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가습기 살균제 나몰라' 뒷짐 진 환경부의 두 얼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4.18 14:05:50
  • 호수 13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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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서류 필요 없다더니 서류 제출하지 않아 탈락”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SK케미칼·옥시·애경 등이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던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폐 질환과 폐 이외 질환 및 전신 질환에 걸렸다. 이들 중 병원에서 ‘폐 질환’을 인정해도 나라에서는 인정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있다. 이들은 “처음에는 기업이, 두 번째는 정부가 가해자였다. 세 번째는 피해자 권리를 찾지 못하면서 가해자에게 당했다”고 말한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시작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케미칼은 1991년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물질인 PHMG와 CMIT/MIT 제조 방법을 개발해 옥시·홈플러스·롯데마트 등에 공급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물을 사용하면 생기는 가습기 세균을 완전히 살균하기 위해 사용됐다. 

“눈물 흘리지 
 않도록 약속”

판매업체는 총 27군데, 원료 공급 및 제조업체는 20곳이다. 1994년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는 2011년까지 연간 60만개가량 판매됐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은 워낙 많지만, 이들 중 임산부들이 가습기 살균제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그 결과 2011년 4월 임산부들이 급성 호흡부전으로 잇따라 입원했고, 2011년 5월10일에는 입원환자 중 34세 여성이 사망했다.

이후 3명의 입원환자가 사망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31일에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미상 폐 손상의 원인으로 주목했고, 이후 가습기 살균제 제품에 관한 강제 수거 명령을 발동했다.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해 사용한 사람들은 ▲폐암 ▲폐 섬유화 ▲간 독성 ▲신경 독성 ▲심혈관 독성 ▲면역계 독성 ▲피부 과민성 ▲유전 독성 ▲폐 노출 ▲코 노출 ▲천식 ▲부비동염 ▲기관지 노출 ▲후두 노출 ▲피부 침착 등의 피해를 본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달 31일 기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따르면 피해 사망자 1751명, 피해 신고자 7685명‧제품 사용자 350만~400만명‧건강피해자 49만~56만명이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이 워낙 많아서 피해를 모두 측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계속 발생하자 정부는 대책을 세웠다. 2017년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고 시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피해자들을 청와대에 초대해 “책임져야 할 기업이 있는 사고다. 정부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할 수 있는 지원을 충실히 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정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우리 국민이 더는 안전 때문에 억울하게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약속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임명했고, 2017년 6월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구제와 지속 가능한 지원을 위해 환경부 산하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가습기 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을 개설했다. 

이 포털에서는 ▲구제급여 지급신청 ▲특별유족인정 신청 ▲재심사 청구 ▲긴급 의료지원 신청 ▲검사 비용 지급신청을 받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제급여 지급 및 피해 등급 결정’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가습기 살균제 노출 여부’ ‘가습기 살균제 노출로 건강상의 피해가 발생 또는 악화됐거나, 전체적인 건강 상태가 악화됐는지 여부’ ‘독성학적 기전 등을 포함한 의학적 설명 가능성’을 토대로 피해 등급을 결정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구제급여를 지원한다.

“당연히 피해등급…아무 문제없다”
호언장담 1년 넘도록 감감무소식

이를 위해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는 ▲피해구제위원회 15명 ▲조사 판정 전문위원회 38명 ▲재심사 전문위원회 18명 ▲긴급 의료지원 전문위원회 5명으로 구성됐다. 

피해자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피해 등급 결정을 신청하면 간질성 폐 질환이나 폐렴 천식을 검사하는 신속검사를 거쳐 개별심사를 한 뒤 피해 등급이 판정된다. 질환은 폐 질환 ▲1단계(가능성 거의 확실) ▲2단계(가능성 높음) ▲3단계(가능성 낮음) ▲4단계(가능성 거의 없음)로 판정하고, 그 밖의 질환은 인정·불인정으로 분류한다.

구제급여는 폐 질환 1·2단계와 천식, 태아 피해만 피해 질환으로 인정한다.

지난 2월25일 환경부는 ‘제28차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위원회(위원장 환경부 차관)’을 개최해 피해자 56명에 대한 구제급여 지급 및 피해 등급 결정을 심의·의결했다.

그러나 피해자 중에는 ‘환경부 때문에’ 제대로 된 피해 등급을 받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해결위원회’의 추준영·김경영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추 대표와 김 대표는 각자의 자녀 1명씩을 포함해 모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다. 

추 대표의 아들 박준석군은 현재 중학생으로, 박군이 영·유아 때 옥시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해 추 대표와 박군 모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됐다.

피해의 정도는 추 대표보다 박군이 훨씬 심했다. 박군은 아기 때 툭하면 응급실에 실려 가서 입원했다. 현재는 아기 때보다는 입원을 덜 하지만, 코로나19에 걸려서 40도의 열이 5일 내내 지속됐다.

격리가 끝난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주먹구구
묵묵부답

추 대표는 2016년 본인과 박군의 피해 등급을 제대로 판정받기 위해 환경부에 ‘구제급여 지급’을 신청했고, 2019년 3월에 ‘천식 인정’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담당 병원에서는 다른 의견을 내놨다. 병원의 의견은 박군 같은 경우는 천식이 아닌 ‘폐 질환’에 관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군의 담당 의사는 판정이 잘못됐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피해 인증단계가 무조건 천식에서 폐 질환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추 대표는 2019년 4월5일에 박군의 폐 질환을 판단해달라는 재심을 청구했다. 피해구제위원회의 답변은 “조사판정위원회에서 대면으로 심사해야 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보류하겠다”며 종합판단만 내려졌다.

원래는 폐 질환을 1단계부터 4단계까지 나눠 구분했다면, 2020년 9월25일부터 시행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에 따라 ‘가습기 살균제 노출 후 신규 발생한 간질성 폐 질환, 천식, 폐렴’ ‘질환을 특정하지 않고 전체적인 건강상태 고려(후유증 포함)’로 바뀌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배상 방안’에서 “옥시레킷벤키저는 1차 조사 또는 2차 조사에서 1등급 또는 2등급 판정을 받으신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분들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기재해놨다.

박군은 폐 질환 등급을 받지 못해서 옥시에 배상을 요구할 수 없게 된 것이고, 결국 해당 기업에 대응하기도 힘들어졌다.


아래는 박군의 담당 의사가 추 대표에게 한 말이다.

“동네 구멍가게보다 못하다” 지적
부처 늦장 대처로 기업 대응 못해

“내가 서류를 제출했다. 물론 지금은 박군이 성장해서 폐가 깨끗해졌다. 그러나 과거에 아팠던 흔적은 남아있다. 이런 아이는 아기 때 폐 기능이 안 좋다가 성장하면서 폐 기능이 좋아진다. 하지만 25세 이후로 폐 기능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의 경우를 여러 번 판정했다. 보통 폐 질환 2등급을 받았고 환경부에서 뒤집힌 적은 거의 없다. 특히 2020년 9월부터 법이 바뀌는 것을 환경부와 전문가도 다 알고 있다. 결국 아이가 불이익받을 것을 알고 있으면서 보류한 게 이해가 안 된다. 환경부에서 의도적으로 미룬 것은 아닌지, 명확히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지난해 2월18일 추 대표는 환경부 관계자에 해당 부분에 대해 문의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박군처럼 보류된 사람 중에서 폐 질환 1단계나 2단계는 따로 표기할 것”이라며 “법적인 검토도 이미 끝났다”고 말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법적인 검토는 전혀 없었다.

이 밖에도 추 대표는 “준석이 진단이 워낙 급하니 나보다 먼저 해결해달라고 했다. 나도 준석이 서류 넣을 때 같이 넣었는데, 전혀 연락이 없어서 알아봤다”며 “나는 ‘아이부터 빨리 해달라’고 말했을 뿐인데 ‘내 서류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 환경부가 동네 구멍가게보다 못하다”고 지적했다.

2018년도에 김 대표의 딸인 정유주양은 폐 질환 4단계인 불인정 단계를 받았다. 천식에 의한 피해는 김 대표가 중증도, 정양은 등급 외를 받았다. 이들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를 단독으로 사용했다. 

우선 눈에 보이는 증상은 정양이 훨씬 심했다. 김 대표는 정양의 진단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했는데 폐 기능이 100%로 나왔다.

담당 의사도
“의문 많다” 

하지만 천식은 기본적으로 악화와 안정기를 반복하는데, 정양의 경우는 안정기에 검사한 것이다. 

이후 정양의 담당 의사가 폐 질환이 의심된다고 전해서 2019년 3월28일에 재심 신청을 했고, 2019년 12월26일에 폐 질환 3단계 판정을 받았다.

당시 정양이 했던 검사는 폐 기능 검사 중 일산화탄소 확장 능력 검사인 ‘DLCO’이며, 정양은 정상인의 60%만 폐가 기능했다.

김 대표는 환경부에 정양에 대한 ▲과거 병원비 ▲천식 구제급여 ▲폐 질환 3단계로 신체 판단을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관련 서류가 필요한지 문의했다.

이에 환경부 관계자는 “이미 구제급여에 해당하는 선정자여서 추가 서류는 필요 없다. 당연히 피해 등급심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1년이 지나도 판정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김 대표는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정양의 판정이 나오지 않는 것에 항의 전화를 했다.

후로 3개월이 지나 연락이 된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담당자는 “정양의 경우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우리 측에서 잘못했으면 녹취나 증거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에게 급한 것은 정양이 피해 등급을 받는 것이어서 해당 문제를 지적하고 넘어가진 않았다. 

정양에 대한 피해 등급 인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23일 환경부 관계자는 김 대표에게 “정양에 관한 서류 작업은 이미 오래전에 종결됐다”고 말했다.

3개월 걸려 연락된 담당자 황당 반응
“잘못했으면 녹취나 증거 가져오라”

김 대표는 정양이 피해 등급을 무사히 받을 수 있도록 병원에서 결제일자도 물어봤고, 서류가 넘어갔는지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답을 들었을 뿐이다. 

김 대표는 기자에게 “유주는 천식 등급도 받았고, 폐 질환 3단계도 받았었다. 그런데 천식 등급을 받았다고 나머지를 다 무시한 것 같다. 내가 5~6개월 동안 연락하면 서류가 넘어갔으니 조사 판정받는다고 했다”며 “결국 환경부가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청소년기로 넘어가면서 폐가 자란다. 준석이와 유주는 과거에 폐 기능이 50~60% 정도였는데 지금은 70~80% 정도”라며 “그런데 지금 진단을 받으면 당연히 좋은 결과로 나온다. 나중에 25세가 지나고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김 대표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김 대표는 2018년에 피해를 인증받았던 천식 외에 간 기능, 백내장, 신경정신과, 정신 통증에 관한 것도 담당 의사 소견을 받아 병원비를 받고 있었다.

김 대표는 지난해에 2020년도 병원비 내역을 청구했다가 모두 거절당했다. 그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치료를 드문드문 받거나 중단해서 건강이 회복된 것이 의심되는 상황도 아니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2020년 9월25일 이후 접수된 건은 기지급 확장 질환(후유·합병)에 대해 개별 판정을 해야 한다. 지급 확정 판정을 새롭게 받아야 하고, 개별 판정이 전까지는 지급이 불가하다”고 답변했다. 즉 개정법 시행인 2020년 9월25일을 기점으로 치료 시점이 아닌 접수 시점으로 병원비 지급을 거절한 것이다.

한편 2020년 2월4일에 환경부 관계자가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는 DLCO검사에 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해당 자료에서 환경부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DLCO 조사 판정이 기준이 된다고 오해하는 부분과 조사 판정할 때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 현재도 피해자들이 DLCO가 기준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분이 많으며, 폐 기능(FVC) 또는 DLCO 검사 시 편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편법으로?

하지만 피해자들은 “대학병원에서 진행되는 검사에서 편법은 있을 수 없다”며 “설령 그런 피해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 피해자를 향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DLCO 검사가 판정 기준 단계에서 일관적으로 적용되지 않은 것 같다’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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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1000억 오세훈 한강버스, 아라호 흑역사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가 돛을 올린 한강버스가 고장 끝에 결국 멈췄다. 과거 ‘아라호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아라호 사업은 2010년대 초반 경인 아라뱃길을 중심으로 관광 활성화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인천시와 공동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기획한 수상 교통 프로젝트였다. 아라호는 시민들의 외면과 운영 적자로 인해 자취를 감췄다. ‘반면교사’로 삼았던 걸까? 서울시는 한강을 따라 운행되는 수상 교통수단으로, 서울 전역을 연결하는 새로운 교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으로 지난 18일 한강버스 운항을 시작했다. 여의도, 잠실, 뚝섬 등 주요 한강변 거점과 지하철역을 연계해 시민과 관광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관광이냐 출퇴근이냐 서울시는 한강버스를 통해 관광 교통수단을 넘어 서울을 ‘한강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도시’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그러나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열흘 만에 운항이 중단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9일 오전 시청에서 열린 주택 공급 대책 관련 브리핑 도중 “한강버스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며 “시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열흘 정도 운행 통해 기계적·전기적 결함이 몇 번 발생하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서 약간 불안감 생긴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운항을) 중단하고 충분히 안정화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람직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시는 이날부터 10월 말까지 한강버스 시민 탑승을 중단하고 성능 고도화와 안정화를 위한 무승객 시범 운항을 한다. 시는 국내 최초로 한강에 친환경 선박 한강버스를 도입해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22일에는 잠실행 한강버스가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고, 같은 날 마곡행도 운항 준비 중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겨 결항했다. 26일에도 운항 중 방향타 고장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운항 중단과 재개가 반복되자 운항 중단을 결정했다. 과거 아라호의 값비싼 교훈을 남겼지만, 실패 요인을 분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결과다. 한강버스 역시 또 하나의 혈세 낭비 사례가 될 수 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아라호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 이번에는 실질적인 시민 편익을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운영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강버스가 서울의 새로운 교통 패러다임으로 자릴 잡을지, 아라호의 전철을 밟을지는 향후 몇 년간의 운영 성과에 달려 있다. 서울시 아라호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첫 임기 때인 2010년 서울시가 예산 112억원을 들여 만든 2층 유람선으로 지난 2009년 5월부터 1년5개월을 들여 건조됐다. 오 시장의 지시로 건조된 아라호는 시민들에게 저렴한 요금으로 공연과 한강특화공원 관람이 동시에 가능한 선상문화체험 기회를 제공한다는 영리 목적보다 공공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민자 유치 대신 재정이 투입된 사업이었다. 당초 아라호를 한강에서 인천 앞바다까지 운항하는 관광 크루즈선으로 활용하려 했으나 여덟 차례 시범 운항과 21회 시험 운항만 했을 뿐 사실상 사업은 중단됐다. 제작 당시부터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란을 빚었던 아라호는 정식 취항도 해보지 못한 채 팔렸다. 실제 운행이 어려운 상황에서 보험료와 유지비 등 관리 비용에만 연간 1억원이 들어간다는 점도 매각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112억원 들여 29억원에 판 아라호 출항 나흘 만에 고장…오, 좌불안석 아라호가 정식 운항에 나서지 못했던 배경에는 서해뱃길 사업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도 있었다. 오 시장의 아라호 활용 계획에 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시의회가 이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10월 고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 후 사업 타당성 문제로 매각을 결정하면서 오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이 백지화됐다. 결국 서울시는 아라호 매각을 결정한 후 지난 2013년 5월, 106억원의 예정 가격으로 매각 입찰에 나섰으나 응찰자가 없어 유찰됐다. 이후 2차 입찰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알만한 이들은 알겠지만, 선박 사업은 수요를 찾기 어려운 사업 중 하나다. 결국 서울시는 3차 매각 입찰에서 최초 예정 가격에서 10% 인하된 95억원으로 깎았지만 이마저도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같은 해 11월, 4차 매각에서 15% 인하된 90억원에 입찰을 시도했지만 응찰자가 없어 가격 인하의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지 못하자 결국 임대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아라호가 정식 운항도 못한 채 6년 넘게 여의도 한강공원 선착장에 방치되면서다. 서울시가 제시한 사업 기간은 연말까지 8개월이고 한 차례 1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었다. 당시 최저 임대료는 2억6300만원이었다. 아라호는 임대 사업을 시작해 건조 6년 만에 빛을 봤지만, 운항이 종료되는 시점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강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아라호는 지난 2016년 민간업체인 레츠고코리아가 임대사업권을 낙찰받아 3년간 운영하다가 2018년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크루즈로 사업권을 넘겨줬다. 이랜드크루즈가 사업권을 따낸 시점은 지난 2018년 3월이지만 실제 운영은 2019년 6월부터 시작됐다. 이전 사업자인 레츠고코리아가 서울시의 계약 위반을 주장하며 유람선과 시설물 반환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랜드크루즈는 1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지난 2019년 6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아라호의 임대 운영 사업을 1년 만에 접어야 했다. 애물단지 전락하나 이랜드크루즈는 임대계약 갱신청구권(1년)마저 포기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무렵부터는 주식회사 수가 임대사업권을 이어받았다. 이후 마지막으로 인더라인25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업하는 조건으로 서울시와 지난 2022년 12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1년 단기 임대계약이 종료된 이후에도 인더라인25가 철거하지 않아 서울시는 골머리를 앓았다. 아라호 운항은 멈췄지만, 선착장을 한 달째 무단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더라인25는 계약 연장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서울시는 인더라인25를 상대로 명도소송, 점유 이전 금지 가처분, 행정 가처분 등 소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아라호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수요 예측 실패와 운영비 부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아라호가 연간 수십만명의 승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예상했으나, 실제 이용객은 예측치의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 노선 설계가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이나 이동과 잘 맞지 않았고, 요금 역시 육상 교통수단에 비해 비쌌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유치에도 한계가 있었고,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아라호는 철수될 수밖에 없었다. 아라호는 건조한 지 15년 만에 민간에 팔렸다. 지난 1월 서울시 한강 유람선 아라호는 5차례 입찰 끝에 약 28억5780만원에 팔려 민간업체에 인도됐다. 2013년부터 총 9번의 입찰을 시도한 결과 3분의 1 가격에 달하는 헐값에 팔린 셈이다. 당시 서울시에 따르면 아라호는 2024년 11월 말 공개입찰을 진행한 뒤 지난달 주식회사 마이랜드와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길이 58m에 688톤 규모의 아라호는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과 서강대교 남단을 오갔다. 승객은 총 310명까지 태울 수 있다. 음악회, 공연, 결혼식, 영화 상영을 위한 시설도 보유했다. 선착장에는 편의점, 치킨집 등 부대시설도 있었다. 아라호는 건조 후 15년 만에 매각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후임 고 박원순 시장이 2012년 사업을 백지화하면서 5년간 방치됐다. 2013년 5월 처음으로 공개입찰에 넘겨졌다. 시는 같은 해에만 총 4번의 입찰을 추진했으나, 입찰자가 없어 매번 무산됐다.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라? 서울시는 수의계약 방식으로도 매각을 시도했으나, 매각사의 자금 동원 문제로 불발됐다. 이에 시는 2016년 아라호를 매각하는 대신 민간 위탁하는 방향을 택했고, 2017년부터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했다. 하지만 임대계약이 만료되면서 지난해 5월 말부터 운항이 중단됐다. 그러자 시는 다시 매각을 시도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 5차례의 입찰을 진행했고, 같은 해 11월 말 입찰자가 나와 12월 매각 계약을 맺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간 아라호의 위탁 운영은 선박 운항이 아닌 선착장 내 치킨집 등 부대시설 위주로 돌아갔다”며 “자연스레 선박도 노후화되고, 전반적으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다시 매각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법적 분쟁으로 얼룩진 아라호를 통해 한강에 배 띄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다르다고 한다. 서울시는 이번 한강버스 사업에서 아라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3가지 전략적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먼저, 실제 수요 기반의 노선 설계를 강조했다. 또 관광 중심이 아닌, 출퇴근·생활 교통을 고려한 정류장 배치, 그리고 지하철·버스 환승과의 연계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요금 체계를 내세우기도 했다. 기존 대중교통과의 환승 할인을 적용하고, 관광·레저용 프리미엄 서비스와 생활 교통 요금제의 이원화를 강조했다. 또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전기·수소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했고, 실시간 교통 정보 제공 및 안전 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한다. 서울시가 한강버스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난해 들인 초기 사업비는 약 542억원으로 향후 발생할 총 사업비는 약 1500억~1750억원으로 예상된다. 아라호 사업비보다 10배가량 많은 혈세가 투입될 예정이다.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선박인 만큼 이용객을 충족하기 위해 여러 척의 선박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한강버스 운영사는 6척의 선박을 납품받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현재는 첫 출항 이후 3척이 운항 중이며, 향후 6척의 선박이 모두 납품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도 선착장 시설, 운영 시스템, 접근성 개선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돼 총사업비가 1000억원대 중반까지 증가한다. 묻지 마 10배로 베팅 6시에 나와야 9시 출근 아라호는 ‘유람선 제작’이 중심이고, 공연시설 등이 포함된 문화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의 선박이었다. 시설 설계가 크고 복잡한 부분이 있지만, 수량이 하나라 규모 면에서 제한적이기에 한강버스와 다르다는 결론이다. 반면, 한강버스는 여러 척의 선박을 건조해야 하고, 선착장 설치 또는 보수도 그만큼 갖춰져야 한다. 또 전기 또는 하이브리드 선박을 도입한 만큼, 유지비용도 클 뿐만 아니라 홍보, 안전, 시험 운항 등 여타 부대 비용에 민간투자금 및 보조금 등이 혼합돼있어 사업비 증액은 여러 원인으로 발생한다. 한강버스 사업비가 초기 대비 크게 증가한 이유로 업체 선정 과정에서 계약 조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공정률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선박 제작 능력이 있는 업체와 없는 업체 간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일부 업체는 인프라가 부족하거나 준비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아 계약이 무산된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강버스는 대중교통 기능이 강조되면서 ‘출퇴근 수단’ ‘교통망 보완’ 등의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초기 투자비가 크더라도 지속 운영을 통한 수요 확보가 전제된다. 하지만 계획 대비 수요가 예상만큼 확보될지, 운영비와 적자 보전 부담이 얼마나 될지는 논란 중이다. 한편, 한강버스는 정식 운항 나흘 만에 선박의 방향타 고장 등으로 잇따라 멈춰 승객들이 불편을 겪었다. 지난 23일 기준 누적 탑승객이 1만명을 돌파하는 등 시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한강버스가 정시성 확보가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지 의문이 커지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지난 22일 오후 7시쯤 옥수선착장을 출발한 잠실행 한강버스가 강 한가운데서 20여분간 멈춰섰다. 결국 승객들은 종착지까지 가지도 못하고 도중에 내려야 했다. 한강버스 운영사는 고장 선박을 뚝섬 선착장에 접안한 뒤 승객들을 모두 하선시켰고, 뚝섬에서 잠실까지 구간의 운항을 취소했다. 지난 18일 정식 운항을 시작한 지 나흘 만에 발생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탑승객은 “20분이 넘게 서 있었고, 안내 방송이 안 나오고 승무원도 안 계시고…. (뚝섬 선착장) 도착하기 2~3분 전에 승무원이 ‘이 배 잠실까지 안 간다’고 뚝섬에 다 내리셔야 된다고…”라고 말했다. 이 사고와 별개로 같은 날 오후 7시30분에 잠실 선착장을 출발할 예정이었던 마곡행 한강버스는 선박 고장으로 아예 결항됐다. 그 바람에 강서 방향으로 이동하려던 시민들은 황급히 다른 교통수단을 찾는 등 불편을 겪어야 했다. 승부수? 무리수? 서울시는 두 선박 모두 전날 밤 안정화 조치를 거쳐 다음 날인 23일 운항에는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또 선내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한강버스 운영사가 이상을 감지한 뒤 원인을 파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려 안내에 일부 지연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재 한강버스는 마곡-망원-여의도-압구정-옥수-뚝섬-잠실 28.9km 구간을 상하행 7회씩 총 14회(첫차 11시) 운항하고 있다. 소요 시간은 마곡에서 잠실까지 127분이다. 여의도에서 잠실까지는 80분이다. 추석 연휴 이후인 다음 달 10일부터는 출퇴근 시간 급행 노선(15분 간격)을 포함, 평일 기준 왕복 30회로 증편한다. <smk1@ilyosisa.co.kr>