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기획> 가습기살균제 참사, 그후 ①알고도 묵인한 정부 미스터리

피해자들 아닌 기업 편에 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세월호·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활동이 지난 6월 마침표를 찍었다. 작은 성과가 있었으나 피해자와 유족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물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요시사>는 사참위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 소위원회가 4년 가까이 조사해온 결과물을 입수해 4회에 걸쳐 집중 보도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연루된 정부부처는 상당히 많다. 공정거래위원회,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환경부, 질병관리본부(질본) 등이다. 정부부처 공무원들의 소극·졸속 행정은 부실 조사로 이어졌다. 피해 원인이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으면서 피해·사망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빠져나갈 구멍
뚫어준 형국

뒤늦게 사건을 조사한 정부는 가해기업에 대한 제재 대신 가습기살균제 원료가 위험하다는 정보를 주기까지 했다. 사실상 가해기업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뚫어준 것이다.

질본은 2011년 8월26일부터 3일간 SK케미칼, 옥시, 애경 등 가습기살균제 생산·제조·판매업체들과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 간담회에서 가해기업은 질본에 “역학조사는 통계상의 상관성만으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오류가 있다. 직접적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업체명과 상품명이 발표되지 않아야 한다”며 “발표할 때 표현 수위를 잘 조절해달라”고 요구했다.

보건복지부와 질본은 같은 해 8월31일 역학조사 3단계 중 심층면담 조사 결과 등을 제외하고 가습기살균제 제품 사용 및 출시 자제 권고를 발표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가습기살균제 사건 진상규명소위원회(특조위) 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질본은 사실상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질본이 은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심층면접조사 결과로 나온 피해자 사용 가습기살균제 5개 제품명(옥시싹싹New가습기당번, 세퓨 가습기살균제, 롯데마트 가습기살균제, 애경 가습기 메이트,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18명 중 6명 사망 확인했지만 사망자 4명으로 축소한 부분 ▲피해자 사용 가습기살균제 5개 제품 성분분석 결과로 나온 주성분 PHMG·PGH, CMIT·MIT 화학물질 함유 사실이다.

이 외에도 ▲가습기살균제 제품 생산공장 현장조사(한빛화학, 용마산업사, 애경산업, 아토세이프, 애경에스티, 세퓨, 에스겔화장품, 홈케어 등 8개소) 결과 확인한 제조원과 판매원 ▲세포독성 시험에서 관찰된 폐세포 사멸 효과 관찰돼 독성 및 세 기관지·폐 말단 가습기살균제가 도달 가능하다는 사실 ▲가습기 물 처리제 흡입 시 좋지 않으므로 쓰지 말라는 미국 환경보호청 권고사례를 검토했으나 미발표한 부분 등이다.

질본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사용 및 출시 자제를 권고했다. 발표 내용과 관련해 당시 기업들은 보도자료에 대해 위험 요인 표현 변경, 교차비 비공개 등의 의견을 제시했으나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특조위는 업체명과 상품명이 보도자료에서 제외된 사실을 파악하고 질본이 업체명과 상품명을 제외해 달라는 기업들의 요구는 수용됐다고 판단했다. 특조위 조사 결과 질본 관계자들은 업체명과 상품명 미공개 사유에 대해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간의 인과관계가 규명되지 않았고, 보도자료 작성 시에 보건복지부 외 타 부처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진술했다.

질본, SK케미칼·애경 말 듣고 제품·성분명 빼고 발표
폐 손상 인과관계 확인 역학조사서 가습기메이트 제외

질본 내부에서는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의 교차비가 확인돼 원인미상 폐손상의 유력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명확한 인과관계 확인이라는 명목으로 보도자료에 기업의 의견을 반영하면서 사망자는 더욱 늘어났다.


질본은 가해기업과의 면담이 있기 전,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폐 손상 제품이었던 가습기메이트(CMIT·MIT 제품)를 조사 과정에서 제외한 것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질본은 2011년 4월25일 원인미상 폐 손상에 대한 역학조사를 시작했다. 보도자료가 발표된 8월 말 이후에도 명확한 인과관계 확인을 위해 여러 차례 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먼저 질본은 기도 내 투여 예비시험을 실시해 ▲적정 투여량 ▲가습기살균제 폐 도달 시 독성이 나타나는지를 확인했다. 최종적으로는 흡입독성시험을 통해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인하려 했다.

질본이 PHMG·PGH 제품군에만 실시했던 2011년 기도 내 투여 예비시험의 투여량은 2019년 시험조건으로 환산하면 0.35mg/kg, 0.70mg/kg, 7.00mg/kg이었다. 2011년 예비시험의 투여량이 2019년(CMIT·MIT를 쥐에게 투여하여 실시된 기도 내 투여 시험) 폐섬유화가 확인된 0.29 mg/kg보다 높았다.

그러나 질본은 가습기메이트를 예비시험 대상에서 제외했다. 2011년 기도 내 투여 예비시험의 대상으로 가습기메이트를 포함시켰다면 폐 손상과 가습기살균제 간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특조위는 질본의 부실조사 발표로 인해 피해자들의 배상과 구제 지연 및 검찰의 늑장 수사, 공정위의 잘못된 심의처분 등으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특조위 관계자는 “가습기메이트가 예비시험에서 제외됐던 원인 중 하나는 원료물질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비시험을 시작한 이후 현장조사를 통해 물질을 확인했고 제품 성분이 공개됐다면 큰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험성 안 알리고
문제 제기 안 해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문제점이 드러나자 질본은 2011년 11월11일 유해성 확인 및 6개 제품에 대한 강제수거 조치를 내렸다. 이후 가습기살균제 의심 피해사례에 대해 신고·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단체와 전문가들은 피해조사 확대 및 피해자에 대한 판정 등 정부 대책을 요구했으나 후속 조치는 미흡했다.

질본은 2012년 10월8일 폐손상조사준비위원회 계획을 수립하고 호흡기내과, 소아청소년 호흡기내과, 영상의학, 병리학, 예방의학, 환경보건전문가 등 각각의 전문 분야에서 민관 공동 추천을 통해 22명의 위원을 위촉, 폐손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 구성을 마친 폐손상조사위원회는 2012년 12월6일 제1차 회의를 시작으로 2015년 1월20일 제14차 회의까지 운영됐다. 폐손상조사위원회의 주요 활동 내용은 질본과 시민단체 등에 피해 의심 신고를 한 361명에 대한 피해 판정이었다. 피해 판정 기준은 신고를 한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건강 이상과 가습기살균제와의 인과성이었다.

폐손상조사위원회의 활동 종료 이후 피해자들은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를 정부로부터 판정받았다. 총 4단계로 ▲1단계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 가능성이 ‘거의 확실함’ ▲2단계는 ‘가능성 높음’ ▲3단계는 ‘가능성 낮음’ ▲4단계는 ‘가능성 거의 없음’이었다.


위원회 내부에서는 해당 단계 구성을 두고 이견이 있었다. 위원회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특조위 조사에서 “4단계 구분법으로도 판정을 내리기 어려운 질환이 발생한다는 점 때문에 적절한 방법인지 여부에 대한 토론은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위원회의 진술조사에서 4단계 구분법과 관련하여 ‘근거자료의 부족이나 불확실성’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4단계 구분법이 폐손상조사위원회에서 이견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4단계 구분법은 폐손상조사위원회 전체 입장으로 최종 결정됐다. 조사와 판정에 있어 폐질환에 국한되기도 했다. 위원회 위원들은 폐 손상에 대한 인과관계를 규명하기 위한 자료와 근거자료가 부족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활동 시기가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만큼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인정 및 지원이 늦어지고 있었기에 우선 판정 가능한 질환부터 실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질본은 위원회의 이 같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은 감염성 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피해 규모 조사와 건강이상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 및 사후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었다.

조사위 의견
묵살에 외면


<일요시사>가 입수한 사참위 내부자료에도 질본은 피해 질환과 피해자들의 피해 양상을 데이터베이스화해 추가적인 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일부 위원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이를 수행하지 않았다.

특조위는 폐손상조사위원회가 제4차 회의(2013년 3월7일)에서 추가동물실험을 실시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제6차 회의(2013년 6월5일)에서 폐손상조사위원회의 조사 목적을 폐 손상 환자 판정으로 제한한 것도 질본의 소극적 행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봤다.

이 같은 질본의 태도는 폐손상조사위원회 제5차 회의(2013년 4월4일) 당시 위원 전원이 사퇴하는 일까지 발생시켰다. 당시 질본과 위원들 사이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신청인들에 대한 검사 범위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폐손상조사위원들은 CT 촬영이나 폐기능 검사 등 추가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질본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보였고 폐손상조사위원들은 전원 사퇴했다.

결국 질본이 폐손상조사위원들의 입장을 수용해 위원들이 제6차 회의부터 다시 복귀하면서 사태가 일단락됐다. 당시 상황에 대해 잘 아는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가습기살균제 참사 대응에 매우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며 “위원회도 최선을 다했고 그 의견을 질본이 받아들이지 않았던 상황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폐손상조사위원회 1기는 미흡했으나 폐 손상 가능성을 기준으로 피해 판정 기준을 정했다. 결과적으로 129명이 1단계, 46명이 2단계, 39명이 3단계, 144명이 4단계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폐 이외의 질환과 관련해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폐 손상 이외의 질환은 폐 손상 판정 기준으로는 피해 판정이 불가하거나, 피해 기준에 해당하지 않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추가 실험 필요한데 손 놓기…환자로만 한정
권성동, 기재부와 지원 예산안 삭감에 한몫

정치권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을 위해 2013년 5월 추경예산안 50억원으로 증액했다. 이 예산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거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논의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전액 삭감됐다. 기재부는 국회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법 검토의견서에 “법률안 전체 수용 곤란”이란 의견을 밝혔고 “폐질환과 가습기살균제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앞서 보건복지부(2011년 8월)와 질본(2012년 2월)이 폐질환과 가습기살균제 원료 간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이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도 기재부와 함께했다. 권성동 의원은 2014년 12월2일 열린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환경성 질환만 정부에서 선보상하고 구상권을 행사하면 (중략) 그러면 교통사고든 모든 사고를 다 그렇게 해놔야 한다”며 “교통사고 입은 국민들은 특별대우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법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기재부는 2016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구제 확대 방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공문서에 허위사실을 작성하기도 했다. 같은 해 5월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열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지원 관련 관계 차관회의’에서 4가지 안건이 처리됐다.

당시 안건은 ▲신속한 피해신청자 조사·판정추진 ▲피해자 지원 확대 추진 ▲폐 이외 질환 규명 신속 추진 ▲재발 방지대책 논의 등이었다. 환경부는 다음 달인 6월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가습기살균제에 사용된 화학물질로 인한 폐질환의 인정 및 지원 기준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제출했다.

고시의 주요 내용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생활 안정자금 및 간병비를 지원하는 것이었다.

기재부는 환경부의 입장에 대해 “제6조(피인정인에 대한 지원범위 및 방법) 입원 기간 중 발생하는 간병비(입원 간병비)는 해당 피해가 발생한 날로 소급해 산정한다. 다만 입원 기간이 아닌 기간 중 발생하는 간병비(비입원간병비)는 제7조제1항에 따라 간병비를 신청한 날로 소급해 산정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생활안정 자금 및 간병비 지원은 소급하지 않는 것으로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결정한 만큼 동 신설조항 삭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지원
나 몰라라

실제 고시는 개정됐고 2016년 7월1일 이전에 발생한 입원간병비는 포함하지 않게 되는 등 기재부의 원안은 그대로 통과됐다. 됐다. 기재부는 이처럼 고시 제6조 5항에 대한 신설 반대 입장을 제시했다. 이후 허위 문구를 작성해 실제 고시는 원안대로 통과됐다. 실제 이 같은 일로 인해 일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허위공문서를 작성한 기재부 고용환경예산과 사무관 A씨와 사건에 관여했던 공무원들은 전부 징계를 받지 않았다. 고시 개정을 추진하던 환경부 환경보건관리과 직원들은 차관회의 결정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기도 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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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