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금…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시대 막전막후

윤석열 두고서 사실상 총장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현재 검찰 최고의 실세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이 지검장의 위세는 기수를 넘나든다. 많이 무뎌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상명하복 문화가 남아 있는 검찰서 보기 드문 장면들이 나오고 있다. ‘차기 검찰총장’이라는 말을 넘어 ‘이미 검찰총장’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 윤석열 검찰총장(사진 가운데)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 안팎서 입길에 오르고 있다. 지난 7일 검찰 고위 간부 인사 이후 사의를 표명한 광주지검장이 이 지검장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이 지검장이 수사팀 검사에 대한 감찰을 늦추기 위해 고검장을 찾아가 압박했다는 말도 들린다. 

추 오고
승승장구

“이성윤 지검장이 검사입니까? 저는 (이 지검장이)검사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이 <조선일보>와의 통화서 한 말이다. 문 전 지검장은 검찰 고위 간부 인사서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에 임명되자 사의를 표했다. 이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이번 인사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문 전 지검장은 지난 8일, 이프로스에 사직 인사를 남기면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치명적인 잘못을 범했다. 검사 26년째입니다만, 강요미수죄라는 사건이 이렇게 어려운 사건인지 처음 알게 됐다”고 토로했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서 맡아 수사하고 있다.

이어 “이 사건은 검찰청법에 규정된 총장의 지휘감독권을 박탈하는 위법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까지 발동된 사건”이라며 “‘차고 넘친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느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 증거들이 확보됐다면, 한동훈 검사장은 감옥에 있었을 것”이라며 “검사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될 행태를 했다는 것인데 그런 범죄자를 지금도 법무연수원에 자유로운 상태로 둘 수 있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천하에 인재는 강물처럼 차고 넘치듯이 검찰에도 바른 인재들이 많이 있다. 그 많은 인재들을 밀쳐두고 이번 인사에 관해서도 언론으로부터 ‘친정권 인사들’이니 ‘추미애의 검사들’이니 하는 편향된 평가를 받는 검사들을 노골적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이런 행태에 대해 우려스럽고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박정부 시절 한직 전전
문정부 들어 요직 거쳐

또 “사람이나 조직의 역량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특히 검사의 역량은 오랜 기간 많은 사건들을 하면서 내공이 갖춰지는 것”이라며 “검사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만 다 같은 검사가 아니다. 각자가 키운 역량만큼,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문 전 지검장은 지난 2월에도 이 지검장을 비판한 적이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당시 청와대 대통령 공직기강비서관)를 기소하라고 지시했음에도 이 지검장이 이를 따르지 않은 것에 대해 심각한 문제라는 취지로 발언했다. 최 대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 조모씨의 인턴증명서를 허위로 발급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반부패 수사 2부는 최 비서관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겠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 지검장은 기소 결재와 승인을 미뤘다. 이 지검장이 윤 총장의 직접 지시에 불응하자, 윤 총장은 수사팀에 직접 지시를 내렸다. 이 문제를 두고 문 전 지검장이 이 지검장을 공개 저격한 것이다. 
 

▲ 윤석열 검찰총장

최 비서관 기소 문제를 두고 윤 총장과 이 지검장이 맞붙었을 당시, 법무부는 “고위공무원 사건은 지검장의 결재·승인을 받아 처리해야 하는 것이고, 이를 위반하면 검찰청법 및 위임전결 규정 등에 대한 위반 소지가 있다”고 이 지검장의 손을 들어줬다. 


실제 이 지검장은 검찰 내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로 꼽힌다. 전북 고창 출신의 이 지검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로, 1994년 서울지검 검사로 임관해 전주지검 부장과 광주지검 특수부장, 인천지검 마약·조직범죄 수사부장,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장,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장을 거쳐 금융위원회 조사기획관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세월호 때
수사본부장

문 대통령과의 인연은 노무현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2006년 대통령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으로 파견돼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을 보좌했다. 2014년 광주지검 목포지청장을 지내면서 세월호 참사 당시 검경 합동수사본부장도 역임했다.

이 지검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추미애 법무부’가 출범한 이후부터는 존재감도 뚜렷해졌다.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을 역임하다 올해 1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취임했다. 문정부 들어 검찰 내 빅4로 불리는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대검 공공수사부장 중 세 자리나 거쳤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취임 직후 단행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서 윤 총장의 측근을 대거 교체했다.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박찬호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윤 총장과 호흡을 맞춰왔던 수족들이 줄줄이 갈려나가는 사이 이 지검장은 ‘검찰의 꽃’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됐다. 

이 지검장은 취임사를 통해 “저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검찰은 인권을 보호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한다”며 “검찰권 행사의 목표와 과정도 이러한 국민들의 인권보호의 관점서 생각하고 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사의 단계별 과정 과정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절제와 자제를 거듭하는 검찰권 행사가 필요하다”며 “절제된 수사 과정을 통해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고 인권보호도 이뤄져야 종국적으로는 당사자 모두가 수긍하는 수사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이 지검장의 취임사는 문 대통령이 조 전 장관과 가족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9월 검찰을 향해 전달한 메시지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민정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은 국민을 상대로 공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기관이므로 엄정하면서도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의 행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지검장과 법무부 간의 호흡은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서 빛을 발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으로 윤 총장과 추 장관이 강하게 대립했고, 검찰 내에서도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갈등을 빚었다. 당시 이 지검장은 윤 총장과 대검의 대척점에 섰다.

검찰 빅4
세 자리나

단초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두고 윤 총장이 전문수사자문단(이하 전문자문단)을 소집한 것이다. 전문자문단은 외부 형사법 전문가들이 사건의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다. 추 장관은 전문자문단 소집을 두고 ‘즉각 중단하라’는 시그널을 여러 차례 윤 총장과 대검에 보냈다.

지난 6월30일 서울중앙지검은 전문자문단 관련 절차를 중단해달라고 공개적으로 대검에 건의했다. 또 대검의 지휘 없이 수사팀이 독자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윤 총장이 소집한 전문자문단에 서울중앙지검이 제동을 걸자, 이 지검장이 공개 항명했다는 말이 나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전문자문단 소집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 “비정상적이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됐다”고 비판했다. 반면 대검은 “(채널A 기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고 했다면 범죄의 성립과 혐의 입증에 대해 지휘부서인 대검을 설득했어야 한다”며 “범죄가 성립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설득하지 못한 상황서 특임검사에 준하는 독립성을 달라고 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마저도 저버리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추 장관은 이 지검장의 공개 항명 사흘 뒤인 7월2일 전문자문단 소집을 중단하고 사실상 수사서 윤 총장을 배제하라는 내용의 수사지휘를 내렸다. 2005년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김종빈 검찰총장에게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휘권을 발동한 이후 15년 만에 나온 수사지휘권 행사다. 헌정 사상 두 번째다.

극한으로 치닫던 윤 총장과 추 장관의 갈등은 윤 총장이 수사지휘권을 사실상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일단락됐다. 이 과정서 윤 총장의 영향력은 미미해졌고 상대적으로 반대편에 있던 이 지검장의 위세가 높아졌다. 서울중앙지검은 내친 김에 윤 총장의 최측근이면서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 연루된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에 대한 수사에 몰두했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 책임론에도
법무부 재신임 핵심참모 전면에

전세가 뒤집힌 건 한 검사장과 이동재 전 채널A 기자 간의 녹취록 전문이 공개되면서다. 앞서 KBS는 한 검사장과 이 전 기자의 녹취록을 근거로 ‘유시민 총선 관련 대화가 스모킹건…수사 부정적이던 윤석열도 타격’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보도했지만 이 전 기자 측에서 사실 관계가 다르다며 녹취록 전문을 공개한 뒤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한 검사장은 KBS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한 검사장의 휴대폰 유심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서 정진웅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과 한 검사장이 몸싸움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한 검사장은 정 부장검사가 갑자기 달려들었다는 입장이고, 정 부장검사는 한 검사장이 증거인멸을 하려 해 제지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 검사장은 그 자리서 정 부장검사를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했고, 서울고검에 감찰도 요구했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또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한 검사장의 카카오톡 계정을 불법으로 감청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녹취록 전문 공개와 검사 간의 육탄전은 서울중앙지검이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특히 정 부장검사가 한 검사장과의 몸싸움 이후 병원서 링거를 맞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누리꾼들의 조롱이 더해졌다. 

정 부장검사에 대한 서울고검의 감찰을 두고 이 지검장이 고검장과 크게 충돌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이 지검장은 김영대 서울고검장(현재 퇴임)을 찾아가 정 부장검사 등에 대한 감찰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김 고검장이 합법적인 감찰에 응할 것을 요구하자 이 지검장은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한다. 

김 고검장은 사법연수원 22기로 이 지검장보다 한 기수 선배다. 일각에선 이 지검장의 행동이 현재 검찰 내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 지검장의 위세가 기수를 넘나들 정도로 커졌다는 분석이다. 또 한편에서는 이 지검장의 행동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선배 고검장
들이받았다?

이 지검장에 대한 법무부의 신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검언유착 의혹 사건서 한 검사장의 공모를 입증하지 못한 데다, 정 부장검사의 몸싸움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이 지검장의 책임론이 불거졌다. 하지만 법무부는 지난 7일 검찰 고위간부 인사서 도리어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인사로 이 지검장 라인은 검찰 전면에 대거 포진됐다. 이 지검장은 서울중앙지검장에 유임됐다. 이 지검장의 핵심 참모인 이정현 서울중앙지검 1차장과 신성식 3차장은 대검 공공수사부장과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나란히 승진했다. 두 사람은 정 부장검사의 몸싸움과 부산 녹취록 유출 의혹과 관련해 각각 감찰과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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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