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칼 빼든 공수처 노림수

궁지 몰린 쥐가 고양이 물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12·3 비상계엄 사태에 관한 수사로 과욕을 부리다 조직 존폐 위기에 빠졌다. 조직이 생겨난 후 전혀 성과를 올리지 못한 공수처는 자신을 무시하는 검찰에 정면 승부를 걸었다. IDS홀딩스 사건, 이정섭 처가 사건, 고발 사주 사건 등 전·현직 검사를 대상으로 한 수사에 수사력을 모은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취소 이후 정치적 후폭풍을 맞고 있다. 공수처는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전·현직 검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진행 중이다. 공수처가 공소시효도 얼마 남지 않은 사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궁서설묘
정면승부

공수처는 윤 대통령의 구속 취소 이후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공수처를 사이에 둔 힘겨루기를 하면서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을 불법 체포하고, 국회서 위증했다는 혐의 등으로 오동운 공수처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17일엔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민주당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불법 수사행위 진상조사를 위한 특검법(공수처 특검법)’ 협조를 촉구했다.

이날 윤 의원은 국회 소통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수처의 ‘영장 쇼핑’ ‘수사기록 누락’ 의혹 등을 거론한 뒤 “기존의 감독 및 감시체계만으로는 공정하고 신속한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독립적인 특별검사를 임명해 공수처의 불법 행위 및 정치적 의도를 철저히 규명하고,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취소 결정 이후 공수처를 향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수처는 윤석열 대통령을 수사했던 기관이고, 검찰은 윤 대통령을 석방한 기관인 만큼 여야가 두 기관을 두고 대립적 프레임으로 가고 있다”면서 “사법기관과 준사법기관들을 필요에 따라 아전인수격으로 공격했다가 방어했다가 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정치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 공수처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됐다. 민주당을 비롯한 5개의 야당은 심우정 검찰총장을 향해 “(윤 대통령의)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손쉽게 투항해 내란 수괴를 풀어주고 내란 공범임을 자백했다”며 심 총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법조계에서는 공수처 조직 존폐를 두고 정치적 외풍에 시달리고 있는 공수처가 심 총장에 대한 수사에 속도를 내고 성과를 인정받으면 반전을 노릴 수 있단 시각이 잇따른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와 검찰이 대립하면서 민주당이 공수처에 검찰을 상대로 한 무기를 쥐여준 만큼, 그 무기를 포기할 리 없을 것”이라며 “공수처가 정상적인 기관이었다면 공소장 자체를 각하해야 되는데, 공소장을 각하하지 않고 무기로 쓸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윤 구속 취소 후 벼랑 끝에
전·현직 검사 관련 수사 박차

오동운 공수처장도 해당 사건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지난 19일 오 처장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서 심 총장 고발건에 대한 물음에 “아직 배당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원칙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수사팀서 계획을 짜고 있겠지만 그 수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까진 말해주기 어렵다”며 “신속히 처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공수처는 심 총장에 대한 수사 외에도 현직 검사 및 검사 출신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차정현)는 지난 10일, 김영일 서울고검 검사에 대한 고발 사건과 관련해 첫 조사를 시작했다.

앞서 김 검사는 ‘1조원대 폰지사기’ 업체인 IDS홀딩스의 김성훈 전 대표가 구속 중에도 범죄수익을 은닉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이유로 공수처에 고발됐다. 당초 지난 2021년 6월에 검찰로 접수된 고발 건은 기본적인 고발인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번 고발건에서 공수처는 김 검사의 행적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검사가 김 전 대표 등을 검사실로 부른 시기, 과거 열린민주당 김진애 전 의원실서 확보한 출정 기록 등 문건, 김 전 대표 등의 판결문 등을 토대로 김 검사의 혐의점을 살피는 셈이다.

지난 10일, 금융사기없는세상·해피런사기탈북민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금융피해자연대(KIKO공동대책위원회·MBI피해자연합·KOK피해자비상대책위원회·밸류인베스트코리아피해자연합·IDS홀딩스 피해자연합)는 지난 2017년부터 김 전 대표 등을 수차례 자신의 검사실로 불러 사적인 전화 통화를 가능하게 하는 등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김 검사를 공수처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김 검사는 지난 3일 고검 검사로 발령 전까지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직을 맡았다.

김 전 대표는 약 1만2000명으로부터 1조원대의 사기를 친 범죄사실로 구속 기소돼 징역 15년의 형이 확정된 후에도 외부의 공범들과 연락을 취하면서, 감옥에 있는 재소자들과 공모해 여러번 범죄수익을 은닉한 혐의를 받는다.

IDS홀딩스
정조준 이유

금융피해자연대에 따르면 김 전 대표는 2017년 2~12월, 1심서 대법원 재판까지 구속된 상태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기까지 총 56억원을 은닉했고, 200억원은 은닉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이 과정서 은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였던 김 검사가 추가 범죄가 발생하도록 편의를 제공했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피해자연대의 주장이다.

김 검사는 당시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김 전 대표, 이모(사기 전과범·브로커)씨, 한모씨로부터 범죄수사정보를 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검사실서 외부 인사를 만나게 하고 외부와 통화를 하게 하는 등의 편의를 봐줬다는 의심을 받는다.

금융피해자연대에 따르면 검사실로 소환된 횟수는 이씨는 2016년에 94회, 2017년 47회, 2018년 23회이고, 김 전 대표는 2017년 47회, 2018년 23회, 한씨는 2016년 11월부터 2017년 3월 3일까지 50회다. 금융피해자연대는 김 전 대표 등이 공모해 범죄수익을 은닉하는 과정에 관여한 혐의로 변호사 2명을 지난해 5월17일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바 있다.

김 검사는 현 정부서도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장(2022년 7월~2023년 9월) 시절,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사건 수사를 수원지검 2차장 대행 신분으로 지휘한 때의 일이다.


이 전 부지사는 지난 2023년 6월 검찰서 “이 대표도 대북 송금 사실을 알았다”는 검찰 진술을 했다가, 2023년 말부터 줄곧 ‘검찰 술자리 회유 의혹’을 제기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이 청사에서 술자리를 가졌고, 이때 이 대표에게 불리한 진술을 종용했다는 게 골자다.

야권은 김 검사의 IDS홀딩스 이력 등을 근거로 수사에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 상황이다.

문제는 해당 사건의 공소시효가 오는 6월까지라는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부터 직권남용은 7년, 직무유기는 5년의 공소시효를 가지고 있다. 공수처는 김 검사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만 조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의 사건 처리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공수처 수사4부는 지난 10일 검찰로부터 제보자인 처남댁 강미정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자료를 확보하고 강씨를 지난 21일 불러 조사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지난 6일 이 검사를 주민등록법·청탁금지법·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공수처 수사 대상인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는 공수처로 이첩했다.

고발 사주
재수사도


검찰은 사건 제보자에게 수사자료를 사진 촬영해 외부로 유출하게 한 전직 검사 박모씨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기소하면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부분은 공소시효 만료 두 달을 남기고 공수처로 이첩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 18일 정례 브리핑서 “검찰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사건 처리를 위한 시간으로 볼 때 촉박한 건 사실”이라며 “검찰 단계서 기존에 수사한 자료들도 넘어온 게 있고 참고해서 처분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 검사가 받은 공무상 비밀누설혐의의 공소시효가 3월29일로 만료된다”며 “그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처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 내부에서는 검찰이 공소시효 가까운 시점에 사건을 이첩한 것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한 공수처 관계자는 “공수처법에 따라 검찰서 혐의를 발견하자마자 공수처에 이첩을 했다면 사건 처리에 더 수월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검찰은 이번 사건에 대해 혐의를 발견하고도 기소할 때까지 가지고 있다가 이첩했다. 남은 시간으로는 공수처가 할 수 있는 것은 검찰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사실관계만 파악한 후 기소를 위해 다시 검찰에 보내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사실 검찰이 수사 개시할 수 있는 혐의보다 많은 것을 수사한 후 ‘우리 수사 내용대로 기소하라’라는 무언의 압박과 다르지 않다”며 “공수처의 수사를 항상 의심하던 검찰이 이제는 산하 조직서 수사 내용을 확인하듯 공수처를 이용하는 것에 공수처 내부에서는 큰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공수처 검사 출신 법조인도 “바로 공수처에 검사 범죄 혐의 사건을 보내서 수사하라는 것이 공수처법의 취지지만, 공수처가 검찰과 대립각을 세울 만한 힘이 없다 보니, 검사의 범죄 혐의도 검찰이 계속 쥐고 기소할 정도가 돼야 이첩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남은 공소시효 수사력 집중
부실 수사 불명예 털어낼까

공수처는 윤 대통령 구속 취소 이전에 유일한 성과로 꼽히던 고발 사주 의혹에 대해서도 재수사에 착수했다. 공수처는 지난 14일, 고발 사주 사건 제보자 조성은씨가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국민의힘 김웅 전 의원, 전직 대검찰청 간부 8명 등을 직권남용, 위증, 증거인멸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수사3부(부장 이대환)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고발 사주 사건은 2020년 4월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던 손 검사장이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대통령과 부산고검 차장검사였던 한 전 대표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범여권 인사에 대한 고발장을 작성해 총선 출마를 준비하던 김 전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공수처는 손 검사장이 김 전 의원에게 문제의 고발장을 텔레그램을 통해 직접 전달했다고 보고 그를 재판에 넘겼다.

손 검사장은 1심서 징역 1년이 선고됐지만, 지난해 12월 항소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대검 수정관실서 문제의 고발장을 작성했다고 판단했으며 손 검사가 김 후보에게 고발장을 전달한 사실도 인정했다.

무엇보다 “공직선거법 위반 범죄 실행에 관한 암묵적인 의사의 결합 및 공모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통하던 대검 수정관실 소속 검사에게 총선 개입 의도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판결문이 가리키는 ‘진범’은 따로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손준성이 이 사건 메시지를 검찰총장 등 상급자에게 보고로 전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손준성이 검찰총장 등 상급자의 지시에 의해 또는 스스로 수사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를 검찰총장 등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손준성도)수정관실서 윤석열의 처, 장모 관련 형사사건 정보 및 판결문 등을 검색하고 사건 경과를 정리하며, 의혹 제기에 장모의 입장서 대응하는 문건을 작성했다고 시인하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며 당시 손 검사와 윤석열 검찰총장의 관계에 주목했다.

공수처는 당초 손 검사장만 불구속 기소하고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 등 다른 피의자들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지만 법원서 손 검사장의 상급자(윤 대통령 등)가 고발 사주를 지시했을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새로이 고발장을 접수하고 재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궁지에 몰린 공수처가 전·현직 검사에 대한 수사를 통해 살아날 구멍을 찾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수처가 생겨난 후부터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가운데 공소시효도 얼마 남지 않은 사건 처리로 급부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치적 외풍
마지막 기회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공수처의 수사 능력에는 계속 의문점이 있었다”며 “오랜 기간 수사를 해도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 발등에 불똥 떨어진 지금 갑자기 수사력이 올라오길 기대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한 공수처 출신 변호사도 “공수처는 항상 인력 문제를 갖고 있다”며 “게다가 시간이 부족한 지금, 해당 사건들에 아무리 수사력을 집중해도 미흡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검찰이 어물쩍 넘어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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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