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윤석열 탄핵, 헌재 시나리오

기각되면 복잡하다

지난 25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변론을 종결했다. 이는 국회가 지난해 12월14일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지 73일 만에 이룬 중요한 이정표다. 향후 2주가량 재판관 평의, 평결, 결정문 작성 등을 거쳐 선고기일을 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헌재는 선고 2~3일 전 선고 기일을 통보해 왔다.

헌재가 변론 절차를 종결함에 따라 이날부터 재판관 의견을 듣기 위한 평의도 갖는다. 평의는 심판 결론을 내기 위해 재판관들이 쟁점에 관해 의견을 나누고 표결하는 과정으로, 주심재판관이 사건에 대한 검토 내용을 요약해 발표하고 재판관들이 의견을 교환한다.

모든 평의가 이뤄진 뒤 최종적으로 표결하는 평결을 하게 된다.

11일?
14일?

평결에서는 주심재판관이 의견을 내고 임명 일자 역순으로 후임 재판관부터 차례로 의견을 낸 다음 마지막으로 재판장이 마무리한다.


평결이 이뤄지면 결과에 따라 주심재판관이 다수 의견을 기초로 사건에 관한 결정서 초안을 작성한다. 주심재판관이 소수 의견을 내면 다수 의견을 낸 재판관 중 한 명이 초안을 작성하게 된다. 결정문 작성이 완료되면 선고기일을 지정하게 된다.

헌재가 국회 측의 탄핵소추 사유를 검토해 윤 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면서 중대한 헌법·법률상 위반 행위를 했다고 판단할 경우 파면을 선고하면, 그로부터 60일 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반면 중대한 위반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하게 될 경우 기각과 동시에 윤 대통령은 즉시 직무에 복귀한다.

변론이 종결된 후 선고가 이뤄지기까지 예상되는 시간은 대략 2주로, 전직 대통령들의 탄핵 심판 사례를 살펴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14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11일 만에 선고가 내려졌던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한국 정치의 중요한 역사로 남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탄핵이 인용된다면 대한민국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칠 것이고, 반면에 탄핵이 기각된다면 정부의 구조가 어떻게 변화할지 주목해야 할 것이다.

차치하고 헌재의 이번 결정은 단순히 윤 대통령 개인의 운명뿐만 아니라, 향후 한국 정치의 방향성을 결정 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많은 국민이 이 사건을 국가 통치의 정당성을 재조명하는 계기로 삼고 있으며, 이 같은 논의는 국민의 권리와 민주주의의 중요한 필요성을 일깨워 줬다. 따라서, 이번 탄핵 심판의 최종 결정은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맥락서 그 의미가 심오한 사건으로 여겨질 수 있다.


또, 이번 탄핵 심판의 종결과 선고 과정서 사회의 분열된 입장 차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반응은 반반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는 법적 과정을 통해 드러날 사건 이후 정치적 후폭풍을 예고한다. 특히, 제도에 대한 신뢰와 불신,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반드시 탄핵돼야 하는 이유
연산군 보면 윤정부 보여

여기에 더해 헌재의 결정은 정치적 압박과 사회적 스트레스를 동반하게 된다. 유권자로서 시민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방어하기보다는, 법의 원칙과 정의가 구현되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게 된다. 이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일깨우며, 정치적 투명성과 책임을 위한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토대는 국민의 의식과 참여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적극적으로 정치적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 탄핵 인용의 당위성을 짚어보자.

역사적으로도 지도자의 무능과 독선이 국가를 혼란에 빠뜨린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의 연산군을 들 수 있다. 연산군은 국정을 사유화하고 권력을 남용해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으며, 결국 반정(쿠데타)으로 쫓겨났다.

윤 대통령 역시 독단적인 국정운영, 경제 파탄, 외교 실책 등을 반복하며 국민적 실망을 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윤 대통령 탄핵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

연산군은 조선을 대표하는 암군이다. 그는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 사화를 일으키고 언론을 탄압하며, 사치를 일삼았다. 특히, 권력을 사유화하며 국정을 파탄 낸 점이 오늘날 윤석열정부와 닮아있다.

윤 대통령 역시 검찰총장 출신답게 법치주의를 강조했으나, 결과적으로는 법치를 가장한 보복 정치를 펼쳤다. 정적을 탄압하고, 검찰과 경찰을 동원해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방식은 연산군이 사화를 일으켜 사대부를 숙청한 것과 유사하다.

극명한 분열
후폭풍 예고

대통령 임기 동안 행해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조사가 200여회에 달하고, 지난 22대 총선 패배 직전까지 윤 대통령이 단 한 번도 야당 대표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을 통해 그의 국회관과 정치관이 소름 끼치게도 연산군의 정치관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다 오직 권력 의지만을 위해 정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연산군 시대의 경제 실패는 백성들의 삶을 극도로 피폐하게 만들었다. 연산군은 쓸데없는 토목공사를 남발하고, 자신의 향락을 위해 국고를 탕진했다. 그 결과 조선의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으며, 백성들은 극심한 세금 부담을 겪었다.


자기 딸의 자택을 만들어 주기 위해, 또는 사냥터를 만들기 위해서 민가 몇백 채를 헐었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현재 대한민국도 비슷한 상황이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경제성장률은 둔화하고 물가는 폭등하며, 청년 실업률은 악화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금리인상 등으로 국민은 큰 경제적 고통을 받고 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이 같은 경제 위기를 윤 대통령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총선 직전, 갑자기 뜬금없이 마트에 와서는 말도 안 되는 현 경제 상황에 맞지 않은 말을 한 것이 패배로 이어진 상황은 너무도 유명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실효성 없는 정책만 내놓으며 경제 위기를 방관하고 있다. 이런 경제 실정만으로도 윤 대통령의 탄핵은 충분한 이유가 된다.

사회적
스트레스

연산군의 외교 정책은 조선의 국제 위상을 크게 실추시켰다. 그는 외교 감각이 부족해 주변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면서 국익을 해쳤다. 이로 인해 조선은 국제적으로 고립됐으며, 이는 이후의 국정 운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연산군 이후 일어났던 삼포왜란, 을묘왜변과 여진족의 난동 등은 이를 대변한다.


윤정부 역시 외교적으로 크나큰 실패를 거듭했다. 특히 한일 관계서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양보를 반복하며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거의 독도를 포기한 듯한 행보를 계속 보여왔으며, 한국 기업인 라인 또한 그 경영권을 일본에 내주게 생겼다.

또, 미·중 갈등 속에서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미국 중심의 외교 정책을 펴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는 등 국익을 고려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다. 외교의 기본 원칙인 실리 외교를 망각한 채,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외교를 펼친 결과 대한민국의 외교적 위상은 크게 추락했다.

무오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은 백성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했던 군주다. 그는 자기 뜻에 반하는 모든 의견을 억압했고, 공론의 장을 없애면서 독선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특히 그는 간언하는 3사 관리들을 아주 혐오했다.

그래서 2번의 사화(무오사화·갑자사화)를 통해 그들을 제거하고 난 후 3사 관리들에게 ‘신언패(말을 삼가라는 팻말)’를 달게 할 정도로 언론의 자유를 탄압해 군신공치(임금과 신하가 견제를 통해서 균형을 이루는 유교 정치)를 저버린 암군이 됐다.

더군다나 그 당시 경제 상황이 극악에 달하자 민가에서는 연산군을 비방하는 글이 많았는데, 이 글 대부분이 한글로 쓰이자 한글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윤 대통령 역시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대선 당시에는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집권 후에는 일방적인 국정 운영을 고집했다.

그렇게 73일 지났다
외교 실패와 국격 추락

자신을 반대하는 기자들은 출입을 금지시키는 소인배로서의 모습을 보였고, 국민이 원하는 정책보다는 본인의 정치적 신념에 맞춘 정책을 강행하는 경우가 많다. 민심을 외면하는 정권은 결국 국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윤 대통령 탄핵이 거론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 대통령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문재인정부 시절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등 분수에 맞지 않게 벼락 진급으로 검찰 총수가 됐고, 이렇듯 오랫동안 검사 생활만 하다가 아무런 정치 경험도 없이 단지 자신을 키워준 문 대통령을 배반하고 “공정과 상식”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는다”는 허울 좋은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서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게 됐다.

대선후보 선호도 등 정치 호감도가 오르면서 마땅한 대통령 후보가 없던 국민의힘에 영입돼 대통령 후보가 됐던 사람이다. 요즘 ‘명태균 게이트’가 터지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국민의힘의 대통령 후보가 된 것도 공정한 방식이 아닌 조작된 여론조사가 작용한 결과라고 하니 한심스러울 뿐이다.

이렇게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된 그는 2022년 3월9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0.73%, 역대 최소 차이로 꺾고 당선되면서 제2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역사적으로 국정을 실패한 지도자는 결국 국민의 힘에 의해 자리서 내려왔다. 연산군 역시 그의 폭정에 분노한 신하들과 백성들에 의해 중종반정으로 쫓겨났다. 이는 독재적이고 무능한 지도자가 오래 권력을 유지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윤 대통령 역시 임기 초반부터 독단적 국정 운영, 경제 파탄, 외교 실패, 소통 단절 등으로 국민의 실망을 샀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이 같은 실정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따라서 윤 대통령 탄핵은 더 이상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선택이 되고 있다.

지속 시 
큰 혼란

윤정부가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외교, 사회 전반이 더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힘으로 부당한 정권을 심판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할 때다. 윤 대통령 탄핵이 대한민국이 다시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윤 대통령의 국가 반란은 보수와 진보의 정권 유지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의 나라 운명이 걸린 문제다.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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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