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여론 수수께끼 보수 대결집 막전막후

너무 나갔나? 역풍이 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현직 대통령이 구속됐지만 야당은 여전히 가시방석이다. 보수의 결집력은 때릴수록 강해지니 섣불리 손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그토록 바라던 정권교체의 갈림길에 섰지만 딱 한 발 내디딜 힘이 부족하다.

탄핵 정국 속 야당의 지지율이 치솟을 것이란 예측과 달리 오히려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이 지난 한 달 새 급격하게 상승한 것이다.

급격한 상승
반전에 반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서 가결된 이후 민주당은 민생 행보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 대응책을 마련하고 시중 은행장들을 만나 서민금융 지원 방안도 논의했다. 최고위 등에서도 ‘국민’ ‘민심’을 강조하며 민생에 방점을 찍었다.

너무 이르게 샴페인을 터뜨렸다가는 민심의 역풍을 맞을까 오히려 신중하게 메시지를 던져 왔다.

그럼에도 거대 야당이 힘을 못 받는 이유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호감도만큼이나 비호감 역시 높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 지지자를 일컫는 ‘개딸(개혁의 딸들)’ 못지않게 반이재명 정서가 중도층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달 16∼17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이 46.5%로 직전 조사보다 5.7%p 상승했다. 민주당이 39.0%로 3.2%p 하락했다.

해당 기간은 윤 대통령에 체포된 바로 다음 날 이뤄진 것으로 1.4%p로 오차범위 내에 있던 양당 지지도 격차는 오차범위 밖인 7.5%p로 벌어졌다.

야당이 당황한 지점은 집권여당의 정권 연장 여부다. 차기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에서 ‘집권여당의 정권 연장’ 의견이 48.6%로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46.2%)’보다 높게 집계된 것이다. 오차범위 내에서지만 일주일 전 조사와 비교했을 때 정권 연장론은 7.4%p 상승했고 정권교체론은 6.7%p 떨어졌다.

구체적으로 봤을 때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92.6%가,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역시 92.6%가 각각 정권 연장론과 교체론을 지지했다. 무당층에서는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의견이 44.2%로 정권 연장을 지지하는 37.7%보다 많았다.

이번 조사는 무선(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7.8%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쑥 오른 여, 뚝 떨어진 야
예상 못한 대반전…지지율 영끌?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벼랑 끝에 몰리자 다급해진 보수 지지자들이 사활을 걸고 여론조사에 답한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지율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았다)’ 또는 정부·여당을 자화자찬에 취하게 할 ‘신기루’에 빗대는 이들도 있었다.


보수 대권 잠룡 중 한 명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심이 돌아선 원인은 민주당 자신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오 시장은 ‘민주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제목의 게시글을 통해 “국가적 혼란 중에도 민생 안정 대신 정쟁과 위법 논란, 이재명 방탄에 주력한 결과로 여야 지지율이 역전됐는데 왜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 하나. 민심마저 검열하려 드는 ‘오만함’, 여론조사 기관 탓만 하는 ‘책임 회피’, 이재명 방탄만을 위한 ‘소아적 정치’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꿈틀하는 동안 민주당은 여론조사 왜곡·조작에 대한 검증과 대응을 위한 당내 기구인 여론조사 검증 및 제도 개선 특별위원회(이하 여조특위)를 설치했는데, 이 역시 민심의 역풍을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앞서 여조특위는 여론조사 정확성을 더 높일 수 있도록 제도 개선 방향을 중점 과제로 삼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들은 지난 21일 첫 회의를 열고 뒤 “전 세계적으로 여론조사가 정확하지 않지 않나. 트럼프(미국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고, 2022년(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도 다 틀렸다”며 “지난 대선 당시 명태균 게이트 사례서 나타났듯이 여론조사 조작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민주당은 자당 지지율이 높을 땐 일언반구 말이 없더니 국민의힘 지지율이 올라간 후 여론 호도라는 비판을 퍼붓고 있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이양수 사무총장은 원내대책회의서 “김어준표 여론조사만 남기고 모두 통제하겠다는 것이고 카톡 검열에 이어 여론조사 검열까지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 초기부터 보수가 결집한 건 아니다. 보수 단체는 서울 광화문 등 일대서 ‘윤석열 탄핵 반대’ ‘이재명 구속’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섰지만 국회 앞을 메운 탄핵 찬성 집회에 목소리가 묻혔다.

탄핵 반대 집회에 불이 붙은 건 윤 대통령이 관저 내에서 체포영장을 거부하던 시점부터다. 관저 앞을 지키는 여당 의원들의 발언 수위가 세지면서 내내 숨죽이고 있던 보수 지지층의 행동이 거칠어진 것이다.

폭동 사태
다시 순풍?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여당이 나서서 오동운 공수처장과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판사를 즉각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골단’ 기자회견을 주선한 국민의힘 김민전 의원 역시 “윤 대통령이 다시 출마할 일도 없는데 이 엄청난 (부정선거)침묵의 카르텔을 깨기 위해서 대통령직까지 걸었다”고 말해 군불을 땠다.

국민의힘을 든든한 ‘빽’으로 삼은 극우세력은 윤 대통령 수호대를 자처했다. 윤 대통령이 메시지를 내면 극우세력이 스피커 역할을 하고, 이를 지켜보는 여당 의원이 맞장구를 치면서 점점 더 결집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대통령이 벼랑에 몰리면 아스팔트 지지층이 강하게 결집하는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된 때에도 광화문 곳곳서 보수단체들이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혐오감이 짙게 깔린 시위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헌법 수호 시위와 반헌법 시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혐오의 여부”라며 “국회 앞 시민의 분노가 건강한 저항이라면 윤 대통령 지지자의 분노는 혐오다. 이 같은 혐오 시위는 표현 방식과 양상에서도 전혀 다르다는 것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윤 대통령 구속 직후 윤 대통령 지지층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서울서부지법과 헌법재판소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고 경찰을 폭행하는 등 난동을 피운 것이다.

해당 사태를 지켜본 한 야권 관계자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 일부 보수세력이 과하게 결집한 결과”라고 말했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계기로 보수가 강하게 집결할 가능성도 있지만, 멀리 본다면 중도층의 민심이 이들로부터 돌아서지 않았겠냐는 설명도 덧붙였다.

민주당이 못하면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지만, 반대로 민주당이 잘한다고 해서 혜택이 당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복잡한 셈법이 난무하는 여의도에서는 서로의 반사이익에 기댄 채 여론 주도권을 쥐는 쪽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서부지법 폭동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민주당 강유정 대변인은 “헌법기관에 대한 도전이자 국가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는 반체제적 범죄”라며 내란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민주 공화국의 근간을 부정한 12·3 내란 사태는 아직 진압되지 않았다”며 “민주당은 반국민 세력의 준동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곳서
실금이?

민주당 등 야5당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의원직 제명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이밖에도 민주파출소·민주당 허위조작 가짜 뉴스 방송 제보 등을 통해 가짜 뉴스와 불법 현수막 등을 통한 허위 사실 유포를 제보받아 모니터링하겠다는 방침이다.

여론전으로 국면이 바뀔 때마다 여야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국민의힘 상승 그래프가 장기간 이어진다면 탄핵 정국 이후 치러질 조기 대선서 민주당이 집권할 것이란 확신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위기감을 느낀 이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대표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대권주자로 꼽히는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우리는 저들과 다르게 갑시다. 달라야 이길 수 있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김 전 지사는 서부지법 폭동 사태를 비판하며 “저들의 모습에서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을 찾았다. 극단적 증오와 타도,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일방주의, 독선과 오만, 우리는 그와 정반대로 가야 한다”며 “저들과 달라야 이길 수 있다. 우리가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 이제 대한민국의 미래는 우리에게 달렸다”고 밝혔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보다 직접적으로 이 대표를 겨냥했다. 임 전 실장은 “나쁜 대통령을 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체포·구속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면서도 “원인이 상대에게 있다고 해도 일상이 돼버린 적대와 싸움의 정치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안에 원칙을 소홀히 하며 자신의 위치를 먼저 탐하고, 태도와 언어에 부주의한 사람들이 지지자들에게 박수 받고 행세하는 게 참 불편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따뜻함을 잃어버리며 대화와 타협을 가볍게 여기고 이 대표 한 사람만 바라보며, 당내 민주주의가 숨죽인 지금의 민주당은 과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아울러 “상대의 실수에 얹혀서 하는 일은 지속하기가 어렵다. 성찰이 없는 일은 어떻게든 값을 치르게 된다. 민주당은 지금 괜찮느냐”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이재명 한 사람만 바라봐”
갑자기 시작된 집안싸움 역풍에 역풍

민주당 최대 원외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혁신회의)는 곧바로 임 전 실장을 겨냥하는 듯한 논평을 냈다.

혁신회의는 12·3 내란 사태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이 와중에 작금의 정치 현실을 만든 당사자들이 말을 보탰다. 반성은커녕 여전한 기득권의 태도로 가르치려 나섰다”며 “‘일상이 돼버린 적대와 싸움의 정치’를 운운한다. 지금 민주당이 국민과 함께 싸우는 대상은 민주 공화국의 적(敵)”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어 “본인이 하면 민주화 운동이고 남들이 하면 그저 ‘적대와 싸움의 정치’일 뿐인가. 내로남불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알량한 정치적 자산을 챙기기 위한 아군을 향한 총질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이기적인 자폭행위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재명 대표와 함께 오직 국민만 보고 당내 기득권을 반드시 극복하고 혁신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의 고민은 이 대표 외에 경쟁력·대중성 있는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보수세력이 “이재명은 안 된다”고 외쳐도 민주당이 이 대표를 선두로 내세우는 이유다. 이 대표 체제로는 조기 대선을 이길 수 없다는 쪽과 이 대표 외에 대안이 없다며 맞서는 이들의 신경전이 예고된다.

아직 내란 사태가 채 수습되지 않은 상태서 같은 편끼리 힘겨루기에 나설 경우, 또 다른 역풍이 불어닥칠지 지켜보는 이들도 노심초사하는 모양새다.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도 윤 대통령을 쉽게 버릴 수 없다.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대통령이지만 출당은커녕 탈당 요구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 변론기일이 거듭될수록 보수 결집력이 약해지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야권 전면에 깔려 있지만, 조기 대선을 앞두고 더욱 강하게 뭉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보수의 대선 레이스가 한남동 관저 집회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간다면 지금보다 더욱 격양된 양상을 보일 것이란 관측도 제시된다.

자신감도
과유불급

윤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부정선거 의혹이 민주당에 순풍이 될지 눈길이 쏠린다.

관련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 상황은 충분히 야당에 유리하다. 대통령이 별안간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는데 (민주당)지지율이 제자리를 맴도는 것은 사소한 실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라며 “무리해서 여론전을 펼치다 보니 민심에 반하는 순간이 생긴다. 중도층, 그중에서도 정치 저관여층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지 이 부분은 신중히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고 조언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여론조사 희비, 뭐가 문제?

더불어민주당이 연일 여론조사 결과표를 뜯어보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정권교체론보다 정권 연장론을 지지하는 일부 여론조사에 의문을 품은 것이다.

민주당에선 보수 성향 지지자가 활성화된 ‘보수 응답자 과표집’ 등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일부 여론조사 업체는 편향적인 질문을 함으로써 공정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고도 분석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특정 업체가 아닌 여론조사 전반을 들여다볼 예정”이라며 “여론조사 수행 기관의 자격 요건을 갖췄는지를 비롯해 응답률 등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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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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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