 기대승 묘소까지 이어진다. 솔숲이 아름다워 천천히 걷는 느낌이 제법 좋다. 해설사의 판소리 한 소절이 숲 속을 쩌렁쩌렁 울리는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운이 제법 길다. 월봉서원에서는 한 달에 한 번 마을과 서원이 연계한 축제 ‘월봉유랑’이 펼쳐진다. 음악과 체험, 공연이 어우러지는 다시(茶時)카페도 월봉서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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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코스

환벽당→취가정→광주 충효동 왕버들군→광주호 호수생태원→풍암정
1박2일 코스
첫째 날: 풍암정→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광주 충효동 왕버들군→취가정→환벽당→광주호 호수생태원→대인야시장(토요일)
둘째 날: 증심사→의재미술관→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월봉서원
관련 웹사이트
· 광주광역시 문화관광포털 http://utour.gwangju.go.kr
· 월봉서원 http://www.wolbong.org
· 무등산수박마을 http://moodeungsan.invil.org
문의 전화
· 광주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62-613-3621
· 취가정(무등산자락길잡이협동조합) 062-265-1230
· 월봉서원 062-960-8272
· 광주호 호수생태원 062-613-7891
· 무등산수박마을 062-510-1465
대중교통
(기차)
용산역-광주송정역: KTX 하루 24회(05:20~22:15) 운행, 약 1시간50분 소요.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버스) 서울-광주: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00여회(05:30~다음날 02:00) 운행, 약 3시간20분 소요.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이지티켓 www.hticket.co.kr 광주종합버스터미널 062-360-8114, www.usquare.co.kr
(비행기) 서울-광주: 하루 3회(09:40, 13:00, 17:50) 운항, 약 50분 소요. 김포국제공항 1661-2626, www.airport.co.kr/gimpo 광주공항 1661-2626, www.airport.co.kr/gwangju
자가운전
호남고속도로 창평 IC→광주 방면 우회전→고서교차로 소쇄원 방면 가사문학로 좌회전→지곡리삼거리 우회전, 충효교 지나자마자 우회전→환벽당
숙박
· 별밤게스트하우스: 북구 경양로147번길, 062-531-3779, http://byulbam.kr
· 반디민박(무등산반디마을): 북구 평촌길, 062-266-2287, www.bandivill.net
· 히딩크관광호텔: 동구 서석로10번길, 062-227-8500, http://www.hiddinkhotel.com
· 라마다플라자광주호텔: 서구 상무자유로, 062-717-7000, http://www.ramadagwangju.com
식당
· 엄마손맛집: 애호박찌개, 북구 충효샘길, 062-431-5237
· 동산가든: 닭 코스 요리, 북구 송강로, 062-266-9999
· 박승자도넛: 도넛, 북구 충효샘길, 062-262-1191
· 이화정: 퓨전 한정식, 북구 하서로672번길, 062-574-8220
· 호화정: 추어탕, 광산구 용진로, 062-944-7222
· 절라도: 떡갈비, 담양군 남면 지실길, 061-381-4744
· 수려재: 한정식, 담양군 남면 가사문학로, 061-382-1203
주변 볼거리
무등산국립공원, 증심사,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무등산옛길, 의재미술관, 포충사, 대인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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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