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최순실 게이트> ⑥그녀한테 물린 기업들

“안주면 죽인다는데 어쩝니까”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대기업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을 대상으로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는 까닭이다. 외압에 따른 상납이 대가를 바란 술수쯤으로 비춰질까 염려하는 기색도 역력하다.

재벌닷컴과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은 모두 53개사로 집계됐다. 절반에 가까운 23개사는 10억원 이상의 출연금을 냈다. 최순실씨가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기부한 돈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800억원에 육박한다. 대부분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를 통해 모금됐다.

상납액 수백억
불똥 떨어지나

기부금 액수는 현대자동차가 68억8000만원으로 가장 많고 SK하이닉스 68억원, 삼성전자 60억원, 삼성생명 55억원, 삼성화재 54억원, 포스코 49억원, LG화학 49억원 등의 순으로 알려졌다. 그룹 전체로 보면 삼성그룹이 두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해 액수가 가장 많다. 이밖에 현대차그룹 82억원, SK그룹 111억원, LG그룹 78억원, 포스코 49억원, GS그룹 42억원, 한화그룹 26억원 등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이 여윳돈을 선뜻 내놨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낸 기업 4곳 중 1곳은 적자기업이었다. 지난해 적자로 법인세를 내지 않은 기업은 53곳 가운데 12개사로 전체의 22.6%를 차지한다.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별도기준 477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2년 연속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음에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모두 10억원을 출연했다.


지난해 4500억원대의 적자를 낸 두산중공업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4억원을 냈으며 대주주인 두산 역시 7억원의 출연금을 건넸다. 수백억대의 적자를 기록한 CJ E&M과 GS건설도 각각 8억원과 7억8000만원을 내놨고 2년째 적자를 낸 아시아나항공과 GS글로벌도 각각 3억원과 2억5000만원을 출연했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내거나 최씨 개인비리 의혹에 연루된 대기업들은 검찰 수사망을 피하기 힘든 상황이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 이어 이틀 후에는 롯데그룹 정책본부 소진세 사장과 이석환 상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해 다음날 새벽까지 조사했다.

지난달 31일에는 박영춘 SK그룹 전무를 참고인 신분으로 불렀고 나머지 기업들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참고인 조사를 예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와 SK를 시작으로 최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했다는 의혹 등을 받고 있는 대기업 관계자를 우선적으로 소환할 예정”이라며 “재단에 출연한 나머지 대기업 관계자들도 차례로 불러서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53곳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 출연
은행 거래자료 검찰 제출…계좌 추적 본격화

당초 대기업들은 사회공헌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내놓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안종범 전 수석 등 청와대가 지시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재단이 기업들의 제안에 따라 만들어졌고 모금과정도 자발적이었다는 기존의 주장을 번복한 것이다. 더욱이 기부금과 관련해 이사회를 열어 결의한 기업은 KT와 포스코 두 곳 뿐이었다.

정상적인 기부가 아닌 청와대 압력에 의한 불법적인 뇌물공여의 성격이었다면 법적 처벌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재계로 불똥이 튀지 말란 보장이 없다. 지금껏 드러난 사례들이 이 같은 견해에 신빙성을 더한다.
 


삼성전자는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를 지원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9∼10월 경 최씨 모녀가 소유한 스포츠 컨설팅 회사 ‘코레스포츠’와 10개월짜리 컨설팅 계약을 맺었다. 명마의 구입·관리, 말 이동을 위한 특수차량 대여, 현지 승마 대회 참가 지원 등을 컨설팅하는 35억원 수준의 계약이었다. 10억원은 그랑프리 대회 우승마 구입에 쓰였는데 독일서 이 말을 타고 훈련한 사람은 정씨 한 명뿐이다.

승마협회의 지난해 예산이 40억원인 점을 감안할 때 정유라 지원규모는 승마협회 한 해 예산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다. 코레스포츠는 최씨 모녀가 100% 지분을 소유한 회사로 지난해 11월 비덱(Widec)스포츠로 이름을 바꿨다.

거미줄처럼…
엮인 연결고리

삼성전자는 정씨를 위해 승마장을 구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문구업체인 모나미의 해외 계열사가 지난 5월 230만유로를 들여 독일 엠스데텐의 ‘루돌프 자일링거’ 승마장을 샀는데 삼성전자가 모나미를 앞세워 구입했다는 것이다. 모나미가 삼성과 99억원대 프린터·사무기기 관리용역 계약을 맺었다는 점이 이런 의혹의 근거다.

포스코는 최씨가 실소유주인 스포츠컨설팅 업체 ‘더블루K’와 배드민턴팀 창단을 논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황은연 사장은 당시 더블루K 대표였던 조모씨를 본인 집무실서 만나 팀 창단 문제를 상의했다. 이후 포스코 측 실무자와 몇 차례 접촉한 조씨는 최씨에게 “포스코가 배드민턴팀 창단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문자메시지로 보고했다.

당시 더블루K는 설립된 지 불과 한 달 남짓된 소규모 회사였다. 이런 소기업 대표를 황 사장이 직접 만난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황 사장이 조씨 배후에 최씨가 있음을 사전에 알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포스코는 지난해 광고대행 계열사였던 ‘포레카’를 매각하는 과정서 차은택씨 측근들에게 회사를 넘기려 했다는 논란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포레카의 전 대표인 김모씨가 매각 과정서 입찰에 참가한 A사 대표 B씨를 회유·협박했다는 의혹이다. 

KT는 차씨가 운영하는 광고 회사와 연루됐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포레카 인수가 무산된 후의 일이다. 올해 2∼9월 중 집행된 TV 광고 물량 상당수를 차씨와 그 측근들에게 몰아줬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이 기간 중 차씨가 대표인 아프리카픽쳐스는 6건의 방송광고 제작에 참여했고 차씨 측근인 김홍탁씨가 대표인 플레이그라운드커뮤니케이션즈는 5편의 방송광고를 대행했다. KT 측은 “지적된 광고들 모두 정상적인 수주 과정을 거쳤다”며 의혹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K스포츠재단이 롯데그룹에 재단 출연금 이외의 돈을 요구하자 70억원을 따로 낸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에선 궁지에 몰린 롯데가 정치권의 힘을 이용해 사건을 축소·무마하고자 했다는 정경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다만 롯데그룹은 K스포츠재단에 후원했던 70억원을 열흘 만에 되돌려 받았다.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회장의 3남 김동선씨가 승마 국가대표로 활동했던 만큼 자연스럽게 최씨와 연결돼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은행 계좌추적
좁혀오는 수사


최씨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재계를 넘어 금융권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검찰은 신한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 IBK기업은행, SC제일은행, 한국씨티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 8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KB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논란의 대상이다.

KB국민은행은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최씨 소유 건물 등을 담보로 여러 차례 담보 대출을 했다는 특혜대출 의혹을 받고 있다. 일단 최씨가 언니 최순득씨의 남편 소유 빌딩에 입점해있는 KB국민은행서 약 5억원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최씨 소유 서울 신사동 미승빌딩에 3억1200만원의 근저당을 설정한 곳은 KB국민은행 봉은사로지점이었다. 최씨는 지금은 매각한 경기도 하남 건물을 담보로 1억8000만원, 2013년에는 강원도 평창 땅을 담보로 1억원을 해당 KB국민은행 봉은사로지점서 빌렸다.

곳곳서 드러난 상납 흔적
권력 돈줄 의혹에 초긴장

KEB하나은행은 최씨의 딸인 정유라씨에게 편법 외화대출을 해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12월 KEB하나은행서 딸 정유라씨와 공동명의인 강원도 평창의 10개 필지를 담보로 약 25만유로(3억2000만원)를 빌렸는데 계좌로 송금받지 않고 지급보증서를 발급받아 독일 현지서 외화로 받았다.

이를 두고 계좌이체나 송금기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급보증서을 발급받은 것은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씨가 연루된 비리 혐의에 재계와 금융권이 일조했다는 정황은 그만큼 최씨의 영향력이 막강했음을 짐작케 한다. 최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면 엄청난 후폭풍이 뒤따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구조건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계에선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7월 추진됐던 이동통신사와 케이블TV의 1조원대 빅딜인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불발에 최씨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씨의 지시로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이 SK그룹에 80억원을 요구했지만 무산됐고 이후 인수합병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은 정치권과 학계서 1년 념게 찬반논쟁을 벌였던 사안이다. 업계는 찬반논쟁들을 종합해 볼 때 양사의 인수합병이 조건부 인수 쪽으로 가닥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양사의 M&A를 불허했다. 재계는 SK텔레콤의 M&A 불발이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난감한 재계
발목 잡히나

한편 최씨와 함께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들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번 사태가 확산될 경우 기업 활동에 차질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자칫 반 기업정서가 확산될 것을 염려하는 인상이 짙다.

한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 때문에) 피해를 입은 기업들이 제대로 항변할 수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진상규명 없이 의혹만 확산될 경우 기업의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최순실이 고마운 기업들

‘최순실 게이트’에 엮여 고생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덕을 보는 곳도 눈에 띈다. 이번 사태에 앞서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업들이다. 롯데그룹 비리, 한미약품 공매도,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등은 최순실게이트가 집어삼킨 대표적인 사안이다.

4개월에 걸친 검찰의 롯데그룹 총수비리 수사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불구속 기소(횡령·배임 등)로 마무리됐다. 신 회장은 지난달 25일 대국민 사과와 함께 그룹 쇄신안을 발표했지만 계열사 순환출자 고리는 여전히 복잡하다. 

한미약품 주가 조작 의혹 수사 중인 검찰은 최근 증권사·운용사 13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대상 기업들은 한미약품이 독일 제약업체 베링거인겔하임과 계약한 85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건이 해지됐다는 공시를 내기 전에 공매도를 한 곳들이다. 이들이 공시 전에 미리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게 확인되면 개미투자자들의 집단소송도 예상된다.

하지만 검찰은 공매도 혐의 입증에 애를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된 혐의가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자료를 분석하는 작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사안 역시 최순실게이트 탓에 사람들의 관심에서 한발 비켜갔다. 정부는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대우조선해양을 일단 살려두기로 방침을 세웠다. 지난달 31일 조선업 구조조정 내용 등을 담은 ‘조선,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빅3’(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와 조선 3사는 공공 선박 조기 발주로 수주 절벽을 해결하고, 2018년까지 직영인력 2만명을 감축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알맹이 빠진 구조조정이라는 비난과 함께 차기정부로 짐을 떠넘긴다는 뒷말이 계속되고 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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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