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뒤통수 친 기업들 백태

알고도 모른척…외국계의 두 얼굴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던 몇몇 기업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소비자를 기만한 것도 모자라 정부의 지침마저 철저히 무시했던 정황이 연이어 드러나는 형국이다. 진정성이 결여된 이들의 행태 때문에 애꿎은 소비자들만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코웨이, 옥시, 코스트코, 폭스바겐, 이케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근래에 달갑지 않은 구설로 대중들에게 집중포화를 맞았다는 점이다. 자신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피하고자 꼼수를 부리는 건 예사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정황도 심심치 않게 드러났다. 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술수쯤으로 해석해도 무리는 아니다.

모르쇠 일관
연이은 사기

국내 정수기 시장 1위인 코웨이가 얼음정수기에서 중금속이 검출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1년간 소비자에게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코웨이는 지난해 7월부터 시중에서 수거한 얼음정수기 29개 제품을 대상으로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일부 제품에서 정수기 내부에서 얼음을 만드는 핵심 부품이 벗겨지면서 금속가루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금속가루 중에는 대표적인 중금속인 니켈이 포함돼 있었다. 일각에서는 벗겨진 니켈이 얼음을 모아두는 곳에 떨어졌기 때문에 정수기 물에 들어갔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김동현 코웨이 대표는 홈페이지를 통해 “문제가 된 정수기는 2014년 4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설치된 얼음정수기 중 일부로 제품교환 등 개선조치를 취해왔다”며 사과의 글을 올렸다. 정수기 사용자들에게 렌탈비 전액 환불까지 검토 중이다.

그러나 사태가 수습되길 바라는 코웨이의 의중과 상관 없이 이번 사태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정부부처가 합동으로 ‘코웨이 정수기의 니켈 검출 논란’에 대응하기로 한 까닭이다. 지난 6일 정부부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산업통상자원부(국가기술표준원)와 환경부, 한국소비자원은 앞으로 니켈이 검출된 코웨이의 얼음정수기 결함 여부와 위해성을 조사해 발표할 계획이다. 


부처 합동 대응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다. 산업부와 환경부의 소관법률이 다르기 때문에 부처별 조사가 원칙이다. 정수기만 놓고 보면 현행법상 정수기 물의 유해성은 환경부가, 정수기의 부품 결합은 산자부가 관리해왔다. 정부가 이번 사안을 크게 받아들인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조사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번 조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학술적 연구나 제도적 기준이 없는 니켈의 함유량을 밝혀내는 게 조사의 관건이다.  

외국계 기업
윤리성 도마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기업의 몰지각한 행태가 외국계 기업에서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외면하거나 사태가 커진 이후에나 보여주기 식으로 처리에 나서는 등 국내 소비자들을 무시하는 행동을 보여주면서 사태를 더욱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옥시레킷벤키저가 대표적이다.

검찰이 5년 만에 가습기살균제 사건 수사에 착수하면서 가습기살균제 기업 관계자를 잇달아 소환하기 시작한 게 옥시에게는 치명타였다. 옥시는 수십명의 사망자를 낸 PHMG인산염 성분의 가습기 살균제를 지난 2001년부터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유해 가능성'에 대한 회사 내외부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하고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한 보건당국의 조사 결과를 반박하는 보고서까지 조작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4월,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를 통해 “생활 화학제품 안전 관리에 미흡한 부분은 없는지, 사각지대는 없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서 미진한 부분은 조속히 보완할 것”이라며 “재발 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가습기살균제 사태에 관심을 보이자 가습기살균제 최대 가해 업체로 지목된 옥시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피해자 앞에 섰다. 지난 5월2일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대표이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5년 만의 늦은 사과를 전했다. 하지만 5년이나 늦어진 옥시의 사과는 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입장이다.


코웨이 정수기 중금속 검출 파장
‘깔보나’ 우습게 보고 무시 지적

옥시 측은 이달 안에 전문가 패널을 구성하고, 1·2등급 판정을 받은 옥시 사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2013년에 내놓은 기금 50억원과 4월22일 발표했던 사과문에서 약속한 기금 50억원은 3·4등급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라고도 덧붙였다. 사태에 대한 진화작업으로 옥시가 발표한 보상 방법이다.

그러나 옥시는 사태를 해결하기 전부터 이중적인 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태 수습은 더욱 요원해지고 있다. 상호를 변경한 과정에서부터 의도적인 술수가 드러났다고 바라보는 시각도 상당수다.

옥시는 2011년 말 주식회사를 유한회사로 변경했다. 2014년에는 사명에서 옥시를 완전히 빼고 레킷벤키저의 앞글자만 딴 RB코리아로 바꿨다. 기존 법인을 해산하고 주주와 임원, 상호를 모두 넘겨받은 채 새로운 법인으로 탈바꿈한 셈이다.

파산했을 때 주주와 사원의 책임이 제한되는 유한회사는 외부감사 및 공시 의무에서 벗어난다. 주식회사보다 폐쇄적인 성격을 띄며 조직 변경 사실도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의 책임에서 벗어나고자 옥시가 조직 변경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코스트코홀세일의 경우 옥시사태의 역풍을 맞은 경우다. 옥시 사태가 한창 부각되던 지난 5월 외국계 창고형 대형마트인 코스트코는 한동안 관련 제품을 판매해 빈축을 샀다. 당시 코스트코는 옥시 제품에 대한 할인행사를 진행한 데 이어 온라인몰에서도 다수의 옥시 관련 제품을 판매했다.

대다수 유통체인에서 옥시 제품을 팔지 않겠다고 언급한 것과 전혀 다른 접근법이다. 대형마트에 이어 소셜커머스와 오픈마켓, 백화점, 홈쇼핑, 편의점까지 국내 유통업체들은 잇따라 옥시 전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심지어 약사들까지 개비스콘, 스트렙실 등 옥시의 일반의약품을 팔지 않겠다고 나서 묘한 대조를 이뤘다.

문제의 코스트코는 <포춘>이 선정한 2014년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 12위에 오른 기업이다. 코스트코가 국내 소비자들로 부터 거둬들인 지난해 매출액은 3조2000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인 외국계 기업이 국내 소비자 정서를 무시한 채 영업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을 낳기도 했다.

나중에 걸려도 
솜방망이 처벌

폭스바겐이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는 처사 역시 옥시 못지않다. 폭스바겐은 자사 차량에 대한 연비조작 사건(디젤게이트)이 터진 이후 미국에서 대규모 피해 보상책을 내놓고 사죄의 뜻을 밝혔지만 국내에서는 별다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환경부가 차량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환경부는 티구안 유로5 차량 등에서 일정조건에 이르렀을 경우 EGR 장치가 고의적으로 작동 중단되도록 조작(임의설정)됐다고 결론 내렸다. EGR 작동이 중단되는 조건은 급가속 및 에어컨 가동, 핸들조작 여부 등이다.

이들 조건은 실내인증 과정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기능들이다. 이 점에 주목해 환경부는 폭스바겐이 처음부터 주행연비를 높일 의도를 갖고 실내인증기준만 통과되도록 EGR 장치를 조작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환경부는 폭스바겐코리아에 리콜을 명령하면서 계획서에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는 ‘임의설정’ 문구를 삽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를 폭스바겐이 계속 거절하면서 리콜은 차질을 빚었고 폭스바겐이 제출한 리콜계획안은 벌써 3차례나 반려됐다.
 

이런 상황에서 폭스바겐의 고의적인 배출가스 조작 혐의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가 드러나면서 파장이 더욱 커지고 있다. 폭스바겐이 5년 전 환경부로부터 배출가스 과다 배출이 적발돼 개선 요구를 받았지만 이를 무시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바겐은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 사실이 밝혀진 후 신문광고, 인터뷰, 국정감사 등을 통해 사과의 뜻을 전했지만 검찰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는 상태다. 이렇다 보니 리콜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으며 구체적인 보상계획도 아직까지 세워지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폭스바겐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다. 대기환경보전법 등 관련법에 임의설정에 대한 뚜렷한 제재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임의설정 혐의로 과징금 부과 조치를 내린 폭스바겐 차량만 12만5522대(15개 차종)에 달하지만 관련법에 임의설정 위반에 대한 과징금 상한선이 차종당 10억원으로 제한돼 총액은 141억원에 불과하다. 리콜 명령을 지키지 않은 채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에서 같은 혐의로 추궁당하는 폭스바겐은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할 예정인데 유독 국내에서는 고자세를 취한다”며 “처벌 수위가 느슨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꼬집었다.

옥시·이케아·폭스바겐…
한국 고객만 ‘봉’ 취급


이케아는 모호한 리콜 기준을 앞세우다 된서리를 맞은 케이스다. 특히 미국에서 어린이 안전사고의 논란에 중심에 섰던 ‘말름(MALM) 서랍장’의 경우 미국과 캐나다와는 달리 국내에서 리콜 계획을 밝히지 않아 지탄을 받았다.

해당 제품은 지난해 미국에서 아이 2명이 사망하는 사고의 발단이 됐던 제품이다. 최근에도 아이 1명이 같은 사고를 당했다. 서랍장 사고가 계속 발생되는 것은 서랍장이 벽에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케아는 이 제품에서 사고가 연달아 발생하자 서랍장 구매고객에게 벽고정 ‘키트’를 제공하는 대안을 내놨지만 다시 사고가 이어지면서 결국 제품 리콜에 나선 바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서랍장으로 인한 사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에 따라 차별화를 적용한 리콜 조치가 소비자들로부터 빈축을 사게 됐고 결국 국내에서도 뒤늦게나마 환불 조치를 결정했다.
 

지난 6일 이케아코리아는 “말름 제품을 구입한 고객은 고객센터를 통해 환불을 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케아코리아는 이번 조치가 공식 리콜이 아니라며 환불 가능 여부를 홈페이지에 공지하거나 국내 판매량을 밝힐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소비자원의 리콜 권고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의 안전성 조사 착수로 여론이 나빠지자 이케아가 조용히 환불을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케아코리아는 “제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가구를 고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며 “서랍장이 안전하게 고정된 경우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고도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발뺌 급급하다
몰래 사태수습

문제는 제아무리 여론이 들끓어도 솜방망이 처벌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특히 외국계 기업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매번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와 소비자가 우습게 여긴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옥시와 폭스바겐 사건에서 드러났듯이 정부는 외국 업체에 유독 약한 모습이다. 부실조사에 늑장대응, 책임 떠넘기기가 단골 메뉴다. 옥시 건은 환경부의 독성물질 유해검사가 부실했고 질병당국의 대처도 늦었다. 연루기업에 대한 처벌은 허위광고 과징금 5200만원이 전부였다.

폭스바겐도 마찬가지였다. 소관부처인 환경부는 일이 벌어진 지 2개월 뒤에야 리콜 명령을 내리고 대표 고발도 한참 뒤에야 했다. 심지어 폭스바겐은 리콜 계획서를 두 번이나 엉터리로 제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MBK는 토종? 외국계?

코웨이를 비롯해 굵직한 기업들을 손에 쥐고 있는 MBK파트너스는 종종 외국계 사모펀드라는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MBK파트너스는 토종 사모펀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내법인으로 등록돼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K파트너스가 소위 말하는 외국계 먹튀자본 쯤으로 인식되는 건 MBK파트너스의 자금 원천이 대부분 외국계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시선이 곱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MBK파트너스는 설립 당시 “진짜 아시아계라 말할 수 있는 첫 기업인수합병(buyout) 펀드”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6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MBK파트너스가 반 외자정서로 한국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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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