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 선두’ 이낙연 흔드는 세력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09 10:35:40
  • 호수 12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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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의 토사구팽? 적은 내부에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1위 자리가 위태롭다. ‘어대후(어차피 대선후보)’라는 평가에 균열이 생겼다. 11월 위기론은 현실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이야기다. 잇따른 악재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를 흔드는 세력의 존재를 의심한다.
 

▲ 경제상황 점검회의서 발언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꽃가마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당 안팎에서 악재가 연달아 터졌다.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어대후 이낙연’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옛일이 됐다. 

고꾸라진 
지지율에…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5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지난 2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21.5%의 지지율을 기록해 이재명 경기도지사(21.5%)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여권을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던 윤석열 검찰총장은 17.2%로 3위에 올랐다.

이 대표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동 기관 조사에서 30.8%를 기록했던 이 대표의 지지율은 7월 25.6%, 8월 24.6%, 9월 22.5%를 거쳐 10월 21.5%로 떨어졌다. 4개월여 동안 9.3%p 빠진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는 지난 8·29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럼에도 지지율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컨벤션 효과(전당대회와 같은 정치 이벤트를 연 직후에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마저 이 대표의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 대표와 함께 1위에 오른 이 지사는 60대와 7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이 대표를 앞섰다. 즉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요 연령층인 30대와 40대에서 이 지사가 이 대표를 누른 것이다.

현재 추세라면 다가올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 지사가 이 대표를 앞설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에게 잇따라 악재가 겹친 결과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 논란이 그중 하나다. 앞서 민주당은 소위 무공천 조항으로 불리는 당헌 96조2항에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신설하는 데 대한 찬반조사를 실시했다. 

총 투표수 21만1804표 중 18만3509표(86.64%)가 찬성했다. 박원순·오거돈 등 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성비위 행위로 실시되는 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6월부터 하락세 계속 왜?
잇단 악재에 리더십 흔들

이 대표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찬반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당원의 뜻이 모였다고 해서 서울·부산 시정의 공백을 초래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우리 잘못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후보를 내는 것이 민주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는 논리다. 이 대표는 이어 “민주당은 철저한 검증, 공정 경선 등으로 가장 도덕적으로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의 당헌 개정 결정에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원조 친노’ 인사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당헌을)지금 와서 손바닥 뒤집듯 저렇게 뒤집었다. 너무 명분 없는 처사”라고 일갈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 역시 비판에 가세했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고성준 기자

강은미 원내대표는 “정치적 손익만을 따져 손바닥 뒤집듯 쉽게 당의 헌법을 바꾸는 것을 당원 투표라는 미명으로 행하는 것이 어디 자기 얼굴에만 침을 뱉는 것이겠느냐”며 “성 비위라는 중대한 범죄에 연루된 단체장의 보궐 선거에 또 다시 자당 후보를 출마시키려는 철면피는 최소한 피해자들에 대한 어떤 반성도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찬반조사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26.35%에 불과한 총 투표율 때문이다. 민주당 당규 38조에 따르면, ‘전 당원 투표는 전 당원 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로 효력을 발휘한다. 전 당원 투표의 유효 투표율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번에 실시한 투표는 의결 절차가 아니라 (당원들의)의지를 묻는 것이고, 당헌 개정은 내일(지난 3일) 열릴 중앙위 의결을 통해서 절차가 완료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권이 최종 목표인 이 대표에게 당헌 개정 논란은 분명한 악재다. 민주당 박수현 홍보소통위원장은 “당 대표로서, 대권주자로서 민주당과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감내해야 할 외길이었다. 이 대표는 머뭇거리지 않고 독배를 들었다”며 일련의 논란을 평가했다.

욕먹어도
공천 강행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국회 사의 표명 사태’ 역시 이 대표에게 몰아닥친 악재다. 지난 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이하 기재위) 전체회의 도중 “(대주주 기준과 관련해)최근 2개월간 갑론을박이 전개된 것에 대해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사태는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나온 돌발 발언이었다. 전체회의에 배석했던 여야 의원들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순간 정적이 흐른 가운데 민주당 의원들은 홍 부총리의 발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설사 결심했더라도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 책임 있는 공직자의 태도인가”라며 “기성 정치인의 정치적 행동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질타했다.

민주당 소속의 윤후덕 기재위원장은 “질문도 없는 상황에서 사의 표명 사실을 스스로 밝혀 위원들이 애써 준비한 정책 질의와 예산 심의를 위축시켰다”며 “위원회 권위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부총리의 국회 사의 표명 사태는 청와대가 사직서를 반려하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반려가 있고 난 후 홍 부총리는 “인사권자 뜻에 맞춰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지 하루 만에 다시 부총리 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유인태 국회사무총장

그러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사의를 표명한 이유로 대주주 기준을 언급했다. 민주당과 정부는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펼쳤다.


홍 부총리의 기획재정부는 정책의 일관성,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 대표의 민주당은 현행 10억원의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맞섰다. 

분파하면  
이삭줍기?

결론은 민주당의 승리였다. 고위당정청 회의는 현행 10억원을 유지하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은 그동안 쌓아 왔던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대표가 줄곧 강조해왔던 당정청 ‘원팀’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원팀 기조는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의 연승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19대 대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내리 4연승을 이뤄내는 원동력이었다.

이 기간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을 중심으로 뭉쳤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거리만 다를 뿐 모두 친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당정 사이에 균열이 발생함으로써 민주당이 당장 내년 4월에 열리는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부터 원팀을 이룰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일련의 과정이 거대여당의 폭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선거에서 악재다.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국면이었던 지난 3월, 민주당 이해찬 당시 대표와 홍 부총리가 정면충돌한 바 있다.


이 대표는 홍 부총리를 향해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면 나라도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홍 부총리는 “혹여나 자리에 연연해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이라며 응수했다. 당시에도 민주당은 홍 부총리의 반대를 꺾고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관철시켰다.
 

▲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이 대표의 대권 명운을 가늠할 중요한 정치 이벤트다. 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성비위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만약 패배한다면, 이는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표는 당정 갈등 논란에 대해 “(대주주 기준은 당정이)그다지 갈등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민주당 내)일부 의원들의 충정은 알겠지만,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친문이 이 대표와 결별하고, ‘독자노선’을 선택할 가능성도 대두됐다. ‘부엉이 모임’ 사조직 논란으로 잠행하고 있던 친문 핵심 인사들이 ‘민주주의4.0 연구원(이하 연구원)’ 창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 연구원은 오는 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코로나19와 신문명’이라는 주제로 창립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
결국 양갈래 독자노선으로?

과거 부엉이 모임을 주도했던 친문 인사들이 대거 연구원에 합류한다. 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연구원의 초대 의장을 맡으며, 부엉이 모임 출신으로 유일하게 원내대표로 당선된 홍영표 의원과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 중 전해철 의원이 가세한다.

그 외에도 다수의 청와대 출신과 86그룹 민주당 의원, 민간전문가 다수가 연구원에 합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엉이 모임 사조직 논란을 의식한 듯 연구원은 정책 개발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정치적 논의보다는 코로나19 시대에 맞춰 정책 어젠다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 그러나 내년부터 매해 굵직한 선거가 예정돼있어 정치권은 연구원이 선거 국면에서 친문 후보를 전면에 내세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연구원에 합류한 홍영표 의원은 이 대표가 대권 도전을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나면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되며, 전해철 의원은 민주당 내부에서 원내대표 출마 가능성이 언급된다. 민주당 당대표·원내대표 선거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내년 5월에 치러진다. 현재 연구원은 싱크탱크의 성격이 강하지만, 향후 정치세력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친문은 이 대표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친문의 지지는 지난 8·29전당대회 당시 이 대표가 당권을 잡을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이 대표는 민주당 권리당원으로부터 63.73%의 득표율을 얻었다.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당원인 권리당원의 상당수는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민주당에 입당한 친문 성향 유권자들이다. 이 대표가 친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한 이유다.

친문이 잠행을 깨고 전면에 나선 이유에 대해 정치권은 대선주자들의 지지부진한 지지율을 꼽는다. 이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지만, 누구 한 명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당대회 전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독주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대표와 이 지사 모두 친문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도 잠행을 깬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같은 지지율 답보 상태가 연말까지 계속되면 친문이 제3의 인물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친문 세력 일부라도 흡수해야 당내 경선에서 승산이 있다. 친문 인사들은 이낙연 체제에서 당의 요직에 대거 등용됐다.

일등공신들
분파 가능성도

박광온 의원은 민주당 사무총장, 홍익표 의원은 민주연구원장, 최인호 의원은 수석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 출신의 김영배 의원은 당 대표 정무실장, 청와대 일자리수석 출신의 정태호 의원은 전략기획위원장으로 기용됐다. 이 대표 측은 주요 선거를 앞두고 발생할 수 있는 친문의 분파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낙연 싱크탱크’ 실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싱크탱크 ‘연대와 공생’이 내년 3월 출범을 준비 중이다.

출범 이후 대선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론 이낙연표 대선 공약을 만드는 작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싱크탱크의 대표를 맡을 것으로 전해지며, 민주당 내 경제공부 모임인 ‘경국지모’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최운열 전 의원과 신경민 전 의원 등이 싱크탱크에 합류한다.

이 대표가 내각을 이끌던 시절 장관을 지낸 관료 출신들도 일부 싱크탱크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경제 분과 소장에는 김재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 분과 소장에는 정근식 서울대 교수, 정치 분과 소장에는 김남국 고려대 교수, 국민건강 분과 소장에는 김재상 이화여대 교수가 내정됐다. 

싱크탱크는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시점인 내년 3월 법인으로 전환해 정식 싱크탱크로 진화할 예정이다.

이 대표가 국무총리였던 시절 곁을 보좌한 남평오 전 총리실 민정실장이 실무를 준비한다.

친문 인사들이 주축이 된 민주주의4.0 연구원과 함께 본격적인 세력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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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