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부추기는 힐링의 숲을 찾아서 ①경남 통영시

은은한 편백 향과 푸른 바다에 취하다

화사한 봄과 눈부신 여름 가운데 살며시 찾아드는 계절, 초여름. 산들거리는 바람결에 초록빛 싱그러움이 끝없이 퍼져 나간다. 이맘때면 한껏 물오른 초목이 뿜어내는 풋풋한 향내에 발걸음이 숲으로 향한다.

자연의 소리에 마음까지 정갈해지는 미래사
묵은 때 씻겨 주는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경남 통영시 미륵산에 자리한 미래사 편백 숲은 고즈넉한 숲길 산책과 푸른 바다의 정취를 한 번에 취하는 일거양득 여행지다. 미래사 앞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한 데다, 주차장 뒤편에 산책로가 이어져 찾기도 쉽다. 버스를 이용하면 미래사 입구 정류장에서 내려 미륵산길을 따라 40~50분 걸어야 한다.

미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인 효봉 스님의 상좌 구산 스님이 1951년 작은 암자를 세운 데서 시작됐다. 이후 중창을 거듭하며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사찰이 작고 아담해서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숲길을 산책하기 전에 미래사부터 발도장을 찍어보자. 새소리, 물소리, 목탁 소리에 마음이 정갈해진다.

오솔길 끝
한려수도 비경

미래사 편백 숲길은 70여년 전 일본인이 심은 것을 해방 뒤 사찰에서 매입해 산책로를 꾸몄다. 하늘 위로 쭉쭉 뻗은 편백 숲 사이로 오솔길을 내, 편히 오가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숲에 들어서면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과 코끝에 맺히는 은은한 향기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풀어준다.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는 항균·살균 작용은 물론, 아토피나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길 중간에 잠시 멈춰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폐부 깊숙한 곳까지 상쾌함과 청량한 기운이 스며드는 기분이다. 마음 속 묵은 때가 씻겨 내려가듯 개운하다.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오솔길 끝에는 깜짝 선물이 기다린다. 목재 다리 건너 이어진 길모퉁이를 돌면 순식간에 풍경이 바뀌며 푸른 바다가 시야에 가득 담긴다. 울창한 산림 너머로 호수인 듯 잔잔한 한려수도가 그림처럼 걸렸다. 예상치 못한 장관에 감탄사가 연달아 나온다.

미래사 아래 쪽에 자리한 나폴리농원은 편백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더욱 효과적으로 누리는 체험 공간이다. 한 시간 정도 맨발로 숲길을 걷는 동안 심신이 치유된다. 효소를 넣어 자연 발효한 편백 톱밥 길이 발을 편안히 해준다. 길목마다 마련된 명상 쉼터와 피라미드, 잔디밭 침대 등 자연과 더불어 즐기는 여러 코스 덕분에 삼림욕을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나무에 청진기를 대고 수액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 체험도 특별하다.

산책하고 나서 해먹에 누워 즐기는 휴식이 꿀맛 같다. 기분 좋은 흔들림과 살랑거리는 바람이 여행으로 쌓인 피로감마저 훌훌 날려버린다. 마지막 코스인 냉수 족욕과 편백 삶은 물을 이용한 온수 족욕까지 차례로 마치면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다. 훈남 바리스타가 주는 핸드 드립 커피도 감미롭다.

숲을 나서면 연한 코발트 빛 바다가 눈에 안긴다. 바다 위로 봉긋봉긋 솟은 섬들이 하나하나 정겨운 미소를 보낸다. 섬들의 고향에 온 느낌이다. 그 가운데서도 역사적인 의미를 품은 곳이 한산도다. 한산도 제승당은 세계 4대 해전으로 꼽히는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흔적이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경상·충청 삼도 수군의 본영이 있던 곳으로, 전란 기간 해군의 총사령부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다.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된 이곳에 1739년(영조15) 통제사로 부임한 조경이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유허비를 세우고, 건물을 중건해 제승당이라 이름 지었다.

맨발로 걷는
삼림욕 체험

수루에 서면 한산도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인다. 임진왜란 당시 격전이 벌어졌을 그곳은 이제 유람선과 고깃배가 유유히 지나갈 뿐이다. 자나깨나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던 이순신 장군에게 새삼 감사한 마음이다. 제승당 뒤편 충무공의 영정을 모신 사당에 들러 향을 피우고 묵념을 올린다.

한산도까지 정기 여객선과 유람선이 다니지만, 요트를 이용하면 더 특별한 여행이 된다. 통영요트학교에서 운영하는 요트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개별 여행자도 편하고 저렴하게 세일링을 경험할 수 있다. 도남관광단지 인근 통영요트학교 계류장에서 출발하며, 코스별로 1시간~2시간30분 소요된다.


맞은편에는 해마다 통영국제음악제가 열리는 통영국제음악당이 있다. 아름다운 풍경과 최적의 음악 무대를 갖춘 이곳은 평소에도 수준 높은 공연이 펼쳐진다. 이른 저녁 문화의 향기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여운은 통영 앞바다에서 잡은 활어회와 푸짐한 해산물로 즐겨보자. 통영 운하의 야경을 감상하며 식사하고 싶다면 미수해안로에 자리한 ‘민수사’를 추천한다.

다음 날은 서피랑 99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다소 번잡해진 동피랑과 달리 골목마다 아직 소박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서피랑은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동네다. 담벼락에 적힌 박경리 선생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예쁜 벽화 앞에서 여행의 추억도 남겨보자.

서피랑 위에는 왜적의 침입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서포루가 있다. 이곳에서 서면 통영 시내와 인근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서피랑을 지나 ‘토영 이야~길’ 1코스를 따라 걸으면 충렬사, 세병관, 중앙시장, 동피랑 등 통영 시내 주요 명소를 하루에 돌아볼 수 있다. 출출하면 동피랑 아래 자리한 ‘통영명가’의 굴 요리나 멍게비빔밥으로 허기를 달래보자. 1인당 생선 한 마리를 큼지막하게 구워 내놓는 ‘통영생선구이’도 유명하다. 생선살이 촉촉하고, 곁들여 나오는 반찬 모두 맛깔스럽다.

----------------------여행 정보----------------------
당일 코스

· 편백 산책 코스: 미래사→편백 숲→나폴리농원→서피랑→토영이야길
· 제승당 산책 코스: 요트 체험→제승당→통영국제음악당

1박 2일 코스
· 첫째 날: 미래사→편백 숲→나폴리농원→통영국제음악당
· 둘째 날: 서피랑→토영이야길→요트 체험→제승당

관련 웹사이트
· 통영요트학교 http://www.tyyacht.com
· 나폴리농원 http://www.napory.com
· 통영국제음악당 http://www.timf.org
· 제승당 관리사무소 http://www.jeseungdang.gsnd.net
· 유투어 통영관광포털 http://www.tour.tongyeong.go.kr

문의 전화
· 통영시청 관광마케팅과 055-650-0712
· 미래사 055-645-5324
· 통영국제음악당 055-650-0400
· 제승당 055-254-4481
· 통영요트학교 055-641-5051

대중교통(버스)
· 서울-통영: 서울고속터미널에서 하루 18회(06:20~다음 날 00:30) 운행, 약 4시간10분 소요.
· 부산-통영: 부산서부버스터미널에서 20~30분 간격(06:10~22:30) 운행, 약 1시간40분 소요.
· 광주-통영: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하루 7회(08:00~18:35)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서울고속터미널 1688-4700, 코버스 www.kobus.co.kr, 부산서부버스터미널 1577-8301, 광주종합버스터미널 www.usquare.co.kr, 통영종합버스터미널 1688-0017

자가운전
· 통영대전고속도로→통영 IC→남해안대로→관문사거리에서 좌회전→중앙로→무전6길→미륵산길→미래사
· 거가대로→송정 IC→거제대로→미늘삼거리에서 좌회전→통영해안로→북신로→여황로→미수로→발개로→미륵산길→미래사

숙박
· 통영엔쵸비관광호텔: 통영시 동호로, 055-642-6000
· 센트럴호텔: 광도면 춘원2로, 055-643-7001~3
· 안정궁관광한옥펜션: 광도면 안정2길, 055-648-2528
· 비치캐슬호텔&리조트: 통영시 평인일주로, 055-644-2700
· 통영거북선호텔: 통영시 미수해안로, 055-646-0710

식당
· 통영생선구이: 생선구이, 용남면 동달안길, 055-646-6960
· 민수사: 활어회, 통영시 미수해안로, 055-648-5489
· 통영명가: 굴 코스 요리, 통영시 동피랑길, 055-649-0533
· 통영회해물세상: 해물탕, 통영시 중앙시장2길, 055-649-8188
· 엄마손충무김밥: 충무김밥, 통영시 통영해안로, 055-641-9144

주변 볼거리
동피랑, 강구안, 통영해저터널, 달아공원, 비진도, 사량도, 전혁림미술관,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 통영옻칠미술관, 청마문학관, 통영수산과학관, 남망산조각공원, 이순신공원 등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