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7.12 15:15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경고음은 이미 오래전부터 울렸다. 직접 소리 내서 알린 사람도 있다.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해결을 위한 대책 마련이 촉구됐다. 정부 기관에 신고가 접수됐고 시민단체의 형사 고발이 이어졌다. 정치권서도 좌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총장을 둘러싼 논란이 가시지 않고 있다. 학교 내부의 자정작용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고 국립대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교육부 역시 사실상 손을 놓은 상태다. 지난해 4월 <일요시사> 보도(1369호 <단독> 방송대 총장 알박기? 교육부 이중잣대 추적) 이후 이미 1년 이상 시간이 흘렀다. 총장 되면 면죄부? 불씨는 그보다 앞선 총장 선거 때부터 있었다. 총장 임명권이 이사장에게 있는 사립대와는 달리 국립대는 교육부와 청와대의 결정이 총장 임명 시 중요하다. 대학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1~2순위 총장 후보자를 교육부서 검증한 후 교육부 인사위원회를 거쳐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최종 임명 여부는 국무회의서 결정된다. 고성환 방송대 총장은 2021년 11월 총장추천위원회가 진행한 선거를 통해 1순위 후보자로 결정됐다. 이후 지난해 2월 교육부의 임용 제청을 거쳐 같은 해 3월 국무회의를 통해 총장으로 임명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 막바지에 총장으로 발령나면서 ‘문재인정부 마지막 알박기 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제는 고 총장의 자질은 물론 임명 과정서 불거진 의혹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고 총장은 ▲겸직 위반 ▲세금 체납 ▲재산신고 누락 등의 의혹을 받고 있다. 총장 선거가 진행될 무렵부터 방송대 내부서 관련 의혹에 관한 소문이 불거졌다. 교육부는 방송대 종합감사 시기(2021년 10월25일~11월5일)에 고 총장과 관련된 논란을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한 방송대 관계자는 “고 총장은 최소 10년 이상 겸직한 사실을 숨겼다. 채무 문제로 급여까지 압류당하다가 총장 후보자로 선출되고 나서야 부랴부랴 정리했다. 국립대 총장을 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라며 “교육부는 이 같은 내용을 전부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총장으로 제청했다. 가장 말이 안 되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고 총장은 방송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2004년 5월 설립된 한 주식회사의 이사, 대표이사, 사내이사 등을 지냈다. 방송대 전임교원 임용계약서에 따르면 교수는 ‘교육공무원’이다. 공무 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할 수 없고 소속 기관장의 허가 없이 다른 직무를 겸할 수 없다(국가공무원법 64조 영리업무 및 겸직 금지). 문제 제기했다 인사조치 권익위 “복직+임금 보전” 해당 회사는 2017년 12월에야 해산됐다. 그 사이 고 총장은 교무부처장, 인문대학장 등의 보직을 맡았다. 고 총장의 겸직 사실은 총장 선거에 이를 무렵에야 알려졌다. 여기에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세금 체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지방소득세 등 38건, 총 4200만원의 세금을 체납한 것. 또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서 대출을 받아 10억원 이상의 채무가 발생했다. 원금과 이자가 더해진 액수로 고 총장은 당시 회사의 연대보증인이었다. 방송대는 국립대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대한민국’이 제3채무자로 지정된다. 고 총장의 급여에 말 그대로 ‘압류 딱지’가 붙은 이유다.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고 총장은 방송대 제8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고 총장의 임명은 그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교육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을 끄집어 올렸다. 방송대 총장 선거 전에 종합감사를 진행한 점, 종합감사 시기에 다양한 경로로 민원이 제기된 점으로 미뤄봤을 때 교육부는 고 총장에 대한 의혹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보는 의견이 대다수다. 하지만 교육부는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인사위원회를 거쳐 고 총장을 임용 제청했다. 당시 교육부 차관은 정종철 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다. 지난해 2월 방송대 관계자는 정 전 차관을 만나 고 총장에 대한 의혹을 언급했다. 그로부터 2주 뒤 교육부는 고 총장에 대한 임용 제청을 진행했다. 교육부가 앞장서서 고 총장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라 정 전 차관은 <일요시사> 보도 이후 방송대 관계자와의 통화서 ‘인사혁신처’를 언급했다. 정 전 차관은 “인사위원회가 되게 폭넓은 재량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인사혁신처가 그렇게 통보해 오는데…. (중략)”라고 말했다. 논란·의혹 대부분 인정 당시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에 “(인사혁신처에서는)행정 절차를 진행할 뿐 국립대 총장 후보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총장 임용 제청 여부는 교육부서 인사혁신처로 전달하는 것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정 전 차관의 발언과 배치되는 지점이다. <일요시사> 보도로 총장 임용 과정이 ‘교육부-인사혁신처-청와대’가 아니라 ‘청와대-인사혁신처-교육부’로 이어지는 ‘톱다운’ 방식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됐다. 방송대 이외의 다른 국립대서 일어나고 있는 교육부의 총장 임명 거부와 관련해서도 의심의 목소리가 나왔다. 어떤 ‘입김’이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방송대 총장 논란을 대하는 교육부의 소극적인 태도는 사태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지난 1년여간 방송대 관계자를 비롯한 시민단체 등에서 고 총장 임용을 두고 다양한 방식의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이 과정서 강문희 방송대 전 부산지역대 학장(행정학과)은 보직해임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강 교수의 인사 발령 소식은 지난해 6월 방송대 앞에서 ‘고성환 총장 퇴진’을 외친 집회 당일 학내 게시판을 통해 알려졌다. 강 교수는 보직해임 조치 과정서 방송대 측이 사유를 밝히거나 공식적으로 통보하는 등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방적인 인사 조치였다는 설명이다.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는 강 교수가 고 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신분보장 등 조치’ 신청과 관련해 “부산지역대학장 보직을 다시 부여하고 보직해임으로 인해 삭감된 임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또 강 교수에게 불이익 조치를 가한 고 총장을 검찰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소송서도 다 이겼다 강 교수에 대한 인사발령 조치가 문제 제기로 발생한 일종의 보복 조치였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고 총장은 권익위 결정에 불복해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1월31일)에 이어 항고심(5월19일)까지도 권익위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고 총장은 권익위의 결정을 현재(지난달 30일 기준)까지 이행하지 않고 있다. 학내 인사의 문제 제기, 시민단체의 형사고발, 정부 기관의 결정 등 고 총장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수차례에 걸쳐 울리고 있는 경고음에 오로지 교육부만이 침묵을 지키는 모양새다. 급기야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고 총장 관련 논란이 언급되는 등 정치권의 목소리가 들어간 상황서도 교육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19일 국회 교육위원회서 방송대에 대한 국감을 진행했다. 이날 국민의힘 소속 정경희 의원은 고 총장에 대한 논란을 언급한 뒤 ▲겸직 허가를 받았는지 ▲이로 인해 징계나 처벌을 받았는지 등을 질의했다. 고 총장은 정 위원의 질문에 모두 ‘아닙니다’라고 답했다. 논란을 일부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고 총장은 총장 사퇴 의사를 묻는 말에는 “답변을 곧바로 드리기 좀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선거 과정서 방송대 구성원이 해당 사실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런 상황서도 자신을 총장으로 뽑아줬기 때문에 사퇴 문제는 구성원의 의견을 따라야 된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국감서 언급 “수사 결과 보겠다” 정 위원은 “교육부는 방송대 총장 임명 과정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점, 그리고 최근 제기된 직권남용 의혹 등 비리 의혹을 세밀히 감사해야 할 것”이라며 당시 국감에 참석한 김일수 고등교육정책실장을 향해 방송대 감사 계획을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실장은 검토해서 보고하겠다는 답변을 남겼다. 그로부터 8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교육부는 고 총장과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국민의힘 정경희 의원실 질의에 대한 교육부 답변서는 단 3문장으로 구성됐다. 정 의원실은 지난해 국감 이후 교육부의 조치에 대해 총 4가지 질의를 보냈다. ‘방송대 관련 2022 국정감사 후속 조치’와 관련해 ▲2022 교육부 등 국정감사에서 정경희 의원이 지적한 방송대 고성환 총장의 각종 비리와 관련한 교육부의 후속 조치 상세내역 ▲2022 국정감사 이후 고성환 총장과 관련해 교육부와 방송대 간 주고받은 공문 사본 일체 ▲2022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정종철 전 교육부 차관의 방송대 관계자 회유(고성환 총장 관련 건) 관련 교육부의 후속 조치 상세 ▲고성환 총장의 인사전횡(비리행위를 비판한 고속 교수에 대한 부당한 징계)과 관련한 세부 다툼 경과, 교육부의 조치 상세 등이다. 교육부는 정 의원실의 질의에 “의원님께서 요구하신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 드립니다” “요구내용에 대해 해당 내용이 없습니다” “현재 관련 내용은 경찰에서 수사 중에 있으며 수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경우 관련 법령에 따라 조치를 검토할 예정입니다”라고 답했다. 시민단체 등에서 진행한 고 총장, 정 전 차관 등에 대한 고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감독 기관이 남의 일처럼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했고 인사 조치까지 당한 강 교수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강 교수는 “고 총장이 국감서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부분 인정했다. 고 총장에 대한 교육부의 인사 검증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아닌가. 방송대 총장 사태서 교육부는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의원실에 한 답변만 보면 마치 제3자처럼 굴고 있다”고 비판했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정부서 보인 행보를 전부 되돌려 받는 듯한 모습이다. 임기를 불과 3개월 앞둔 상황서 집권여당을 중심으로 집중포화를 쏟아내고 있다. 중립과 공정의 최전선에 있어야 할 사법부를 망가뜨렸다는 비판은 특히 뼈아프다. <일요시사>가 대법원장 김명수의 6년을 짚어봤다. 정부 기관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표현이 ‘기대’와 ‘우려’다. 새로운 수장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그 진폭이 상당히 컸다. 국민은 ‘김명수 대법원’에 사법부 신뢰 회복을 기대했다. 깜짝 발탁 기대했는데…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8월, 김명수 당시 춘천지방법원장을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직전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보다 13기수나 낮다. 대법관 가운데 김 대법원장보다 기수가 높은 ‘선배’가 9명이나 되는 상황이었다.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대법원장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을 받았다. 보수적인 조직인 사법부서 ‘파격 인사’라고 할만한 인선이었다. 당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김 후보자는 인권 수호를 사명으로 삼아온 법관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는 한편 대법원, 국제인권법연구회의 기틀을 다진 초대 회장으로서 국제연합이 펴낸 인권 편람의 번역서를 출간하고 인권에 관한 각종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법관으로서 인권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소개했다. 이어 “춘천지방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법관 독립에 대한 확고한 소신을 갖고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실행했으며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를 증진할 적임자”라고 발탁 배경을 밝힌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의 지명은 사법개혁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김 대법원장 임명안 가결 이후 여야는 극명하게 다른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바탕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사법개혁을 이끌 적임자”라며 환영의 입장을 나타냈다. 반면 야당이었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과 바른정당은 “사법부의 좌편향 정치화를 우려한다”고 토로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오는 9월24일까지로 3개월가량 남았다. 후임 대법원장 후보군의 하마평과 함께 재임기간에 대한 평가가 뒤따르는 시기다. ‘김명수 대법원’에 관한 평가 중 눈여겨볼만한 부분은 ‘사법부의 정치화’다. 사법부 정치화 비판에 재판 지연 야권 인사만 1심 선고 질질 끌어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대법원의 위상이 크게 무너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 전 대통령이 김 대법원장을 임명할 당시 불거졌던 ‘코드 인사’ 논란이 현실화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제 최근 대법원 판결이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국회서 논의 중인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안)과 관련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판결이 나온 것.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2014년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면서 시작된 시민의 모금운동서 유래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지난 15일, 현대차가 노동자 4명을 상대로 낸 2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서 노동자가 사측에 20억원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쟁의행위는 노동조합이라는 단체에 의해 결정‧주도되고 조합원의 행위는 노동조합에 의해 집단적으로 결합해 실행된다는 점을 볼 때 조합이 쟁의행위에 따른 책임의 귀속 주체가 된다”고 봤다. 즉 쟁의행위는 조합에 의해 결정되고 개별 조합원은 지시에 불응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면서 “조합의 의사결정이나 실행행위에 관여한 정도 등은 조합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위법한 쟁의행위를 결정하고 주도한 주체인 조합과 개별 조합원 등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동일하게 보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개별 조합원 등에 대한 책임제한 정도는 노동조합서의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경위 및 정도, 손해 발생에 대한 기여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대법원의 판결이다. 앞서 1심과 2심에서는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의 책임을 인정하고 20억원 전액을 노동자가 연대해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진보 성향 편향 인사 대법원이 이를 뒤집고 손해배상 책임을 개별적으로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본 것이다. 갑론을박이 나오는 지점은 ‘개별적인 책임 범위’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노란봉투법 제3조는 ‘법원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배상 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대법원 판결과 유사한 대목이다. 대법원이 노란봉투법 입법화에 앞서 힘을 실어준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부분이다. 대법원은 여권을 중심으로 해당 판결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이례적으로 반응을 냈다. 대법원은 지난 19일, 김상환 법원행정처장 명의로 “판결 선고 이후 해당 판결과 주심 대법관에 대해 과도한 비난이 이어지는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이 과정서 대법원은 ‘부당한 압력’ ‘사법권 독립’ ‘국민 신뢰 훼손’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이 같은 비판이 ‘김명수 대법원’의 6년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김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코드 인사’ 논란에 시달렸다. 이 시기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는 요직으로 가는 비율이 높았다. 능력보다는 이념에 편향된 인사를 주로 해왔다는 비판이다. 여기에 재판 지연 문제가 더해졌다. 일선의 한 변호사는 “과거에 비해 재판에 걸리는 시간이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토로했다. 선택적 지연 노골적 개입? 실제로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이 법원행정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민사 본안 1심이 1년 넘게 걸린 경우가 2016년 2만6879건서 2018년 이후 2020년 4만5121건, 지난해 5만3084건으로 늘어났다. 항소심은 2016년 3442건서 2020년 7194건, 지난해 9225건으로 급증했다. 형사 공판 1심까지 1년 넘게 진행된 경우는 2016년 7366명서 2020년 1만1733명, 지난해 1만5563명으로 늘어났다. 항소심 역시 2016년 923명서 2020년 1850명, 지난해 4790명으로 증가했다. 현행법은 민사소송의 경우 1심과 항소심 모두 5개월 이내에 형사소송은 1심 6개월, 항소심은 4개월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눈여겨볼만한 지점은 재판 지연이 ‘선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의혹이다. 특히 진보 성향 판사 인선이 늘어나면서 진보 성향 인사에 대한 재판만 한없이 늘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선 ‘김명수 대법원’이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인사의 최후의 방패 역할을 한다고 언급될 정도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을 유용한 혐의로 기소된 무소속 윤미향 의원 사건은 1심 판결이 나오는 데 2년5개월이 소요됐다. 자녀 입시비리 혐의 등으로 진행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재판은 3년2개월 만에야 1심 판결이 나왔다.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확인서를 발급해 대학 입학 사정 업무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민주당 최강욱 의원 사건은 3년5개월째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았다. 특히 최 의원 사건은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된 사실이 드러났다. 전원합의체는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과 대법원장으로 이뤄진 재판부다. 대법관 4명으로 구성된 소부서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거나 기존 판례 등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경우 회부된다. 임기 3개월 앞두고 인사 갈등 퇴임 이후에도 가시밭길 예고 1심은 “입학 담당자들로 하여금 조씨(조 전 장관의 아들)의 경력을 고의로 착각하게 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도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서 상고를 기각할 경우, 최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하고 피선거권을 잃게 된다. 대법원의 판단만 남겨두고 전원합의체에 회부되면서 최 의원은 시간을 벌게 됐다. 국민의힘은 “대법원이 의원 임기 보장과 총선 출마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오해를 자초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최 의원은 2020년 1월 기소된 이후 3년5개월째 법원을 들락거리며 국회의원 임기를 차곡차곡 채웠다”며 “이번 조치로 사실상 대법원이 최 의원 임기를 끝까지 지켜주고 총선 출마의 길까지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 의원 또는 보수 진영 인사들 사건은 상대적으로 신속한 1심 판단이 나왔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으로 2017년 4월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8년 4월, 다스 실소유주·횡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1심 선고가 났다. 각각 1년, 6개월 만이다. 2019년 4월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은 올해 5월 대법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 판결받았다. 김 전 구청장이 폭로한 의혹의 대상인 조 전 장관은 여전히 재판을 받고 있는데 신고자는 유죄가 확정된 것이다. 특히 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과 강서구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이 지난 4월, 김 전 구청장에 대한 신속한 선고를 촉구하고 한 달 만에 대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주심인 박정화 대법관이 시민단체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안에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중 13명이 바뀐다. 사법부 지형이 완전히 교체되는 셈이다. 이미 윤 대통령과 김 대법원장은 대법관 인사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과 김 대법원장을 동시에 비판하는 현직 판사의 글도 공개적으로 올라왔다. 안팎서 동네북 퇴임 이후에는 상황이 더 안 좋아 질 수도 있다.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사표 수리를 종용하는 과정서 거짓말을 했다는 논란은 고발로까지 이어져 검찰 수사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 최대 흑역사로 꼽히는 ‘양승태 대법원’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김 대법원장이 박수를 받으며 퇴임할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정부가 꾸린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가 마약사범 잡기에 사활을 걸었다. 초범이라도 상습적으로 투약하거나 혐의를 부인하면 구속수사하는 방안을 밀어붙일 계획이다. 수사기관 외에도 관세청과 국방부, 국가정보원, 해양경찰이 합류해 인력도 대거 늘었다. 그러나 ‘플리바게닝’이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검찰은 수사 과정서 협상의 일종인 ‘플리바게닝’을 피의자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이미 검거한 마약사범을 통해 상위 공급책을 잡으려 활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마약 혐의 피의자 구속수사’ 의지가 시작부터 삐걱거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검찰 안팎서도 ‘플리바게닝 제도화’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마약과의 전쟁 강공 드라이브 윤석열정부는 지난 4월 특수본을 꾸렸다. 지난해 선포한 ‘마약과의 전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수본은 지난 14일 대검찰청서 2차 회의를 열고 마약범의 경우 초범이라도 상습적으로 투약하고 혐의를 부인하거나 마약류의 유통 경로를 감추면 구속수사 또는 정식 재판에 넘기는 등의 방안을 정했다고 밝혔다. 특수본은 지난 1월부터 4월까지 적발된 마약사범이 총 558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4307명) 대비 29.7% 늘었다는 통계를 공개했다. 이 중 36.4%가 10대와 20대였다. 특수본은 “마약범죄 근절을 위해선 공급 차단과 수요 억제가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투약사범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약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수본이 최근 3년간 마약 투약 및 단순 소지 사범 146명의 형량을 분석한 결과 2년 이상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전체의 4.1%에 불과했다. 또 전체의 51%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8종 이상의 마약류를 투약한 혐의를 받는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37)의 경우 법원서 “동종 범행 전력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달 24일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검찰은 투약사범에 대해 중형을 구형하고 적극적으로 항소할 방침이다. 또 투약사범에게 집행유예형이 선고될 경우 치료명령과 보호관찰을 부과하도록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특수본에는 국방부와 국정원, 해경 등 직원 총 134명이 추가 합류해 수사 인력이 840명에서 974명으로 늘었다. 지역별 수사실무협의체에도 군검찰단과 군사경찰, 해병대가 추가됐다. 박재억 특수본 공동본부장(대검 마약·조직범죄부장)은 “마약 척결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앞으로 기관 간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고구마 줄기 캐듯’ 마약 수사 스톱? 현행법 없는 ‘플리바게닝’ 없어지나 이외에도 특수본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마약류관리법 등을 위반한 피고인에 대한 양형을 강화하는 안건의 상정을 촉구해왔다. 사법부가 마약범죄에 관해 관대한 판단을 반복해왔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특수본도 “마약범죄는 해악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되거나 집행유예의 경미한 형이 선고돼 재범에 이르는 등 마약 투약·유통이 근절되지 못하는 악순환 반복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실제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에 관한 1심 판결 5438건 가운데 실형 선고는 2624건(48.1%)에 그쳤다. 실형 선고 비율은 2020년 53.7%, 2021년 50.6%와 비교해도 감소 추세가 뚜렷하다. 반면 집행유예 비율은 같은 기간 36.3%→38.1%→39.8%로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다. 2011년 개정된 마약범죄 양형기준은 2015년과 2020년 두 차례 수정됐으나 대량범에 대한 형량 기준이 일부 강화되기만 했다. 투약이나 소지 등에 대해서는 10여년 전 양형기준을 적용해온 셈이다. 그 사이 마약범죄는 단순 투약 등에서 벗어나 다양한 강력범죄와 결합해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했다. 김영란 전 대법원 양형위원장도 이 같은 범죄 환경 변화를 의식한 듯 지난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마약범죄 양형기준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 때문인지 양형위는 마약범죄의 양형기준을 다듬고, 양형기준이 없었던 스토킹 범죄와 동물 학대 범죄는 새롭게 기준을 가다듬기로 했다. 지난 13일 대법원에 따르면 양형위는 전날 오후 제125차 전체회의를 열고 향후 2년간 추진할 업무를 논의했다. 양형위는 기술 유출 범죄의 양형기준을 강화해달라는 관계기관 요구가 많은 만큼 우선으로 2024년 4월까지 양형기준을 수정할 예정이다. “혐의 확실시 초범도 영장” 마약범죄의 양형기준은 체계화한다. 양형위는 “마약범죄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면서 양형기준 수정에 대한 사회 및 실무 요구가 모두 높다”며 “유형 분류와 권고 형량 범위 변경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 양형기준이 없던 범죄는 사회적 변화를 반영해 기준을 신설한다. 대법원이 특수본의 의견을 반영해 내년까지 양형기준을 강화하기로 했으나 해결 과제는 산적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초범이라도 구속수사를 하게 되면 마약 수사 과정서 상위 공급책 검거에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지금껏 수사기관이 마약 수사를 하면서 ‘플리바게닝’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러 상황을 지켜보고 그림이 그려지면 잡는 전략적 수사가 필요한데 무조건적인 구속수사 방침은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플리바게닝은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거나 공범에 대해 증언하는 조건으로 검찰이 구형량을 낮춰주거나 불기소 처분하는 것을 일컫는다. 검찰이 일부 부패사건을 수사할 때마다 자주 언급되는 용어기도 하다. 검찰은 지난 10년간 플리바게닝 제도화를 추진했지만,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막혀 추진하지 못했다. 추적이 어렵고, 증거 확보가 어려운 범죄가 늘고 있어 플리바게닝 공식 제도화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검찰은 최근 이원석 총장의 “플리바게닝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발언 이후 4년 만에 열린 형사법 아카데미서 플리바게닝을 주제로 다루며 관련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플리바게닝 도입 이유로 ‘형사사법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내세운다. 명백한 물증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건에 대해선 범죄 가담자에게 사법 협조를 끌어낼 유인을 제공해 수사 효율성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양형 기준 엎어도 문제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너무 느린 사법제도’를 향한 불만을 불식하기 위한 제도의 일환으로 유죄협상제와 사법 협조자 형벌감면제도를 도입했다. 프랑스식 유죄협상제는 상대적으로 죄가 가벼운 사건서 피의자가 자백하면 검사가 감경된 형을 제안하고, 법원 추인을 통해 재판 없이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 공범 검거에 기여한 가담자에게 형을 감면해줄 수 있도록 한 프랑스식 사법 협조자 형벌감면제도는 도입 당시 테러범죄 등에 국한됐다가 법 개정을 통해 일반범죄로 확대돼 활용되고 있다. 플리바게닝은 미국, 일본 등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미 검찰이 플리바게닝을 활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수사 협조자에게 구형량을 낮춰주거나, 재판 진행 과정서 최대한 피고인 측의 요구를 반영해주는 식이다. 플리바게닝은 유독 거물급 정치인이 연루된 부패사건서 활용됐다는 지적이 거셌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수사와 ‘이정근 녹취록’서 수사 단서가 잡힌 더불어민주당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수사가 대표적이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남욱 변호사 등 대장동 일당은 재판에 넘겨진 후 1년 가까이 침묵하다 돌연 태도를 바꿔 이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내면서 플리바게닝 적용 의혹이 제기됐다. 사업가로부터 10억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은 1심서 검찰이 구형한 징역 3년보다 무거운 징역 4년6개월을 선고받으면서 플리바게닝 의혹이 일었다. 다크웹서 일어나는 마약·성범죄 사건은 추적이 어려워 조직원을 검거해도 ‘머리’를 잡으려면 전략적 수사가 필요하다. 상위책 잡으려 ‘형량 거래’ 걸림돌 “바뀐 방침 무조건? 상황에 맞게 적용” 중앙지검 한 검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텔레그램 마약·성범죄 수사에는 이미 플리바게닝이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혐의를 입증할 확실한 정황과 증거를 확보해도 수사 종결 이전까지는 수사에 협조하는 피의자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 및 파악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곧 특수본의 ‘마약 혐의 피의자 구속 수사’ 방침이 모든 피의자에게 적용되긴 힘들다는 분석으로 해석된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혐의가 확실하다고 해도 초범부터 구속해버리면 윗선을 파악하기 힘들다”며 “해당 원칙을 모든 혐의에 적용하면 ‘제2의 범죄’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며 “마약과 텔레그램 성범죄가 그렇다. ‘초범이라도 구속수사’가 모든 피의자에게 적용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플리바게닝 활용 방안 외에도 ‘중요 참고인 출석 의무 제도’를 추진하려 한 바 있다. 2011년 형사소송법 개정 당시 법무부는 ‘내부증언자 소추면제 제도’를 마련했다. 본인이 죄를 인정하면 기소나 형을 감면하는 미국식 플리바게닝과 크게 다르진 않지만 조직·마약·뇌물 범죄서 타인 범죄 규명에 도움을 주면 기소를 면해주거나 형을 감면해주는 내용이다. 이에 법원과 학계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검찰이 범죄자 처벌까지 결정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범죄자와의 타협’이라는 점도 국민 법 감정에 배치되면서 이 개정안은 여론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7년 이상 징역형에 해당하는 중범죄의 수사 관련 내용을 알고 있는 참고인이 검사의 출석 요구에 불응할 경우 영장을 통해 강제로 구인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참고인 출석 의무제도’가 이때 언급됐던 법안이다. 수년간 군불만 결국 개정안은 국무회의까지 통과했지만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정식 논의조차 되지 않은 채 18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그러나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 이후 기업비리 수사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검찰은 비공식적으로 이 제도의 도입을 지금까지 언급하고 있다. 수사기법서 과거에 비해 검찰의 손발이 묶인 반면, 피의자들은 갈수록 지능화하는 게 큰 이유다. <hounder@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정원에 피바람이 불고 있다. 전례 없는 ‘인사 전횡’으로 내부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실은 즉각 진상조사에 나섰고 김규현 국정원장이 자리를 보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 원장의 ‘오른팔’이 이번 갈등의 중심에 서면서 국정원의 어수선함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1급 간부 7명에 대한 보직 인사를 취소하고 직무 대기발령을 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특정 간부가 인사에 부적절하게 관여한 사실을 보고받은 뒤 조처한 일이기에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국정원 안팎서 대통령 재가를 거친 정보당국의 간부급 인사가 번복된 것은 사상 초유의 사태라고 보고 있다. 최측근이… 실세의 난? 국정원은 이달 초, 전 국·처장인 1급 간부 7명에 관해 새 보직 인사를 공지했다가 돌연 발령을 취소했다. 김규현 국정원장의 ‘오른팔’로 알려진 A씨는 지난해 9월 1급, 같은 해 11월 2·3급 간부 100여명의 인사 때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아일보>는 A씨에 관한 투서가 인사 번복의 배경이 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통령실 관계자는 “투서를 받은 적이 없다”며 “투서를 받아 인사를 하거나 인사를 안 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언급된 윤석열정부 국정원의 인사 파동은 처음이 아니다. 1차 인사 파동은 윤정부 출범 4개월 만인 지난해 9월 1급 간부 27명이 퇴직한 것이다. 이전 정권인 문재인정부의 인적 청산과 연계된 퇴직이었다. 이어 10월에는 조상준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임명 4개월 만에 돌연 사퇴하면서 내부 갈등설이 제기됐다. 2차 파동은 12월 2·3급 간부 130여명이 직무서 배제되거나 한직으로 발령을 받은 것을 가리킨다. 최근 불거진 3차 파동은 1차 파동에 따른 1급 보직인사 건이다. 이 여파는 해외 정보 파트까지 번졌고 미국, 일본 같은 주요 국가의 거점장들까지 소환 통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 파동의 중심에 선 A씨는 김 원장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윤정부가 들어선 이후 3급에서 2급으로 승진하면서 요직을 꿰차기도 했다. A씨는 1차 파동 때 조 전 실장과도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자신뿐 아니라 주변 인물을 주요 직에 발탁하고 승진시키려 하면서 배제된 인사들과 다툼이 있었다는 게 골자다. A씨는 김 원장의 최측근이기 전 방첩센터장을 역임했다. 그는 외무고시를 패스한 정통 외교관 출신인 김 원장의 선택을 받아 ‘국정원 정상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국정원장의 직속기관인 방첩센터는 본래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2차장 산하에 둔다. 그러나 김 원장은 국정원장 직할 부서로 만들어 주도권을 가져가려 했다. 실제 방첩센터는 지난해 말부터 창원·진주·전주·제주 민주노총 간첩 사건을 주도해 성과를 올려왔다. ‘윤 사단’ 조상준 밀어낸 A씨 그림자 지목 ‘나만의 리그’ 갈등…전례 없는 인사 번복 국정원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 파동에 대해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원장이 A씨에게만 의지했다거나 A씨가 공작을 주도하면서 우파 중용을 막으려 했다는 등의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정원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때 적폐청산 TF서 활동하던 인물이 인사기획관이 됐다. 그가 A씨의 공작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도 존재한다”며 “최근 언론서 언급된 투서로 대통령실이 진상조사에 나섰다는 건 가능성이 크지 않다. 현 단계에선 쌓인 불만들이 표면화된 건 사실이라고만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A씨 외에도 B씨도 요주의 인물로 언급되고 있다. 2018년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세 번째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한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능라도 경기장서 평양시민에게 연설했다. 초유의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여러 부처가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는데, 국정원 버전 연설문을 쓰는 데 B씨가 참여했다고 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A씨와 친분이 있는 B씨가 윤석열정부 들어서도 주요 보고서에 접근할 수 있는 보직에 보임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B씨 외에 내부 감찰을 맡고 있는 C씨의 상황도 비슷하다. 박근혜정부 청와대에 파견갔던 C씨는 국정원장을 ‘패싱’하고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직보했다는 의혹으로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서도 거론됐던 인물이다. 김 원장은 대북 강경파인 매파로 손꼽힌다. 국정원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정체성 교육’을 도입한 만큼 선명성을 강조한다. 국정원 직원이라면 하루 8시간씩 3일간 모두 24시간의 이념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터질 게 터졌다 특히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신원검증센터를 신설해 국정원 외부 공직자의 정체성까지 들여다보려 했다. 이를 반대했던 게 조 전 실장이다. 정체성과 선명성을 강조한 김 원장은 문제가 있는 인물일지라도 국가관이 투철하다면 중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조 전 실장은 그렇지 않았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국정원 관계자는 “김 원장과 논의가 끝나지 않은 조 전 실장 중심의 인사가 윤 대통령에게 보고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통령의 선택을 받지 못한 조 전 실장이 아웃된 이유”라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취임 초부터 과거 정부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인사 물갈이’에 들어갔다. 지난해 6월 1급 보직국장 27명 전원을 대기발령한 데 이어, 같은 해 말 2·3급 간부 인사를 통해 100여명을 또다시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번 1급 간부 인사 후에도 추가로 100여명을 직무 배제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과감한 인적 청산에 반대 의견을 내놓았던 인물은 또 있다. 해외 파트를 총괄하는 권춘택 1차장이다. 권 차장은 속도감이 없더라도 외부가 아닌 내부 인사를 중심으로 조직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권 차장은 국가안전기획부 시절인 1986년 공채로 들어와 30여년간 국정원에 몸담았다. 박근혜정부 당시 2013년 미 워싱턴DC 주미 대사관서 정무2공사로 근무하며 미 중앙정보국(CIA)과의 협력을 담당했다. 김 원장이 임명되기 전 윤정부 국정원장에 물망이 오르기도 했다. 국정원 출신 한 관계자는 “A씨가 권 차장까지 몰아내려 했다는 소식이 파다하다. 다행이게도 대통령실이 제대로 된 상황 파악에 나섰고 A씨는 면직 처리됐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김 원장에게 프랑스·베트남 순방 직전 “조직·인사서 손을 떼고 기다리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리더십 제로 안정화 실패 정치권에서는 최근 국정원의 인사 파동과 관련해 정보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 정보위 출신의 한 의원은 “이례적 갈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갈등이 표면화된 건 처음”이라며 “김 원장의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조직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의 내부 갈등은 과거 정부 때도 있었다. 박지원 국정원장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노은채 전 실장도 기조실장을 역임했을 당시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파벌싸움’이란 국정원의 오래된 적폐가 곪을 대로 곪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박지원 전 원장은 “(당시)인사 전횡은 없었다”며 “있었으면 파동이 났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번 인사 파동이 정치권으로까지 번지면서 대통령실 내부서조차 김 원장이 책임지고 자리서 물러나야 한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면직된 A씨를 제외하고 대기 발령됐던 2·3급 간부들은 김 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신뢰를 얻어온 김 원장이 직을 유지할 수 있지만 조직 안정화에 실패했다고 본다”며 “여러 책임이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리더십이 제로가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에서도 김 원장의 책임을 물어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국정원 인사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가 김 원장의 거취 문제로 불거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국정원 간부 일부가 대통령실에 문제를 제기했고 공직기강비서관이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역대급 태풍’이 불고 있다”고 평가했다. “공직기강실 바삐 움직여” 대통령실서 진상조사 착수 일각에선 김 원장 후임 후보군의 이름도 언급되고 있다. 정보당국 출신 관계자는 “김 원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가 바닥나지 않았겠냐”며 “검찰 출신이 새롭게 자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안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줄 수 없다. 새로운 국정원장 인선 움직임은 없다”면서도 “공직기강비서관실이 바쁘다. 진상조사 때문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우선 대통령실은 지난 16일 “일단 진상조사를 통한 실체 파악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정보기관 내 특정 인사의 인사 전횡 의혹이 외부로 드러난 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그 내용부터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 19일부터 해외에 있는 만큼 국정원장 교체 문제 등을 검토하기엔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국정원 내부의 인사 잡음에 대한 문제가 지난해부터 수차례 제기됐던 만큼 이번 조사 결과에 A씨의 전횡 의혹 등의 문제가 분명히 밝혀질 경우 김 원장 교체까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거듭된 인사 파동과 관련해 김 원장의 책임도 가볍지 않음을 시사한 것이다. 다만 김 원장에 대한 문책으로 이어질지 신중해야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보기관 출신 관계자는 “김 원장을 향한 윤 대통령의 신임이 작지 않다”며 “A씨 등에 대한 징계나 문책 수준으로 일단락될 수도 있다”고 했다. 다른 관계자도 “간첩단 수사 등 정부 출범 뒤 국정원의 공도 적지 않은 만큼 김 원장을 내치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김규현 사퇴하나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김 원장을 교체할 생각이었다면 A씨의 인사 전횡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실을 찾아온 김 원장을 만났을 때 교체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이때 윤 대통령이 “불신임하려는 건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건 문제를 해결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하라는 경고에 무게를 뒀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순방서 돌아온 뒤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의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 김 원장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할지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KT가 어김없이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랬던 터라 일상적이라는 분위기다. 다만 검찰의 칼끝에 서 있어 유독 뒤숭숭하다. 특히 윤석열정부 입맛에 맞는 대표이사 선임을 준비 중이라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의 입김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정관 및 규정이 변경되거나 보수 정부 장·차관 출신 사외이사가 내정된 것이 그 이유다. KT의 차기 대표이사를 뽑는 사외이사에 박근혜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을 지낸 인물과 이명박정부 환경부 차관을 지낸 법조계 ‘올드보이’가 내정됐다. 대표이사 자격요건에는 ‘정보통신 전문성’도 삭제됐다. 차기 오너 자리에 ‘정권 낙하산’이 꽂히는 건 익숙하지만 사업 운영 능력조차 없을 것 같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여권 인사 내리꽂기 KT 사외이사에 내정된 최양희 한림대 총장과 윤종수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은 각각 박근혜정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이명박정부 환경부 차관을 지냈다. KT는 지난 9일, 이들 외에도 5명의 새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했다. KT가 발표한 사외이사 최종 후보는 ▲김성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곽우영전 현대자동차 차량IT개발센터장 ▲안영균 세계회계사연맹IFAC 이사 ▲이승훈 KCGI 글로벌부문 대표 파트너 ▲조승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다. 곽우영·이승훈·조승아 후보는 주주 추천을 받은 인사다. 김성철 고려대 교수는 윤석열정부 미디어 정책 전반을 수립하는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KT는 새로운 대표이사 선출 방식과 기준을 발표하기도 했다. 자격요건에 ‘정보통신 전문성’ 항목을 삭제하고 ▲기업경영 전문성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역량 ▲산업 전문성 등 4가지 항목으로 변경했다. 이 때문에 사업 운영 능력이 없는 인물이 오너로 선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논란이 일자 KT 측은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성이 빠진 게 아니라 산업 전반 전문성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KT 새 노조는 성명을 통해 “사외이사 후보 면면을 보면 현 대통령 자문위원회 소속, 박근혜정부 장관 출신, 대주주인 현대자동차 출신 등이 보인다”며 “정관상 대표이사 후보자의 자격요건서 정보통신 전문성을 산업 전문성 등으로 변경하는 등 낙하산 CEO를 선출하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누누이 강조된 소액주주, 소비자, 종업원 등 이해당사자에 대한 배려도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차기 대표이사 선출 기준도 기존 주주총회 출석 주주의결권 ‘50% 이상’서 ‘60% 이상’의 찬성으로 변경했다. 연임 후보의 경우, 의결 참여 주식 3분의 2 이상의 특별결의를 거쳐야만 대표가 될 수 있도록 했다. KT 경영진이 이사회를 통해 ‘셀프 연임’을 한다는 비판에 대응한 조치로 해석된다. 윤정부 입맛 맞는 대표 선임 관측 보수 장차관 출신 사외이사 내정 이번 사외이사 선임은 외부 인사로 구성된 40여명의 인선자문단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논의를 거쳐 확정됐다. 그러나 투명하지 않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KT 새노조는 “후보 선정 과정에 참여한 인선자문단이 여전히 누군지 모르고 어떤 기준으로 선임했는지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상황”이라며 “이번에 선정된 후보가 어떤 주주의 추천인지 등도 여전히 불투명한 영역으로 남게 되어 당분간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KT의 차기 대표이사 선임은 계속해서 진통을 겪어왔다. 지난해 구현모 전 대표이사 연임 결정에 KT의 대주주이자 정부의 영향을 받는 국민연금이 반대 입장을 내 재공모가 치러졌다. 재공모에 도전했던 구 전 대표가 급작스럽게 중도 사퇴했다. 재공모 결과 KT이사회가 KT 출신인 윤경림 대표이사를 내정하자 KT를 향한 정치권의 압박과 수사가 본격화됐고, 윤 전 내정자도 결국 사임했다. 야당과 노조, KT 소액주주들은 민영화된 기업 KT를 향한 정치권의 과도한 압박에 반발했다. KT 안팎에선 KT 이사회 책임론도 제기된다. ‘KT 카르텔’이라는 비판이 예상되는 상황서 현 이사회 멤버를 지속적으로 차기 대표이사로 선임했고, 외압을 버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KT 다수 노조인 KT 노조는 지난 3월 “현재의 경영위기 상황을 초래한 이사진은 전원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즉시 비상대책기구를 구성해서 경영 공백을 없애고 조합원들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대표이사 선임 관련 정관이 개정되면서 외부 입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대표이사 후보자에 관한 주주총회 의결 기준이 상향된 것이 외부 낙하산 방지에는 긍정적이지만 국민연금의 입김이 반영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거세지는 외부 입김 당초 구 전 대표를 ‘연임우선심사 제도’를 통해 후보자로 올리며 짬짜미로 후보자를 선정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외부 비판을 의식한 KT는 ‘연임우선심사 제도’를 폐지하고 주주 추천을 비롯해 전문기관 추천, 공개모집을 통해 외부 대표이사 후보군을 물색해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쳐 사내 후보군을 선발하기로 바꿨다. 대표이사 선임에 주주 추천이 추가된 만큼 KT 지분율이 높은 국민연금과 2대 주주 현대차그룹의 입김이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민연금은 KT 지분 8.27%를 가지고 있고, 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 4.69%, 현대모비스 3.1% 등 총 7.79%의 KT 지분을 가지고 있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번 변경안으로 사내이사의 역할이 대폭 축소됐다는 점이다. 사내서 대표이사 후보를 뽑고, 후계자 육성 업무를 하게 되는 ‘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경우 사내이사는 배제됐다. 특히 사내이사 수 역시 3명서 2명으로 축소됐다. 복수 대표이사 제도도 폐지됐고 대표이사 1인 중심 경영체제로 전환해 대표이사의 책임이 더욱 강화될 계획이다. KT가 새로운 시도를 시작하기보다는 탈 많은 지배구조를 엎어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외부 평가기관으로부터 문제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대리인 문제’는 수십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대리인 문제는 주주와 경영자 간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데서 생긴다. KT 같은 소유분산기업일수록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리인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학계도 주식회사 소유권이 분산돼있으면 경영자를 향한 견제와 감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통상 소액 주주는 경영자에 대한 모니터링 비용(Monitoring Cost)이 견제와 감시로 예상되는 이익보다 크다. 모니터링 비용은 소액 주주가 전적으로 부담하지만, 모니터링에 따른 이익은 지분율에 비례해서다. 견제와 감시에 허점이 있어 KT 경영자가 회사를 지배하기 쉬워진다. 최근 KT 이사회 운영구조만 봐도 알 수 있다. KT 이사회 정원은 총 11명으로, 사내 3명, 사외 8명이었다. 구 전 대표 체제에서는 사내 2명, 사외 8명이 이사회를 이끌었다. 겉으로 보기엔 외부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사내이사보다 많아 관리·감독이 수월하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불 보듯 뻔한 인사 업계에서는 현재의 사태가 이강철 전 사외이사와 남중수 전 KT 사장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 전 이사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참여정부서 정무특별보좌관과 시민사회수석(전 정무특보)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노무현정부 시절 남 전 사장이 KT 수장으로 임명됐을 때 인연을 맺었다. 이 전 이사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황창규 당시 회장 체제서 영입된 ‘코드인사’로 알려져 있다. 통신업계를 떠나 있던 ‘올드보이’의 이름이 다시 언급되기 시작한 건 구 전 대표가 연임을 각오하면서부터다. 당시 KT 내부에서는 윤석열정부와 연결고리가 거의 없던 구 전 대표가 연임을 마음먹고 모종의 역할을 해줄 인물로 ‘올드보이’들에게 자문을 구했다는 뒷말이 나왔다. 그러나 구 전 대표는 사퇴했고 자신의 후계자로 최측근인 윤 전 내정자를 지목했다. 윤 전 내정자는 임승태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을 사외이사로, 윤정식 한국블록체인협회 부회장을 KT스카이라이프 대표이사로 각각 내정했다. 윤석열정부와 인연이 없었던 만큼 기조라도 맞추려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임 전 금통위원은 지난 대선 기간 ‘윤석열 후보 캠프’에 특보로 참여했다. 윤 부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선배지만 별다른 인연은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공교롭게도 임 전 금통위원은 경기고 출신이라는 점에서 남 전 사장과 겹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KT가 대통령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관측이 나왔다. ‘얼굴마담’ 전문성 제로 때마다 물갈이 논란 왜? 검찰은 정부여당과 기조를 맞춘 듯 수사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먼저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이정섭 부장검사)는 공정위가 지난해 12월12일 KT 자회사인 KT텔레캅을 대상으로 실시한 현장 조사자료 등을 확보했다. 당시 공정위는 KT텔레캅이 시설관리 일감을 특정 업체에 몰아줬다는 의혹을 확인할 목적으로 현장 조사에 나섰다. 검찰 관계자는 “제기된 의혹과 관련해 수사 초기에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자료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구 전 대표와 윤 전 내정자는 지난 4월7일, 시민단체 ‘정의로운 사람들’로부터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했다. 고발장에 따르면 구 전 대표 등은 KT텔레캅 일감을 시설관리업체 KDFS에 몰아주고 구 전 대표의 형을 불법 지원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사회를 장악하고자 사외이사들에게 부정한 향응을 제공했다는 의혹도 고발장에 담겼다. 구 전 대표 등은 KT가 소유한 호텔서 납품 대금 부풀리기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뒤 이를 정치권의 로비 자금으로 사용한 의혹도 받는다. 이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사외이사들에게 부정한 향응을 제공했다는 혐의로도 고발됐다. 검찰은 4월29일에는 KT 법무실 장모 전무를, 지난 5월5일에는 이모 전 KT 경영관리부문장(부사장)을 각각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전 부사장은 KT그룹 소유의 호텔 운영을 담당하는 KT에스테이트의 대표를 지낸 인물이다. 공정위 자료를 확보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검찰은 제기된 의혹 전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구 전 대표가 자신의 친형이 운영하는 기업을 현대차그룹을 통해 불법 지원했다는 의혹에 관한 수사 가능성도 열려 있다. 현대차가 구 전 대표 친형이 운영했던 커넥티드카 솔루션 기업 ‘에어플러그’를 2021년 7월 거액에 인수하면서 불법 지원이 이뤄졌다는 의혹이다. 당시 제대로 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던 에어플러그를 현대차가 비싸게 사주고, KT 자회사를 통해 보은성 투자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KT는 의혹 전반에 대해 부인하는 입장이다. KT는 “관리업체 선정 및 일감 배분에 관여한 바 없다”며 KT텔레캅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반박했다. 정치권 로비 자금 사용 의혹에 관해서는 “임의로 이익을 사외 유출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외이사진 장악을 위해 향응·접대를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봐주기 없다” 검 수사 속도 KT의 두 노조는 정치권과 이사회를 비판하고 나섰다. KT노조는 당시 입장문을 통해 “대표 선임에 따른 혼란은 회사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전망으로 이어져 기업가치를 크게 훼손했다”며 “주주총회서 KT의 1·2대 대주주가 윤경림 후보자 선임안을 반대할 것으로 전망됨에도 이것을 바꿔내기 위한 어떠한 방안도 실현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부 정치권서 민영화된 KT의 성장 비전에 맞는 지배구조의 확립과 자율적이고 책임성 있는 대표 선임 절차를 훼손하면서 외압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